다락골사랑/다락골 사랑

매는 몰아 맞아야 낫다??

누촌애(김영수) 2008. 7. 7. 22:45

"애간장 녹인다."
이 말의 의미가 새롭다.
주말에만 찾아오는 비 소식에 아침부터 하늘부터 올려봤다.
얇게 깔린 안개에 시야마저 좋지 않다.
증기탕 속 같은 덥고 후텁지근한 날씨가 며칠째 계속되고 있다.
신경들이 날카롭게 대립한다.
마음은 콩밭에 가 있는 비둘기처럼 딴대 있는데 직원하나가 회사를
그만둬 일처리마저 계속 지연된다.
정오 무렵부터 소나기가 퍼부어 땅을 식혔다.
여우비쯤 여겼던 비가 두-세 시간 오다가다를 반복했다.
2주를 비운 터가 눈에 밟혀 물불 생각할 겨눌 없이 고속도로를 올라탔다.
길가에 핀 샛노란 모감주 꽃의 싱그러움에 빠져 즐긴 여유도 잠시 크고 작은
빗길사고로 차가 가는 시간보다 멈춰선 시간이 많아 보인다.
다락골로 가는 여정이 순탄지만 않을 것 같은 불길한 예감 때문에 잔뜩 흐린 날씨
만큼 마음도 뒤숭숭했다.

 

  

쉼터의 자물쇠를 열어 젖혔다.
케케한 곰팡이냄새가 코를 찌른다.
눅눅하고 습한 기운에 온몸에서 기가 빠져나가 이러다간 밭에 발도  한 번 들어보지
못하고 주저앉나 싶다.
습기를 제거하기위해 보일러부터 점검했다.
밭두렁, 밭고랑 하물며 쉼터 앞마당까지 파죽지세로 영역확장을 끝낸 풀 천지를 바라보니
어디에 먼저 손길을 내밀어야 될지 쉽게 우선순위가 떠오르지 않는다.
다행히 비는 당진에 들어설 무렵에 멈췄다.
풀잎마다 촉촉이 물기를 머금고 있지만 물이 잘 빠지는 토질이라 풀 뽑는 데는 더할
나위 없이 좋아 보인다.
본 잎이 8-10장으로 훌쩍 커 버린 검은콩 1차 순지르기 작업을 최우선 순위로 결정하고
가위를 챙겨들자 자칭 "큰 일꾼"이라고 으스대는 옆지기가 호미를 집어 들고 야콘밭으로
들어선다.
2주전 관찰결과 본 잎이 4-5장이였다.
분지발생을 촉진시키고 장마철 웃자람을 억제하기 위해 인산가리를 엽면시비 했던 1차 교대기처리의 영향인 듯 몰라보게 분지발생이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으나 마디와 마디사이가 예상했던 것보다 길게 신장됐다.
장마철 쓰러짐을 예방하기위해 1구멍에 1-2그루씩만 남기고 나머지는 과감히 그루터기를
잘라 솎아내고 본 잎 5-6장 사이를 가위질해 시원스레 생장점을 제거했다.
2주전까지 피해를 입혔던 고라니의 피해는 발생되지 않는다.
이웃 밭에 줄도 치고 울타리도 만들고 하는 것을 보니 고라니가 그쪽으로 활동무대를 옮긴 듯싶다.

 

쉼터와 인접한 텃밭이라 일하기가 수월하다.
잠깐 잠깐 휴식을 취할 수 있고 필요한 도구와 자재가 바로 바로 조달된다.
때로는 저녁 늦게까지 아니면 이른 새벽부터 일을 할 수 있어 좋다.
기승을 부릴 더위와 마주하기 싫어 눈 뜨자 호미를 챙겨들었다.
그동안 다른 일을 핑계로 방치해버린 도라지와 더덕 밭 잡초제거에 나섰다.
산처럼 우거진 잡초들 사이에 활짝 핀 도라지꽃 보기가 왠지 민망했다.
새벽부터 꽃을 찾아 날아든 꿀벌들이 도라지꽃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옥수수수꽃 주변에서만
윙윙거렸다.
1주일단위의 터울로 계속 심은 대학찰옥수수 중 맨 처음 심은 것에 달린 옥수수통이 여물기 시작했다.
시장에 내다 팔 물건도 아니고 해서 한그루에 2개씩만 남기고 3번째 이삭부턴 제거하고
3번째로 파종하여 개꼬리모양의 수염이 자라기 시작한 곳에 이삭거름(n-k비료)을마저 시비했다.
50그루를 심은 아삭이고추가 나무마다 주렁주렁 달렸다.
주변이웃들과 나눔 하려 노각이 된 조선오이 수확을 마친 옆지기가 고추수확에 신나있다.
“풋고추장사로 나설볼까“ 농도 걸어왔다.
장마철 영향인 듯 일반고추에서 가끔 하나씩 무릅병 증세를 가진 고추와 배꼽썩음병 증세가
보이는 토마토가 발견됐다.
정식이전에 충분히 석회질 비료를 시비했었는데 아마 장마철 본격적인 성장철을 맞아 둘 다
칼슘부족에서 오는 영양장해가 그 원인 듯싶다.
고추에는 3차유인줄을 조금 느슨하게 설치했다.
3차 유인주을 너무 타이트하게 설치하면 키만 위로 커져 가지분화가 잘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이다.5번 화방까지 노란 꽃이 핀 토마토의 생장점을 제거하니 벌써 아침에 내린 이슬이 말라버렸다.
이슬이 마르기전에 엽면시비를 마쳤어야했는데 다른 일에 정신을 팔리다보니 시간가는 줄을
몰랐다.
질산칼슘에 장마철에 부족해지기 쉬운 미량원소와 목초액을 혼합해서 엽면시비를 마쳤다.
해가 정상에 다다르지 않았는데 이웃들이 덥다고 집안으로 자리를 피해버려 들판에 남은 것들은 우리부부 둘 뿐이다.

 

 

 

 

눈에 보이는 것이 모두 해야 할 일인데 그만 지쳐버렸다.
한 번 지친 몸의 회복이 싶지 않다.
과일과 음료수로 빼앗긴 수분을 틈틈이 보충하며 은행나무그늘에 앉아 땀을 식히다말고
밭두렁에 배어낼 풀 생각에 낫을 들고 나서보지만 싶게 몸이 따라오질 않는다.
낫질하는 시간보다 그늘에 앉아 쉬는 시간이 태반이다.
쉬는 날 한 번 재대로 쉬지 못하고
비싼 기름 값 쳐들어가며 이게 무슨 생고생이란 말인가…….
좋아하는 산행길마다 하고 이 골짜기에 파 묻혀 지금 하고 있는  이 짓이 정녕 내 인생에
꼭 필요한 일인지…….
"그 정성에 그 노력 돈 버는데 사용했으면 때 부자 되고도 남았을 텐데 지금하고 있는 이 짓거리가 무슨 짓거린가"
몸이 지치니 마음도 지쳤나보다.
지친 옆지기의 내뱉는 한마디가 오늘따라 심금을 울린다.
매도 한꺼번에 몰아 맞는 게 낫다지만 오늘도 그 매를 다 맞지 못하고 남겨야 될 것 같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고…….
애당초 기대도 안했으니 실망할 필요가 없지 않는가.
손때 묻어 반들반들한 곳과 그렇지 못한 곳이 확연히 구분된다.
보람찬 하루 일을 끝마치고서 두 다리 쭉 펴면 쑤셔오는 고통뿐이겠지만 하루하루 커가는 모습을 상상하며 다음주말에도 어김없이 다락골로 가는 고속도로에 차를 올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