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새의 추억
먹어도 먹어도 뒤돌아서면 배가 고팠던 때가 있었다.
가을걷이가 다 끝난 초겨울 방앗간에서 갓 찧어낸 흰쌀은
마땅한 주전부리감이 없었던 그 시절
약탈자들을 유혹하는 표적중의 하나였다.
지금은 시뻘겋게 녹이 슨 양철지붕만 덩그렇게 남아 시골의 쓸쓸함을 대변하는
흉물스런 모습으로 남아있지만 어릴 적 시골마을엔 동네마다 기곗방(시골에 계시는 어머님은 지금도 방앗간을 기곗방으로 부른다.)이 하나씩 있었다.
쿵! 쿵! 쿵!........
기곗방에서 울러 퍼지는 원동기 돌아가는 소리에 온 동네가 묻혀버린 저녁나절 서너 시경
마을 공회당에서 딱지치기 놀이를 하던 참새들이 허기를 참지 못하고 심부름 하는 것처럼
가장하고 슬슬 눈치를 살피며 기곗방 근처로 모여들었다.
주변을 서성거리며 한 놈씩 교대로 돌아가며 기곗방 안으로 들어가 내부사정을 살피며 딴전을 피웠다.
기곗방 중앙에 위치한 큰 기계에서는 쌀 방아를 찧고 주변의 작은 기계에선 가루를 빻느라 분주하게 돌아갔다.
양철 판을 둘러 쳐 비를 가린 방앗간은 규모가 제법 컸다.
작은 시골마을이라 일감이 충분치 못해 늘 여러 집이 어울려 어느 정도 일감이 확보되어야
기계를 돌렸다.
기계 앞에 먼저 곡식을 갖다놓은 순서대로 방아는 찧어졌고
방아 찧는 삯은 찧은 알곡의 많고 적음에 따라 정해진 양을 알곡으로 지불했다.
기계가 통과하는 횟수가 거듭될수록 나락에서 누런 껍질이 벗겨지고 벗겨진 등겨들은
방앗간 밖의 일정한 한곳으로 배출된다.
천장 대들보 밑으로 길게 연결된 쇠막대에 크고 작은 둥근 굴렁쇠가 빙글빙글 돌아가고
굴렁쇠와 기다랗게 끈으로 연결된 기계들이 쉴 새 없이 돌아갔다.
다 찧어진 쌀은 계량해서 삯을 치루고 삼태기에 담아 문 앞에다 놓고 재빨리 등겨가 나오는
곳으로 달려가 등겨를 담아내야했다.
등겨는 퇴비를 만들어 다음해 농사에 사용하기에 작은 티끌 하나도 소중히 아꼈다.
참새들에겐 쌀을 훔쳐 먹을 수 있는 유일한 기회는 이 시간뿐이었다.
방앗간 문 앞을 어슬렁대던 녀석의 신호와 동시에 한 무리의 참새 때가 슬금슬금 방앗간으로
숨어 들어가 바지주머니에 쌀 두세 줌을 쑤셔넣고 뒤도 안보고 줄행랑을 놓았다.
"저! 개새끼들 좀 잡아라.
아이고! 우리 쌀 다 둘러(훔쳐) 도망가네!"
인천에서 기름 짜는 기름집과 방앗간이 모여 있는 수인역 근처 방앗간에 들렸습니다.
사람들의 왕래가 빈번한 가운데서도 방앗간 앞에 모여든 참새들의 모습은 정겨웠습니다.
다락골에서 수확한 곡식들로 기름도 짜고 고춧가루도 빻고 미숫가루도 만들었습니다.
기억의 저편에 머물고 있는 옛날의 방앗간모습은 찾을 수 없고 기름 먹는 원동기대신에
전기를 이용해 모든 일이 진행되고 있어 조금은 낯설었습니다.
들기름을 짜는 틈틈이 기름 짜는 과정을 들여다보았습니다.
1.물로 깨끗이 세척합니다.
2.물기를 제거합니다.
3.150도의 고온에서 20분간 달달 볶아냅니다.
4.열기를 식혀줍니다.
5.착유기에 넣고 기다리자 들기름이 세어 나옵니다.
6.오래 오래 맛을 유지하기위해 유리병에 담아왔습니다.
고춧가루 빻는 모습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