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장하던 날.

 

 

처마 밑에 돼지고깃덩어리가 매달렸습니다.
다락골에서 식구들이 모여 김장하는 날입니다.
한해농사의 결실을 함께 나눕니다.

 

 

주야간 수시로 바뀌는 옆지기의 근무형태,
좋지 못한 장모님의 건강,
서로 다름을 인정하지 못해 생긴 형제간의 소통 부족…….
이런저런 사정들이 겹쳐
다락골에서 농사를 일군 후부터 연례행사처럼 되어 버린

처가 동기간끼리 다락골에 모여 김장을 담그는 일을 올핸 그냥 건너뛸까 생각도 많았습니다.

 

 

 

 

곡절 끝에 불편한 몸을 이끌고 장모님이 앞장서고
솔선해서 형제들이 모였습니다.

 

 

 

 

 

 

올해 심었던 김장채소 작황은 더할 나위 없이 좋습니다.
생육초기 웃거름만 한번주고 농약한번 치지 않았는데 속고갱이가 잘 들어찼습니다.
아삭하고 달콤합니다.
유별나게 좋았던 가을햇살이 한몫 했습니다.

 

 

배추통을 쪼개는 모습에서
세대 간의 차이가 뚜렷하게 갈립니다.
배추를 소금물에 빨리 절이기 위해 어미는 배추통을 네 조각으로 쪼개려하고 모양새를 따지는 새끼는 두 조각을 고집합니다.

 

 

 

 

 

 

 

 

 

소금물에 담그고,
돌로 누르고,
수시로 뒤집고,
거진 여섯 시간 동안 절여져 숨이 죽은 배추를 깨끗한 물에 헹궈 소금기를 제거하고 경사지게 쌓아올려 물기를 제거합니다.

 


지난해 유월 소래포구에서 구입해 와 은행나무 밑에 파묻었던 새우젓이 곱게 삭았습니다.

 

 

 

 

인공조미료는 전혀 사용하지 않고
숙성된 발효효소에 삭힌 액젓을 섞어 맛을 맞춥니다.
새우액젓에 장모님이 들고 온 간제미액젓과 멸치액젓이 더해지고
다시마, 황태, 배, 양파 등을 넣고 진하게 우려낸 국물에 갖은 양념과 잘게 썬 푸성귀를 함께 넣고 김칫소를 골고루 버무립니다.

 

 

 

 

 

 

 

간을 맞추기 위해 여러 입맛들이 모였습니다.
어미의 혀끝에서 맛이 결정되었던 이전과는 달리 올해부턴 딸들의 입김이 세졌습니다.
미각이 떨어진 어미는 자꾸만 양념 통에 손이가고 새끼들은 치우기 바쁩니다.
괜히 안쓰럽고 숙연해집니다.


 

 

 

 

 

 

 

쉼터 거실 바닥에 자리를 깔고
김칫소가 담긴 양념 통을 중심으로 빙 둘러 앉아 한 해 먹을 김치를 버무립니다.
자기만의 손맛대로 마음껏 버무려 김치 통을 채웁니다.

 

 

 

하룻밤 새 겨울이 성큼 다가왔습니다.
꽤 춥습니다.
올해 처음으로 얼음도 얼었습니다.
겨울 내내 먹을 귀한 먹거리를 챙겼습니다.
뿌듯한 표정입니다.
원 없이 주고
주고 생색내는 법도 없는 자연이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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