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화꽃이 필 때
글 / 조진태 (소설가, 아동문학가)



그 때도 2월이 다 저물어갈 무렵이었다. 아직도 내린 눈이 녹지 않은 산장에 꽃이 피어 있었다. 매화꽃이었다.
거년에 따서 말린 매화꽃잎을 다관에 우려 놓고 모처럼 찾아온 손님들과 마주 앉았다. 망울지고 방긋 벌은 매화꽃 한 가지도 꺾어다 찻상 위에 놓았다. 쌉싸래한 향기가 돈다. 다향인지 꽃향긴지 구별 못할 향이 방안 가득 찬다.
바깥 날씨는 아직도 겨울의 한복판이다.
아직도 봄이 오려면 한창 있어야 하지만, 햇살 두꺼운 전원의 한낮은 아롱거리는 아지랑이가 보름새 명주실같이 보드랍게 솟아오르는 굴뚝의 연기와 함께 하얀 공간에 무늬 놓는다. 이곳이 산촌이라 해도 도시에서건, 산촌에서건 살아가는 삶에는 아무런 유별날 것이 없다. 다만 다를 것이 있다면 부딪치거나, 소리치거나, 사람 가려 가며 살 아무런 이유가 필요치 않은 삶의 장소로서만이 산촌이요, 생활일 뿐이다. 오늘 서울 사는 친구들에다 마을 건너 귀농한 친구 몇이 우연히 모였다. 술 즐기는 친구는 술잔을 들고, 그렇지 못하는 친구는 매화차를 마신다.
이들과는 서로, 언제, 어디 있든 안부를 묻지 않아도 속내를 훤히 알 수 있는 스스럼없는 친구들이다. 속절없이 흘러간 세월, 그 세월의 무게를 어깨에 얹고 애오라지 외길 교직에서 한 생을 살아 왔던 친구들이다. 모두 정년 퇴직한 지도 오래다. 그들이 온다는 소식이 올 때마다 우리는 비 들고 청소하기를 잊지 않는다. 아내와 나는 물 뿌리고 쓸고 닦아 놓고 손님을 기다리는 것이 즐거움이었고 그들을 대하는 예(禮)로 생각해서다. 들어오는 길과 주차할 마당과 집 도랑을 말끔히 비질을 하고 물을 뿌려 두고 그들을 기다린다.
오겠다는 친구들은 서로가 숨기고 가릴 것이 없는 사이들이라 툭하면 내가 사는 농막으로 모여 든다. 그래서 3박 4일쯤은 예사로 묵었다 간다. 그들이 온다는 소식에 가슴이 설레고 떠나는 석별에 서운함과 애달픔이 늘 서려지는 친구들이다. 이들과는 그런 연유들로 해서 자원방래(自遠訪來)한 내객이었다.
나보다 한두 해 늦게 건너 마을에 귀농해 와 사는 친구 S가 이야길 끄집어낸다.
“내 옆집에 사는 이 마을 토박이 Y씨가 상처(喪妻)를 한 거야.”
“저런, 나이 몇인데?” 서울 친구 B가 물었다.
“아마 일흔은 됐을 거야.”
“헌데?” 또 B가 채근을 했다.
“현모양처로 한평생 남편을 도와 농사하고, 자식 교육 시키고, 넉넉하게 살았는데 어느 날 복숭아 수확을 하다가 갑자기 쓰러지고 만 거지. 그러니 아내를 잃은 Y씨의 마음이 오죽이나 했겠어. 그렇다고 같이 죽을 수도 없는 일.”
“그야 그럴테지.”
“그런데 사람 마음 알다가도 모를 일이야. 그렇게 사랑하던 아내가 죽고 묘 등에 풀도 자라기 전에 Y씨가 재혼을 한 거야.”
“허허, 무정한 사람!”
“이웃 마을에 과부가 한 사람 있었는데 청혼을 했다가 거절당하자 서울서 10년 연하의 여인을 데려온 거야. 뭐, 3천만 원에 1년 거치 3년 상환으로 데려 왔다나? 요즘 재혼 생활에 깨가 쏟아지다 못해 합방 1주일 만에 두 번이나 엠뷸런스에 실려 갔다더군.”
“하하하하, 호호호….”
모두가 박장대소로 한바탕 크게 웃었다.
서로가 막소주에 담근 매화주를 잔이 넘치게 따랐다.
“자 자, Y씨를 위한 축배를! 그리고 우리 노년의 건강을 위하여!”
다 함께 술잔이 아니면 찻잔을 들어 브라보를 외쳤다.
이 모임 가운데는 유일하게 아내를 자주 찾아오는 K여사가 있는데 전직 기자출신답게 정보가 빨라 읍내 소식을 도맡아 전해 준다. 군청 모 과장은 지난 연말에 남은 예산 처리하느라 어느 개인 진입로에 시멘트 포장해 주고 몇 십만 원 챙겼다는 둥, 아무개 여편네는 제 남편은 365일 콩나물국만 끓여 주면서도 제 속옷 하나만큼은 겁나게 비싼 프랑스제라며 새로 산 졸디오 아르마니 린넨 블라우스 자락을 치켜 보여 주는 요사스런 여자도 다 있다고 스스럼없이 남 흉허물 들추었지만, 순수하고 솔직한 성품에 밉게 보이지 않는 여인이라 무관하게 지내는 처지이다.
산촌생활에서 가장 한가로운 때는 겨울이 깊을 대로 깊은 정·이월이다. 그 중에서도 겨우살이 준비 다 끝나고 봄 준비 아직 이른 2월의 끝자락은 매화꽃이 핀다 해도 서두를 일이 없는 한가한 절기다.
이때쯤이면 매화꽃을 바라보면서도 황토방에 불을 넣고 응접실에는 1970년대나 볼 수 있었던 연탄난로까지 피워서 밤(栗)이며 고구마를 구워 지난 가을에 담가 두었던 동치미 국물과 함께 먹고 마신다.
아직도 산자락, 밭자락에는 눈이 쌓여 있지만, 읍내 나들이 길은 눈이 내릴 때마다 밀고 쓸어서 자동차는 다닐 만하다. 찌르릉…. 전화벨이 울린다. 아랫마을 윤희 할머니의 목소리다. 손자 녀석이 감기에 걸렸다며 병원에 다녀와야 한다고 자동차 좀 보내달란다. 아내가 손 털고 부리나케 일어나 차를 몰고 달려간다. 텃세하느라 뒷간에 앉아 개 부르듯 하지만 허물없이 찾아주고 불러주는 고마움에 오히려 반가워서 달려가는 아내다.
한여름이면 산밭에 나와 일하고 돌아가는 이웃사람들을 자동차로 실어다 주기 예사였고, 시원한 물 한 그릇이라도 대접해야 했다. 그런 아내를 두고 마을사람들은 “서울사람이라고 다 깍쟁이는 아니네유우.”라고 했다.
올해도 우리들이 가꿔온 그 산촌엔 매화꽃이 어김없이 피어 있을 게다. 하얗게 핀 매화꽃 그늘 아래서 우리도 자연의 일부가 되어 함께 도란도란 말소리 이어 왔던 곳. 아내는 아련한 향수 같은 추억을 반추(反芻)하는지 병실의 창밖을 내다보고 있다.
그녀의 눈망울엔 작년처럼 매화의 꽃그늘이 가득 깃들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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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지붕의 아담한 집
글 / 조진태 (소설가, 아동문학가)


몸이 온 산촌은 온통 새 생명이 기지개를 켜고, 만 가지 목숨 가진 것들이 소리 없이 아우성을 친다. 아울러 내가 기거하는 농막의 뾰족히 솟은 빨간 지붕에는 봄의 따사로운 햇살이 아지랑이와 더불어 출렁인다. 맑은 공기도 연녹색의 대지 위에 풍성하다. 연초록 숲 아래 개골창으론 눈 녹은 개울물이 졸졸거린다. 수십 미터 암반에서 치솟은 지하수가 스프링클러를 타고 푸른 잔디 위에 연우(煙雨)처럼 퍼져간다.
이쯤해선 자두꽃, 복사꽃이 망울지고, 연분홍 진달래와 노란빛 개나리가 함성을 지른다.
물과 공기와 햇빛은 모든 생물이 살아가는 삼대 요소다. 그 삼대 요소가 생명이 용트림치는 산촌에 넘쳐난다.
이곳을 한 번쯤 다녀간 친구들은 와 보지 못한 친구들에게 자랑이 늘어진다. 그래서 그 소리를 전해들은 친구들로부터 전화를 자주 받는다. 특히 도시에서, 그것도 탁한 매연 속에 사는 친구들일수록 전화가 잦다. 그럴 때마다 다음과 같이 안내를 해준다.
“중부 프리웨이를 110km 속도로 달려오다가 음성IC를 빠져 나오라. 그리고 바로 연결되는 음성행 하이웨이를 80km로 질주하다가 음성읍에 닿으면 36번 국도에 연결된다. 거기서 충주 방면 3km 지점 국도변에 이르면 왼편으로 ‘만남의 광장’이 있고, 오른쪽엔 ‘주유소’와 ‘전통가마솥’ 판매점이 나란히 있다. 그 곳에서 다시 충주 쪽 50m 지점에 ‘작가원(作家苑)’이란 녹색 간판이 눈에 확 들어온다. 그 간판을 보고 포장된 진입로를 따라 6백m 들어오면 아담한 빨간 기와지붕의 집 한 채가 있다. 물론 집이 한 채 있다고 말하는 것은 ‘빨간 지붕의 집’이 한 채 있다는 것이지 주변엔 여러 채의 창고며, 얼마 전에 새로 지어 이사를 온 두어 가호의 집이 있다. 바로 그 ‘빨간 지붕의 집’에 내가 살고 있다. 서울서는 승용차로 1시간 40분이면 족하다.”
이 정도 해주면 언제 오겠다는 전화 외는 두 번 더 묻지 않고 잘도 찾아오는 친구들이다.
자주 찾아오는 친구들은 대개가 금요일 오후에 모여드는, 모두가 직장에서 정년퇴직을 한 친구들이지만 아직도 손재고 가만히 집에 들어앉아 세월이나 삭히는 친구들은 아무도 없다.
다들 일찍이 노년을 염두에 둬서 각자 개성에 맞는 특기를 살려 이미 그 방면에 일가를 이루어 놓았기 때문이다. 시인, 아동문학가, 소설가, 수필가, 화가, 기사(棋士), 서예가, 목공예가 등 다양한 특기에다 예식장의 주례 서기, 적십자사에서 한글문맹자 교육, 노인대학 강사로 쉼 없는 활동을 하고 있는 친구들이다. 그래서 “인생은 육십부터”가 아니라 “칠십부터”라고 생각하는 이들은 이곳에 와도 놀고만 있는 법이 없다.
별도로 마련해 놓은 창작교실에는 시인과 작가들이 모여 작품을 쓰거나, 토론회를 갖는다. 느티나무 밑 평상에는 기사(棋士)가 바둑을 두고, 화가는 실경산수화가 아니면 수채화를 그린다. ‘빨간 지붕의 집’ 응접실 넓다란 테이블 둘레에는 주례사를 쓰거나, 강의록 작성에 여념이 없는 친구도 있다. 동반해 온 부인네들은 모처럼 만나 끝없는 수다와 함께, 웃음소리가 낭자한 가운데 산자락 밭자락에서 캐온 산나물, 들나물로 음식을 장만하여 풍성한 점심상을 차리기가 일쑤다. 잔디로 뒤덮인 정원에 식탁을 갖다 놓고 진수성찬(?)이 마련되면 다들 제몫을 챙겨 게 눈 감추듯 한다.
그래도 시간이 남으면 연못에 낚싯대를 드리워 낚시를 즐긴다. 낚시질한 붕어는 매운탕 끓여서 소주잔을 나눈다.
이레서 봄의 산촌에는 회색빛 무거운 겨울을 밀어내고 봄 냄새, 사람 냄새로 가득 찬다.
어느 사이 하루해가 기운다. 일몰의 노을이 수정산 머리 위로 붉게 탄다. 붉게 타는 저녁노을을 바라보는 시인은 인생의 황혼기를 생각하며 시를 읊는다. 화가도 타는 노을을 그리고, 사진작가도 노을을 찍는다. 그러다가 어느 한 친구가 아직도 잔디가 덜 자란 묫등을 건너다보며 뜬금없이 말한다.
“어느 새, 무덤 하나가 더 생겼구먼.”
그는 석양에 빗겨 선연한 무덤을 가리켰다.
“그래, 지난 가을에 세상을 하직했지. 바로 저 쪽 농장에서 사과나무를 가꾸던 친구였어.”
“이렇게 물 좋고, 공기 맑고, 햇볕 좋은 곳에 살면서도 무어가 그리도 급해 서둘러 떠났을까?”
“글쎄나, 한평생 농사지으며 욕심 없이 살던 이 곳 토박이였는데. 하기야 술이 탈이었지. 과수원에만 나오면 하도 과음을 자주 해 인사불성이 된 그를 내가 병원에 실어다 나른 횟수만도 수회나 되었거든.”
“폭음을 해야 할 이유라도?”
“알뜰히 농사 지어 자식들 뒷바라지해 결혼시켜 내보내고 두 내외 살다보니 아내는 중풍 들어 누웠겠다 낙이란 술밖에 없다고 푸념깨나 하였었지. 그러면서 나보다 한참 아래였던 그가 죽기 전까지만 해도 내게 이런 말을 자주 했었다네.”
“뭐라 하던가?”
“선생님은 일흔까지만 사십시오. 그 후에 돌아가시면 수의까지 장만해서 선생님 장례는 제가 책임지고 모시도록 헐 터이니께유우 하고 농담을 하곤 했었지.”
“그러던 그가 저렇게 먼저 가서 누웠으니 참으로 인생은 무상한 거구먼.”
전직 A교장의 한탄조의 말이었다.
노을은 점점 더 붉게 타오른다. 타오르는 저녁노을을 바라보며 다들 인생의 황혼을 생각한다.
“아, 저 불타는 황혼을 보라. 바로 저것이야. 하루를 마감하는 저 일몰의 위대함이여!”
B는 시인답게 황혼을 찬탄해 마지않았다.
“우리의 황혼기도 저 불타는 노을이어야 해. 지는 황혼이 아름답듯이 인생의 황혼도 아름다워야 해. 그것이 인생에 있어서 ‘유종의 미’라는 거야.”
나는 지금 저렇게 붉게 물든 저녁노을을 바라보면서 문득 아내와 함께 했던 여행 중 잊을 수 없는 추억의 노을이 떠올랐다. 저 북미(北美)의 대서양 연안에 있는 노바스코샤에서 보았던 낙조(落照)하며, 온타리오 주의 토론토에서 퀘백에 이르는 로렌스 강에 무더기로 떨어지던 그 찬란하던 황혼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그뿐이던가! 비탈길을 달리는 케이블카에서 내려다본 샌프란시스코 항의 골든게이트 브리지에 쏟아지던 황금빛 낙조와 더불어 찬란했던 황혼 또한 잊을 수가 없다.
내가 그토록 그 때 그 황혼을 추억하는 것은 하루를 마감하는 자연의 아름다움에서 내 인생의 황혼을 생각했기 때문이다. B시인의 말대로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다 황혼처럼 아름답게 살아지기를 바래서이다.
어느 사이 수정산 능선에 보름달이 떠오른다.
밤공기가 차가워지자 마당 귀퉁이에다 모닥불을 피웠다. 토닥토닥 불똥을 튕기며 불꽃이 활활 타오른다. 모닥불의 밝음이 달빛을 밀치기라도 하듯 환하다.
아이들은 쥐불을 돌리고 어른들은 오갈피로 빚은 농주를 마신다.
농막의 뾰족한 지붕 위로는 파르스름한 달빛이 무더기로 쏟아지고 있다.
“후꾸 후꾸….”
이름 모를 밤새의 울음이 산촌의 밤을 살짝 흔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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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눈, 잎눈트는 소리에 산촌이 시끌시끌

글 / 조진태 (소설가, 아동문학가)

 

내가 사는 작가원(作家苑)의 4월은 배시시 웃으며 꽃눈, 잎눈이 한꺼번에 터지는 소리에 시끌시끌해진다. 자작나무에는 수액 채취가 끝날 무렵이 되면 가지마다 연록색 잎눈이 튼다.
벚나무 가지마다 팥알만큼이나 주저리 맺혔던 꽃눈도 서로 먼저 꽃망울을 터뜨리겠다고 수선스럽다.
꽃망울을 제일 먼저 터뜨리기야 샛노란 복수초가 제일이라, 산자락이나 밭 언덕 아래 아직도 잔설이 하얗건만 출렁거리는 아지랑이 데불고 따스한 햇살받이에서 철모르고 꽃망울을 터뜨린다. 잔설 속에 언제 피었던가 싶게 복수초 꽃이 지고 나면 이어 매화꽃이 피지만 역시 봄소식은 한참 있어야 온다.
봄의 화신을 전해 주기론 뭐니 뭐니 해도 개나리와 함께 피는 생강나무꽃이 먼저요, 그 다음이 분홍색을 자랑하며 생글생글 웃는 진달래꽃이고 철쭉꽃이다.
이맘때가 되면 이월달 영등바람과 더불어 지친 걸음으로 왔다가 피는가 싶지 않게 낙화되고 마는 자리에 녹두알 같은 열매를 달게 되는 살구 또한 봄의 전령사라 할까. 파릇하게 바늘끝 같은 잔디가 기지개를 켜면 그 틈바귀를 비집고 상사초가 그 늘씬한 몸매로 꽃대를 뽑아 올려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헤죽헤죽 웃는다. 상사초는 언제나 화엽(花葉)이 불상봉(不相逢)이다. 구중궁궐의 여인 같은 수려한 자태의 꽃을 자랑하다 시들고 나면 한참 있어야 잎이 돋아나기 때문에 잎과 꽃은 영원히 만날 수가 없다는 것을 산촌생활에서 나는 눈여겨보아 왔다.
묘목을 사다 심은 지 올해로 쳐서 8년째 되는 백목련 두 그루는 지난해 가을부터 겨우살이를 하느라고 솜이불을 둘러쓰고 누에고치만한 꽃눈이 잎눈을 뒤로 밀치고 제 먼저 화려한 꽃잔치를 벌인다. 그러면 마당 끝 돌담 옆에 서너 해 전에 심은 산수유가 서늘한 눈빛으로 목련꽃이 하는 짓을 유심히 바라본다.
장독대 옆에 몇 포기 뿌리 내린 접시꽃이 겨울을 용케 이겨 내고 벌써 서너 치나 키가 자라 있다. 얼마 안 있어 황토방 토담 곁 십 년이 넘게 자란 다래 덩굴에선 새순이 자 가웃쯤 뻗어갈 것이고, ‘살아 천년 죽어 천년’을 간다는 주목나무에서도 새순이 돋고, 반송 또한 가지 끝 송홧가루가 봄바람에 폴폴 날게 될 것이지만, 그 때까지도 꽃눈은커녕 잎눈 하나 틀 생각 않는 게 대추나무이다. 그런데 과일나무 중에서 열매가 먼저 굵어지는 것이 대추 열매다. 하기야 꽃잎 떨어지고 봄 가기 전에 열매 거두는 것이 매실이고 앵두인 것을 보면 생명 가진 것들의 삶에는 저 나름의 방식이 있을 터이다.
산촌의 4월은 확실히 분주하고 수선스럽다. 싹트고 움트는 소리, 나무에 물오르는 소리, 꽃눈트고 잎눈트는 소리, 나비 날고 벌 날아 윙윙거리는 소리, 새 소리, 바람 소리, 물소리, 경운기 소리, 트랙터 소리…. 그런 소리 속에, 살아 있는 것들은 모두가 꿈틀거린다. 그리하여 꽃핀 자리마다 열매가 열리고, 잎눈튼 자리마다 이파리가 싱그럽다.
외롭게 절개 지킨 여인 같은 황백색 창포꽃이 연못가에서 수줍게 피면 선비 같은 남색 붓꽃이 점잖게 지켜보는 모습 또한 이곳 산촌의 봄 아니면 어찌 볼 수 있으랴.
올해도 편서풍을 타고 황사가 잦을 테지만 봄비가 내리면 황사도 가라앉을 것이고 대지는 촉촉이 젖어 삼라만상이 약동하게 될 것이다. 농장 한귀퉁이의 실개천 옆에 파놓은 물웅덩이에도 춘수(春水)가 가득히 찰 테고 그러면 기르는 물고기도 살맛나겠지.
올해도 할일이 많다. 우선 밀림처럼 빽빽하게 밀식된 주목나무도 옮겨 심어야 하고, 작년에 옮겨 심은 은행나무, 사과나무, 배나무에는 퇴비를 주고, 전지도 해주고, 풀도 깎아 주어야 할 것이다.
밭둑 따라가며 옥수수와 호박 심고, 건너 동네 윤씨네 관리기 빌려다가 밭갈이해서 일찌감치 고추모를 내야 한다. 집 가까운 텃밭에는 상추씨, 열무씨를 뿌리고, 오이, 가지, 부추도 심고 가꿀 일이다. 토질 좋고 습기 많은 땅에는 토란을 심고, 울타리, 돌담 가에는 수세미며 울콩 심고, 더덕 씨 뿌리는 일도 잊어서야 되겠는가.
산촌생활에서 일 년 중 가장 살맛나고, 바쁘고, 즐겁고, 신명나는 때는 봄의 중간이 되는 4월이다. 따스한 햇살이 그렇고, 포근한 바람이 그렇고, 촉촉이 내리는 이슬비에, 꽃 피고, 잎 피고, 새 울고… 생명 가진 것들 모두가 아우성치는 그런 것들 때문이다.
‘4월은 잔인한 달’이라고 어느 누가 말했다지만, 반대로 ‘4월은 행복을 가져다주는 달’임을 산촌에 와서 살아 보면 알게 될 터이다.
산촌생활에서 호사스런 별장이나 짓고 음풍영월하며 허송세월 보내는 사람이 아니라면, 확실히 4월 한 달은 ‘번개처럼 지나가는 세월’임을 실감할 것이다.
동트는 아침인가 싶으면 어느 사이 저녁노을이 일고 땅거미가 소리 없이 내린다.
봄에 뿌리는 씨가 있어야 가을에 거둘 것이 있기에 봄은 가을보다 더 분주해야 하는 것이다.
4월의 햇살은 아무리 가려도 피할 길이 없다. 더구나 하는 일에 몰두하다 보면 온 몸에는 땀이 흘러 옷이 젖기 마련이다. 그러면 자신도 모르게 볕가리개의 모자도 벗고, 윗도리도 벗어 나뭇가지에 걸어 두고 일하는 게 예사여서 며칠 안 가 얼굴이 까맣게 타기 마련이다. 그런 줄도 모르고 우리 내외는 봄 일을 대충 끝내 놓고는 미국행 비행기에 오른다.
해마다 이맘때면 다녀가라는 막내 내외의 닥달에 못 이겨 미국 씨애틀행 비행기를 탄다.
그럴 때면 으레 기내 식사를 주문 받기 위해 스튜어디스가 다가와 영어로 묻는다.
“어떤 종류의 식사를 하겠느냐?”고. 그러면 “계란덮밥 하나와 돈까스.” 하고 한국말을 하면 스튜어디스는 깜짝 놀라곤 웃는다. 아주(亞洲)빛 피부색깔로 중동 아니면 아프리카인으로 착각한 게 미안해서일게다.
그렇게 햇볕에 그을린 피부색은 눈이 펑펑 쏟아지는 한겨울을 나야 제 모습으로 되돌아온다. 하여튼 산촌은 4월과 함께 생명 있는 것들의 각축장으로 시끌벅적한 곳이다.
그런 삶의 함성을 들으면서 ‘이 달의 행사판’에 빼곡히 적힌 일을 하노라면 해지고 달뜸도 잊은 채 봄날은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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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 생태맹(生態盲)
글 / 조진태 (소설, 동화작가)

해마다 5월이 오면 온통 활기 넘치는 산야를 바라보며 행복 넘치는 정서를 만끽한다.
풀이 있고, 나무가 있고, 맑은 공기가 있고, 따뜻한 햇볕이 있고 물과 흙이 있는 산촌의 삶에 끝없는 행복감에 젖는다. 도시를 벗어난 삶에서 오는 희열감도 더해진다.
콘크리트 문명으로 도시는 온통 회색 칠갑이다. 그 속에서 나서 자라고 생활하는 도시 사람들은 자연과 함께하는 삶을 모른다. 사람의 삶과 자연을 전연 별개의 것으로 여긴다.
인간과 자연은 서로 화합하고 교감하면서 상호 의존하고 보호하면서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의식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모든 식물은 풀과 나무일 뿐이고, 공기는 숨을 쉬는 데, 물은 마른 목을 축이는 데, 햇볕과 빛은 따스함과 밝음으로 인식할 뿐이다. 꽃을 보되 단순히 형형색색으로 핀 아름다운 꽃으로 여긴다. 그러나 붉고 노란 꽃의 아름다움으로 인식하기보다는 꽃의 종류, 피는 시기, 서식장소, 모양, 색깔, 번식 정도의 상식은 갖는 것이 좋지 않을까 싶다.
나무를 숲으로만 알고 있을 것이 아니라 개나리, 진달래, 명자, 후박, 수수꽃다리, 이팝, 병꽃, 배롱나무 같은 이름쯤은 알고 살펴볼 수 있는 눈은 가져야 할 것이며, 피는 꽃 모두를 그저 ‘꽃’이라고만 여길 것이 아니라 목련, 철쭉, 황매, 석류, 산사, 남천, 부용, 협죽, 동백, 능소화 정도의 이름들을 알아야 하고, 지저귀고 우는 것들이 모두 ‘새’인양 말할 것이 아니라 참새, 두루미, 황새며 뻐꾸기, 고니, 딱따구리, 올빼미 같은 이름을 알고 불러야 옳을 것이다. 동물이건 식물이건 그들은 인간과 공존함에 있어서 인간에게 정서적이거나 실리적 생활면으로 크게 도움을 주고 있다. 뿐만 아니라 보잘 것 없는 자연계의 미물일지라도 그들은 인간의 생명을 유지하는 데 끝없는 봉사와 기여를 해준다.
이들은 모두가 생태계의 일원으로서 상호작용 관계에 있음을 알아야 한다.
모든 생명체는 햇볕을 쬐고 내리는 빗물을 먹고 자라며, 그리하여 신선한 공기를 내뿜고 머금었던 물을 흘려 우리 인간에게 도움을 주게 되므로 우리들 역시 그것들을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음을 인식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인간은 자연에 관하여 너무나 무지하다. 글(文)이 있음을 알고는 있되 그것을 읽고, 써서 우리 생활에 활용하지 못하는 사람을 일컬어 문맹자(文盲者)라 일컫는다. 컴퓨터를 가졌으나 그 활용법을 알아서 일상생활화하지 못하는 사람을 일컬어 컴맹이라고도 한다.
마찬가지로 자연의 가치를 모르고 그 생태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그들 역시 생태맹이라 아니 할 수 없는 것이다.
오늘날 도시에서만 나고 자란 세대치고 문맹이나 컴맹은 없어도 생태맹이 아닌 자 그 몇이나 될까 궁금하다.
어쩌다 아이들을 데리고 산촌을 찾아온 젊은 부모나 아이들은 새소리, 벌레소리, 빗소리, 잎 틔우고 움트는 소리에 귀 기울일 줄도, 감탄할 줄도 모른다. 그저 꽃이고 잎이고 나무인 것으로 여길 뿐이다. 그들에겐 사교육비가 몇 조원이 들건 영수(英數)과외 한 시간 빠지면 숨이 멎고, 미술학원·피아노학원을 다니고 컴퓨터 게임과 인터넷에 빠진 것을 무슨 천재인양 자랑이 늘어진다.
모처럼 나들이한 산촌의 텃밭에서 한참 무성히도 자란 땅콩 밭이랑에 앉아 노랗게 핀 땅콩 꽃을 보는 아이들은 꽃 핀 자리에 언제 땅콩이 여느냐고 묻는다. 쌀이 쌀나무에서 열리고, 감자가 감자나무에서 열릴 것이라는 생각을 가진 아이들에게 바르게 가르쳐 줄 생각보다는 그저 웃고 넘기며 그것 알아 뭐하느냐는 태도의 젊은 부모들이다. 이들이 진작 생태맹이란 무서운 병에 걸렸음을 안다면 산촌을 찾아 주말 하룻밤이라도 묵으며 자연의 신비스런 생태를 좀더 살펴보아야 될 일이 아니겠는가.
생태맹인 사람이 비단 도시 사람만인 것은 아니다.
한평생을 산촌에서 자연에 의지해 살면서도 자연의 고마움을 모르는 생태맹 환자들도 많다. 요즈음 천정부지로 치솟는 유가(油價) 탓으로 겨울이면 석유 대신 나무를 땔감으로 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그래서 인근 남의 산에 몰래 들어가서 수십 년 된 나무를 함부로 베어다 화목으로 쓴다. 그것도 연기 덜 나고 화력 센 참나무를 골라 벌목을 하는 것이다. 오십 년도 더 자란 참나무를 거리낌 없이 마구 벤다. 그런가 하면 산자락에 일군 밭을 늘리기 위해 낙락장송을 눈썹 하나 까딱 않고 베내고는 손바닥만한 밭을 늘린다. 생태맹에 걸린 환자들은 눈앞에 보이는 작은 이득에 연연해 자연 생태계가 주는 장기적이고 거대한 이익은 보이지도, 볼 줄도 모른다.
자연에서 이루어지는 먹이사슬의 질서와 끊임없이 계속되는 순환과정에 대한 파괴가 곧 인간에게 자멸이라는 비극으로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 것임을 생각하면 모골이 송연해진다.
올해도 5월은 왔다. 그래서 산야는 푸르고 맑고 깨끗하다. 그 맑고 깨끗하고 푸른 산야가 주말이면 도시인의 나들이로 뒤덮인다. 그들이 지나갈 때마다 다래, 두릅, 음나무 등이 수난을 당한다. 순을 모조리 따가기 때문이다. 그들이 떠난 자리에는 버리고 간 오물이 보를 이룬다. 그래서 자연 생태는 생태맹에 의하여 파괴되기 마련이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했다. 자기가 스스로 돕지 않을 때 누가 도와줄 자 있을 것인가. “주는 것이 있어야 받는 것이 있다.”는 말도 있다. 자연에게도 주는 것이 있어야 혜택을 볼 수 있다. 아라비아 반도의 북서쪽에 있는 사해는 죽은 바다이다. 요르단 강으로부터 맑은 물을 받기만 했지 내보내지 않는 바다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남북관계도 마찬가지다. 주고받는 상호교류의 관계가 성립되어야 서로 발전할 수가 있다. 남쪽만 도와주고 북쪽은 받기만 한데서야 어찌 남북관계가 원만해질 수 있겠는가. 도움이란 물질만을 의미함은 물론 아니다. 북이 경제적인 도움을 받았다면 고마운 마음이라도 도와준 남쪽에 보내 주면 될 것이다. 그렇지 못한 데서 남북관계는 어렵고 통일은 요원하기만 하다. 세상사 모든 것은 질서와 순리에 따라야 하고, 보호해 주고 보호받는 상호관계에서 생존의 원리를 찾고 순응해 가야 할 것은 당연지사다.
산촌의 한 해는 그야말로 “봄이면 씨앗 뿌려 여름이면 꽃이 피네. 가을이면 풍년되어 겨울이면 행복하네”라는 대중가요의 가사만큼이나 계절 따라 순리 따라 그렇게 돌아가는 것이다. 여기에 자연을 거역하고 생태계를 파괴한다면 인간의 삶에서 행복을 누리기란 어려울 것이다. 따스하고 맑고 푸른 오월 하늘 아래 벌과 나비가 수많은 꽃들을 누비며 날고 있다. 꿀을 먹기 위해서다. 벌, 나비도 꿀만 먹는 이기주의자는 아니다. 꿀을 먹는 대신 꽃가루를 날라주어 열매를 맺게 하여 준다. 새들은 나무열매를 따 먹고 그 씨앗을 퍼뜨려 준다.
“너희들 이리 오너라!” 부모 따라 봄나들이 온 아이들을 불러 모았다.
“자, 이걸 보렴. 이건 느릅나무이고 저건 층층나무란다.”
“이 나무는요? 저 나무는요?”
“ 그건 헛개나무이고, 저건 보리수나무이지.”
“여기 심어 놓은 풀들은요?”
“그건 풀이 아니라 꽃이란다. 함박꽃, 벌개미취, 꽃창포, 붓꽃, 원추리, 꽃잔디, 할미꽃, 옥잠화….”
아이들은 흥미롭고 신이 났지만 젊은 어머니들은 심드렁히 여긴다. 그 따위 알아 뭣하겠느냐는 표정이다.
다행히도 오월 하늘처럼 맑고 밝은 아이들의 표정에서 다시 한 번 산촌생활의 즐거움을 맛본다.

청산에 묻혀 사는 뜻은
글 / 조진태 (소설, 동화작가)

추사(秋史)나 완당(阮堂)으로 기억되기 일쑤인 김정희는 정쟁에 말려 십 수 년을 섬과 한촌(寒村)에서 유배생활을 보내다가 고희(古稀)를 넘긴 인생의 말년에 광주 봉은사에 기거할 때 마지막 자신의 호를 지었으되 노과(老果)라 했다. 노경에 들어서 병고에 시달리며 환란의 세월을 보냈지만, 춘풍세우 보내고 엄동설한에도 늘푸른 송죽으로 버틴 삶을 볼 때 ‘향기 나는 늙은 과일’의 뜻을 지닌 ‘노과(老果)’란 호가 너무나 잘 어울린다.
실사구시(實事求是)가 제구실을 못하고 정쟁의 환란만이 난무하던 세상을 빗겨나 심산유곡 절간에 묻혀 시와 서화에 몰입했던 노과의 심정을 미루어 짐작하고도 남을 일이다.
오늘날 시멘트로 쌓아올린 빌딩숲이 들어찬 회색의 도시는 햇볕 한 줌, 바람 한 점 제대로 얻어 걸치기 어렵고, 신선한 공기 한숨 들이켜기 힘들다. 그래서 오늘을 사는 도시인들은 콘크리트 구조물에 갇힌 삶에 이골이 나서 도시를 벗어나 전원(田園)으로 들어가고자 안간힘을 쓴다.
나도 시멘트문화에 진력이 나고, 보다 더 많은 것을 소유하기 위해 아귀다툼하는 사람들에 지쳐 산촌을 찾았고, 그래서 청산에 묻혀 산다. 하지만 청산에 묻혀 산다고 해서 누구나 자유스럽고 행복해질 수는 없는 법이다.
사람이 이르는 곳에 청산이 있듯이(人間到處有靑山), 사람 가는 곳에 사람 있기 마련이라 듣고 보는 것 또한 좋은 것만 있는 것이 아니더라.
골목길 밟고 다닌다고 해서 닳아 없어지는 것도 아니건만 십년을 하루같이 앞뒷집에 살면서 “골목길이 내 땅이니 다니지 말라” 하면 “너는 왜 남의 밭둑 타고 다니느냐”고 아귀다툼이다. 신접살림 나간 춘삼이네가 자경(自耕)하는 과수원 옆에 농가를 마련하고는 군청에다 골목길 진입로 포장을 요구해 예산이 나오자 이장이 가로채서 자기 밭 농로 포장을 먼저 해버렸다. 며칠이 안돼서 이장이 술 마시고 운전하다가 교통사고를 내고 죽자 “지옥에 먼저 가려고 저승길 포장했네.” 하고 춘삼이네가 빈정거리는 소리도 들었다.
산촌생활의 풍경은 눈으로만 보고 느끼고 즐겨서는 안 된다. 마음으로 보고 살피고 느껴야 한다. 산촌은 단순히 공기 맑고 꽃 피고 산이 있어 평화롭고 순박한 삶의 장소가 아니다.
거기도 사람 사는 곳이기에 노자가 말한 “최상의 선(善)은 물과 같다.”는 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물은 만물을 이롭게 한다. 물은 다툼이 없다. 그저 흐를 뿐이다. 흐르지 않고 고여 있으면 썩는다. 생명력이 없어진다. 물이 흐름은 순리다. 물은 자연이다. 물과 같이 자연에 동화되어 살아야 청산에 묻혀 사는 의미를 지닌다. 마음으로 보고 느끼는 산촌은 바람이 있음을 잎새 흔들리는 모습으로 알고, 스쳐가는 소리로만 알 것이 아니다. 인간의 삶과 우주의 섭리가 융화된 데서 삶의 향기가 풍기고 생명 있는 것들의 숨소리와 속삭임을 들을 수 있다.
산촌 생활의 모습을 눈으로 보는 것과 마음으로 보는 것의 차이는 마치 화가 우첼로와 그의 아내 이야기에 비견된다.
우첼로가 ‘원근법(遠近法)’ 문제로 고민하고 있을 때 그의 아내가 조용히 다가와 침실로 가자고 말한다. 그때 깊은 생각에 잠겨 있던 우첼로가 외친다.
“원근법아, 너 참으로 사랑스럽구나!”
이 말에 아내는 소리친다.
“원근법이 도대체 어떻게 생겨 먹은 계집이냐?”
우첼로의 아내는 남편에게 달려들며 바가지를 긁었다. 엘케폰 라치포스키 著 노성두 옮김 「원근법아, 너 참 사랑스럽구나」에 나오는 한 에피소드다.
우첼로의 깊은 사색과 마음의 감동, 그 반대로 눈과 귀로만 듣는 아내의 표피적인 감정의 표출이 너무나 대조적이듯 눈에 비치는 것과 마음에 비치는 것은 이토록 다른 것이다.
유월 청산의 화기(和氣)찬 만물에 햇살이 쏟아지듯 떨어질 때 잠시 돌베개 베고 나무 그늘에 누워 오수를 즐겨 보라. 새소리, 바람 소리, 풀벌레 소리까지 귀청을 어지럽힐 터인즉 길고 짧은 세상만사 화살처럼 가버리고 후미진 산촌의 공산에는 어느 사이 하루해가 저물어 달빛만 유유히 흐르리라.
자연은 침묵하고 있어도 가만히 귀 기울여 들어보면 사람 사는 세상이나 다를 바 없다. 양분과 물을 빨아올리고, 잎 틔우고 꽃 피워서 열매 맺느라 여념이 없다. 그리하여 종족을 퍼뜨려서 대를 이으며 나서 자라고 사라짐을 반복한다. 이같이 세상 만물이 태어나고 사라짐이 신의 섭리인 줄 알면서도 부질없는 인생에 빈부, 귀천, 명예, 권력, 지위의 높고 낮음 모두가 일시적 외모단장에 불과한 것이지만 죽는 날까지 그 하찮은 것들에 미련을 못 버리고 사는 게 우리 인간이다.
부질없기 짝 없는 이름 위에 한 목숨 걸고 부질없이 살다 가는 삶의 마지막엔 “인간의 탈을 벗고 푸르른 하늘을 올라갈(脫人傀儡蒼蒼) 수만 있다면 오죽 좋으랴. 기온이 날로 오르면서 녹음방초가 하루 다르게 짙어간다.
삼간초옥 문 열고 바깥 나서면 숨죽여 울던 풀벌레 소리도 멈추는, 적요로운 청산에 통하는 거사 어찌 사람뿐이랴. 초목과도 마찬가지일터.
청산에 묻혀 빈 마음 풀어젖히고 사노라면 비록 첫 만남의 낯선 사람들일지라도 서로 기쁨 주고 고뇌 나눌 자 어찌 없으랴.
여름 비 한 줄기 지나 계곡물 졸졸거릴 때 물 가둔 웅덩이에 낚싯대라도 드리워 놓고 이웃 불러 부추전에 막걸리 한 사발 나누어 마시노라면 물 고인 수면 가득 소금쟁이 맴돌며 뭉게구름 데불고 희롱이 한창이기 예사이다.
이런 풍광을 일러 무릉도원(武陵桃源)이라 했던가. 그래서 오늘도 청산에 묻혀 산다.

오작교와 별과…
글 / 조진태 (소설, 동화작가)

장마 끝의 햇살은 유난히도 환하다. 특히 산촌의 하늘은 더욱 그렇다. 7월 햇빛이 녹음 냄새를 섞어 자글자글 쏟아지고 있다.
이육사의 시처럼 ‘청포도가 익는 계절’이 아니더라도 내가 사는 산촌은 머루, 다래 영글고 ‘햇사레 복숭아’가 볼을 붉히는 계절이 된다.
장마 끝난 대지에 내리쬐는 두꺼운 햇살은 끓는 지열과 더불어 아지랑이로 피어나고, 만 가지 살아 있는 것들의 왕성한 활동의 무대로서 그만이다.
천지간에 깔린 푸르름을 손으로 움켜쥐면 연신 손바닥에 푸른 물이 들 것 같은 7월의 산촌이다. 그런 산촌에도 황홀한 슬픔이 아니면, 사랑의 슬픔 같은 아픔이 잦아듦은 뭣 때문일까? 그것은 간간 부쳐져 오는 사별의 소식들 때문이기도 하다. 아내의 친구가 그렇고 나 또한 친구의 부음을 받는다. 해가 더해질수록 그런 횟수는 더해만 간다.
그래서 까치가 재작거리고 종다리가 하늘 높이 솟아올라 지저귀지만 조금도 즐겁다거나 행복함을 느끼지 못할 때가 있다. 아마 이런 때를 일러 살아 있다는 것은 행복한 것이 아니라 고독한 것인지도 모르기 때문이리라. 그럴 때면 영락없이 아내는 이런 노래를 불렀다.

서편의 저 달이 호숫가에 질 때면 / 저 건너 산에 동이 트누나, / 사랑 빛에 잠기는 빛난 눈동자에는/ 근심 띤 눈빛으로 편히 가시오. / 친구 내 친구 어이 이별할까나. / 친구 내 친구 잊지 마시오.

한때 병고로 사경을 헤매었을 때를 생각해서인지 이렇게 슬프도록 적요로운 날엔 흔히 애조띤 「고별의 노래」를 부르는 아내였다.
나는 그런 노래를 부르는 아내를 곁에서 모른 체하며 옆모습을 지켜만 본다. 그도 한때는 뭇남성의 시선을 모았을 눈부신 청춘이 있었겠건만 지금은 가냘프고 애처로운 늙은이에 지나지 않는다. 나 또한 아내에게 다 늙은 영감탱이로 보일테지만.
아, 그녀는 평생을 나 하나만을 지켜보며 살아온 지난 추억 에돌아 보매 불행도 아닌 것이, 행복도 아닌 것이 하나의 친구로, 반려자로 기대고 의지해 살아왔는데, 이젠 ‘서편의 달로 호숫가에 지는’ 것처럼 인생황혼기에서 언젠가는 각각 돌아서야 할 것을 생각해 저리도 가슴 저며가며 고독을 씹는지도 모를 일이구나.
나 혼자 가만히 가슴을 쓸어내려 본다.
불과 십 년 전 산촌생활을 원해 산골에 들어올 때만 해도 ‘이름 없는 여인’으로 남은 인생, 전원에 묻혀 살고파 했는데. 흡사 노천명의 시 같은 삶을 원했었는데.

어느 조그마한 산골로 들어가/ 나는 이름 없는 여인이 되고 싶소/초가 지붕에 박넝쿨 올리고/삼밭에 오이랑 호박을 놓고/ 들장미로 울타리를 엮어/ 마당엔 하늘을 욕심껏 들여놓고/밤이면 실컷 별을 안고// 부엉이가 우는 밤도 내사 외롭지 않겠소/기차가 지나가버리는 마을/놋양푼의 수수엿을 녹여 먹으며/내 좋은 사람과 밤이 늦도록/여우 나는 산골 이야기를 하면/삽살개는 달을 짖고/나는 여왕보다 더 행복하겠소.

아내는 원대로 산골로 들어갔다. 텃밭 가에 오이, 호박에다 박넝쿨도 올렸다. 반원 같은 아치 위에 들장미도 올렸다. 잔디 가지런히 자란 마당에는 하늘도 내려놓고 별도 불러댔다. 아니 멀리 충북선에서는 대전발 제천행 기차 소리가 들린다. 삽살개 대신 꼬리 없는 동경이가 달을 보고 짖는다. 그런 산골에서 ‘당신과 함께 하니 여왕보다 더 행복하다’고 했다.
그랬던 아내가 산골을 떠나 서울 아파트로 되돌아가기를 원했다. 몸 늙고 마음 늙음에 산촌 생활이 불편하다며 서울로 가잔다. 할 수 없이 산촌과 도시를 오가며 산촌생활 반, 도시생활 반으로 생활하기 시작했다.
서울서의 아파트 생활은 그 나름대로 편했다. 춥고 더움은 물론, 바람 불고 비 온다 한들 설거지 걱정할 필요 없고, 병 나 아프면 큰 종합병원 기라성같이 널려 있으니 오죽 좋으냐고 여겼다. 그래도 한 주를 못 넘겨 시골 다녀오기를 조른다. 그러면 준비도, 예고도 없이 산촌의 농막으로 달려간다.
산촌에는 기다려 주고 반겨 주는 것이 많다. 아내가 아침저녁 잡풀 뽑아 가꾼 앞마당의 잔디밭이 그렇고, 넘어지면 코 닿을 텃밭에 손발 안 아끼고 가꾼 농작물 모두가 제철 만나 자라고 있어 반갑다.
“꿩꿩꿩 푸드득” 콩밭에 내려앉았던 장끼의 울음소리나, 안개 내린 산자락에 숨어 “풀꾹풀꾹 계집 죽고 자식 죽고 서답빨래 누가 할꼬 풀꾹풀꾹” 어쩜 청승스러우리 만큼 울어젖히는 뻐꾸기의 한스런 울음마저도 정다운 곳이 산촌이다.
우리 내외 한마음 되어 하루 종일 콩밭, 고추이랑 풀매고, 과수원 풀 깎다 보면 하루해가 저물어 저녁노을 물든 하늘가에는 벌써 성근 별이 뜬다.
저녁 식사를 끝내고 뜰아래 놓인 평상에 앉아 별빛 찬란한 하늘을 우러러 본다.
은하수에 오작교(烏鵲橋)가 놓여진다는 칠월 칠석도 얼마 남지 않은 모양이다. 견우성과 직녀성이 1년에 꼭 한 번씩 만나도록 지상의 까막까치가 은하수에 다리를 놓는단다.
견우와 직녀는 까마귀와 까치의 머리를 징검다리로 삼아 노둣돌 밟듯 건넌다. 그것이 오작교다. 견우와 직녀가 일 년에 단 한 번만 만나야 하는 애달픈 사랑을 이루도록 까마귀와 까치가 헌신 봉사한다는 아름다운 전설. 그 칠석날 밤을 생각했는지 산촌의 밤하늘을 바라보던 아내는 무슨 생각에선지 눈물 그렁한 눈망울로 고개를 떨군다.
견우와 직녀의 애달픈 사랑이 아내의 가슴을 눈물 젖게 해서일까.
우연찮게도 칠석날 밤이 지나 다시 산촌에 찾아온 까막까치의 머리는 흡사 항암주사 맞은 암환자의 머리처럼 ‘속알머리’가 없다. 견우직녀의 발을 받쳐 주느라 깃털이 빠져서란다. 그런 까치를 음성군의 상징새로 지정해 뒀지만 요즈음에 와서는 농작물을 하도 해쳐대는 통에 애물단지로 전락했지만….
산촌에서 올려다보는 7월의 밤하늘은 높고도 맑다.
오작교 놓인 은하수에 별이 잠겨 있고, 마디 없는 시간은 천년만년 바람에 묻어 흐른다. 어지간히 밤이 깊었는지 수리봉에 산 달이 걸려 있다.
이슬이 내리는지 밤공기가 서늘하다.
“ 자, 그만 방으로 듭시다.”
잠자리에 누워도 여전히 창으로 번져드는 별빛은 여전하다. 견우와 직녀 속삭임이 들려오는 듯하다.

전원생활(田園生活)과 장수(長壽)
글 / 조진태 (소설, 동화작가)


산촌의 8월은 도시 한복판에서 울리는 경적보다도 나무숲을 흔드는 바람소리나 계곡에서 흘러내리는 물소리가 더 시끄러운 때가 많다. 천둥치던 먹구름도 한 줄기 소나기만으로 그치면 금시 청정하늘엔 흰구름 둥실 뜨는 일도 잦다. 그러다가 저녁노을 사그라지고 나면 날 저문 하늘엔 가로등 불빛보다 별빛이 더 휘황해진다.
그런 산촌의 8월은 한갓짐 속에서도 풍요로운 것이 많다. 낮의 길이도 길어 열너댓 시간이나 되어 활동하는 길이가 길고, 바람소리 천둥소리에, 풍성한 햇살, 산야를 뒤덮은 녹음 따위는 인간의 삶에 대한 질을 높여 주고 쾌적한 생활을 제공해 줌으로써 인간의 수명을 연장해 주는 데 절대적인 역할을 해준다.
그래서 요즈음은 도시를 벗어나 산촌이나 농촌에서 전원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음을 볼 수가 있다. 하지만 도시의 매연 속에서 수십 년을 살다가 어느 날 갑자기 산촌이나 농촌에 들어와 산다고 해서 건강에는 도움이 될 수는 있겠지만, 반드시 장수할 수 있게 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대개 장수하는 사람들을 보면 산촌에서 태어나 평생을 살아오는 동안 식생활이나 생활 습관이 자연에 동화되고 거기에 순응해서 살아온 사람들이다.
양주의 유명 상표로 ‘올드 파’가 있다. 루벤스 화백이 그린 『토머스 파』 노인의 초상화로 된 상표이다. 상표에 올려진 하얀 수염의 노인은 152세나 산 장수 노인이다. 그는 스코틀랜드의 한 농촌에서 전원생활을 하며 아무 걱정 없이 살았다. 80세에 처음 결혼을 해서 122세에 첫 부인과 사별하자 그 나이에 다시 재혼을 했다고 하니 과히 그 장수했음을 짐작할 만하다. 토머스 파가 그렇게 오래 살았던 것은 태어날 때부터 농촌에서 전원생활을 하며 마음 편하게 생활한 데서 기인한다고 보는 사람이 많다.
그래서 전원생활로 장수하는 사람들을 보면 대개가 결혼해서 자녀들을 많이 낳고 살며 농촌이나 산촌에서 맑은 공기와 풍성한 햇빛과 녹색의 공간에서 기쁨과 즐거움 속에서 자족하며 살아가기 마련이다. 뿐만 아니라 그런 사람들은 잠시도 손을 재고 사는 법이 없다. 늙어서도 자질구레한 일을 쉬임없이 하며 나날을 보낸다. 생활 정도는 그저 그렇고, 먹는 것은 주로 채식 위주다. 5일장이 돌아오면 재래시장에 나가 육류 몇 모타리에 생선 한 손쯤 사다 먹는 것이 고작이다. 그들은 정치나 세상 돌아가는 일에 무관심이고 대통령이나 군수, 면장이 먹여 살려줄 것이라는 생각은 애시당초부터 가지지 않고 산다. 매사에 구애 받음 없고 불평도 불만도 없으니 스트레스 받을 일도 없다.
그들은 조금 모자라는 사람같이, 또 조금 적게 먹으면서, 적당히 일하고, 욕심 부리지 않고 살면서, 부자도 아니면서 가난함을 모르고 사는 사람들이다.
산촌의 전원에는 거개가 등굽고 허리 접힌 노인들이 많지만 새벽닭 울음소리에 아침이 열리고 해 저문 하늘에 성근별이 떠야 하루 일이 마감된다. 그들의 연세가 여든이건 아흔이건 손바닥만 펴보면 구덕살이 박혀 있다. 그 구덕살이 증명하듯 진 날 갠날 없이 손 잰 적 없이 살아온 삶의 훈장들이다. 한평생 산 고개를 넘나들고 논밭자락을 누비면서 자급자족해 왔고, 넉넉지 않은 살림살이에도 자식들만은 외지로 내보내 공부시켜 잘 살도록 뒷바라지로 일관해 온 장본인들이다.
그들은 옛날 옛적 흉년에 쑥떡 한 넙뙈기 주고 바꿨다는 쑥떡배미 논 물꼬를 돌아보고 오거나, 아니면 묵정밭 일궈 심은 고구마 넝쿨 걷어 주고 동구 앞 가로질러오다가 춘삼이의 증조부가 심었다는 정자나무 그늘에 잠시 쉰다. 뜨거운 뙤약볕도 정자나무 그늘 아래선 소주 알바람처럼 시원하다. 거기에는 먼저 와 앉은 건너마을 노인네 몇 분도 있다.
“많이 기다렸는감?”
“기다리긴, 이제 나온걸. 자, 그럼 가 보세들.”
펼쳐도 가물가물해 잘 보이지 않는 성경책을 저마다 들고 교회로 간다. 세운 지 얼마 안된 교회에 새로 온 목사가 하도 권해 나가게 된 노인들이다. 보리암이나 천수암에 봄바람 쐬러 갔다가 보살님의 권유로 부처님께 절 몇 번 한 것이 신앙의 전부였던 노인들은 역시 가까운 예배당도 기도만 하면 천당 간다는 말에 귀 솔깃해 나가지만 목사님 설교보다 점심 한 끼 걸치는 게 좋아서 일요일을 기다렸다 다녀오는 노인네들이다.
신도들이라 해봤자 아이 어른 남녀 섞어 모두 스무나문 명에 불과하지만 찬송가 소리만은 드높게 울려 퍼진다.
“내 본향 가는 길 저기 있네. / 인생의 갈 길을 다 달리고 / 주님이 날 오라 손짓하며 부르니 / 내 앞의 소망은 오직 저 길 / -중략- 생명의 면류관 나 받겠네” (딤후4:7-8)
그들에겐 믿는 마음 약해도 찬송가를 부를 때만은 콧등이 찡해지고 알지 못할 감동에 눈시울이 적셔지는 때도 있단다.
그것이 바로 순박하게, 천심(天心)으로 살아온 산촌 사람들의 종교요, 그래서 오래오래 사는 비법인지도 모를 일이다.
산촌에 사는 할머니나 할아버지 같은 노인네들은 도시 노인들과는 다르게 이마나 눈가에 덕석 같은 주름살이 많다. 그래도 나이 더해지고 주름살 는다고 신경 쓰며 살지 않는다. 성인 공자도 잔주름 지는 것이 싫어 이마와 눈언저리를 잠들기 전 스무 번씩 문질렀고, 피부가 아름답기로 유명한 네로 황제 부인 포페아도 당나귀 젖으로 주름살 예방에 신경을 기울였다지만, 산촌 사람들은 백발이나 잔주름을 삶의 자국으로 생각하며 오히려 면류관(冕旒冠)처럼 여기고 산다.
진실한 삶의 향기는 인위적이고 가식된 외모에서 풍기는 것이 아니라 태어난 대로 살면서 세월 따라 변하는 모습으로 자기답게 사는 방식에서 풍겨지는 것이라 여겨서일까.
그렇게 사는 촌로들은 세상사 근심걱정 없으니 가슴으로 눈물 적실 일도 없고, 산등성이 너머로 사위는 저녁노을이 어둠에 밀려 하늘 가장자리에 걸렸어도 인생의 황혼을 생각해 본 적도 없다.
사소하고 하찮은 것들에 짓눌려 사는 법도 없다.
산달이 수리봉에 걸리면 저녁인가 여기고, 새벽별 사라지고 닭울음소리 들리면 아침이 열리는구나 여길 뿐이다.
태어날 때나 지금이나 아니, 천 년 전이나 만 년 전이나 흐르는 세월도, 부는 바람도, 자글거리며 쏟아지는 햇살도 똑같음을 알고 산다. 그런 삶에서 전원에 사는 사람들이 여느 사람들보다 장수하는 것이 아닐까 여겨진다.

만월보다 반달이, 꽃송이보다 꽃망울이
글 / 조진태 (소설, 동화작가)

9월은 그야말로 쟁반 같은 둥근 달이 동산에서 불끈 솟는, 한가위 명절이 있는 달이다. 따가웁던 한낮의 햇살도 시원하고 맑은 솔바람 한 점에 밀려나고 일몰과 함께 어둠이 엷게 산촌마을을 덮을 무렵이면 수리봉 능선에 둥근 달이 솟는다.
그렇게 솟은 밝고 큰 달은 역시 공해 없는 산촌이어야 볼 수 있고, 그 달에서 느끼는 뉘앙스 또한 생각하기에 따라 다른 의미를 갖게 된다. 이때가 되면 오곡백과는 산자락, 밭뙈기마다 풍성히도 영글어 가고, 한가위 명절을 맞아 외지로 떠나 살던 자식 손자들이 선물 꾸러미를 들고 산촌을 찾아들기 일쑤라 조용했던 산촌도 시끌벅적해진다.
밀물이 밀어닥친 선창만큼이나 소란스럽고 수선스럽다.
어린 손자 손녀들은 매미채를 치켜들고 달을 따겠다고 뒷동산을 오르고, 모처럼 둘러앉은 평상에는 부자고부(父子姑婦) 간의 주고받는 대화가 정겹다.
평상에는 휘영청 밝은 달빛이 무더기로 쏟아진다.
“얘들아, 마당 끝 수박등일랑 끄거라. 달빛 끄슬겠다.”
평생 절약으로 살아온 시어머니는 내심을 감추고 한다는 소리가 달빛 그을지 말라는 당부다.
“그래요. 참으로 밝은 달이네요.”
며늘아기가 수박등을 끄러가자 아들도 한 마디 거든다.
“꼭 일 년 만에 보는 달이에요.”
“그럴 테지. 항상 시간에 쫓기면서, 일에 밀리면서 어찌 달뿐이랴, 해도 제대로 볼 수 있었겠니?”
아버지의 자식에 대한 애정 담긴 말이지만 자기의 살아온 지난 세월을 반추하는 순간이기도 하다.
나 역시 그랬다. 직장을 오가고, 자식들을 돌보고, 사람을 만나고, 가정을 꾸려가고···.그렇게 바쁜 생활을 하다보니 인간이 생활을 영위하고 즐겁게 사는 것이 아니라 생활의 노예가 되어 시간에 얽매이고 구속된 자유 속에 살아온 것이 얼마나 어리석고 슬픈 일인가를 새삼 깨닫게 되는 것이다.
언제나 해야 할 일은 많고, 시간은 모자라고, 그래서 빌딩숲에서 혹은 지하철 안에서 아니면 방 안에서 허둥거리고 바둥대다 보니 하루가 지나고, 한 주가 가버리고, 아니 한 달이 일 년이 그렇게 가더니 이제는 인생의 황혼기에 다다르고만 나다.
아들의 “작년에 보았던 달을 꼭 일 년 만에야 볼 수 있네요” 하는 말이 예사롭지 않게 들림은 누구에게나 푸른 하늘을 이고도 그것을 바로 쳐다볼 겨를 없이 살아가는 현대인의 불행이 아닐까 여겨서다.
그래서 때늦게나마 이렇게 산촌에 묻혀 살면서 텃밭 가꾸고 책 읽고 글 쓰되 망중한(忙中閑) 속에 정신적 여유를 찾고자 노력해 보는 것이다. 그런 여유로움으로 달을 바라본다.
“동무들아 오너라 달 따러 가자. 장대 들고 망태 들고 뒷동산으로···.”
꼬맹이들이 부르는 동요가 휘영청 밝은 달 아래 울려 퍼지고 있다. 나는 유심히 달을 쳐다본다. 보름달이다. 보름달은 꽉 찬 둥근 달이다. 나는 만월(滿月)을 볼 때마다 어쩐지 마음이 서글퍼진다.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라든가 ‘달도 차면 기우나니’라는 말이 있다시피 ‘활짝 핀 꽃’은 십 일도 못 가 낙화하는 슬픔이 있고, ‘꽉 찬 둥근 달’은 곧 이지러질 서글픔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만월이나 만개한 꽃과 더불어 잔에 가득 찬 물을 보거나 공부나 달리기에서 일 등 하는 것을 보면 마음이 불안해진다. 물론 성취감이나 자아실현에 대한 것이 인생의 목표가 될 수 있겠지만, 목표 도달의 정점에 이른 쾌감은 순간에 불과한 것이고 그 정점을 향한 과정과 도전과 끈질긴 노력이야말로 인생 본연의 삶이 아닐까 여겨서이다.
나는 어느 해 집 근처 채전머리에다 66~99㎡(20~30평)쯤의 저수지(貯水池) 하나를 파놓고 수련 몇 포기를 심은 다음 물을 넣기 시작했다. 산골짜기에서 흘러내리는 개울물에 PVC 관을 연결해 놓았더니 수도관의 물줄기만큼이나 흘러들었다. 저수지에는 물이 날마다 몇 센티미터씩 차오르기 시작했다. 어지간히 물이 차오른 연못에다 비단잉어 치어를 구해다 넣었다. 아름다운 빛깔의 비단잉어들이 유영하는 모습을 보며 연못에 물이 가득차기를 기다렸다.
매일 조금씩 조금씩 물은 불어 올랐다. 물이 하루 빨리 연못에 가득 차기를 기다리며 틈날 때마다 연못을 들여다 보았다. 그러는 동안 어느 날 물은 연못에 가득 찼고 넘쳤다. 이제까지 연못을 채워 줄 물로서의 존재가치는 사라지고 쓸모없는 물로서 넘쳐나 사라질 뿐이었다. 물이 차오르는 기대감을 더 가질 수 없게 되었을 때의 허탈감은 마치 잘 가고 있던 수레에서 바퀴 하나가 빠져 달아나 버린 기분이었다.
이처럼 인생의 길에는 완성보다 미완이 더 소중하게 여겨질 때도 있게 된다.
늙은 내외가 사는 산촌에 언제 어느 날 자식들이 손자 손녀들을 데리고 올 거라 여기며 멀리 동구 앞을 내다보며 기다리는 마음이 행복하고, 씨앗 뿌려 그것이 싹트고 자라서 꽃 피우고 열매 영글기를 기다리며 사는 삶이 곧 보통사람들의 소박한 삶일지도 모른다.
인생에 있어서 만족 뒤에는 허전함과 외로움이 뒤따르기 마련이다.
늙은이들의 호젓한 산촌생활에 친지들이 올 것이라는 기다림과 설레임 속에 맞이한 반가움과 기쁨이 파시장(波市場)처럼 출렁인 뒤에는 그들이 돌아간 자리에 허전함과 서운함으로 채워지기 마련이다. 그래서 나는 1등보다는 2등이 좋고 꽉 찬 것보다는 덜 채워진 것이 더 좋다. 활짝 핀 꽃보다는 꽃망울이 더 좋고, 능선(稜線)보다는 8부 능선이 더 좋다고나 할까. 꼭히 목표를 달성하거나 목적지에 도달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닌, 목표나 목적지를 향해 중단 없는 전진을 계속하는 그 과정 자체가 참다운 삶일 수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태어나서 한평생을 살아갈 때 그저 덤덤하게 살거나 흐리멍텅하고 만사를 대수롭지 않게 산다거나 세상사 모두를 대충대충 넘기며 산다는 것 역시 무의미한 삶이겠지만, 반드시 목표 달성이나 완성만이 인생의 전부는 아닐 것이다.
한 개인에게 주어진 생명은 참으로 귀중한 것이다. 그 귀중한 생명은 순간순간이 중요하고 귀한 것인바 각자가 정해 놓은 목표를 향해 성실하고도 차분하게 노력해 가는 그 과정 자체가 참다운 삶일 것이다. 인생은 어떤 목표에 대한 도전이지 완성과 성공은 없다. 만약 완성이 있고 성공이 있다면 그것이 곧 절망이요 끝이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를 나는 늘 갖고 있다. 만월보다 반달을, 활짝 핀 꽃보다 꽃망울을 더 좋아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오동추야(梧桐秋夜) 달이 밝아

글 / 조진태 (소설, 동화작가)

 

이제 엷어져가는 햇볕 속에 가을이 여물어가면서 그늘 지워 햇살 가려주던 오동잎도 한두어 개씩 낙엽되어 떨어진다.
그 낙엽되어 나부끼는 오동잎을 볼 때마다 파도처럼 출렁이다 가버린 세월 속에 묻힌 아름다운 추억도, 후회와 그리움도 가슴 가득 고여 든다. 어떻게 살아왔는지조차 알길 없는 한 시대, 한 시절이사 접어둔다손치더라도 그 때 그 순간마다 내가 남겨놓은 발자국들의 의미가 새삼 그리워지는 계절이다.
돌아보면 어떤 것은 후회스럽기도 하고 어떤 것은 황홀한 행복의 순간이었기도 해서이다. 사람마다 생각하기 나름이겠지만 만족하고 행복한 삶을 누려오기보다는 고통과 후회스러움 속에 살아온 사람들이 많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사람들은 하나같이 일생을 살면서 만족하게만 산 사람은 그리 흔치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언제나 만족은 현재에만 있고 후회는 과거와 미래에 있다. 후회는 이미 지나가버린 과거에의 잘못을 되돌아보아 반성하고 아쉬워하게 되며, 그리하여 미래에 대하여 변화와 발전의 계기로 삼게 된다. 사회심리학자 닐로즈도 “후회는 유익하고 좋은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후회는 낙망과 좌절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두려워 말고 즐기라”고 했다. 그러기에 지나온 추억에 담긴 것은 모두가 그리움으로 고인다. 그것이 후회든, 행복이든 간에.
올 여름은 예년에 비해 그렇게 무덥지도, 지루한 장마도 없었다. 그러면서 소리 없이 가을로 성큼 다가선다. 이십 사 절기 중 한로(寒露), 상강(霜降)이 든 시월은 개울물에 손을 담그면 손끝이 제법 시리다. 아직도 아지랑이 하늘거리는 봄꿈에서 깨어나지 못했는데 어느 사이 봄, 여름이 한꺼번에 가고 가을이 왔다. 아, 참으로 세월감이 화살 같구나. 미각지당 춘추몽(未覺池塘 春秋夢)인데, 계전오엽 이추성(階前梧葉 已秋聲)이라는 7언 절구의 한시(漢詩)가 과장된 표현이 아님을 절감케 한다.
전원생활을 시작하면서 뜰에 심은 오동나무가 무성히도 자라 한여름 내내 따가운 햇볕을 가려 주더니 가을에 접어들면서는 소소한 달빛 받아 추야의 정치를 더해 준다. 이제 막 떠오른 보드라운 달빛이 오동나무 가지에 외롭게 걸려 있다.
혼자 가만히 뜰에 나서 가을밤 만월 걸린 오동나무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태곳적 고요함에 넋을 잃는다. 그 고요함에서 인생살이를 반추해 본다. 사람마다 제 나름대로들 산다고는 하나 어찌 그들의 삶이 제멋대로 진행될 것이며, 질서와 리듬 없는 삶이 있을 수 있을 것이던가.
아직도 한여름 내내 햇볕에 달구어진 주변 곳곳의 잔서는 불어오는 산들바람에도 불구하고 구석구석에 배어 있다. 이런 가을밤에 오동나무 아래서 달빛 받고 앉아 있으면 과일 익고 벌어 터지는 소리가 싱그럽다. 산들바람은 야생의 모든 가을향기들을 몰고 와 내 주변에다 뿌려 놓고 간다. 산들바람은 가을 향기뿐 아니라 나의 삶에 인생의 향기를 뿌려준 은인의 향기도 함께 묻혀준다.
한평생 살아오는 동안 내게 도움 주고 이끌어준 분들이 한두 분이겠는가만 그 중에서도 부모님 빼고는 첫손 꼽을 내 삶의 등대수가 돼 준 한 분을 들라면 대천산업의 노상만 회장을 첫손 꼽지 않을 수가 없다. 그는 매사에 긍정적이고 정직하며 신용을 생명으로 여길 뿐만 아니라 사치를 모른다. 또한 부지런키로 둘째가라면 서러울 사람이다. 그런 천성적인 성품으로 초지일관 변함없이 살아와 이젠 미수(米壽)를 눈앞에 두었지만 아직도 노익장으로 사는 현역 CEO다. 그는 언제 누구를 만나도 다정다감하고 해박한 지식과 가식 없는 생활 태도, 지켜야 할 예절, 그 하나하나가 알싸한 풀냄새처럼 싱그럽게 다가와 언제나 내 삶의 귀감이 돼 주었다.
세상의 가슴 할퀴는 소리와 독기 서린 언어와, 그래서 상처 받고 소심해 움츠러든 나의 일상을 소리 없이 만져주고 격려해 준 분이기에 상쾌하면서도 감미로움을 주는 돔페리뇽의 샴페인이 아니면 영양분 많고 노폐물 걸려낸 녹차의 향기로 내 가슴에 깊숙이 자리를 차지하는 분이다.
그와의 만남에서는 언제나 황실장미 다기에 모락모락 실오라기 김이 피어오르는 설록차 한 잔을 내놓을지언정, ‘온더록’이나 ‘본차이나’잔에 우린 ‘보이차’ 같은 사치스런 대접은 하지도, 받지도 못했다.
지금부터 사십여 년 전 임진강변에 있는 불모지 야산 수만㎡를 구입해 잣나무 심어 놓고 주말마다 손수 가지치고 제초해서 조림하는 근면함이나, 8남매 잘 길러 놓아 성장한 그들은 석·박사로, 교수, 금융인, 실업가 등 기라성처럼 활동하고 있거니와 그 중 장남인 노찬 씨는 현재 외환은행 부행장이다. 그럼에도 노 회장은 춘하 한결 회사 출근을 자전거로 통근한다.
어느 날 노 회장이 내가 드린 편지에 답신을 주신 바 그 내용 가운데는 건강법도 적혀 있었다. 그 첫째가 화내지 말 것. 둘째로 넘어지지 말 것. 셋째는 감기 들지 말 것이라 적었다. 어떤 수식어도, 화려한 용어도 없는, 소박하고 단순한 건강법 세 가지는 언뜻 보면 웃음이 절로 나겠지만, 가만히 곱씹어 생각하면 그처럼 훌륭한 건강법이 더는 없다 싶을 정도다. 노년기의 나에겐 감기가 만병의 근원이겠고, 넘어지면 크게 다칠 수 있으니 그 무엇보다 조심할 일이며, 밀고 밟고 당기고 쓰러뜨리는 요지경 같은 세상 속에 어찌 화내지 않고 살 수 있을까만 참아서 화내지 않는다면 스트레스 받지 않으니 그 또한 건강법의 제일이 아닐까 여겨서다.
아, 그런 분이 있었기에 나는 행복하게 사노라고 말하고 싶다.
산 넘고 들 건너 이곳 산마을까지 달려온 추풍이 싣고 온 소식들은 오늘 따라 짚불처럼 사그라지려던 옛 기억을 이렇게 상기시켜 주고 있다.
음성읍 외진 구석에 삼간초옥 마련해 먼지 털고 거미줄 걷어 사는 우거(寓居)의 주변에는 붉게 물든 대추, 사과가 주저리 매달리고, 볼 붉은 감, 때깔 좋은 배가 탐스럽게 익었는데, 산비둘기 구구거리는 산촌의 하루는 그렇게 흘러가고 있다. 아기우산만한 오동 한 잎이 찬이슬 받아 주느라 머리 위에 내려앉는데… 그래서 달빛 떨어지는 가을밤은 쓰르라미 울음소리와 더불어 깊어만 간다.

초록이 지쳐 단풍 들 때
글 / 조진태 (소설, 동화작가)

풀잎에 내린 아침 이슬이 차갑다. 날마다 조금씩 사물의 그림자가 길어지면서 옷소매 사이로 스며드는 아침 공기가 싸늘하게 느껴진다. 구름 없는 날이건만 엷어져가는 햇살 속에 서늘한 바람기와 더불어 낙엽처럼 나부끼는 그리움이 파도처럼 밀려오는 계절, 그 가을이 예년이나 다를 바 없이 이곳 산촌에도 익어 간다.
온통 여름의 한 계절은 초록의 세상이더니만 그것도 지쳐 이젠 단풍으로 물이 들었다. 그야말로 ‘초록은 지쳐 단풍 든다.’는 서정주 님의 시구처럼 눈 가는 곳의 만산에는 벌써 홍엽으로 물들었다.
올려다보이는 쪽빛 하늘은 구만리도 더 멀어 보이는데 스산한 바람 속에서 가을은 눈시울에 와 젖는다. 그러고는 애상의 모습으로 이별이 유난스럽게 다가온다.
꽃 지고, 낙엽 지고, 철새 가고, 바람 가고, 구름 가고, 그리고 우리의 청춘과도 이별이다. 그래서 모두가 이별의 계절이 된다. 이별은 서럽다. 이별이 있는 곳에는 휑하게 텅 빈 공간만 남는다. 쓸쓸함만이 공간을 가득 채운다. 그 쓸쓸함의 공간에서 간신히 견디면서 사는 것이 현대인에게 주어진 삶의 실존인 것일까?
성급하게도 벌써 벚나무 가지가 그렇고, 은행나무 가지가 잎새 하나 없이 텅 비어 있다.
넓은 밭이랑은 여름 내내 덮고 있던 초록이 거두어지고 참새떼만 폴폴거리며 날고 앉는다.
지친 초록과의 이별은 곧이어 회색빛 겨울과의 만남이 되겠지만, 그 만남이 있기 전에 먼저 어디론가 떠남이 앞섬을 어찌 하랴. 이런 때 나도 시나브로 일상의 삶과 더불어 가을을 앓게 되고 여행의 충동을 받게 된다. 먼 곳을 언제나 꿈꾸고 갈망했던 보들레르는 ‘어디로 어디로라도’라고 여행의 유혹에 빠지곤 했다. 플로베르 역시 프랑스에서만의 삶이 지겨워 “사하라의 사막에서 낙타를 몰며 올리브빛 피부의 여인과 첫사랑을 해보는 것이 유일한 꿈”이라며 여행을 떠났다고 한다.
그토록 여행은 육체와 정신은 물론 지적인 즐거움까지 맛볼 수 있으므로 단순한 떠남의 의미가 아니라 자유로운 상상과 달콤한 꿈과 실질적인 자유와 혼자만의 고독을 만끽할 수 있는 한 삶의 방식으로 일상의 권태도, 갈증도 털어 버릴 수 있는 기회가 된다.
흔히 산다는 것은 죽음을 향한 행보라고들 한다. 그러나 그 누구가 죽기 위해 태어났으며, 어느 누구가 죽기 위해 살고 있겠는가. 만남 역시 헤어지려고 만난 것이 아니듯이. 죽을 줄 알면서도 죽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살기 위해 살아가는 것이다. 또한 헤어짐 역시 참된 만남의 완성이라는 말도 있다. 떠남 역시 돌아옴을 의미한다.
촘촘히 살아온 세월 속에서 자신을 찾고 자신을 들여다볼 수 있게 되는 때도 가을이요, 가을이기에 여행은 더욱 의미를 갖는다. 초록이 단풍 들어도 내년 봄이면 다시 초록으로 되돌아오듯이 떠남은 곧 돌아옴을 의미하기에 지친 산촌을 잠시 두고 여행이라는 이름으로 떠나기를 갈망하는 것이다. 여행 속에서 열심히 살았던 행복과 뜨겁게 사랑했던 자신의 정체를 되새김질해 보는 좋은 기회를 가질 수도 있다. 이 가을 이렇게 이별과 만남과 떠남에서 고단한 이력과 삶의 일상이 묻어날 때 내면을 잘 다스릴 수 있는 기회도 되리라.
초록이 지쳐 단풍 들 듯 나에게도 언젠가부터 삶에 지친 일상에서 가을이 올 때마다 보헤미안이 되고 싶은 충동을 일으키곤 한다. 그래서 요 몇 년 간은 계획도, 여정도 없는 여행을 떠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태평양 연안의 북부지방에 있는 아름다운 도시 시애틀에 갔을 때다. 캐스케이트 산맥에 연이은 퓨젯 해협의 엘리옷 만(灣)을 바라보았을 때 이제까지 내가 살아온 찌든 삶들이 끝없이 펼쳐진 태평양의 파도와 바람에 씻기고 푸짐한 햇살에 묻혀 버렸던 기억이 새로워진다. 찰싹이는 물보라를 밟으면서 해변의 모래톱을 거니노라면 마치 열정이 파도치던 젊은 날의 꿈이 되살아나듯 긴장이 되기도 했었다.
또한 북미의 나라 캐나다는 단풍이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특히 내가 가 본 리치몬드나 오로라는 길길이 뻗어간 단풍나무 가로수가 가을 풍경을 수놓아 그 아름다운 정취가 내 마음을 파고들었다. 또한 저녁 햇살이 엷어지자 서늘한 바람기가 고개를 숙이면서 출렁이던 호수가 수면에 떨어지는 붉은 낙조를 데불고 조용히 잠을 청한다.
이 때쯤 해서 호숫가를 거닐고 가로숫길을 달리면 장밋빛 꿈이 현실로 다가서면서 어제의 고통과 슬픔은 사라지고, 진정으로 살아온 인내의 삶에 대한 행복과 보람을 만끽하게 된다. 이런 것은 아마 가을을 앓고 여행을 떠나 본 사람만이 맛볼 수 있는 경지일 게다.
낙엽이 뚝뚝 듣는 가을 어느 날 60년 만에 처음 만나는 고향 친구 한 사람이 찾아왔다. 그도 문득 가을을 앓다가 바람 편에 소식 듣고 그저 무턱대고 찾아왔다고 했다. 은행잎 우수수 떨어지는 평상에 앉아 박주 일배를 권하자 잔을 든 채로 그가 말했다.
“나이 드니 정말 할 일이 너무 없어. 할 일을 못하니 가을을 맞이할 때마다 서글픔과 이별과 절망이 앞서는 거야. 아니 인생이 없어. 아무리 지금의 고통으로 시간을 낭비하지 않으려 해도, 아무리 열심히 살고 뜨겁게 살아 눈물 흘리지 말자 해도 거기엔 이미 인생이 없는 거야. 그저 하는 짓이라고는 수락산역에서 무임승차로 두어 시간을 무료히 보내고 나면 천안역에 내리는 거지. 거기서 병천에 들러 순대 한 점 사먹으면 다시 돌아오는 거지. 그것이 가을이면 떠났다가 돌아오는 일과요 인생의 전부야.”
한때 중앙부처의 고급 관리로 잘 나갔던 친구가 60이 넘으면서 학력도, 명성도, 경력도, 능력도, 건강도 모두 평준화된 이 마당에 소소히 부는 가을바람 타고 내가 사는 산촌으로 나들이를 나온 것이란다.
“그래, 잘 했군 잘 했어. 당장 내일부터 시작해 봄세. 고구마는 캐서 마대에 담고, 무랑 배추는 뽑아서 땅에 묻는 거야. 그리고….”
“그리고…?”
“그리고 이랑마다 너울거리는 폐비닐은 걷고, 고춧대는 뽑아서 태워야 해. 그러고 나면….”
“그러고 나면?”
“그러고 나면, 과수의 밑동에다 퇴비를 뿌려주고, 배, 복숭아, 사과나무 가지는 전지를 해야 돼. 그리고….”
초록이 지쳐 단풍 든 산촌의 가을 마당에 기울어 가는 하오의 햇살이 두 사람의 어깨 위에 빼곡히 내려 와 앉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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