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추석.

 

어머님,
항상 그랬듯이
곁에서 우리가족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시길 두 손 모아 빌고 또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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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도의 관문 진도대교입니다.
쌍둥이 다리입니다.

 

 

 

해남과 진도를 잇는, 울돌목에 설치한 다리로 길이가 484m입니다.

 

 


울돌목은  물이 우는 똘의 목이라는 말로써 한자로는 鳴梁(명량)입니다.

 

 

 

"신에게는 아직도 13척의 배가 남아있나이다……."

 

 

 

충무공 이순신장군의 기개가 살아 숨 쉬는 울돌목의 물살은 그때나 오늘이나 변함없이 굽이쳐 흐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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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에서 가져온 무 맛이 일품입니다.

 


그곳이 따뜻한 섬마을이라 눈은 많이 와도 금방 녹아버립니다.
뭍에선 대부분의 농가에선 땅속에 파묻어 무를 보관하지만
그곳에선 노지에서 지푸라기 등으로 살짝 보온만 해주면 한겨울에도
싱싱한 무를 밭에서 바로 수확해 맛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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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도 소포간척지

 

 

 


진도읍 산월리와 지산면 소포리를 잇는 소포 간척지. 23일 둘러본 이곳은 바닷물이 막힌 지 30여 년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예전의 풍요로웠던 모습 대신 아픈 생채기만 곳곳에 남아 있었다. 맑은 물이 흐르던 석교천과 진도천 등은 역한 냄새를 풍기는 저수량 1300만㎥의 거대한 담수호로 변했고 방조제 바깥쪽, 바다에도 조류에 떠밀려 온 해초가 가득 쌓여 또 다른 오염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방조제 앞에서 낚시를 하던 김영석(73ㆍ진도읍) 씨는 "황해와 맞닿은 이 지역 바다는 예로부터 천혜의 어장으로 온갖 물고기가 다 잡혔던 곳"이라면서 "방조제가 만들어진 후 물길이 바뀌고 담수호의 수질이 악화돼 지금은 쓸모없는 잡어도 잘 안 잡힌 정도로 죽은 바다가 됐다"고 말했다.
바로 옆, 소포리와 안치리를 잇는 대흥방조제도 완공된 후 30년이 넘게 흘렀지만 아직껏 '미완성'이다. 한국농촌공사가 기존의 방조제를 보호하기 위해 바다와 접한 바깥쪽에 새로운 둑을 쌓고 바닷물의 침해를 막기 위해 배수장을 신설하고 배수로를 보강하는 공사를 벌이고 있다. 특히 바닷가에는 방조제에 사용될 거대한 돌덩이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고 공사로 흘러나온 흙탕물이 주변 바다를 온통 황톳빛으로 물들인다.
한국농촌공사 진도지사 관계자는 "대흥포 방조제가 낡아 2006~2008년까지 모두 23억 원을 들여 배수갑문과 방조제 보강공사를 한다"면서 "사업이 완공되면 안정적으로 농업용수를 확보하게 되고 재해를 미리 예방하는 등 영농환경이 크게 개선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곳 소포방조제가 만들어진 것은 지난 1977년. 주민들은 당시 포클레인 같은 중장비가 없었던 시절, 오로지 배고픔을 면하기 위해 맨몸에 지게와 리어카만으로 바다를 메웠다고 과거를 회상했다.
그러나 불과 30여 년 만에 이들 방조제는 쌀 증산이라는 소기의 목적은 달성했을지 모르지만 환경 측면이나 채산성에서는 명백히 '실패한 사업'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물고기가 사라진데다 제방을 안전하게 관리하기 위해 매년 들어가는 비용은 엄청나다. 게다가 토지에서 나오는 생산량이 뒤따르지 않으니 어쩌면 당연한 결과다.
실제 방조제가 들어서기 전 소포리나 산월리는 물론이고 방조제에서 12㎞(30리)나 들어가는 십일시까지 이어지는 드넓은 갯벌에는 바지락과 고막 등 패류와 낙지, 짱뚱어 등 갯벌에서 살아가는 온갖 해산물이 지천으로 널려 있었다.
배를 타고 조금만 더 바다로 나가면 민어ㆍ농어ㆍ돔ㆍ병어ㆍ전어 등이 잡혀 주민들에게 짭짤한 소득을 안겨주기도 했다. 안치리의 경우 진도에서는 유일한 지주식 김 양식장으로 유명해 이곳 주민들은 한때 진도군에서 가장 잘사는 마을로 통하기도 했다.
하지만 방조제가 놓이면서 안치리에서 시작해 소포리와 멀리는 십일시까지 마을 앞 갯벌을 적시던 조류가 막혔고 바로 이듬해부터 그 많던 고기가 사라졌다.
안치리 주민 노공헌(65)씨는 "제방이 들어서면서 바닷물의 흐름이 막히고 바다환경이 변해 40~50명에 달하던 김 양식 어민들이 지금은 다섯 명만 남아 겨우 명맥을 유지한다"면서 "우리 동네는 제방을 막은 후 망했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방조제의 경제성도 떨어진다. 지난 1975년 진도 지산면 소포리와 안치리 간 590m의 바다를 막아 만들어진 56㏊의 대흥포 간척지는 현재 진행 중인 보수공사를 제외하고도 완공 이후 지금까지 모두 여덟 차례에 걸친 제방보수와 방조제 확장 등에 무려 사업비 339억 원이 투입됐다. 30여 년 동안 매년 평균 11억 원의 공사비가 들어간 셈이다.
반면 여기서 생산되는 쌀은 ㏊당 평균 150가마(조곡기준ㆍ가마당 40㎏)를 잡더라도 전체 생산량이 1년에 8400여 가마에 불과해 금액으로는 4억2000만 원을 넘지 못한다. 인건비나 기타 부대비용을 빼더라도 매년 간척지를 유지해야 하는 공사비가 간척지에서 생산된 쌀이 얻는 소득에 비해 오히려 3배 가까이 많이 들어간다는 계산이다.
여의도 면적(848㏊)보다 넓은 1190㏊의 농경지를 새로 만들어 낸 소포방조제 또한 물길을 막은 뒤 매년 반복되던 염해를 줄이고 방조제의 안전성을 높이기 위해 지난 2004년 100억 원을 들여 배수갑문과 제방을 보수한 것을 비롯하여 모두 4차례에 걸쳐 전기시설과 수해복구, 제방보강 사업 등에 수백억 원의 사업비를 쏟아 부었지만 공사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갈수록 악화되는 담수호의 수질도 심각하다. 환경부의 수질감시시스템에 따르면 지난해 소포담수지의 화학적 산소요구량(COD)은 10.5㎎/ℓ에 달했다. 이는 우리나라 호소의 수질기준인 5급수(10㎎/ℓ)에도 미치지 못한 것. 부유물질량(SS)과 총질소(T-P) 등도 공업용수 기준인 5급수의 2배를 넘어섰다.
더욱이 농촌공사가 농업용수의 수질을 유지하기 위해 한 달 평균 4~5차례씩 담수호의 물을 바다로 빼내면서 인근 바다의 생태계에도 막대한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진도읍 산월리 강의만(65)씨는 "소포담수지의 경우 물 흐름이 막힌데다 정화되지 않은 각종 오ㆍ폐수가 흘러들면서 수질이 악화될 수밖에 없다"면서 "각종 생활하수와 축산폐수가 뒤섞인 담수를 바다로 방류할 경우 바다 생태계에도 악영향을 미치는 만큼 하루빨리 근본적인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 소포방조제는 지금

 진도읍 산월리와 지산면 소포리간 바닷길 1368m를 막아 만든 간척지. 1970년 공사에 들어가 7년만인 1977년 완공했다. 1988년 국가관리로 넘어온 뒤 10개의 갑문과 방조제, 농경지 등을 농촌공사가 관리하고 있다. 몽리면적이 1190㏊에 달하는 데다 담수량도 1억3000만㎥로 풍부해 연간 쌀 생산량이 7100톤을 넘어서는 등 식량부족 해소에 크게 공헌해 왔다.
바로 인근, 소포리와 안치리를 잇는 대흥방조제도 소포방조제가 만들어지기 2년 전인 1975년 완공돼 65㏊의 농경지를 새로 조성, 매년 쌀 340톤을 생산한다.
하지만 이 지역에 농업용수를 공급하는 담수호의 수질이 갈수록 악화되고 있는데다 쌀농사로 얻는 소득 또한 줄면서 경제적 가치가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

특히 대흥방조제의 경우 수 년 전부터 주민들 사이에서 방조제를 튼 뒤 다시 바다로 만들자는 '역간척 사업'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게 진행되면서 우리나라 간척사에 새로운 획을 긋고 있다. 지산면 소포리 주민과 환경운동가, 법률가 등이 참여하는 전문가 집단은 갯벌 복원을 목표로 지금까지 모두 다섯 차례에 걸쳐 현지를 방문해 타당성 조사를 실시했고 국민기금을 지원받는 국민환경신탁사업에 대한 논의도 진행중이다.
소포리 주민 김병철(45) 씨는 "간척지가 농지로서 갖는 의미는 이제 사라졌다"며 "갯벌을 원래대로 되돌려 놓는 것이 우리가 후대를 위해 마지막으로 할 일"이라고 강조했다.

조도는 담수호에 내려앉은 새떼와 흡사하여 '조도군도(鳥島郡島)'라 이름 붙여졌다. 조도는 상조도와 하조도로 나뉘는데 상조도에 위치한 도리산전

망대에 오르면 조도군도의 모습을 한눈에 볼 수있다. 드넓은 바다위에 새떼들이 모여앉은 형상의 섬들은 장관을 이룬다.

진도대교의 여명

 

금골산 오층석탑

 

금갑해변 갯벌체험장

 

남도석성과 쌍홍교

 

 

벽파진 이충무공 전적비

 

진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상여행렬. 진도의 소리를 들어 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첨찰산 쌍계사 단풍

 

쌍계사 대웅전 앞에는 국화전시회가 한창이다.

 

운림산방

 

 

여귀산 탑마을

 

 

 

 

 

모세의 기적, 회동 뽕할머니상

 

원형의 섬, 진도

해남 화원반도를 지나 진도 땅에 들어서기 위해서는 반드시 진도대교를 건너야 한다. 진도대교는 1984년 길이 484미터의 사장교로 육지인 해남과 연결되면서 섬으로서의 고립을 벗어나게 됐다. 대교가 개통 된 지 20년 후, 2005년 국내에서는 최초로 쌍둥이 사장교가 개통되었다. 진도대교 아래는 세계 해전사에서 빛나는 이충무공의 명량대첩의 전적지. 해남 땅에는 명량대첩을 기념하기 위한 전시관이 세워져 있다. 울돌목이라 일컫는 이 해협의 폭은 채 300여 미터, 목청 좋은 사람이 소리치면 건너편에서 들릴 만큼의 가까운 거리이다.


조수간만의 차이로 물의 방향은 하루에 두 차례 바뀐다.  좁은 해협을 지나는 바닷물은 그 거친 숨결을 뱉어낸다. 육지의 강에서는 들어 볼 수 없는 거대한 숨소리이다. 그 숨결을 가까이에서 들어 보기 위해서는 녹진 휴게소에서 내려 진도대교 교각 아래로 내려서면 들을 수 있다. 시기를 잘 맞춰 가면 교각 아래 거센 조수를 헤치다 물가로 밀려난 숭어 떼를 그물로 건져오는 진풍경을 만나기도 한다.

 

울돌목의 거친 숨소리를 들으며 건너편의 해남 땅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섬에 들어 와 있음을 실감하게 된다. 그렇다, 연육교로 이어져 있지만 진도는 엄연히 섬이다. 섬이라는 지정학적인 고립감이 옛 선조들의 생활양식, 소리, 신명, 흥이 원형으로 고스라니 남아 현재까지 전해지고 있는 것이다. 진도 여행길에 상여행렬을 만나는 행운(?)은 어렵지 않은 일, 잠시 가던 길을 멈추고 행렬을 뒤 따르면 진도의 소리를 들어 볼 수 있다. 진도는 제주도와 거제도에 이어 한반도에서 세 번째로 큰 섬이다. 경작지가 드넓어 해산물 보다는 농산물이 넘쳐나 오히려 육지에 내갈 만큼 진도는 풍요로운 땅. 그에 따라 들려 볼 곳도, 머물고 싶은 곳도 많은 고장이다. 사면이 바다로 둘러 쌓여있어도 농경생활이 주였던 토착민들의 삶은 한반도의 때 묻지 않은 정서가 곳곳에 배어 있는 곳이다. 바다에 둘려 쌓여 있지만 다도해의 특성상 바다만이 보이는 것이 아니고, 넓은 들판에는 나지막한 산 능선이 마을과 마을을 에워싸고 있는 푸른 들녘에서는 남도의 소리가 들려오는 듯하다.

 

18번 국도를 타고 진도 읍을 향하다 군내면 금골주유소를 지나 우측으로 금성초등학교 진입로를 따르면 금골산 입구의 주차장을 만나게 된다. 진도대교에서 읍내를 향하다가 자칫 놓치기 쉬운 풍경이지만, 진도 관광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는 반드시 금골산의 기세에 눈길이 한참이나 머무는 곳이다. 산 초입에는 금골사라는 자그마한 사찰이 자리 잡고 있다. 사찰의 자그마한 뜨락에서 내려 다 보는 진도의 들녘은 드넓기 그지없다.  이곳에서 금골산 정상까지는 약 40분, 경사가 가파르고 암벽 사이로 길이 나 있어 반드시 운동화나 등산화를 신어야 한다. 안전철책을 따라 발길을 옮기다 보면 십여 미터에 이르는 석굴 암벽에 새겨진 거대한 마애여래상을 보게 된다. 해발 198미터의 나지막한 높이이지만, 금골산 정상에 이르면 시계는 거칠 것이 없다. 하산 뒤에는 금성초등학교 교정에 세워진 보물 제 529호인 오층석탑이 한가로운 시골 교정을 조용하게 지키고 있다. 조성 시기는 백제 말기에서 고구려 초기로 추정되는 단아한 외형의 석탑이다.

 

들녘을 지나던 국도가 언덕을 만나 기어변속을 해야 할 때 쯤 좌측으로 용장산성과 벽파진 가는 이정표가 나타난다.  시야에 들어오는 편안한 풍경과는 달리 진도는 예로부터 국난의 역사마다 외침이 한 번도 비켜가지 않은 곳이다. 진도 읍내를 향하다 세동 삼거리에서 좌회전하면 용장산성과 벽파진을 들려 볼 수 있다. 용장산성은 고려시대 몽골에 항쟁했던 삼별초가 제주도로 본거지를 옮기기 전 고려궁을 지었던 곳이다. 당시의 건물을 찾아 볼 수 없지만, 산성의 규모와 석축을 쌓아 만든 궁터에서 그 규모를 미루어 짐작 할 수 있게 해준다. 해안 쪽으로 난 도로의 끝은 벽파진. 이충무공이 명량대첩을 치르기 전 아군의 함선이 정박하며 작전을 도모했던 곳으로 이충무공전첩비가 세워져 있다. 현재는 제주도와 목포를 오가는 페리호가 들리는 선착장 역할을 하고 있다. 1950년대 중반 조성 된 것으로 비에는 노산 이은상의 시가 새겨져 있다. 전첩비에서 내려 다 보이는 바다와 해남 일대의 조망이 장쾌하다.

 

진도는 해마다 세계의 이목 한 번씩은 집중 되는 곳이다. 1970년대 초 프랑스 대사가 진도를 우연히 찾았다. 조수 간만의 차이로 섬과 섬을 이어주는 육계도를 발견하고 이것을 본국에 알리면서 ‘모세의 기적’ 으로 정평이 나있는 곳이다. 한해 가장 크게 바닷길이 열리는 때를 맞춰 영등제를 하는데, 이때 국내는 물론 세계 각국에서 이 현상을 취재하기 위해 인산인해를 이룬다.

 

해마다 열리는 영등제에는 뽕할머니의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1,480년경 손동지라는 사람이 제주도로 유배도중 풍랑으로 표류하여 지금의 회동 마을에 살게 되었는데 그 당시에는 호랑이의 침해가 심하여 마을을 호동이라 불렀다.  그 후에 호랑이의 침해가 날로 심해져서 살기가 어렵게 되자 마을 사람들이 뗏목을 타고 의신면 '모도'라는 섬마을로 피하면서 황망 중에 뽕할머니 한분을 호동마을에 남기고 말았다. 뽕할머니는 헤어진 가족을 만나고 싶어서 매일 용왕님께 기원하였는데 어느 날 꿈속에 용왕님이 나타나 "내일 무지개를 내릴 터이니 바다를 건너가라"고 일러주었다. 모도에서 가까운 바닷가에 나가 기도하고 있던 중 갑자기 호동의 뿔치와 모도 뿔치 사이에 치등이 나타났다. 그 길로 마을 사람들이 뽕할머니를 찾기 위해 징과 꽹과리를 치면서 호동에 도착하니 할머니는 "나의 기도로 바닷길이 열려 너희들을 만났으니 이젠 죽어도 한이 없다"는 유언을 남긴 채  숨을 거두고 말았다. 이를 본 주민들은 뽕할머니의 소망이 치등으로 변하였고 영이 등천하였다하여 영등살이라 칭하고, 이곳에서 매년 제사를 지내게 되었으며, 그 후 자식이 없는 사람, 사랑을 이루지 못한 사람이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다는 전설이 전해오고 있다.

 

바닷길이 열리지 않아도 이곳은 진도 여행에서 빼놓지 않고 들려 봐야 할 곳. 모세의 기적이라는 신비의 바닷길이 열리는 고군면의 가계해수욕장은 진도에서도 대표적인 해수욕장으로 편의시설이 가장 잘되어 있는 곳이며, 바닷가 민박집이 잘 발달되어 있어 진도읍에 숙소를 정하지 않았다면 이곳에 숙박을 정하는 것이 적당하다. 해수욕과 함께 진도 해양생태관에는 국내는 물론 세계의 희귀 해양생물들을 관찰 해 볼 수 있는 체험장이 되어주고 있다. 해수욕장 뒤편에 마련된 전망대에 오르면 가계해수욕장의 드넓은 해변과 항공모함처럼 떠 있는 모도와 금호도의 전경이 펼쳐진다.

 

쌍계사와 운림산방
어느 지도책에나 진도의 명승지로 표기되어 있는 운림산방은  첨찰산 남방향 기슭에 자리 잡고 있다. 19세기 초 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한국화 그 중에서도 남종화의 대가 소치 허련 선생이 말년에 기거했던 화실이다. 소치는 어려서부터 그림재주가 있어  두륜산방의 초의대사 밑에서 공재  윤두서의 화첩을 보면서 그림을 익히기 시작하여 초의선사의 소개로 추사 김정희 밑에서 본격적인 서화 수업을 하게 되었다. 소치는 이곳 운림산방에서 미산을 낳았고, 미산이 그림을 그렸으며 의제는 미산에게서 처음으로 그림을 익힌 곳이기도 하다. 이와 같이 유서 깊은 운림산방은 소치-미산-남농-임전 등이 4대에 걸쳐 정통남화를 이어준 한국남화의 본거지이기도 하다.

 

해발 485m의 첨찰산 봉을 병풍처럼 두르고 있는 운림산방은 의신면 사천리 64번지일대 2000여평에 자리잡고 있다. 70년경에 개축한 19평의 목조 초가로 된 안채가 있고 그 앞으로 동편을 향하여 14평의 초가 3간 사랑채가 있는데 이 사랑채는 소치가 당시 기거하던 곳이다.  옛 운림각터에 24평의 화실을 79년 남농이 재건하였다. 480평의 연못에는 연못 가운데 직경 6m 크기의 원형으로 형성된 섬이 있고, 섬 중앙에  소치가 심었다는 배롱나무가 있다. 수림은 팽나무, 검팽나무, 생달, 동백, 후박나무 등으로 구성되어 운림산방의 자연미를 더해주고 있다. 화실과 연못의 주변은 잔디와 나무를 심어 정돈하고 비와 탑을 세우는 등 조경을 하였다. 소치의 손자인 남농이 퇴락되어가는 유적을 5년간이나 손질하고 다듬어 81년 10월 20일 도지정문화재로 지정받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운림산방 전시관에는 소치 허련 일가의 시, 서화 작품과 개인 소장품인 수석과 자기 등이 전시되어있다.

 

운림산방 뒤쪽 편에 자리 잡은 쌍계사는 진도에서 가장 오래된 사찰로 대웅전(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121호)은 신라시대에 도선국사에 의해 세워진 것으로 전해오고 있다. 주변이 상록수림으로 둘러싸여 있어 아늑하면서도 고풍스로운 분위기가 묻어난다. 마당에 흐드러진 동백꽃과 댓잎을 흔드는 바람소리, 목탁소리, 새소리가 운치를 더 한다. 매년 11월이면 국화전시회를 볼 수 있어, 곱게 물든 단풍과 함께 단아한 사찰의 전경을 화려하게 꾸며준다.

진도를 둘러싸고 있는 해안선이 복잡하여 섬 내에는 이렇다하게 해안일주도로가 정비되어 있지는 않다. 그 중 금갑해수욕장은 여름철이 아니어도 갯벌체험을 해 볼 수 있는 해변.   진도에는 해안을 끼고 도는 일주도로가 있지는 않지만 급갑리애서 죽림리를 거쳐 남도석성에 이르는 길은 높은 산록도로에서 멀리 남해의 드넓은 바다를 조망해 볼 수 있게 해준다. 여귀산 들머리인 탑립마을에는 돌을 쌓아 만든 낯선 탑들이 길가에 세워져 있다. 이쯤되면 탑에 대한 설화도 전해 질 터. 돌탑 공원에는 이곳의 설화를 다음과 같이 전한다.

 

‘ 여귀산을 중심으로 죽림 쪽에는 남신이, 탑립 쪽에는 여신이 사이좋게 살고 있었다. 지배하기를 즐기는 남신이 여신을 지배하고자 일 년에 한 차례씩 힘과 지혜를 겨루어 지는 신은 이긴 신의 뜰에 따르기로 했다. 하지만 남신의 뜻과는 달리 해마다 여신이 이기자 약이 오른 남신은 여신의 탑을 파괴하였다. 그 이후로 여신이 힘과 지혜를 쓰지 못해 남신의 지혜를 받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이에 마을 주민들은 돌탑을 세워주고 남신과 여신이 화해해 마을의 안녕을 기원한다는 것이다.’

진도여행에서 소리를 빼면 진도의 반을 보지 못한 것이라 할 만큼 진도에서 소리는 중요한 몫을 차지하고 있다. 진도 읍에 자리 잡은 향토문화회관 대공연장에서는 강강술래, 남도들노래, 진도 씻김굿, 다시래기, 진도북춤, 진도만가, 진도아리랑, 사물놀이, 남도민요 등의 내용으로 매년 4월부터 11월까지 매주 토요일 오후 2시에 공연을 갖는다. 공연문의061)540-3543

 

군내면 백조 도래지로 알려진 곳은 시기를 잘못 알고 가면 기대에 못 미치는 철새도래지. 백조라고 알려진  고니는 진도군 군내면 해안 일대와 다도해 해안에서 12월과 2월 사이에 월동한다. 고니가 날아드는 곳은 진도읍 수유리 해안일대와 군내 간척지 담수로, 둔전저수지이다. 이곳은 한국 남해안 지역에서 월동하는 고니류 집단의 일부에 불과하나 한국의 서남부에 위치한 유일한 월동 둥지이며 또한 한반도 서남부 해안을 거쳐 이동하는 고니 집단의 평화로운 휴식처로 알려져 있다. 고니는 길조로 알려져 있어 많이 날아오는 해에는 풍년이 든다고 하며, 진도군 군내면 수유리와 덕병리 앞 해안에 수백마리의 고니가 밀려와 겨울을 지낸다.

 

18번 국도의 끝에는 근래에 들어 대단위 항만시설이 들어선 서망 항이다. 이곳에서 지방도로를 타고 10여분 달리면 자그마한 마을을 만나게 되는데 이곳이 남도석성. 용장산성과 함께 고려 말 삼별초가 몽고에 항쟁하던 근거지로 삼았다고 하며 성의 성립연대는 삼국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니 유서 깊은 석성이다. 석성의 길이는 610미터. 높이는 4~5미터 정도 된다. 마을 안에는 지금도 주민이 살고 있으며, 최근에 지어진 관아건물이 건물에 비해 과장된 기와지붕을 얹고 세워져 있다. 석성 앞에는 바다로 흘러가는 자그마한 내가 흐르는데 그 위에 세워진 두 개의 홍교가 눈길을 끈다. 두 곳 다 이지역에서 나는 편마암을 아치형으로 부쳐 세운 홍교로 단홍교와 쌍홍교로 내를 건너는 역할을 해내고 있으나, 현재에는 보호차원에서 출입을 금지하고 있다.

 

진도 여행에 절정이 있다면 단연 세방낙조를 꼽을 수 있다. 이 해안도로는 다도해의 아름다운 섬들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우리나라 최고의 다도해 드라이브 코스다. 진도의 해안도로는 해변을 따라 나 있는 경우보다 해안가 절벽 위에 나 있는 경우가 많다. 그 길을 따라 펼쳐지는 다도해의 풍경은 일일이 담아 놓을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답기 그지없다. 그중에서도 해지는 저녁 노을이 아름다운 곳은 지산면 세방리의 해안도로이다. 높은 곳에서 내려 다 보는 다도해 일대 떠 있는 섬의 모습은 그 어느 곳의 섬들과 다른 모습이다. 어떤 섬은 인위적으로 조형물을 만들어 세운 듯 울뚝 솟아 있기도 하고, 어느 섬의 모습은 조형가가 보기 좋게 다듬어 놓은 듯하다. 그러한 섬들의 모습이 바다로 지는 노을의 모습을 더욱 장쾌하게 꾸며준다. 해가 수평선 뒤로 숨어도, 하늘의 빛은 시시때때로 변화하며 바다색과 그 색을 맞출 때 까지 화려한 색채의 향연을 빚어낸다. 섬의 모습이 뭉퉁 그려질 때 까지 발길을 잡아 놓는 매력이 바로 이곳이다


*여행메모(지역번호 061)
수도권에서 진도는 육로를 이용해 갈수 있기는 하나 멀고도 먼 섬이다. 섬을 관통하는 18번 국도를 기점으로 방사선으로 나 있는 군도와 지방도인 803번과 801번을 따라 동선을 미리 계획해 보는 것도 중요하다. 지도를 참조 미리 계획을 세워 보는 것은 여행을 알차게 보내는 큰 즐거움이다.

 

숙박 : 진도읍 내 태평모텔(542-7000), 프린스모텔(542-2251), 영진장(543-5166). 고니도래지 가는 길의 통나무집 펜숀 진도스케치(542-2114), 자운토방(544-4555). 가계해수욕장과 금갑해수욕장 주변에 민박집이 밀집해 있다.

 

맛집 : 진도대교를 들어서는 순간 도로 좌, 우측으로 관광객이 주고객인 음식점이 즐비하다. 진도 읍내에서는 시장골목에 자리 잡은 식당 사랑방(544-4117)에서 진도 특산물인 간재미회를 맛 볼 수 있다.  진도가 섬이라고 어패류 음식만 잘하는 것은 아니다. 읍내 자리 잡은 제주촌갈비(544-4919)는 이곳 주민들이 즐겨 찾는 갈비전문점. 한우 육회와 소갈비, 돼지갈비의 맛이 일품이다. 그 외 지역으로는 가계해수욕장 인근에 해수욕객을 상대로 하는 음식점과 서망 항 일대가 새로이 관광위락시설로 개발되면서 음식점이 발달되어 있다. 그밖에 운림산방 근처에 별장식당의 쑥국백반(543-7749)과 푸른동산식당의 토종닭( 542-1255), 의신면의 제일음식점 곰탕(543-4107) 등이 있다.

출처 : 봐라, 달이 뒤를 쫓는다.
글쓴이 : 海霧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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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도 대표 민요 ^^* 육자배기*^^


 


*육자배기*
전라도의 대표적인 민요.
보렴 화초사거리
흥타령 개구리타령
새타령성주풀이 등과 함께
남도잡가 또는 남도선소리에 포함된다.
육자배기는 6박의 느리고 긴
육자배기 뒤에
3박의 자진 육자배기를
잇대어 부른다.
      
» 조선시대 남화의 대가 소치 허련이 머물렀던 운림산방. 4월 중순 무렵부터 가장 예쁘다
소치선생 머물던 운림산방
수양버들 연둣빛 싹 움트고
넓은 보리밭 봄바람에 일렁
한반도 제일 ‘세방 낙조’에
꼬마 섬들이 붉게 탄다

5월은 진도가 가장 예쁠 때. 향동재 넘어가는 굽이굽이 고갯길에는 아지랑이가 어지럽고 들녘에는 노란 무장다리꽃이 환하게 핀다. 드넓게 펼쳐진 보리밭은 봄바람에 일렁이고 운림산방 연못가 수양버들에는 연둣빛 새싹이 돋는다.

진도는 국내에서 세 번째로 큰 섬이다. 서해안과 남해안이 이어지는 물목, 진도대교에 올라서면 다리 밑으로 하루에 네 차례씩 시속 11노트로 흘러내리는 거센 물살을 볼 수 있다. 소용돌이치는 울돌목의 물소리는 마치 커다란 황소 떼의 울음소리처럼 들린다. 그만큼 물살이 세다. 1597년 이순신이 군선 12척으로 133척의 왜선을 맞아 싸워 33척을 수장시킨 명량대첩의 현장이다.


» 진도대교를 건너자마자 펼쳐지는 보리밭, 복사뼈를 덮을 만큼 자란 보리의 푸르름이 추상화 같은 풍경을 선사한다

진도대교를 지나 진도에 발을 디디는 순간, 눈은 진도가 선사하는 갖가지 색으로 즐겁다. 복사뼈를 덮을 만큼 자란 보리는 푸를 대로 푸르고 배추밭에는 어른 손바닥만한 이파리를 단 배추가 쑥쑥 커가고 있다. 진초록 대파밭과 나란히 놓인 노란 무장다리밭은 한폭의 추상화 같은 풍경을 만들어낸다.

진도 여행에서 가장 먼저 들러야 할 곳은 의신면 사천리에 있는 운림산방이다. 운림산방은 조선시대 남화의 대가인 소치 허련이 머물렀던 곳. 초의선사 밑에서 공제 윤두서의 화첩을 통해 그림을 익히기 시작한 소치는 추사 김정희에게 서화수업을 받았다. 추사는 소치를 두고 ‘압록강 이남에는 따를 자가 없다’고 극찬했다. 시서화로 당대를 휘어잡은 소치였지만, 1856년 스승 추사가 세상을 떠나자 모든 것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와 운림산방을 짓고 여생을 보냈다. 소치의 화맥은 아들 미산 허형과 손자 남농 허건, 증손자 임전 허문까지 4대에 걸쳐 이어지고 있다.


» 조선시대 남화의 대가 소치 허련이 머물렀던 운림산방.

운림산방은 4월 중순 무렵부터가 가장 예쁘다. 수양버들에는 아기손톱만한 싹이 돋고 운림산방 뒤에 자리 잡은 첨찰산도 봄빛을 띠기 시작한다. 여린 봄 햇살을 쬐는 연둣빛 새싹들. 운림산방에서 보낸 소치의 말년은 더없이 행복했을 것이다.

운림산방을 나와 향동재로 간다. 진도 동쪽 바다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곳이다. 고갯마루에 진도를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가 있다. 발아래 금호도, 모도, 두력도, 무저도, 대삼도 등이 바둑알처럼 떠 있다. 해무에 지워졌다가 불쑥 나타나는 수많은 섬들의 모습이 신비롭다. 향동재는 진도 주민들 사이에 일출 조망지로 알려진 곳. 날씨가 맑은 날에는 제주도 한라산까지 보인다고 한다.


» 세방낙조

향동재 넘어 만나는 의신면 모도리는 ‘신비의 바닷길’로 유명하다. 고군면 회동리와 의신면 모도리 사이의 약 2.8㎞가 조수간만의 차이로 1년에 3~4차례 갈라진다. 진도 사람들은 이것을 ‘영등살’이라고 부른다. 1975년 랑디 주한 프랑스 대사가 ‘한국판 모세의 기적’이라고 프랑스 신문에 기고하면서 전 세계에 알려졌다. 물길이 완전히 갈라지는 때는 봄(4·5월)과 가을(10·11월)에 각 3일 정도씩. 가을에는 새벽에 갈라지기 때문에 제대로 보기 힘들고 봄에 열리는 물길이 가장 좋다.




바닷길이 열리는 모습은 신비 그 자체다. 바다는 모도에서부터 갈라지기 시작하는데 마치 초승달처럼 휘어진 물그림자가 생기면서 서서히 갈라진다. 해변 끝에서 바닥이 드러나기 시작해 바다 한가운데서 길이 마주친다. 폭은 넓은 곳이 1, 좁은 곳은 10m도 채 되지 않는다. 물길이 열리는 시간은 2시간이다. 물길을 보기에 가장 좋은 곳은 뽕할머니 동상 뒤편 산자락에 있는 전망대. 이곳에서 바다가 갈라지고 합쳐지는 모습이 한눈에 다 보인다.

» 남도석성

영등제의 역사는 500년 전으로 거슬러 오른다. 회동리 사람들은 호랑이를 피해 모도로 피신했다. 하지만 급하게 가느라 뽕할머니가 혼자 남겨졌고 뽕할머니는 가족들이 보고 싶어 용왕에게 기도를 올렸다. 감동한 용왕은 바다를 열어 가족들을 만나게 해주었고 뽕할머니는 ‘너희들을 만났으니 이젠 죽어도 여한이 없다’는 말을 남기고 숨을 거두었다. 이후 사람들은 뽕할머니를 기리는 제사를 지냈는데 이것이 바로 영등제다.

진도 서쪽 바다는 일몰이 아름답다. 특히 지산면 세방리는 중앙기상대가 꼽은 한반도 제일의 낙조 명소. 도로변에 낙조 전망대가 마련되어 있다. 낙조 전망대에서 바다 쪽을 바라보면 올망졸망 모여있는 다도해의 섬 사이로 붉게 떨어지는 햇덩이를 목격할 수 있다. 양덕도, 주자도, 혈도, 광대도 등 섬들이 낙조 속으로 붉게 타들어가는 모습은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답다.

» 진도 들녘
세방리를 빠져 다시 남쪽으로 가면 임회면 남도리. 삼별초의 지도자 배웅손 장군이 여몽연합군에 쫓겨 최후를 마친 남도석성이 있다. 삼국시대에 쌓은 것으로 알려진 남도석성은 둘레 610m의 원형이 그대로 보존돼 있다. 성벽의 높이는 5~6m 정도다. 남도석성은 성내에 사람들이 실제로 살고 있다는 점에서 특이하다. 성내에는 20여 가구의 주민이 거주하고 있다. 남도석성에서 만난 한 노인의 말에 따르면 일제 때만 해도 120여 가구가 넘게 살았지만 지금은 대처로 나가고 없다. 게다가 성의 출입문이라고 할 수 있는 동문과 서문, 남문은 농기계가 자유롭게 드나들 수 없을 정도로 좁다.

석성을 둘러싼 개울에 놓여있는 2기의 예쁜 다리도 놓치지 말고 볼 것. 동쪽에 있는 것이 단홍교, 서쪽에 있는 것이 쌍홍교다. 우리 옛 ‘무지개 다리’의 아름다움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글·사진 최갑수/여행작가·시인

여행 수첩

» 진도
▶가는 길

서해안고속도로 목포 나들목으로 나와 영산호하굿둑과 영암방조제를 지나면 77번 국도. 우수영에서 18번 국도를 타고 진도대교를 넘으면 진도다. 18번 국도는 진도를 남북으로 가로지른 후 동쪽 해안을 타고 일주한다. 남도석성은 18번 국도를 타고 팽목까지 가야 한다. 팽목에서 임회면으로 나와 지산면으로 가는 16번 군도를 타면 세방낙조 전망대. 운림산방은 진도읍에서 쌍계사 방면 표지판을 보고 가면 된다. 진도군청 관광과 (061)540-3219, 운림산방 관리사무소 (061)543-0088, 어른 2000원, 청소년 1000원, 어린이 800원.

▶잠잘 곳

진도읍과 진도대교 주변에 여관과 모텔이 많다. 태평모텔(061-542-7000), 프린스모텔 (061-542-2251), 남강모텔(061-544-1414) 등이 있다.

▶먹을 곳

검정쌀과 진도홍주, 돌미역 등이 진도 특산품이다. 진도읍 철마광장에 있는 옥천횟집(061-543-5664)이 이름난 한정식집. 젓갈과 해산물이 많이 나온다.

세방리 낙조전망대 아래에 있는 다도해관광회센터(061-543-7227)는 전망이 좋다. 해산물과 싱싱한 회를 맛볼 수 있다.

▶기타

매주 토요일 오후 2시부터 진도향토문화회관(061-540-3543) 대공연장에서 ‘토요민속공연’을 볼 수 있다. 강강술래, 씻김굿, 진도북놀이, 진도만가 등 다양한 소리를 공연한다.

5월 16~17일 양일간 고군면 회동리~의신면 모도리 해변 및 바닷길 일원에서 ‘진도 신비의 바닷길 5월 축제’가 열린다. 사물놀이 공연, 진도 아리랑 배우기 등 다양한 행사가 준비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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