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으로 별납니다.

 

 

고추 많이 따셨어요?
요즘 다락골에서 만나는 이웃들과 건네는 인사의 첫마디가 이렀습니다.
고추밭은 시드름병과 탄저병이 번져 남아있는 고추를 찾아보기 힘듭니다.
진저리나게 힘들었던 작년농사보다 올해가 훨씬 힘겨워 보입니다.
"작년에는 비가 늦게라도 왔지!
올해는 장마 시작부터 내린 비 때문에 첫 물 고추도 따보지도 못하고 탄저병이 번져 고추밭이 절단나버렸시유!"

 

 

오늘도 그님이 오셨습니다.
가랑비다 싶었더니  금세 세차게 쏟아집니다.
참으로 별납니다.
눅눅한 분위기에 압도됩니다.
이부자리와 옷가지에선 퀴퀴한 냄새가 그득그득하고 방구석  한 쪽 벽에 얼룩덜룩한 곰팡이가 피었습니다.

 

 

대추가 달랑 두개 달렸습니다.

잦은 비로 꽃가루받이가 잘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들깨 순지르기를 마치고
올봄 마늘을 캐고 묵혀두었던 밭을 김장배추를 심기위해 다시 꾸밉니다.
땅이 질퍽해 관리기를 사용할 수 없는 처지인지라 쇠스랑으로 땅을 파고 흙을 고릅니다.
빗줄기는 오락가락하고
습기를 머금은 후텁지근한 날씨 탓에 쉽게 지칩니다.
두둑을 만들고 습해 발생의 우려를 덜기위해 그곳에 검정 유공비닐을 씌웁니다.
벌레들의 서식지를 없애기 위해 밭두렁의 잡초도 말끔히 정리합니다.

 

 


무씨를 뿌렸습니다.
가을 무씨는 김장배추모종을 아주심기하기 한두 주전쯤 미리 뿌립니다.

 

 

쇠비름을 설탕에 버무려 하룻밤을 재웠더니 숨이 많이 죽었습니다.
일하는 시간을 쪼개 하나둘  담기 시작한  효소단지가 여럿입니다.
비가 내려 밭뙈기에 발을 들어놓기 어려울 때 애써 찾아온 정성이 아까워 제철에 나는 주변 재료를 사용해 효소를 담습니다.

 


효소 담는 것을 따라하고 싶다면 마을 할머니 두 분이 마실 왔습니다.
"할머니, 저희들 어렸을 땐 이 쇠비름 뿌리를 가지고 놀았던 기억이 나는데 할머니 때도 그러셨어요?"

"그럼유! 우리도 많이 가지고 놀았지유!"

신랑방에 불 켜라~ ~
각시방에 불 켜라~ ~
우덜은 이런 노래도 부르면 가지고 놀았구먼유!"
자신도 모르게 흥에 겨워 노래를 부르시는 할머니의 모습이 천진난만합니다.

흑백 TV도 구경하기 힘들었던
소싯적 시골아이들에겐 잡초 쇠비름도 훌륭한 장난감이었습니다.
붉고 긴 줄기를 마디마디 꺾고 늘어뜨려 팔찌를 만들어 손목에 차기도 했고
뿌리를 손으로 문지르면 흰색이 차츰 붉은색으로 변해가는 모습에 경쟁하듯  뿌리를 쓰다듬으면서 즐거워했습니다.

 


배추씨앗을 육묘상자에 넣고 근 열흘 이상 햇볕 구경을 못했습니다.
씨앗을 넣고 나서  물주기를 한 후 겉흙이 마르지 않아 여태껏 물 한 번 주지 못했습니다.
재대로 키워 내보낼 수 있을까?
받아들일 것은 받아드리고 보내줄 건 보내주자며 마음을 다독였습니다만 불안감을 떨쳐낼 수 없습니다.
"이유 없는 무덤 없다."
세상엔 원인 없는 결과는 없습니다.
결과를 따지기 전에 원인에 집착합니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