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를 맞은 콩들이 예쁘게 싹을 틔웠습니다.
해마다 이맘때 시골집에 가면 양은냄비 두드리는 소리와 빈 페트병 두드리는 소리가 천지사방에 요란하게 울립니다.

소리의 정체는 산비둘기와 전쟁을 치르고 있는 필자의 어머니와 동네 아주머니들이 콩밭머리에서 내는 것입니다. 이 소리로 온 동네가 시끄러운데, 해가 지고 나서야 동네가 조용해집니다.

▲ 비둘기들이 열심히 콩을 빼먹으며 밭을 누비고 있습니다.
사실 전쟁이라고 해야 당하는 쪽은 어머니를 비롯한 시골의 순박한 농부들뿐이라서 애태우시는 어머니와 동네 어른들을 보며 농부의 자식으로서 속도 많이 상합니다. 이 전쟁의 원인은 밭에 잘 심어진 콩과 이 콩들을 호시탐탐 노리는 산비둘기들입니다.

 고향에서는 해마다 6월이면 마늘을 캔 밭에 콩을 심습니다. 그래서 7월 초면 파릇파릇하게 콩이 떡잎과 함께 땅을 헤집고 나오게 되는데, 눈치 빠른 산비둘기(도시 공원에서 보는 비둘기와는 조금 다른 야생비둘기입니다)들이 숲 속에 숨어 있다가 콩을 심은 후부터 밭에 날아들어 콩을 하나 둘씩 빼먹기 시작합니다. 이들의 노략질은 싹이 나온 후에도 그칠 줄을 모르고, 연한 싹을 빼먹기 위해 7월 초까지 계속해서 날아옵니다.

산비둘기 몇 마리가 얼마나 콩을 먹겠냐는 사람도 있을지 모르겠지만, 실제 콩밭에 날아드는 산비둘기 떼를 본다면 아마 생각이 달라질 겁니다. 이놈들은 누가 쫓아내지 않으면 콩밭에서 떠날 줄을 모릅니다. 그냥 놔두면 콩을 실컷 먹고 몸이 무거워 날아오르지 못할지도 모릅니다.

▲ 아랫집 아주머니는 큰 몽둥이를 들고 비둘기 쫓기에 여념이 없습니다.
어머니는 요즘 대부분의 일을 콩밭머리에서 하십니다. 다행이 장마철이라 멀리 나가 하실 일도 없고 해서 콩밭머리 비닐하우스 안에서 비를 피하시며 마늘을 다듬으시다가 산비둘기가 날아오는 듯하면 미리 준비해둔 양은대야를 힘껏 두드려 요란한 소리를 내 산비둘기들이 콩밭에 근접을 못하게 만듭니다.

아랫집 아주머니는 부슬부슬 내리는 비 정도는 그냥 참고 맞으시면서 산비둘기를 쫓으시는데, 커다란 나무막대기로 대야를 연신 두드려 댑니다. 이쪽 밭 저쪽 밭 돌아다니시느라 장맛비에 고생도 참 많으시더군요.

▲ 어머니는 밭머리에 두드릴 양은대야를 항상 준비해 놓고 계십니다.
앞으로 산비둘기들의 콩밭 습격은 싹튼 콩이 잎이 나고 억세질 때까지 얼마간 더 계속될 것입니다. 그런데 그때까지 애타며 콩밭을 지켜봐야 하는 어머니와 동네 아주머니들의 마음을 생각하니 안타깝기만 합니다.

“산비둘기야, 산비둘기야, 안 그래도 힘든 농부들 마음도 좀 알아주면 안 되겠니?”

▲ 어머니께서 답답한 마음에 만드신 허수아비인데, 거의 비둘기들에게 무시를 당하는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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