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홧가루 폴폴 날리던 날
길섶에 듬성듬성 오동나무 꽃이 피었습니다.
초록세상에서 보랏빛향기가 짙게 묻어납니다.
연휴가 낀 지난주 말 북새통을 이뤘던 도로사정과는 전혀 다르게
주말오후 서해안고속도로의 소통은 원활했습니다.
때 이른 무더위 속에서
푸르름이 더해가는 다락골에도
모내기 준비를 위해 논마다 물 가두기가 한참입니다.
마른 논바닥을 적시려고 작은 둠벙의 물까지도 챙기려는
이웃들의 발걸음은 무겁게만 느껴졌습니다.
송홧가루로 온 몸을 분칠한
작물들의 모습에서 해맑은 얼굴은 찾아 볼 수 없습니다.
무더위에 가뭄까지 겹친
낯선 땅에서 적응하려 혹독한 시련을 겪고 있습니다.
야콘잎은 타들어갔고
목말라 핏대가 선 고춧대는 색이 바랬습니다.
곰취잎은 거칠기만 하고 가지 잎은 잎을 움츠려 수분증발을 억제하며
자기들만의 생존전략을 터득하고 있습니다.
주인이라도 곁에 있었더라면 물이라도 한 모금 얻어 마셨을 텐데
안쓰러운 마음뿐입니다.
토마토와 옥수수는 그런 대로 자리를 잡았고
땅콩과 울금은 모진 악조건에서도 싹을 내밀며
마음상한 주인을 오히려 위로하려듭니다.
감자의 작황도 썩 좋아보이질 않습니다.
한참 알이 들어찰 이 시기가 물을 가장 필요로 하는 시기인데
가뭄으로 잎사귀마저 축 늘어뜨리고 있습니다.
물주기를 해야 하는데
뒷산계곡의 물을 모아
끌어다 쓰는 상수도의 물 사정도 좋지 못합니다.
마른 목이라도 축여주고 푼 마음에
호스를 뻗치고 물주기를 해보지만 채 반시진도 못돼
물줄기가 끊어지고 말았습니다.
이웃집에 달려가 물을 끌어와
밭고랑의 양쪽 가장자리를 틀어막고
고랑가득 물을 채워줍니다.
자주색, 보라색 칼라감자는 벌써 꽃이 맺혔습니다.
감자 꽃은 구실과 역할이 정해진 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저 감자알이 커지는데 쓰여야할 양분이 꽃으로 분산되는 결과만 초래합니다.
특별히 애써 꽃을 따 버릴 필요는 없지만
그래도 꽃을 따주는 편이 좋을 것 같아
고랑에 물이 차오르는 시간에 꽃망울을 제거했습니다.
"눈을 뜨면 그 때는 대낮이어라"라는 시구가 떠오릅니다.
이른 새벽
지난 밤새 물주기를 끝낸
감자밭엔
가뭄에 갑자기 소나기를 만난 푸성귀 밭처럼 생기가 넘쳐납니다.
오랜만에 주인행세를 한 것처럼 뿌듯합니다.
다른 일에 치여 그동안 돌보지 못했던 과일나무들을 손질하기위해
연장을 챙겼습니다.
나뭇가지를 잡아매고 가지사이의 품을 벌려줄 기구입니다.
이식 2년차인 매실나무가 훌쩍 자랐습니다.
이른 봄날엔 꽃도 여럿 달렸는데 발견 즉시 바로 따 버렸습니다.
모든 나무가 그렇듯이 매실나무도 묘목이식 후 1-3년 사이에 나무모양이 결정됩니다.
이 시기엔 모든 양분을 집약시켜 나무를 키우는 위주로 관리해야합니다.
그래서 꽃들을 제거했던 것입니다.
관리하기 편하게 최대한 키 높이를 낮춰
나뭇가지를 옆으로 벌려 유인합니다.
관리 소홀로 가지마다 무성하게 자란 곁가지는 원가지를 중심으로
2개씩만 남기고 과감히 제거하고 땅속에 깊숙이 처박아 고정시킨 철사를 이용
가지의 품도 벌려줍니다.
행여 가지가 찢어지고 상처가 입을 가능성도 감안해서 조심스럽게 유인했습니다.
사람도 따지고 보면 다 다르듯
나무도 나무마다 가지고 있는 특성을 살려 관리합니다.
매실 나무뿌리는 땅속 깊게 뻗지 못하고
지표면 가까이에서 옆으로 넓게 뻗치는 습성이 있는 반면
감과 대추나무 등은 땅속 깊이 뿌리를 뻗는 습성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매실나무는 나뭇가지를 옆으로 벌려 키워야하고
감과 대추나무는 일정높이로 키를 키워야합니다.
어미나무에서 분주한 묘목을 올봄에 이식한 대추나무엔 서너 개씩
새순이 움터 올랐습니다.
그 중에서 가장 튼실한 새순 하나만 남기고 나머지를 제거했습니다.
튼튼한 지지대도 세웠습니다.
새순이 자라면 이 지지대에 잡아매서 나무를 똑바로 키우기 위함입니다.
가위손이 지나간 자리마다 시원스레 정리되었습니다.
자고 일어난 것만으로도 개운한 다락골에서
하룻밤을 머물면 치열한 일상으로 돌아가는 것이 두렵지 않습니다.
송홧가루 폴폴 날리던 날
유유자적
가는 봄날의 낭만은 만끽할 수 없지만
몸 안 가득 맑은 기운으로 꼭꼭 채웠습니다.
마음이 허락한 진정한 휴식을 맛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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