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빨갛게 익어가는 단호박의 모습
ⓒ 이인옥
어제는 이웃집 아주머니께서 호박이 많이 열렸다며 잘 생긴 호박을 하나 가져다주셨습니다. 마침 지난 일요일에 바쁜 일로 시장을 보지 못해서 반찬이 부실한 터에 매끈하고 잘생긴 호박을 보니 여간 반가운 게 아니었습니다. 연두 빛 호박이 매끈한 몸매를 자랑하며 아주머니 손에 들려있었습니다. 이 동네로 이사 온지 얼마 되지 않으신 분인데 아주머니는 호박을 잘 먹는지도 모르면서 가져온 건 아닌지 모르겠다며 조심스럽게 저에게 건네주었습니다.

"잘 먹다마다요? 우리 집 여름철 밥상 단골메뉴가 호박인걸요. 고맙습니다."

"그래요? 호박을 잘 드시면 더 따다 드릴게요. 요새 호박이 많이 열려서 저기 공장에도 가져다주고 이웃들과 막 나눠먹는데 잘됐네요. 혹시 호박을 안 좋아 할까봐 망설이다 가져왔는데........ 많이 열리는데 또 따다 드릴게요."

▲ 커다란 호박꽃이 나팔처럼 하늘을 향해 피었습니다.
ⓒ 이인옥
농촌의 인심이 이렇습니다. 작은 것이라도 이웃들과 함께 나누며 소박한 사랑을 실천합니다. 이 호박 하나에는 따뜻한 이웃의 정이 담겨 있기에 단순히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것이지요. 아주머니께서 나눠주신 애호박에 새우젓과 양파를 넣고 호박볶음을 하였습니다. 사실 늘 바쁘다는 핑계로 음식 만드는 일에 소홀했는데 다행히 호박 나물은 어렸을 때부터 늘 먹고 자란 반찬이다 보니 그런대로 구색을 맞추어 상에 올리곤 합니다.

오늘 아침, 어제 호박을 주셨던 아주머니께서 또 하나의 호박을 가져다 주셨습니다. 오늘 가져오신 호박은 색이 좀 진하고 줄무늬가 나 있는 것이 젊고 씩씩해 보였습니다. 어제 만났던 호박이 매끈한 몸매를 자랑하는 여성스러운 호박이라면, 오늘 만난 호박은 영락없이 씩씩한 청년 같은 모습이었습니다. 오늘은 또 호박으로 어떤 요리를 해야 하나 행복한 고민을 해야겠습니다. 수제비? 호박부침개? 가족들이 모이면 의견을 물어보고 결정해야겠습니다. 부침개가 먹고 싶은지, 아니면 수제비나 칼국수가 먹고 싶은지...........와, 벌써부터 침이 꼴깍꼴깍 넘어갑니다.

▲ 호박이 꽃인 듯, 호박인 듯 갓 태어난 아기처럼 보송보송한 솜털을 자랑하며 예쁘게 열린 모습
ⓒ 이인옥
호박은 옥수수, 강낭콩, 고추와 함께 멕시코의 고대문화를 지탱해 온 중요작물로 인류가 호박을 이용하기 시작한 것은 9000년 전부터이며, 그로부터 오늘날까지 여러 가지 형태로 분화되어 왔다고 합니다. 특히 콜럼버스에 의해 호박의 종류에 따라 전 세계로 전파 되었습니다.

늙은 호박과 단 호박은 전분이 풍부하고, 소화흡수가 잘되는 당질과 비타민A의 함량이 높다고 합니다. 그 중에서 늙은 호박보다 단 호박이 월등히 당질이 높은데, 호박에 많이 들어있는 카로틴은 체내에 들어가면 비타민A의 효력을 나타낸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호박의 씨앗은 단백질과 지방이 많은데, 이중에 지방은 불포화지방으로 되어있으며 머리를 좋게 하는 레시틴과 필수아미노산이 많이 들어있습니다.

▲ 나무가지를 타고 올라가 매달린 동그란 호박
ⓒ 이인옥
또 호박씨는 혈압을 낮게 해준다는 연구결과도 있으며, 촌충구제와 천식치료에도 사용되어 왔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이외에 호박씨는 기침이 심할 때 구워서 설탕이나 꿀과 섞어서 먹으면 효과가 있고, 산모에 젖이 부족하면 구워서 먹으면 젖이 많이 나오는 효과가 있다고 전해집니다.

호박은 예로부터 사람들에게 많이 애용되는 중요한 먹거리였습니다. 요즘 많은 사람들이 웰빙, 웰빙 하는데, 이 호박이야 말로 대표적인 웰빙 식품이라 생각합니다. 호박은 잎과 열매를 이용하여 다양한 음식을 만들 수 있는 중요한 재료입니다. 거기다 완전 무공해식품이라서 단맛이 강하고 음식으로 만들면 모양이나 색깔도 아주 예쁩니다.

▲ 연한 잎과 줄기가 햇빛을 받아 반짝이는 모습
ⓒ 이인옥
호박으로 만들 수 있는 음식을 살펴보면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애호박은 된장찌개에 단골재료이고, 호박 나물(볶음, 쪄서 무침), 수제비나 칼국수에 쓰이기도 합니다. 몇 년 전 시어머님께서 특별히 전수해 주신 장국수제비에는 애호박과 호박잎이 아주 요긴하게 쓰입니다. 보통의 수제비에 된장을 풀고 애호박을 깍두기처럼 썰어 넣고 호박잎을 적당한 크기로 썰어 넣으면 단백하면서도 구수한 장국수제비가 됩니다.

또 호박잎은 푹 쪄서 된장찌개 국물에 적셔 먹으면 맛이 기가 막힙니다. 어릴 때 친정어머님께서 자주 해주셨던 기억이 납니다. 농촌에서는 지금도 호박잎을 즐겨 먹는 방법 중 하나입니다. 거기다 늙은 호박은 또 영양 많은 간식으로도 많이 사용됩니다. 늙은 호박을 껍질을 벗겨 길게 잘라서 말립니다. 그것으로 떡을 하면 진한 단맛과 호박의 향이 어울려 환상의 호박떡 맛을 자랑하기도 합니다. 아주 꿀맛입니다.

▲ 점점 노랗게 익어가는 탐스러운 호박
ⓒ 이인옥
또한 늙은 호박은 부기를 빠지게 한다고 하여 산후조리용 음식으로 사용되는데 커다란 들통에 넣고 푹 삶아서 국물을 마시는데 그 이유는 카로틴 때문이라 합니다. 요즘은 아예 건강원 등에서 즙으로 짜서 음료수로 애용하기도 하며, 겨울철 건강음료로 최고라 할 수 있습니다.

아마 어르신들께서는 호박으로 만든 "호박풀때"를 기억하실 겁니다. 옛날 시골에서 풀때라 불렸던 것이 지금의 호박죽인 것 같습니다. 호박을 푹 무르도록 삶아서 으깬 다음 그것에 밀가루와 팥을 넣고 완성하는 것인데, 즐겨먹던 그 당시에는 가난한 집에서 한 끼의 식사 대용으로 먹었기 때문에 질렸던 기억이 납니다. 요즘은 뷔페에서도 종종 맛볼 수 있는 별미로 추억을 떠올릴 수 있기에 먹는 즐거움이 더 큽니다. 요즘은 식당에서 단호박을 이용한 오리고기 요리도 쉽게 맛볼 수 있습니다.

▲ 조그만 단호박이 알맞게 익은 모습
ⓒ 이인옥
이웃으로부터 호박을 선물 받고 보니 호박의 다양성과 중요성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습니다. 길가 둑이나 집 앞 텃밭에 많이 심어져 있어 흔하게 볼 수 있는 호박은, 꽃도 참 아름답습니다. 커다란 꽃이 함박웃음을 머금고 피어있는 모습은, 너무 쉽게 볼 수 있는 꽃이라 눈여겨보지 않아서 그렇지 나름 매력 있는 꽃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호박을 보며 옛 추억을 떠올리고 이웃의 따뜻한 정과 고마움, 농촌사람들의 노고와 지혜를 느껴봅니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