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북한산 멧돼지 추적 현장



1. 피해 지역 확인. 깨끗이 갉아 먹은 옥수수. / 2. 멧돼지 발자국 추적. / 3. 멧돼지 목욕탕 발견(표시 지점) 후 하산. / 4. 작전 회의, 출동 준비. / 5. 사냥개 투입, 멧돼지 포위 작전. / 6. 사냥개가 멧돼지를 추적. / 7. 포획.


 



육중한 말발굽 소리가 가을 산의 정적을 깼다. 소리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광풍이 휩쓸고 가는 듯 나무들이 차례차례 낙엽을 쏟아냈다. 멧돼지는 보이지 않고 멧돼지 속도만 눈에 보였다. 산신이 승천하는 것 같았다.

“탕!”

한 발의 총성이 울렸다. 이내 ‘자르르르르’ 총성의 잔향이 계곡에 울려퍼졌다. 무전기에서 포수 지용선씨의 다급한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이틀간 24시간 넘게 진행된 멧돼지 추적은 순식간에 끝났다.

“지금 자리에서 봉우리 기준 2시 방향으로 빨리 올라오세요. 400근(280㎏)짜리 큰 암놈이에요. 빨리 오세요!”

포수에게는 등산로가 없다. 포수는 짐승의 발자국을 따라 짐승처럼 움직인다. 길이 끊기거나 나무에 막히면 기어서라도 짐승의 흔적을 쫓아야 한다. 멧돼지가 천적을 만나 도주할 때의 최고 속력은 시속 40㎞. 멧돼지의 몸무게는 80~300㎏, 보통 200㎏ 정도다. 멧돼지의 천적인 호랑이와 늑대는 지금 이곳 북한산 일대에 남아 있지 않다. 1900년대 일제의 유해조수 구제(驅除) 조치로 흔적을 감추었다. 멧돼지의 천적은 사람이다.

사람은 시속 40㎞로 산을 타고 달아나는 짐승을 쫓을 수 없다. 저돌적(猪突的)인 멧돼지가 정면으로 들이받을 때 그 힘은 1t 이상이다. 짧은 다리를 가진 멧돼지는 나무 밑으로 뛰어다닌다. 사람이 조준 사격할 수 없다. 그래서 멧돼지를 잡을 때 항상 사냥개가 동행한다.

2년생 허니·곰·번개(하운드 잡종), 3년생 도꾸·칼(하운드 잡종), 4년생 가가멜(피플 잡종). 6마리 사냥개는 멧돼지 냄새를 기억한다. 포수 이근호씨는 “대한민국 최고 수준의 사냥개들”이라며 자랑을 아끼지 않았다. 청와대 뒷산에 출몰한 멧돼지, 한강에 뛰어든 멧돼지, 며칠 전 여고에 뛰어든 멧돼지 모두 이 6마리가 잡았다. 이 개들은 스스로 몸을 가볍게 해 기동성을 높이기 위해 아침엔 밥을 먹지 않는다. 한 달 사료비만 45만원이 넘게 든다고 한다.

북한산에 단풍이 한창이었다. 단풍나무 숲 곳곳에 멧돼지가 숨어 산다는 신고가 접수됐다. 지난 9월 말 경기도 고양시 지축동에 사는 한 마을 주민이 “멧돼지로 인해 인근 텃밭과 옥수수밭이 모두 망가졌고 야간에 멧돼지가 떼로 다녀 겁이 나 살 수가 없다”며 고양시청에 신고했다. 고양시 지축동은 북한산 자락으로 인근에 예비군 훈련장 등 군사보호시설이 많은 지역이다. 대한수렵관리협회 관계자는 “북한산 일대에만 1000마리 이상의 멧돼지가 서식하고 있다”고 했다. 멧돼지 전문가들은 전국적으로 멧돼지 개체수가 25만마리, 서울에만 1만마리 이상이 서식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했다.

고양시청의 의뢰로 대한수렵관리협회 소속 멧돼지 전문가 지용선(49·외식업)씨와 이근호(51·건축업)씨가 지난 10월 15일 오전 6시 자원봉사자 최씨(51), 박씨(50)와 함께 현장을 찾았다. 위장하기 위해 모두 군복 차림이었다.

옥수수밭에 남겨진 멧돼지 발자국이 최초의 추적 단서였다. 어른 주먹 하나가 들어갈 만한 크기였다. 사람이 일일이 알을 빼먹은 듯 깨끗한 옥수수 뼈대가 200평 남짓한 텃밭에 널려 있었다. 밭은 불도저가 쓸고 지나간 듯 황량했다. 야산으로 올라가자 멧돼지가 파먹은 밤 껍질이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멧돼지는 하룻밤에 20㎏ 이상을 먹어야 산다. 그러나 벌레 먹은 밤이나 도토리는 먹지 않는다.

“여기 와서 옥수수를 깨끗이 갈아 먹고 저 뒷산으로 올라간 것 같습니다. 발자국을 보니 한 300근(180㎏)은 거뜬히 넘을 만큼 큰 놈입니다. 혼자 다니진 않을 겁니다. 오늘 조심하세요.”

간단히 ‘탕! 탕!’ 총 몇 발이면 일이 끝날 줄 알았는데 5시간 넘도록 포수들은 멧돼지 발자국만 찾아다녔다. 길도 없는 산속을 헤매다 “배가 고프진 않으신가요” 점잖게 투정을 부리자 포수 최씨가 낄낄대며 웃었다. 최씨는 서울 공릉에서 작은 수퍼마켓을 운영한다. 그는 아내에게 가게를 맡기고 멧돼지를 잡으러 왔다. 군대로 치면 멧돼지 전문가 지씨가 작전장교, 사냥개 주인 이씨가 전투장교, 최씨 자신과 박씨는 초병이라고 했다. 멧돼지 도주로를 지켜 멧돼지가 다른 곳으로 달아나지 못하게 하는 것이 그의 ‘주특기’인 셈이다.

“멧돼지가 지금은 잠을 잘 시간이지요. 라이터 켜는 소리도 내면 안 됩니다. 눈치가 귀신같이 빠르거든요. 살금살금 멧돼지 숙소 근처로 가고 있는 거니까 조금 더 기다리세요. 나중에 무전기 소리도 안 들리게 하고요. 발자국이 선명하니까 오늘 못 잡으면 내일은 잡겠지요.”

포수들은 멧돼지 발자국을 추적하는 일을 ‘발을 잰다’ 또는 ‘발을 뜬다’고 표현했다. 발자국 중에 ‘묵발’은 ‘묵은 발자국’으로 며칠 지난 발자국, ‘새발’은 ‘새로운 발자국’으로 최근의 발자국이다. 포수는 ‘새발’을 찾아야 한다. 갑자기 지씨가 검지손가락을 곧게 세우고 코앞에 갖다 대며 하산(下山)을 명했다. “왜요?”라고 속삭이듯 물으니 손가락으로 흙탕물 구덩이를 보여줬다. 멧돼지 목욕탕이었다. 멧돼지는 진흙탕에서 몸을 굴리며 목욕을 한다.

포수는 점심을 먹지 않는다. 사냥은 해가 뜰 때부터 해가 질 때까지 정해진 시간 안에 끝내야 하는데 성공 확률이 높지 않다. 지씨가 자동차 보닛 위에 작은 종이를 올려 놓고 멧돼지 위치와 각자의 위치, 사냥개가 들어갈 위치 등을 설명했다. 지씨가 무전기를 하나씩 건네주며 “절대 무전 하지 마라”고 명했다. 이씨가 사냥개를 데리고 산 반대편으로 돌아갔다. 위치를 잡고 있으니 속삭이듯 무전이 왔다.

“작전 개시. 개 들어갑니다.”

무전기를 목에 걸고 포수 박씨가 쥐어준 굵직한 나뭇가지를 손에 든 채 나무 위로 올라갔다. 혹시나 멧돼지가 앞에 나타날 것이 걱정됐기 때문이다. 박씨는 멧돼지가 위협하면 몽둥이로 때려서 일단 피하라고 했다. 스산한 가을 바람이 불 때마다 낙엽이 한 웅큼씩 머리 위로 떨어졌다. 그렇게 두 시간이 지나도록 아무 소식이 없었다.

“무전 하지 말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좀 가만히 계세요.”

또 한 시간이 지났다. 조용히 “하산인가요?”라고 무전을 때렸다가 괜히 꾸중만 들었다. 시계를 보니 오후 4시. 지루하고 배가 고프고 소변도 보고 싶었다. 나무에서 내려와 풀숲에 소변을 보려던 찰나, 빠른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빠른 발자국 소리는 사방에서 들렸다. 바지 지퍼를 올리기도 전에 전방 20m 위치에 2년생 전투견 허니가 모습을 드러냈다. 꼬리가 바짝 서 있었다. 질질 흐르는 침이 혀 끝에서 땅바닥까지 연결돼 있었다. 바스락거리는 소리에 고개를 돌리니 8시 방향, 3시 방향에 사냥개 도꾸와 번개가 각각 서 있었다. 머리카락이 쭈뼛 섰다. 개들은 약 2초간 나를 노려보다 사람인 것을 확인하고 다시 길을 떠났다. 내가 멧돼지가 아니라는 사실이 참으로 다행이 아닐 수 없었다. 조용히 나무 위로 다시 올라갔다.

“뛴다! 뛴다!”

오후 5시 잠잠하던 무전기가 드디어 터졌다. 말발굽 소리와 개 짖는 소리, 사람 고함 소리, 무전기 소리가 섞여 가을 산은 아비규환이었다.

“빨리 오셨어야 살아 있는 모습을 보죠. 바로 눈앞에서 지나가기에 총을 안 쏠 수가 없었어요. 정말 징그럽게 빠르다.”

포수들이 모여 땀을 닦았다. 멧돼지 한 마리가 땅바닥에 모로 누워 있었다. 5연발 엽총의 튼튼한 총알이 멧돼지 뒷다리를 뚫었다. 총구멍 밖으로 따뜻한 김이 피어올랐다. 땀에 젖은 포수들의 머리 위로도 모락모락 김이 피어올랐다. 거친 숨소리를 내는 사냥개 6마리가 멧돼지를 빙 둘러싼 채 코를 묻고 사체 냄새를 맡았다. 멧돼지 길이는 1m가 조금 넘어 보였다. 그런데 죽은 멧돼지 얼굴에 표정이 있었다. 할 말이 많아 보였다.

“멧돼지는 도대체 어디서 살란 말인가! 애 낳고 먹고 사는 게 죄란 말인가! 멧돼지라면 호랑이한테 물려 죽는 게 정도이거늘, 비겁하게 개한테 쫓기다 죽는단 말인가!”

포수 두 명이 길고 튼튼한 나뭇가지에 멧돼지 앞다리, 뒷다리를 각각 묶었는데 들고 일어서지 못했다. 네 명이 달라붙어 겨우 멧돼지 한 마리를 들었다. 하산하니 날이 저물었다. ▒

 

 

야생 멧돼지 먹을 수 있나

합법적으로 잡은 것만 가능


야생동물 피해 신고에 의해 합법적으로 잡은 멧돼지는 먹을 수 있을까? 없을까? 정답은 ‘먹을 수 있다’이다. 그러나 축산가공법과
식품위생법은 멧돼지를 각각 ‘가축이 아닌 것’과 ‘식품이 아닌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 현행법상 포획한 멧돼지는 잡아먹을 수 없고 소각하거나 매립해야 하는 것이다.

다만 환경부는 한국인들이 관습적으로 포획한 야생동물을 먹어왔기 때문에 포획한 야생동물을 거래하지 않는 한 합법적으로 잡은 야생동물을 먹는 일은 용인하고 있다. 환경부 관계자는 “피해 신고에 의해 합법적으로 잡은 멧돼지의 경우 지인끼리 자가 처리하거나 양로원 등 사회시설에 기증하는 것을 환경부 차원에서 권장하고 있다”고 했다


멧돼지 피해와 퇴치법

주택가·학교… 전국 출몰, 농작물 피해 수백억
‘호랑이 똥’부터 ‘전기 철조망’까지 퇴치 아이디어 만발


멧돼지는 초등학교부터 대학교, 고속도로, 공장, 사찰, 논밭을 가리지 않고 출몰하고 있다. 국회
농림해양수산위원회 김영덕 의원(한나라당)은 지난 10월 19일 농림부 국정감사에서 2002~2006년 멧돼지에 의한 농작물 피해액이 326억원에 달한다고 밝혔다. 2004년 10월 경북 영주에서는 멧돼지가 인삼밭을 습격해 억대 인삼을 먹어치웠다. 2006년 11월 충북 영동에서는 80대 노인이 멧돼지에 물려 숨졌다. 멧돼지 피해를 입은 경남 양산 통도사는 살생을 금하는 불교 교리 때문에 이도 저도 못하는 입장이다.

 

멧돼지가 전국 곳곳에 출몰하자 각 지자체별로 멧돼지 포획단을 운영하거나 멧돼지를 퇴치하기 위한 기발한 아이디어를 내놓기도 한다. 공포탄 쏘기, 나프탈렌 내걸기 등은 기본. 2005년 전남 장흥군의 한 농민이 호랑이 똥으로 멧돼지를 퇴치했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동물원이 있는 각 지역마다 호랑이 똥 품귀 현상이 벌어졌다. 당시 대구 달성공원은 호랑이 똥을 구하려는 사람들이 순번까지 받아가 대기자가 50명을 넘었다고 한다. 호랑이 똥 냄새를 맡은 멧돼지는 겁을 먹고 가까이 오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나 똥냄새는 시간이 지나면 사라지기 때문에 이 방법은 큰 효과를 거두진 못했다. 최근엔 멧돼지를 퇴치하기 위해 ‘가짜 호랑이 눈’이 등장했다. 산악지역이 많은 경남 합천군의 경우 멧돼지로 인한 피해가 극심해 군 차원에서 이를 막기 위해 호랑이 눈처럼 파란 빛을 내는 기계 장치와 호랑이 울음소리가 담긴 카세트테이프를 보급하기도 했다.

 

멧돼지 전문가들은 멧돼지 이동 경로를 추적해 펜스를 설치하고 멧돼지만의 활동공간을 확보해 줘야 한다고 말한다. 경북대 ‘옥수수 박사’ 김순권 교수는 연구용 옥수수를 재배하는 농장에 고압 전류가 흐르는 철책 200m를 쳤다. 2006년 8월 멧돼지 30여마리가 농장을 습격해 연구용 옥수수밭을 쑥대밭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철책은 매우 효과적인 것으로 알려졌다. 부산 강서구청은 현재 전기충격식 목책기와 울타리 철조망, 그물망 등의 설치를 농민들에게 권장하며 비용 일부를 지원하고 있다. 태양열을 이용한 전기 철조망은 야생동물에게 큰 피해를 주지 않으면서 멧돼지의 습격을 효과적으로 막고 있다고 한다.

 

2006년 환경부 조사에 따르면 수도권 인근 피해 신고가 빈번한 지역의 야생 멧돼지 서식 밀도는 전국 평균인 100㏊당 3.7마리의 두 배가 넘는 100㏊당 7.5마리. 서울 아차산, 동구릉, 북한산, 불암산 등에도 멧돼지가 서식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북한산 송추지구와 서울 아차산은 서식밀도가 9.9마리로 매우 높았다. 수도권 지역의 경우 도심이 가깝고, 국립공원과 군사보호구역 면적이 넓어 수렵이 사실상 금지돼 왔다. 환경부는 멧돼지 개체수와 이동 경로를 파악하기 위해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

 

환경부 자연자원과 이양재씨는 “가장 이상적인 것은 인간과 멧돼지가 공생하는 것이지만 현실적으로 멧돼지는 천적이 없어 자연사하지 않는 한 죽지 않는다”며 “어쩔 수 없이 인위적으로 개체수를 조절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했다. 환경부는 이에 따라 수렵장 제도, 유해 야생동물 포획제도, 수확기 야생동물피해방지단 제도, 목축기 등 피해방지시설 설치 지원 제도 등을 운영하고 있다.

/ 김경수 기자 kimks@chosun.com
사진 허재성 조선영상미디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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