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놈참 알 통통하네”
충남 서해안으로 떠나는 맛기행
 ◇알이 크고 통통한 천북 굴구이.
요즘 같은 환절기엔 입맛이 떨어지기 십상이다.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는 이맘때 입맛이 없다면 충남 서해안을 찾아보자. ‘바다의 우유’라고 불리는 굴부터 어리굴젓, 새조개 요리까지 군침 도는 먹을거리가 풍성하다. 굴과 어리굴젓, 새조개는 겨울 내내 즐기는 음식으로,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는 11월 중순 제철을 맞는다.

◇밤 인삼 대추 등이 들어간 천북 굴밥.

# 굴구이와 굴밥으로 유명한 천북 굴단지

보령 천북은 굴 요리의 메카다. 이곳 굴은 맛이 뛰어나고 영양이 풍부해 전국에서 유명하다. 조수간만 차가 크고 평균 수온이 높아 육질이 단단하고 맛이 달다. 천북면 장은항 일대 굴단지에 들어선 80여 가게가 각종 굴요리를 선보이고 있다. 이달 중순 제철을 맞아 어느 집에 가든 담백하고 시원한 굴 맛을 즐길 수 있다.

천북 굴단지의 대표선수는 역시 숯불 굴구이. 바닷가 추위도 녹일 만큼 맛이 좋다.

이 지역 굴구이는 한입에 먹기 부담스러울 정도로 알이 통통하다. 몇 번 씹기도 전에 없어지는 여느 조개구이들과는 비교가 안 된다. 숯불에 익힌 굴은 담백하면서도 짭조름하다. 그냥 먹어도 좋고 초장에 찍어 먹어도 된다.

굴구이로 적당히 배를 채웠다면 다음은 굴밥 차례. 굴밥에는 밤·인삼·대추·은행·콩나물 등 10가지 재료가 들어간다. 하얀 김 솔솔 나는 굴밥을 한입 떠넣으면 오묘한 맛의 삼중주가 입 안에서 펼쳐진다. 양념장의 고소한 참기름 냄새로 시작해 인삼의 약간 쓴맛이 뒤섞인 다음, 밤과 대추의 단맛으로 마무리된다.

입맛에 맞춰 김가루를 뿌리고 양념장으로 비벼 먹으면 되는데, 이 양념장에 따라 가게마다 굴밥 맛이 달라진다. 그래서 양념장 만드는 비법은 ‘며느리도 모르는’ 1급 비밀이다.

명미네굴집(041-641-7393)에서 내놓는 고무 대야(20㎏ 정도) 하나 분량의 굴 구이는 2만5000원. 서너 명이 충분히 먹을 수 있다. 굴밥은 7000원. 굴단지 내 모든 가게는 가격이 동일하다.

◇얼얼하고 매콤한 어리굴젓.

# ‘어리어리’ 어리굴젓으로 소문난 간월도

서산 안면도로 들어가는 길목인 A·B 방조제 사이에 있는 간월도는 어리굴젓으로 유명하다. 자연산 굴에 저염도 천일염을 뿌려 숙성시킨 다음 유기농 고춧가루를 뿌려 만든 웰빙식이다. 특히 여기 굴은 날개가 많아 양념이 잘 묻어나기에 맛이 깊고 오래 간다. 전국 최고의 품질을 인정받는 간월도 어리굴젓은 최근 허영만의 음식만화 ‘식객’에도 자세히 소개된 바 있다.

어리굴젓은 지금 같은 환절기에 제격이다. 어리굴젓 몇 점이면 밥 한 그릇 비우는 건 금방이다. 젓갈이지만 생각과 달리 짜지 않다. 오히려 얼얼하고 매콤한 맛이 더 강하다. 어리굴젓의 이름도 ‘얼얼하다’의 이 지역 사투리인 ‘어리어리하다’에서 나왔다고 한다.

어리굴젓은 쌀밥과 찰떡궁합이다. 12년째 어리굴젓을 만들고 있는 섬마을젓갈 유명근 대표는 “굴은 동서양 모두 즐기는 음식이지만 발효시켜 먹는 건 우리나라가 유일하다”며 “어리굴젓은 쌀밥에 부족한 ‘나이신’이란 영양소를 함유하고 있어 쌀밥과 잘 어울린다”고 말한다. 섬마을젓갈 (041)669-1290. 어리굴젓 500g 1만원, 1㎏ 1만9000원.

◇삼길포의 싱싱한 광어회.

# 값싸고 싱싱한 우럭회 산지 삼길포

서산 대산읍 삼길포구는 생선회 마니아라면 꼭 들러볼 만한 곳이다. 우럭, 노래미, 도다리, 광어 등 싱싱한 생선회를 싸게 먹을 수 있어서다. 각종 횟감을 전국에서 가장 싼값에 살 수 있다는 게 삼길포 어민들의 설명. 20여년 전부터 고깃배들이 영업법인을 만들어 고객들과 직거래하기 때문이란다. 인근 서해안 관광지에 비해서도 싼 편이다. 횟감을 사서 주변 식당에 가져가면 1인당 5000원만 받고 상을 차려준다. 대신 일반 횟집에서 나오는 수십 가지의 곁들이 안주는 거의 없다. 가격 거품을 빼고 오직 생선회만 제대로 즐길 수 있도록 한 것. 덕분에 주말이면 수도권 등지에서 손님이 끊이질 않는다. 삼길포에서 가장 잘나가는 것은 우럭회. 가격이 저렴하고 맛이 좋기 때문이다.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건 매운탕. 횟집마다 독특한 비법으로 매운탕을 끓여 낸다. 이 일대 매운탕을 섭렵하기 위해 올 때마다 매번 다른 집을 찾는다는 이도 있다고 한다. 저마다 특색 있는 매운탕을 자랑하지만 맵지 않고 깊게 우러난 국물 맛은 기본이다. 1㎏ 기준으로 우럭 1만3000원, 노래미 1만5000원, 광어 3만원.

◇쫄깃쫄깃 담백한 새조개.

# 쫄깃한 새조개 즐기는 남당리

가을철 대하축제가 끝나면 홍성 남당리 포구를 장악하는 건 새조개다. 추울수록 제맛이 나는 새조개는 서해안의 대표적인 겨울철 별미. 껍질을 벗겨놓으면 속이 새머리와 비슷해 새조개라는 이름이 붙었다. 쫄깃한 맛과 특이한 모양 덕에 눈과 입이 즐거운 해산물이다. 11월 말부터 본격적으로 선보여 이듬해 2월까지 미식가를 유혹한다.

새조개 요리로는 샤브샤브·양념구이·무침 등이 있는데, 사람들이 즐겨 찾는 건 샤브샤브다. 바지락·팽이버섯·양파 등을 넣고 끓여 낸 육수에 조갯살을 5초 정도 담갔다 건져낸 다음 초고추장에 찍어 먹으면 새조개 샤브샤브의 진수를 맛볼 수 있다. 살짝 데치면 육질이 연하고 좀 더 익히면 쫄깃해진다. 달짝지근하면서도 쫄깃한 게 닭고기 맛과 비슷한 느낌도 든다. 새조개는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이다. 내장에 진흙이 많아서 일일이 발라내야 하기 때문. 그래서 새조개로는 일반적인 조개구이를 해 먹을 수 없다. 손이 많이 가니 가격도 비싼 편. 지난해에는 ㎏당 3만∼4만원 선이었다. 올해는 흉작이라 조금 더 비싸질 것으로 예상된다.

서산·홍성·보령=글·사진 이성대 기자

karisna@segye.com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