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생이국은 그렇게 끓이는 것이 아니라니까?

 시골어머님께서 전화해서 다시 한 번 물어보세요? “

“아니! 국을 이렇게 끓이지 않고 어떻게 끓인다는 거야?”

“처음부터 물과 매생이를 함께 넣어 끓이지 말고 물이 끓어오면 그때 매생이를 넣어야 한다니까, 매생이와 굴은 깨끗하게 손질해 놓은 거지?”

“그냥, 대충 씻었지 뭐......”

“대충......, 굴속에 남아있는 껍질조각들은 잘 추러냈지?

국 먹다 굴 껍질 씹히면 소름 돋는다.

 매생이는 이렇게 매생이만 있는 것을 구입하지 말고 김이 조금 섞여 있는 것을 사는 것이 좋아. “

“왜 그러는데……. 시장에서는 이런 것밖에 팔지 않던데.”

“내가 먹어본 경험으로는 김이 조금 섞여 있는 것이 훨씬 감칠맛이 나, 그리고 매생이를 씻을 때는 세게 문지르지 말고 물에 살살 2-3번 행군 후 고운체로 받쳐 물기를 제거해야 돼, 또 매생이국을 끓일 때는 물의 양을 잘 맞추어야 하는데 절대 물을 많이 잡으면 안 돼. 왜냐하면 매생이 엽채가 수분을 머금고 있다가 불을 가열하면 밖으로 물기를 배출시키기 때문이지, 그래서 물을 많이 잡으면 국이 희멀건 해진다.”

“아이고, 누가 촌사람 아니랄까봐, 아는 것도 많네. 그다음에는?”

“먼저 물에다 손질해 놓은 굴과 다진 마늘을 함께 넣고 끓이다가 물이 끓기 시작하면 매생이를 넣고 2~3분을 더 끓이면 하얀 거품을 내며 다시 끓어 오는데 이때 국자나 숟가락으로 2~3번 저어 주면서 국 간장으로 간을 마치고 참기름 몇 방울 떨어뜨린 후 불을 끄면 매생이 특유의 상큼한 향기가 살아있는 국이 완성되는 것이지. 여기서 절대 잃지 말 것은 끓는 즉시 불을 꺼야지 너무 오래 끓이면 매생이가 녹아서 물처럼 되어 버린다.

 당신도 봤잖아. 시골어머님이 매생이국을 끓일 때면 멀리가지 않고 솥단지 주변에서 있다가 끓기 시작하면 참기름 치고 바로 불을 끄시던 모습을......“

 


 시장에서 옆지기가 진한 녹색의 매생이 한 제기와 굴 한 주발을 사 가지고 와 매생이국을 끓이겠다고 한다.

매생이국

 나에겐 생각만 해도 입맛이 당기는 세 가지 국에 대한 추억이 있다.

12월 중순부터 이듬해 2월까지가 제철인 매생이국. 2월에서 3월 초순 밭에서 캐낸 하얀 보리줄기에 딸린 부드러운 보릿잎에 간제미 내장을 넣고 끓은 보리된장국 그리고 8월과 9월 사이 밤새워 낚아온 장어로 끓인 장어국이 그것이다.

오늘은 상큼한 향기가 입안 가득했던 매생이국에 대해 빛바랜 추억을 더듬어 본다.

 

 바다를 메워 농경지로 변해버린 황량한 들판에 지금쯤 기러기 때, 오리 때가 무리를 지어 먹이를 찾아 화려한 군무를 즐기고 있겠지만 중학교에 다니던 70년 초반 고향마을 앞에는 널따란 갯벌이 펼쳐져 있었다.

 바닷가에 위치한 마을 이였지만 대부분의 마을사람들은 농사를 지으며 살아왔다.

농반기가 끝난 겨울한철에는 일손이 풍부한 집에선 김 양식에 주력했다.

채취, 가공, 건조 등의 모든 작업이 사람 손을 통해 이루어져야 하고 바다가 주요작업장인 김 양식작업의 특성상 수시로 바다를 왕래할 수 있는 배가 필요했기 때문에 50여 가구가 모여 사는 동내에서 김 생산에 종사하는 가구는 식구가 많고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5~6가구로 한정되었다.

 가을이 시작되면 어른팔뚝보다 굵고 기다란 대나무를 구입해와 세끼손가락 굵기로 가늘게 쪼개 기다랗게 발을 엮었다.

 발이 완성 되면 둘둘 말아 창처럼 뾰족하게 밑 부분이 깎인 "마장“이라고 부르는 기다란 장대와 함께 배에 싣고 바다로 나가 미리 정해진 자신의 구역에 대오를 맞추어 기다랗게 펼쳐 놓고 김발 사이사이에 5~6m의 일정한 간격으로 장대의 뾰족한 부분을 갯벌에 깊숙이 쑤셔 박아 어떤 악천후에도 끄떡없도록 단단히 고정시킨 후 굵은 나일론 줄로 김발과 장대를 결박하여 시시각각 변하는 바닷물의 수위에 따라 밀물 때는 떠오르고 썰물 때는 내려앉게 설치했다.

 설치장소는 썰물 때 바닷물이 다 빠져나간 갯벌의 끝자락 가장자리 부근을 애용했다.

 늦가을 바닷물의 수온이 내려가면 바닷물에 섞여 떠다니던 파리똥처럼 생긴 김 포자들이 대나무 김발에 달라붙어 성장을 시작한다. 이때 김 포자뿐만 아니라 다른 해조류의 포자도 같이 붙어 자라기 시작하는데 이것들이 자라서 나중에 김 품질을 떨어뜨린다.

  큰어머님 댁 김 채취 작업을 도와주고 오라는 성화에 못 이겨 새벽잠을 깬다.

 세 사람이 손을 맞추어 작업을 나가야 하는데 한사람이 감기몸살로 일을 나갈 수 없다한다. 춥지 않게 옷을 입어야 한다며 아버지가 군대에서 가져온 털모자와 목도리로 바람이 세어들어 올 틈 없이 치장하고 큰집으로 건너가니 허리까지 올라오는 검은 긴 장화를 신은 사촌형이 다라이 몇 개가 실린 지게를 짊어지며 반겨준다.

 동내어귀를 벗어나자 눈 섞인 삭풍이 매몰차게 얼굴을 때려댄다.

 찬바람을 피해 고개를 한쪽으로 비스듬히 돌린 도다리 몰골을 하고 산비탈 끝 후미진 바닷가에 도착하니 널따란 갯벌 위로 바닷물이 밀려오고 있다.

 바닷가에서 10여m쯤 안쪽 갯벌위에 놓인 타고 나갈 나무로 만든 작은 어선까지 바닷물이 밀려들려면 얼추 반시간을 기다려야 할 것 같다. 물때에 맞춰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 김을 채취해 와야 하기 때문에 너무 이른 새벽부터 서두른 것 같았다.

 긴 장화를 신은 사촌형이 지고 온 지게를 산속에 숨겨놓고 지게위에 실려 있던 다라이들을 무릎까지 빠지는 갯벌을 오가며 배에 옮겨 싣고 우리까지 등에 태워 배에 올려주고 나서 배의 뒤꽁무니를 좌우로 힘차게 밀쳐댄다.

 전혀 미동하지 않을 것 같던 배의 후미가 조금씩 들썩거리더니 좌우로 진동 폭이 자꾸자꾸 커진다.

 그새 물은 밀려들어와 선수(뱃머리)부근까지 접근해있다.

 갯벌에 처박힌 닻과 연결된 밧줄을 뱃머리에서 잡아당기고 후미에서 사력을 다해 밀어내자 스르르 배가 앞으로 밀려나간다.

밧줄을 가지런하게 사려가며 갯벌에 박힌 닻을 힘겹게 꺼내어 뱃머리에 올려놓자 그제야 배가 두둥실 물에 떠오른 느낌이 감지된다.

 어느 틈엔가 배에 올라탄 사촌형이 나무를 깎아 만든 기다란 삿대를 들고 배의 전후좌우를 오가며 삿대질을 해대다가 수심이 확보대자 삿대를 내려놓고 노 젓기를 시작한다.

 배의 양옆으로 물이 빠르게 지나간다.

회색빛 흙탕물이였던 바닷물 빛이 차츰 얇아지더니 푸른 물빛으로 변해있다.

 시야에서 점점 멀어져가는 고즈넉한 시골마을은 아침밥 짓는 연기가 굴뚝 끝으로 스멀스멀 피어오른다.

 고슬고슬한 눈송이가 너풀너풀 춤을 추며 겨울바다에 소리 없이 내려앉는다.

 잘 익은 복숭아처럼 살 오른 볼기짝만 살짝 노출시킨 체 두꺼운 외투에 털목도리로 머리까지 칭칭 감은 사촌누이가 배 한편에 쭈그리고 앉아 꾸벅꾸벅 졸음을 참지 못하고 있다.

 배 밑창의 널빤지를 한 장 들추어내고 배 밑에 고인 바닷물을 바가지에 퍼 담아 연신 배 밖으로 쏟아낸다.

 얼마쯤 시간이 지났을까?

긴 장대에 매달린 김발들이 뱃전을 스치며 지나간다.

 대나무로 엮인 김발마다 까만 김들이 물속에서 너울너울 춤을 춘다.

 여러 집의 김발들이 한곳에 커다란 집단을 이루고 있다. 줄지어 물위에 떠있는 김발들 사이로 유유히 노를 저어가다 작업 예정지에 솜씨 좋게 배를 안착시킨다.

 김발과 평행하게 배를 세우고 배 밖으로 손을 내밀어 발에 붙은 김을 훑어 내어 다라이속에 던져 넣는다. 차가운 바닷물에 손이 시려오다 차츰 감각을 상실한다. 뜯어낸 김 몇 가닥을 바닷물에 헹구어 입속으로 가져가니. 짭조름한 맛과 상큼한 바다 냄새가 입안 가득하다.

 바닷물의 수위가 점점 높아져간다.

 뭍으로 가는 여객선이 하얀 포말을 만들며 지나간다.

 배안에서 손을 흔든다.

 9시경에 이 근방을 지나가는 목포행정기여객선이다.

 여객선에서 발생한 커다란 너울파도가 밀려온다.

 배 안이 긴장감에 휩싸인다.

 하던 일을 멈추고 사촌형이 잽싸게 뱃머릴 파도가 밀려오는 쪽으로 돌리며 노를 붙잡고 파도를 응시한다. 갑자기 배가 물위로 솟구쳤다 처박혔다를 반복하다 잠잠해진다. 배가 제자릴 못 잡고 기우뚱거린다. 무의식적으로 뱃전을 붙잡은 양손에 힘이 들러 간다. 일순간 겁에 질려 식은땀이 등줄기를 타고 내린다.

 파도가 배에 부딪쳐 물방울이 우수수 배안으로 떨어진다.

 내린 눈이 녹아 축축해진 옷가지위로 바닷물까지 흠뻑 뒤집어쓴다.

 씹히는 맛이 제법인 김만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해 입에 쑤셔 넣는다.

 장소를 옮겨가며 채취 작업은 계속된다.

 장소에 따라 김의 품질도 제각각이다. 김의 엽체만 무성이 성장한 곳, 틈틈이 녹색 해초류가 섞여있는 곳.......

 한 가닥의 대나무 발에도 김, 매생이, 파래 등의 여러 해조류가 서식한다.

 진한 갈색의 김에 녹색의 매생이와 파래가 섞이면 김의 윤기가 반감되고 색깔을 퇴색시킴으로 이들 녹색 해조류는 김의 질을 떨어뜨리는 주범으로 인식되어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았다.

 주로 김발에 서식하는 매생이는 국과 부침에 이용되는데 촉감이 부드럽고 엽체가 미세하며 굵기가 머리카락보다 가늘고 진한 녹색을 띄며 윤기가 난다. 무를 가늘게 채를 썰어 함께 무쳐먹는 파래는 엽체가 넙적하고 촉감이 뻣뻣하며 주로 나무와 바위틈에 붙어 서식한다. 매생이와 비슷하게 생긴 감퇴는 이른 봄에 주로 채취하는데 조수간만의 차가 큰 얇고 부드러운 갯벌의 갯고랑 옆에서 집단을 이루며 서식하며 매생이보다 촉감이 거칠고 윤기도 나지 않고 엽체의 길이가 길며 주로 초무침으로 식탁에 오른다.

 

 

 

 현장고발 “김양식장에 맹독성 화학약품 염산이 무차별적으로 뿌려지고 있는 현장” 매스컴을 통해 심심찮게 전해지는 슬픈 모습이다.

 노동력부족과 기술개발로 현재는 채취, 가공, 건조 등 김 생산의 모든 과정이 기계화되어 대량생산체제를 갖추고 있다.

김의 품질을 향상시키기 위해서 여러 가지 방법이 동원되고 있으나 김과 함께 서식하는 해조류를 일일이 분리해 내야하는 작업을 기계에 의존하여 그 일을 수행해내기란 실질적으로 불가능하다.

 김발에 붙어 서식하는 녹색 해조류는 산성에 약하여 쉽게 녹아 없어진다.

 이를 악용하여 광범위한 지역에서 김양식장에 염산이 뿌려진다.

 눈앞의 작은 편리와 이익만을 쫓아 신성한 먹걸이에 맹독성 화학약품이 사용되어진다하니 입맛이 개운치 않다.

 씁쓸한 뒷맛이 어린 시절의 기억마저 희미하게 한다.

 김에서 매생이를 분리해내는 작업은 첫 번째 김을 채취하는 과정에서, 두 번째 제기를 만드는 과정에서, 마지막으로는 1, 2차 과정을 통해 따로 모아진 것을 집으로 가져와 상에 펼쳐놓고 하나하나 골라내는 과정을 통해 이루어진다.

 김발에서 김을 훑어 낼 때 일차적으로 매생이가 섞인 김은 따로 관리한다. 물속에서도 갈색 김의 엽체와 녹색의 매생이 엽체가 구분되어지기 때문에 신경 쓰고 작업하면 어느 정도는 분리가 가능하다.

 3시간가량 채취 작업을 계속하자 준비해간 통마다 김으로 가득 채워진다.

 물 반 김 반이다.

 채취 작업을 마치고 뱃머리가 뭍으로 향하면 통에 담김 김의 물기를 제거하기 위해 “제기”를 만든다.

 한 손으로 조금씩 통에 든 김에서 매생이등 잡티를 분리하며 다른 한 손 손바닥에 옮겨 놓는 과정을 5~6회 되풀이하다 손바닥에 수북이 한 움큼의 김이 오르면 펼쳐진 손바닥을 꽉 움켜쥐어 김 엽체에 머금고 있는 물들을 짜낸 다음, 빠져나온 염체들을 가지런히 정리한 후 위에서부터 둥글게 모양을 만들며 쓸어내린다.

 “제기”를 만들어 차곡차곡 다라이에 담긴 모습이 참빗으로 곱게 빗어 넘긴 여동생의 머리통을 많이 닮았다.

 

 꼬박 반나절의 체취과정을 마친 김들은 집으로 옮겨져 마지막 분리작업에 들어간다. 책받침크기의 정사각형 김 한 장이면 한 끼니 반찬 모두를 대신하고도 남았던 그 시절, 김은 모두가 좋아하는 반찬거리였다.

 겨울철 마땅한 소일거리가 없어 집에만 머물던 사람들이 김을 채취해왔다는 기별을 듣고 모여든다.

 각자 김에서 분리한 매생이를 가져가는 것으로 대가가 결정되기 때문에 애들까지 데리고 와 상을 펼쳐 놓고 삼삼오오 모여앉아 콩에서 쭉정이를 분리해 내듯 김 엽체 사이에 섞인 매생이를 분리한다. 엽체가 가는 매생이는 색깔뿐만 아니라 가는 엽체가 덩어리져 뭉쳐있어 누구나 손쉽게 분리가 가능했다.

 

 

 하얀 사기그릇에 진한 녹색의 매생이국.

 생각만 해도 입맛 당긴다.

 달착지근하면서 감칠맛이 돈다.

 뜨거운 김이 묻어나지 않아 뜨거움을 잘 감지할 수 없지만

완벽한 궁합을 자랑하는 굴까지 곁들이니 상큼한 향기가 입안가득하다.

 세월이 변해도 많이 변했나보다.

 김 값을 떨어뜨리는 천덕꾸러기 신세였던 매생이가 금값이란다.

 주먹보다 작은 한 제기에 5000원 이란다.

 따로 양식장을 만들어 매생이만 양식한단다.

 현대인의 입맛에 부응해서 참살이 식품으로 거듭나고 있단다.

 각종미네랄 성분을 비롯해 비타민, 칼슘, 요오드, 철분들이 다량 함유하고 있어 성장기 어린이들에게 좋고 바다의 대표적인 식이섬유인 알긴산이 풍부하여 다이어트에 좋고 과음한 다음날 쓰린 속을 달래는데 으뜸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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