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가뭄이 심각했다.
생전 마를지 않을 것만 같았던 마을 앞 방천의 물줄기가 바싹바싹 타들어간다.
논에 물을 대던 양수기도 멈추어선지 오래되어 보인다.
만춘의 5월, 석가탄신일 하루전날이 장인생신이라 처갓집에 내려왔다 부지런을
떨어 인천으로 올라가는 길에 흙먼지 풀풀 날리며 봄꽃들의 향훈을 쫓아 다락골로
발길을 옮겼다.
산줄기를 타고 온 바람결이 머릿속까지 상쾌하게 씻어준다.
지난 3주전에 파종했던 더덕, 도라지에선 싹들이 돋아나기 시작했고
2주전에 씨를 뿌린 상추밭은 드문드문 새싹들로 채워지고 있다.
보기에 참 앙증맞다.
계속되는 봄 가뭄 탓인지, 주인의 정성 부족인지 작물들의 생육작황이 신통치가
않아 보인다.
자기 맘대로 인화했던 상상속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게 느껴진다.
노지에 이식한 참당귀가 시들하고 마늘의 성장도 기대이하다.
야콘, 울금 또한 그렇기는 마찬가지다.
울금은 파종2주가 지나간다.
아직도 흙속에서 제 모습을 보여주지 않고 있다.
야콘은 포트 모종 때의 그 싱싱하고 풋풋한 멋을 잊어버리고 잎사귀가 타들어가고
거치고 까칠해졌다.
색깔도 투박하게 변색되었다.
노지적응의 어려움이 한 눈에 짐작이 되고도 남는다.
보기가 안쓰럽고 애처롭다.
줄기 끝 새로운 생장점에서 새로운 잎이 피어오르고 곁가지 발생이 관찰된다.
물을 충분히 뿌려주는 일 밖에 별다른 격려를 할 수 없어 안타깝다.
생육과정의 한 단계일 것이라 추축해 보지만 뒷맛이 개운치가 않다.
240여주 이식했는데 그 중 3주가 말라 죽었다.
이것들을 처음 노지이식에 들어갔을 때 주변 이웃들의 관심이 대단했다.
울금, 야콘 이름부터가 생소한 작물을 재배한다하니 그 쓰임새를 비롯해 자라는
생육환경, 재배 방법 등 여러 가지를 물어왔다.
인터넷을 통해 공유한 정보들을 토대로 늦가을 수확해서 나눔해 드리겠다고 자랑만
엄청 늘어놓았는데 축적된 재배경험이나 지식들이 부족해 지금 어느 부분이
잘못되었는지 어떻게 손을 써야 하는지 가름조차하기 어렵다.
같은 날 이식을 마친 고추, 토마토, 옥수수 등은 흙냄새를 맡으며 본격적인 성장을
하고 있는 것을 보면 서리로 인한 성장저하는 발생하지 않은 듯한데
유독 야콘과 오이모종들이 심한 멀미에 시달리고 있다.
"고추를 제때 아주 잘 심었어!"
"올해의 고추이식 적기는 자네가 심은 그날이야."
"벌써 고추가 흙냄새를 맡아 시커멓구먼."
지나가시던 이웃집어르신의 말 한마디에 괜히 기분이 좋다.
4월말까지 늦서리가 가끔 관찰되기 때문에 이곳 다락골에서는 대부분의 농가들이
5월5일경에 노지이식을 실시한다.
4월의 마지막 주말 주인의 헛된 욕심으로 아직도 찬 기운이 느껴지는 밭뙈기에
홀로 시집보내 갓 시집보낸 친정부모 심정으로 하루하루를 불안과 긴장으로
보내야만했었다.
잠에서 깨면 제일 먼저 그 지방의 최저기온부터 확인하려 들었다.
다행히 서리피해가 발생하지 않아 4월말에 노지이식한 고추, 토마토, 옥수수 등은
별 탈 없이 성장을 지속하고 있다.
땅의 기운을 흡수해서인지 잎사귀마다 짙은 녹색을 띠며 나무마다 곁가지 발생이
활발하다.고추나무에선 하얀 고추 꽃이 하나, 둘 눈에 들어온다.
이식과 동시에 지지대와 1차 유인줄 설치를 마쳤기에 특별히 손이 가질 않는다.
비둘기들의 약탈로 군데군데 피해를 본 대학찰옥수수밭을 여분의 씨앗으로 보식하고
매실나무가 심어진 곳으로 이동했다.
지난해 가을 대과매실10주와 수분수를 겸해 심은 남고매실10주가 신록으로 무성하다.
20주중 2주에서 동사피해가 발생했다.
접목했던 매실나무부위가 고사하고 대목인 복숭아나무잎사귀만 삐죽삐죽 올라와있어
뿌리째 뽑아내서 제거했다.
각각의 매실나무들도 미래의 주된 가지가 될 수 있는 3-4개의 순만 남기고
나머지는 과감히 제거했다.
하늘에선 금방이라도 빗방울이 쏟아져 내리듯 먹구름으로 가득하다.
한시라도 빨리 메마른 땅을 촉촉하게 적셔주면 좋으련만 구름 속에 비만 품은 채
하늘에서 우둑 커니 머물고만 있어 목마른 사람의 갈증만 증폭시킨다.
옆지기는 밭에 물주기를 계속하고 있다.
하늘만 쳐다보고 그냥 내버려두기엔 너무 야박하다
주차장이 되어있을 연휴 마지막 날 고속도로의 나쁜 기억들로 자꾸 마음이 급해지지만
한 방울의 물이라도 더 뿌려주고픈 정성이 자꾸 발길을 붙잡는다.
시급하면 시급한대로 중요하면 중요한대로 현실과 부딪쳐 문제를 제때에 해결하고
가야한다.
찬 공기를 머금은 마파람이 세차게 불어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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