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틀 무렵 습관적으로 쳐다보는 하늘빛이 심상치 않다.
서해안고속도로 화성휴게소 부근부터 비가 억수같이 쏟아진다.
“오후부터 차차 흐려져 중부지방부터 비가 시작될 것”이라는 일기예보만
믿고 길을 재촉한 게 무모한 행동 이였을까?
비가 와서 밭에도 들어가지 못할 거라며 괜한 헛걸음하지 말고
오던 길로 되돌아오라는 옆지기의 근심에 찬 하소연이 전화기를 타고 전해진다.
하늘의 보살핌일까?
서해대교를 넘어서자 조금씩 자자들기 시작한 비가 다락골에 들어서니 거짓말처럼
뚝! 그쳤다.
구름 빛이 조금 얇아졌다 싶더니 먼 서쪽하늘엔 짙은 먹구름으로 채워진다.
머리에선 일의 우선순위를 가려내려는 계산들로 복잡하다.
출발하기 전에 제일 우선순위로 삼았던 마늘밭 질산칼슘 엽면시비는 기상여건상
다음으로 미루어져야 할 것 같아 짐 부릴 틈도 없이 검은콩(서리태)파종부터 일을
시작했다.

 

 

지방마다 기후조건과 재배여건에 따라 각각의 선호하는 작물들이 따로 있다.
밭뙈기뿐만 아니라 논두렁까지 점령하고 있는 것을 보면 다락골에선 검정콩과
들깨가 이 범주에 속하지 않을까 한다.
3주전에 지난해 고추를 심었던 곳에 석회비료만 뿌리고 검정비닐로 멀칭작업을
마쳤다.
지난해에는 개화기 무렵 계속되는 궂은 날씨로 습해가 발생하여 콩 농사에 무진
애를 먹었다.
2차 순지르기의 시기를 저울질하고 있던 8월 초순 갑자기 불어 닥친 돌풍으로
콩밭이 쑥대밭 되어 버렸다.
꺾이고, 부려지고, 넘어지고…….
심하게 생체기를 겪는 모습을 먼발치서 지켜보아야만 했다.
올해부턴 비닐멀칭 후 외줄심기로 재배방법을 바꾸기로 했다.
지난해까지는 두개의 이랑을 하나로 합쳐 만든 두둑에 3줄심기를 실시했으나 비바람에
쓰러져 서로 엉키고 뒤섞여 충분한 햇볕과 원활한 통풍이 공급되지 않아 꽃만 피고
결실이 재대로 이루어지지 못했다.
품종은 맛도 좋고 다수확이 가능한 귀족서리태를 선택했다.
이랑과 이랑 간격을 60cm간격을 유지하고 30cm간격으로 구멍을 내서 한구멍에 3알씩을
파종했다.
발아상태와 생육작황을 따라 한 구멍에 2본을 기본으로 관리해 나갈 계획이다.
인적 드문 시골마을에 새소리만 요란하다.
산자락 끝에 위치한 밭뙈기라 까치며 비둘기 등 산새들의 낙원이다.
지난주까지도 보이지 않던 2마리 까치 녀석들 때문에 신경이 거슬린다.
지난해에는 이놈들의 약탈 짓으로 종자만 3번 파종했다.
4월 중순에서 5월 초순에 집중되는 산새들의 산란철에 맞춰 조금이라도 새때들의
주둥이를 피해보고자 파종적기인 5월말보다 2주 앞 당겨 파종에 들어갔다.
조기파종으로 인한 웃자람은 적절한 순지르기로 해법을 찾아 볼 요량이다.
정오 무렵부터 다시 비가 시작된다.
기왕에 참아주던 김에 조금만 더 참아주길 하늘 우러러 소원하고 애원도해보지만 인내의
한계가 여기까지인가 보다.
까치들의 지저귐이 가까워질수록 손에 들린 망치에 힘이 실린다.
이놈들을 사로잡아 머리통이라도 깨부수고 싶은 심정이다.
밭뙈기 양쪽에 쇠말뚝을 쑤셔 박고  질퍽하게 빠져대는 밭고랑을 왕래하며 말뚝 끝에
반짝이 비닐테이프를 단단하게 동여맸다.
"까치, 비둘기들의 출입을 일절 금합니다."
바램이 담긴 금줄이 밭 가운데서 바람에 펄럭인다.
"쇼(show)하고 있네!"
흥얼대는 독백에 입가엔 미소가 번진다.

 

 

 

 

 
딱히 할 일이 없다.
모처럼 느릿한 여유를 맛볼 수 있어 이것 또한 매력이다.
예쁜 그림엽서에서나 봄직한 풍광들이 지워졌다, 채워졌다를 반복한다.
비가 많이 내릴 것 같다.
멀리 떨어진 도로 위를 달리는 차 소리가 아주 가깝게 들린다.
한적한 시골마을이 무거운 정적 속에 빠져든다.
그늘막 처마 끝을 타고 낙숫물이 긴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주초에 내린 단비로 작물들의 성장이 눈에 띄게 달라졌다.
인천에서 당진까지 운반과정에 심한 멀미로 고생하던 야콘들이 특유의 야생의 모습을
뽐내며 생기발랄하다.
3주내내 땅속에 모습을 숨겼던 울금싹이 얼굴을 내밀기 시작했고 설치해 놓은 유인
막대엔 더덕덩굴들이 칭칭 감겨있다.

 

 

 

 

 

하늘하늘 신록이 가득한 봄날은 봄날인데
어느새 꽃색들이 다 바뀌었다.
울긋불긋하던 진달래, 복사꽃은 오간데 없고 주변은 온통 하얀 꽃 일색이다.
아카시 꽃인가 했더니 이팝나무 꽃이다.
한잎 두잎 따먹었던 찔레꽃도 흐드러지게 피었다.
몸땡이는  쑤셔오지만 기분은 더 없이 맑고 상쾌하다.
비록 하고 푼 일은 다하지 못했지만 가뭄 속에 단비라 그냥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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