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런 곡식들이 일렁이는 고향땅을 뒤로 하고 길을 재촉했다.
긴 차량행렬에 갇혀 하루나절을 허비할 것 같은 조급함에 조상 묘에
성묘하는 의식을 치르자마자 땅 끝과 섬을 이어주는 다리를 건넜다.
풍성한 명절의 뒤끝엔 노환으로 고생하시는 어머님모습이 짙게 인화되어
오는 길 내내 마음을 무겁게 했다.
많이 막힐 거라는 도로사정은 예상과는 다르게 수월했다.
막 귀경차량행렬이 꼬리를 물기 시작한 서해안고속도로 홍성 나들목을
빠져나와 덕산방향으로 국도를 따라 이동한 끝에 여름 같은 늦더위의 열기를
분출하고 있는 태양이 반쯤 기운 시각에 인천으로 가는 길에 식구들을 꼬드겨
잠깐 다락골에 들렸다.

 

 

 

"우와! 배추가 엄청 컸네!"
초가을 가뭄 속에서도 찾아줄 주인께 환희의 순간을 맛보게 하기 위해 애쓴 모습들이
보기 좋다.
40cm간격으로 넉넉하게 심었던 포기사이가 벌써 비좁아 보인다.
짐 내리는 것도 잊고 가족이 합심해서 일을 거든다.
옆지기는 밭고랑에서 김매기를 하고 애들은 배추밭에 물주기를 한다. 나름대로 열심이다.
배추가 밭에 이식된 지 2주가 지났다.
그 동안 땅기운으로만 성장했을 김장채소밭에 웃거름을 시비했다.
배추밭엔 뿌리에 비료가 직접 닿지 않게 포기와 포기사이에 구멍을 내고 요소와 황산가리를
3:1의 비율로 혼합하여 한 스푼씩 구멍 속에 떠 넣고 무와 쪽파 밭엔 작물들이 닿지 않게 줄뿌림한 후 호미로 흙을 북북 긁어 북주기도 함께했다.
혹 놀리는 땅이 있으면 마저 심어보라시며 이웃집할머니가 쪽파종구를 한 움큼 들고 오셔서
자기 집으로 건너가 저녁 먹기를 청한다.
고향집을 나설 때 바리바리 챙겨주신 어머님의 정성을 마저 느끼려 정중히 사양했다.
휘영청 밝은 보름달이 얇은 구름 속에 가려있다.

 

 

 

 

 

  
풀렸던 귀경길이 정오 무렵부터 꽉 막힐 거란 뉴스가 티브이를 통해 전해졌다.
밭두렁의 잡초들을 제거하는데 아침부터 땀이 비 오듯 한다.
눈이 흩뿌린 듯 들깨 꽃들이 땅바닥에 내려앉았고 그 옆에선 작고 하얀 스테비아 꽃들이 만발했다.
검정멀칭비닐이 쭉쭉 갈라지고 두둑들이 부풀어 오른 것으로 봐 야콘이 비대해지기 시작했음을 직감할 수 있다.
약 한번 비료 한번 치지 않은 것들이라 흙속에 숨긴 그 곳 세상이 몹시 궁금하다.
지난주 관찰결과 개체수가 감소해 한 고비를 넘긴 줄 알았던 톱다리허리노린재의 피해가
우려했던 것보다 훨씬 심각하다.
이웃 밭으로 마실 갔던 녀석들이 몰려와 개체수가 많이 증가했다.
꽃이 늦게 핀 줄기 위쪽 부분에 달린 꼬투리에서 피해양상이 뚜렷이 나타난다.
어느 줄기엔 성한 꼬투리가 몇 개보이질 않고 모두 쭉정이 뿐이다.
이 녀석들과의 싸움은 이번 방제로 종지부를 찍었으면 좋겠다.
꼬투리가 제법 부풀어 오른 귀족서리태밭에 방제 약을 살포했다.
볕이 벌써 뜨겁다.
잠깐 머무를 줄 알았는데 시간을 너무 지체한다며 갈 길을 재촉하는 식구들의 원성이
한 목소리다.
애잔한 어머님의 눈길을 고향에 남겨둔 채 떠나 온 길
손길을 필요로 하는 생명들을 뒤로하고
먹고 살기위해 가야 할 마지막 남은 길로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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