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비가 날리던 날
다락골엔  하얗게 된서리가 내렸습니다.
비닐을 뚫고 겨우 고개를 내민 감자 싹마다 동상에 걸리듯
치유되지 못한 상처들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습니다.
얄궂고 짓궂습니다.
봄날마저 실종되어버린 듯합니다.

 


만상일(마지막으로 서리가 내린 날)이 늦어질 것 같은 예감입니다.
만상일에 맞춰 씨를 뿌리고
모종을 내다심는 일은 조금 늦춰야 될 것 같습니다.
농사철은 코앞인데 아직까지 손바닥만 한 밭뙈기를 밭갈이도 못했습니다.
고령의 노인들만 띄엄띄엄 모여 사는 작은 산골마을이라 빌려 쓸 변변한 농기계
하나 없습니다.
외지에서 농기계를 끌어와 쓰는 일도 생각처럼 되지 않고 해서
지난해 이맘때쯤 중고관리기를 한대 구입했습니다.
그런데 기계 다루는 일엔 제주가 없어 지금까지 헛간 구석에 처박아두고 있습니다.
돈만 처들이고 부려먹지도 못한다는 옆지기의 빈정거림은
관리기 앞에만 서면 녹음기처럼 흘러 나왔습니다.

 


좋아하는 일이라 그렇지
억지로 남이 시키는 일이였다면 벌써 호밋자루를 내던져버렸을지도 모릅니다.
시기에 맞춰 내다심을 것이 많은데
주말에 내려와 괭이로 밭을 갈아엎는 일은
힘은 힘대로 들고 일할 시간은 늘 부족했습니다.
“하나보다는 둘이,
혼자보다는 함께“ 라는 말이 참 좋다는 걸 세삼 느낌이다.
표고버섯 균의 배양을 위해
골목에 물을 뿌리고 통나무를 들어 옮기는데
다락골에서 농장을 일구며
세상사는 재미를 함께 공유하던 지인께서 관리기의 사용요령을 가르쳐주시겠다고
한 걸음에 달려오셨습니다.

 

 

기계의 사용요령과 안전수칙을 설명하고
엔진시동을 거는데 그만 시동을 거는 줄이 끓어져 애간장을 녹입니다.
연장을 챙겨들고
무작정 고장 난 부위를 뜯어내기까지는 했는데
다시 조립하기가 생각처럼 잘되지 않습니다.
머리를 맞대고 수십 번의 시행착오를 걸친 다음에서야
겨우 기계가 움직일 쯤엔
주변은 벌써 어둠에 파묻힌 지 오랩니다.

 


춥고 궂은 날씨 속에서
간신히 버티고 있는 쌈채소밭에 또 다른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십자화과 채소들만 유독 좋아하는 벼룩처럼 생긴 벌레들이
잎사귀를 닥치는 대로 갈아먹고 있습니다.
떡잎마다 구멍이 숭숭 뚫렸습니다.
모종을 옮겨 심은 것은 덜한데 직파한 것에서 피해가 더 심합니다.
솎아주기를 겸해서 잎사귀 밑에 숨어있던 벌레를 잡아 없앱니다.
툭~ 툭~ 툭~
눈치 빠른 녀석들이 잽싸게 도망치다
그만 멀칭비닐위에 미끄러지며 뒤집혀 몸뚱이는 옴짝달싹 못하고
발만 허공에 내젓는 모습이 우스꽝스럽습니다.
벌레들의 성찬을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어
한랭사로 보호망을 쳐둡니다.

 

 


나물케는 아낙들의 모습들이 심심찮게 목격됩니다.
옆지기도 인천에서부터 함께 온 언니와 나물케는 삼매경에 빠져있습니다.
두릅나무만 쳐다보면 휑한 마음이 앞섭니다.
뾰족뾰족 올라오는 두릅을 생각하며
일주일을 안달하며 내내 기다렸는데
다른 어떤 이들의 손에 모조리 자취를 감췄습니다.
속상합니다.
상대를 배려하지 못한  마음씀씀이가 아쉽기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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