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8일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자 길을 나선 차량들의 행렬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집니다.
이 길 끝엔 팔순을 넘긴 어머님이 시골집에 홀로 계십니다.
모든 것을 다 빼앗아간 몹쓸 자식새끼는 부끄럽게도 자신을 헌신한 그 분께 내달리지 않고
당진 나들목을 빠져나와 다락골로 갑니다.
일에 치이고 생활에 얽매여 이럴 수밖에 없다고 여러 구실을 대 둘러대지만
마음만 심란합니다.
어머니! 죄송합니다.

 

 

봄을 느낄 여유도 없이 여름이 성큼 곁에 와 있음을 실감합니다.
풋풋한 풀냄새가 차안에 가득합니다.
비실비실
한참 모자라게 자란 야콘모종이 귀빈이라도 되는 양 승용차의 뒷자리를 차지했습니다.
올 봄 모종 기르는 일은 날씨가 궂어 싹 틔우기부터 옮겨심기까지 모든 일이 순탄치 못했습니다.
따사로운 햇살 한 번 보기 힘든 봄날이었습니다.

지난 주말에 내다심었던 옥수수모종들을 찬찬히 들여다봅니다.
일교차가 심한 외진산골에서 그새 낯선 환경에 길들여져 거칠고 까칠해졌습니다.
맨 아래 잎 끝이 듬성듬성 타 들어간 흔적들이 드문드문 보일뿐
걱정했던 서리피해는 심해보이질 않습니다.

 

 

 


밤 기온도 제법 올랐습니다.
이른 새벽 스쳐가듯  찬기운을  느꼈을 뿐 반팔샤쓰차림이 어색하질 않습니다.
그 동안 미뤘던 모종들을 내다심을 차례가 됐습니다.
지난해와 비교해 10일가량이 늦었습니다.
1주일 전에 미리 밭을 일궈 두둑에 비닐을 씌워둔 뒤라 흙에 습기가 촉촉하게 베였습니다.
햇볕과 바람이 잘 스며들게 포기와 포기사이를 넉넉하게 간격을 띄워 정성껏 모종들을 이식합니다.
때를 맞춰 모종들을 내다심는 동내사람들도 여럿 보입니다.

 

 

 

자투리땅에 생강을 심기로 작정했는데
정작 가장 중요한 종자를 구하는 일이 쉽지 않았습니다.
당진에 있는 종묘상을 다 뒤진 뒤에도 끝내 구하지 못하고 묻고 물어
서산까지 다녀와야 했습니다.
"생강종자좀 구입할 수 있시유!"
"얼매나 필요한디유?"
"경험삼아 쬐끔만 심어보고싶어서유!"
"그렇게는 못 팔아유!
 여기는 조합물건을 받아다 파는 곳이라 5.5kg 박스 판매만 가능하구 쬐끔씩은 팔 지 않아유!"
"아따! 당진에서부터 묻고물어 여기 서산까지 왔는디 쪼매만 나눠주시유!"
"근디! 아자씨, 생강은 심어봤시유?"
"아니유, 그것도 가르쳐주셔야지유!"
"허 허 허, 이 아자씨 보게…….
 생강은 유,
 거름기가 많은 건땅에서 잘 크니께 퇴비를 많이 넣구유,
 간격은 대충 이만큼 한뺌정도에 하나씩 심고 흙은 너무 두껍게 덮으면 좋지않아유,
 심고나서는 볏짚으로 덮어주고 풀이 생기면 호미를 써서 뽑지말구 그냥 풀만 잡고
 쏘옥 뽑아내야디유!"
"아하! 생강 밭에선 호미를 사용하지 않구먼유!
 지는 볏짚이 없어  산에 가 솔잎을 긁어다 덮어줄라고 하는지 그래도 괜찮지유?"

 


"옻 타나?"
"아니, 괜찮습니다."
"글면 우리 옻나무 새순 다 따서 가져가서 먹어,
 집안에 옻 타는 사람 있으면 큰일 나니 조심허구……."
저녁 세참 시간 무렵
이웃집어르신이 갓 따온 옻나무새순을 한 바구니 가져오셨습니다.
그냥 생으로 초고추장에 찍어먹거나 살짝 데쳐 무쳐 먹을 수 있는 참옻나무 새순은
새싹이 돋아나는 잠깐 동안에만  맛 볼 수 있는 특별한 먹거리입니다.
옻은 사람들의 체질에 따라 우루시올이라는 성분이 알레르기를 일으켜 가렵게 만드는데
소싯적 옻나무를 잘못 만져 생긴 피부병으로 고생하던 동무생각에
처음엔 멈칫멈칫 손이 잘 가지 않던 옻순이 맛을 볼수록 입맛을 당깁니다.
초고추장에 살짝 찍어 조물조물 씹을수록 고소한맛이 뒷맛으로 남습니다.
두릅순과는 전혀 다른 색다른 맛입니다.

 


라디오를 통해 전해지는
서울가는 길이 쉽게 풀린 기미가 보이질 않습니다.
꽉 막힌 도로에 갇혀 보내야할 시간이 아까워 늦은 저녁시간까지 손에서 연장을 내려놓지 못합니다.
씨뿌리기를 마친 밭고랑엔 잡초발생을 줄이기 위해
지난해 사용했던 친환경부직포가 다시 깔립니다.
마 줄기가 타고 오를 수 있게 그물망도 촘촘하게 펼쳐졌습니다.
사진에 담을 여유도 없이 올봄에 계획했던 일들을  얼추 마무리 짓습니다.
딴 일에는 별로 욕심이 없어 보이는데
작물 키우는 일엔 유독 욕심을 부립니다.
이어받은 농사꾼의 피는 속일 수 없나봅니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