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양의 물빠짐 상태는 어떻게 알 수 있는가?

토양은 농사의 기본이다. 따라서 '흙 가꾸기'니 '적지적작"이니 '기반조성"이니 하는 말들이 생겼다. '적지적작"이라면 땅 면적이 넓은 나라에서나 작물별로 알맞은 흙을 마음대로 골라 가꿀 수 있는 호사쯤으로 여길 수도 있다. 그러나 세계화시대에, 또 '양"보다 '질"이 영농의 성패를 좌우하는 최근에는 '적지적작"이 아니면 경쟁력 있는 고품질농산물은 생산하기 어렵다.
토양조건을 말할 때 작물종류를 가리지 않고 '배수가 양호한 양토" 또는 '배수가 알맞은 식양토" 등으로 말하고 있으나 배수상태를 판단하는 기준을 잘 알고 있는 농업기술자나 농업인은 흔하지 않다.
이는 토양학 공부에서, 눈에 보이는 형태적이나 물리적 특성을 가볍게 여기고 '눈에 보이지 않는 화학성"이나 '미생물특성"만을 너무 강조한 결과이다.
화학성과 미생물성도 중요하지만, 이들은 대개의 경우 형태적, 물리성에 좌우되므로 형태적 특성이 알맞으면 저절로 개선되는 수가 많다.
토양의 형태적 특성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토양배수 상태, 즉 '배수등급'이다. 토양배수상태에 관한 등급을 알아보자.

◇ 배수상태를 결정하는 요인은 무엇인가?

토양은 입체적인 자연산물이다. 즉 넓이와 깊이가 있다. 넓이는 연결되어 지형을 이룬다. 그러니까 지형에 따라 표면의 물 흐름(流去)이 결정되고, 지하수위의 높고 낮음도 결정된다. 따라서 지형은 토양의 생성과 특성을 결정하는 요인이다. 그러나 지형은 다음 기회에 상세히 논하고자 한다. 토양의 배수상태를 결정하는 요인은 다음과 같다.

1. 물흐름(유거)
농지의 표면 위를 물이 흐르는 정도를 말한다. 지형이 평탄하면 유거에 불리하고, 경사가 심할수록 유거는 빠르다. 따라서 물 스밈성(투수성)과 지하수가 동일하다면 평탄할수록 배수가 잘 안 된다. 그러므로 논은 본래 평탄하거나, 인공적으로 평탄화 하였으므로 밭보다 물이 잘 안 빠질 조건을 갖추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실제는 물 스밈성이 크게 작용하고 있다.
즉, 토양의 배수등급은 유거, 지하수위, 투수성 등의 3가지 요인이 종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이다.

2. 지하수위
땅 속에서 연중 머무는 물턱의 높이를 말하며, 지표면으로부터의 거리를 재어서 표시한다. 지형적으로 낮은 곳(예: 논)은 지하수위가 높고 야산과 구릉은 낮으며, 곡간지나 선상지는 그 중간이다. 지하수위의 높고 낮음을 표현하는 기준과 영농상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 매우높다: 지표 50cm 이내에 지하수위가 있을 때
(답리작 불가, 벼 물관리 어려움, 도복우려, 습답)
· 높다: 지하수위가 50∼100cm일 때
(벼 재배적합, 밭작물 습해 우려, 반습답)
· 보통: 지하수위 100∼150cm이하일 때
(밭작물 적합하나 장마기에 일부 습해, 과수는 습해우려, 건답상태)
· 낮다: 지하수위 150cm 이상
( 밭작물 적합, 과수도 습해 없음, 벼는 물 부족)

3. 물 스밈성(투수성)
표면에 고인 물이 땅속으로 얼마나 잘 스며드느냐? 에 따라 등급을 정하며, 밭의 경우 충분한 량의 비가 온 후에도 3∼4시간 내에 표면의 물이 모두 없어져야 한다. 논도 하루에 20mm정도의 물이 아래로 빠져주어야 뿌리가 건전하다
토양배수 등급에는 '매우양호'부터 '매우불량'까지 토양학분야에서 정하여 쓰고있는 등급을 공통적으로 사용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농학자나 농업기술자들이 개인적으로 또는 학문분야별로 나름대로 정한 기준을 쓰고있어 많은 혼란이 뒤따르고 있다.
예를들면, 모래흙은 무조건 물이 잘 빠지는 즉 '배수양호'한 것으로 표현하는 수가 있다. 이는 바르지 못한 일이다. 왜냐하면 모래흙은 물스밈성이 빠를지라도, 지하수위가 높으면 배수등급은 '불량'이거나 '약간불량'일 수 있다. 그 좋은 예가 천장천지대의 사질습답이다. 사질습답은 소백산맥을 따라 영남북부지역에 해당하는 안동, 영주, 예천, 문경, 상주, 김천 등지에 많이 분포되어 있다.
어떤 사람들은 이들 사질습답에 30∼40cm두께로 모래질 석비레(마사토)를 복토하고 포도나무를 심어놓고는, 내 포도밭은 배수가 잘되는 토양이니 걱정없다고 큰소리치는 실수를 하기도 한다.

◇ 흙색을 보고 물빠짐을 판별하는 요령

토양의 배수등급은 토양단면의 색(토색)과 얼룩(반문)의 특징으로 알 수 있다. 흙의 색깔은 사람의 눈으로 판별할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특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눈에 잘 보이는 흙의 색은 무시하고, 눈에 보이지 않는 화학성분 분석에만 의존하려는 안타까운 실수를 하는 수가 있다.
의사가 환자를 진찰할 때, 얼굴 색을 살피는 것과 같이, 농부나 농업기술자들은 자기 흙의 색을 살필 줄 알아야 한다. 토양연구자들은 더욱 그러하다.
우리 나라와 같은 온대습윤 지대의 흙 속에는 5∼10%정도의 철분이 함유되어있다. 이 철분의 존재형태가 흙의 색을 결정하는 주 요인이다.
야산의 붉은 황토 흙은 오랜 기간동안 침식을 적게 받으면서 깊이 풍화되어 산화철이 쌓인 상태임을 뜻한다. 즉 물빠짐이 잘되어 산소와 충분히 닿으면 붉은색을 띤다. 대지(단구지)의 식질 홍적토와 같이 지형이 반반하거나 경사가 약하고, 물스밈이 느려서 여름 장마철에 물과 자주 접촉하면 황적색, 또 이들을 개답(담수)하여 인공적으로 물과 더 접촉시키면 황갈색 또는 황색을 띤다. 나아가서 오랫동안 논으로 이용하여 숙답이 되면 회갈색, 회색이 된다. 철이 환원된 결과이다. 철이 더욱 환원되면 암회색, 청회색, 결국 시궁창에서는 검은색으로 된다. 고려청자와 같은 청색도 환원소성하여 철을 강하게 환원시킨 결과이다. 이와같이 철의 산화-환원정도에 따라 다양한 색을 띠게되므로, 토색을 보고 배수정도를 알 수 있게 된다.

1.배수 '양호'한 토양
구릉과 토심이 깊은 산지, 산록의 밭, 선상지 상부, 강둑 주변의 사양질토 등과 같이, 적갈색, 암갈색, 갈색 등으로 토양 단면의 깊이 1.2m 범위 내에는 반문(얼룩)이 없다. 토심은 깊고, 각종 밭작물 재배에 적합하므로, 밭 토양의 대부분이 이에 속한다. 그러나 심토에 약간의 검은색 망간 반문(Mn 斑紋)은 있을 수 있다.
한편 배수 '매우양호'한 토양은 반문이 없고, 토심이 얕은 산악지의 암쇄토(바위 풍화물이 50cm이내에 드러나는 토양), 강변의 지나친 모래흙 등이 해당된다.

2. 배수 '약간양호'한 토양
지하수위가 낮은 선상지나, 곡간의 볼록지형부, 홍적대지, 산록경사지 등과 같은 데서 흔하다. 2모작이 쉬운 논이 이에 속한다. 원래는 배수가 양호했으나 논으로 이용하면서 표면에 물을 담았기 때문에 생긴 것은 표토가 회색이나 회갈색이고, 붉은색의 산화철반문이 있으며 심토에서는 반문이 감소한다. 반면에 원래부터 지하수위가 약간 높은 것은 심토가 회색이나 회갈색을 띠고 표토에는 반문이 없거나 아주 적은 량만 있으며, 표토로 갈수록 반문의 양이 줄어든다.
아무튼 주토색은 '갈색', '황갈색'이고, 회색, 회갈색은 반문으로 존재한다.

3. 배수 '약간불량'한 토양
하성평탄지나 하해혼성평탄지의 약간 낮은 곳, 완경사의 곡간바닥 등에서 볼 수 있고, 지하수위가 상당히 높으며, 지형적으로 반반하거나 낮은 곳이다.
물스밀성(투수성)이 좋으면 2모작도 가능하지만, 봄철에 비가 잦으면 습해를 볼 수도 있으므로 높은 이랑, 배수로 설치 등을 해야 한다. 벼 재배시는 물 부족이 없도록 유의해야 한다.
배수 '약간양호'한 토양과는 반대로 주토색이 회색, 암회색이고, 반문이 갈색, 황갈색, 적갈색 등이다. 심토로 내려 갈수록 회색의 정도는 많아진다.
벼재배에 적합하지만, 물 걸러대기(간단관수), 중간 말리기(중간낙수) 등을 해야 도복에 견딘다.

4. 배수 '불량'한 토양
지하수위가 표면에 가깝거나, 표면에 있기 때문에 연중 심한 고논(습답)이 해당된다. 평탄저지, 저습늪지, 곡간하부 등에서 볼 수 있다.
토색은 거의 암회색, 청회색이고 황갈색, 적갈색의 반문이 약간 있다. 특히 작토층 바로 아래에서부터 전혀 반문이 없이 암회색을 띠면 배수 '매우불량'이라 한다. 밭작물의 2모작은 어렵다.

◇ 맺음말

토양의 물 빠짐 정도는 '배수등급'으로 나타내며, 물 빠짐정도가 적합한 토양에 작물을 가꾸어야 고품질의 농산물을 생산할 수 있고, 작물의 생육도 건전하다. 그러나 통일된 배수등급을 잘 쓰지 않고, 작물별로, 전문가별로 나름대로의 기준을 쓰고있어 혼란이 생기고 있다.
최근에는 각종 과실나무를 물이 잘 빠지지 않는 논토양에 심고는 뿌리의 부패에서 비롯한 세력약화로 나무가 일찍 늙거나, 공해나 농약해의 가중, 품질이 떨어지는 등이 심하므로, 알맞은 땅을 골라 알맞은 작물을 심어야 할 것이다.

정연태·농학박사 농촌진흥청 농업과학기술원 전 농업환경부장 (☎ 031-290-0145)
출처 : 우수카페 [공식]♡귀농사모♡
글쓴이 : 이장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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