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섞어 비빈 밥’이라는 뜻을 가진 비빔밥은 우리 어머니들의 생활의 지혜에서 비롯된 음식이다. 간편하지만 영양이 풍부한 건강식인 비빔밥은 최근 항공사의 기내식으로도 개발돼 인기 높은 메뉴로 각광받고 있다.

 



시인 노천명은 푸른 오월을 계절의 여왕이라고 노래했다. 우리의 고유 음식 중에도 오월 같이 싱그럽고 아름다운 여왕이 있다. 여인네 하얀 속치마 같은 뽀얀 쌀밥 위에 색동저고리 같은 약고추장·청포묵·고사리·쇠고기·표고버섯·애호박·달걀지단 등 색색의 재료가 어우러져 있는 비빔밥이야말로 한국 음식의 여왕이라 해도 지나침이 없다.

비빔밥은 불고기·김치 등과 함께 한국을 대표하는 음식으로 손꼽힌다. 최근에는 항공사의 기내식으로도 개발되어 가장 인기를 끄는 메뉴로 각광받고 있다. 그래서인지 비빔밥을 한국의 가장 맛있는 건강음식으로 찬사를 보내는 외국인들도 꽤 많다. 우리의 비빔밥이 세계인들에게 호평을 받는 이유는 오색의 다양한 재료를 사용함으로써 영양면에서 완벽하고, 재료에 따라 언제든지 새로운 맛을 내는 묘한 매력이 있기 때문이다. 비빔밥에 들어가는 재료들은 각각 다른 맛과 특성을 지니고 있다. 그런데 고추장을 넣고 쓱쓱 비벼내면 강한 매운맛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부드러우면서도 깔끔한 맛의 비빔밥을 탄생시킨다.

원래 ‘섞어 비빈 밥’이라는 뜻을 가진 비빔밥은 우리 어머니들의 생활의 지혜에서 비롯된 음식이다. 1800년대 말 조리서인 ‘시의전서是議全書’에 처음 소개됐는데, 궁중에서는 ‘골동반骨董飯’이라고도 불렀다. 여기서 ‘골동骨董’이란 여러 가지 자질구레한 것이 한데 섞인 것을 뜻한다. 비빔밥이 만들어진 데는 몇 가지 재미있는 유래가 전해진다. 첫째는 제사를 지내고 난 뒤 제사상의 음식을 나누어 먹었다는 음복飮福설, 둘째는 농촌에서 새참을 먹을 때 번번이 구색을 갖춘 상차림을 하기 어려우므로 그릇 하나에 여러 가지 음식을 섞어 먹었다는 농번기 음식설, 셋째는 궁중에서 입궐한 종친에게 점심때 대접하는 가벼운 식사였다는 궁중 음식설, 넷째는 동학군이 간편하게 그릇 하나에 이것저것 비벼 먹었다는 동학군 음식설, 다섯째는 섣달그믐날 남은 음식을 없애기 위하여 묵은 밥과 나물을 비벼 먹었다는 묵은 음식 처리설 등이 그것이다.

비빔밥이 오늘날까지 전해져 내려오는 가장 큰 이유는 뭐니 뭐니 해도 편리성 덕분이다. 요즘은 새싹비빔밥·산채비빔밥 등 속 재료를 달리 쓰거나, 양푼비빔밥·돌솥비빔밥 등 담는 그릇을 달리하는 식으로 다양한 비빔밥이 개발되고 있다. 그러나 비빔밥이 편리한 음식이라고 해서 아무 재료나 막 섞어 만드는 것은 아니다. 이는 예부터 특색 있는 조리법과 재료를 사용하여 전해지는 각 지역별 비빔밥의 특징을 살펴보면 확연하게 알 수 있다.
우선 전주비빔밥은 평양 냉면·개성 탕반과 함께 조선시대 3대 음식의 하나로 꼽히는데, 정성 들여 기른 콩나물과 오래 묵은 좋은 간장·고추장·육회·참기름 등을 넣고 맨 위에 날달걀을 깨어 얹는다. 또 이른 봄에는 청포묵, 여름에는 쑥갓, 늦가을에는 고춧잎이나 깻잎, 겨울에는 햇김 등을 넣어 계절의 맛을 보태고 반드시 콩나물국을 곁들이는 것이 특징이다.
진주비빔밥은 그 맛과 영양이 뛰어나 조선시대에는 궁중에서 즐겨 먹는 음식 중 하나였다. 특히 태종 때에는 한양의 정승들이 비빔밥을 먹으러 진주에 자주 왔다는 기록이 있다. 진주비빔밥은 ‘꽃밥’·‘화반花飯’ 또는 ‘칠보화반七寶花飯’이라 불렀으며, 양지머리를 고아서 그 국물로 밥을 짓고 육회를 얹어 먹는 것이 특징이다.
황해도 해주비빔밥은 고기를 양념에 재웠다가 기름에 볶고, 고사리·시금치·콩나물·도라지 등을 볶아서 흰 쌀밥 위에 색을 맞추어 올려놓은 다음 가운데에 고기볶음을 놓고 실고추와 달걀로 고명을 얹는다. 여기에 뜨거운 장국과 나박김치, 고추장을 곁들여 내는데 고사리와 황해도 지방에서 나는 김을 구워 부스러뜨려 섞는 것이 특징이다.

요즘은 자기 개성 시대라고 하여 서로 잘났다고 뽐내기에 바쁘다. 그래서인지 사회 전반에 개인주의·이기주의가 만연하고 있다. 이런 때일수록 자신의 매운 개성을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각각의 재료가 지닌 맛과 특성을 잘 어우러지게 만드는 비빔밥 속 고추장 같은 사람이 절실히 필요하다. 5월은 가정의 달이다. 혹시 서먹서먹한 관계에 놓인 가족이나 친지, 친구가 있다면 비빔밥 한 그릇씩 쓱쓱 비벼 먹으면서 화합의 웃음을 지어보자. 고추장 같은 사람이 많아질수록 우리의 삶이 더 풍요로워지지 않겠는가.
글 윤숙자(한국전통음식연구소장, www.kfr.or.kr) 사진 최수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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