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녘 다락골로 향하는 승합차 안이 왁자지껄하다.

 속 깊은 이야기들이 이여진다.

 한해 농사일을 갈무리하려 가는 서해안 고속도로 위엔 일을 돕겠다고 고등인력 두 쌍의 부부가 동행한다.

 하루가 다르게 떨어지는 수은주만큼 동장군이 기지개를 펴고 야금야금 세력 확장에 열을 올리고 있다.

 하얀 서리꽃으로 치장한 숲속의 나무사이로 가느다랗게 햇살이 쏟아 내린다.

 산자락 끝 땡감나무 가지엔 주인 아닌 작은 산새들이 까치들의 밥으로 남겨 둔 빨갛게 익은 감들을 향해  연신 주둥아리를 조아리고 있다.

 오늘은 마지막 남은 가을의 흔적을 지우려 다락골에 왔다.

 검은콩 타작, 은행겉껄질제거, 그리고 쉼터의 월동준비 등이 작업계획에 포함되어 있다.

 지난주 예기치 못한 딸아이의 선행으로 빗속에서 강행하여 겉껍질을 분리해낸 은행들이 주변사람들과의 나눔을 통해 사방곡곡에 흩어졌다.

 한결같이 좋아들 하시는 모습들을 옆지기는 이곳으로 오는 차속에서 동행인들에게 자랑스럽게 애기했다.

 

 두툼한 외투로 가렸어도 찬 기운이 매몰차다. 

 동행인 한분이 은행 독을 심히 타는 체질이여서 그분이 쉼터의 월동준비와 주변정리를 맡고 나머지 인원은 은행 겉껍질  탈피작업에 동원됐다.

 지난 11월 초순에 주워 담아놓은 밭 위쪽에 위치한 은행열매가 그대상이다.

 지난주 모든 요령을 습득한 옆지기의 관리 하에 일은 진행되고.......

 살며시 비료포대와 호미 하날 챙겨들고 일행 속에서 빠져나와 야트막한 뒷산으로 이동했다.

 참취 머위 둥굴레  두릅 등 산나물이 지천에 깔려있던 뒷동산엔 가시달린 두릅나무의 앙상한 가지만 댕그라니 남아있고 모든 산나물들이 가을 색으로 치장하고 모습을 꼭꼭 숨긴 체 내년 봄날을 기다리고 있다.

 서리가 녹아 이슬이 맺혀 햇볕에 반사되어 반짝거리는 풀잎 사이에 유독 잎에 가시가 송송 돋친 엉겅퀴가 푸르름을 발산하며 진정 초록의 진수를 보여주고 있다.

 어릴 적 겨울방학 철에 어머니를 따라 산과들로 약초를 캐러갔던 기억들이 스쳐간다.

 창출, 잔대, 지네초, 꾸지뽕, 인동덩굴, 엉겅퀴, 우실, 가시에 가시가 나 있는 쥐엄나무, 댕댕이 덩굴열매, 누릅나무  껍질, 칡뿌리 등을 캐와 깨끗이 세척한 후  커다란 가마솥에 넣고 며칠 몇날을 장작불로 다려 내어 커다란 옹기 항아리에 가득 담아 놓고 모든 식구가 겨울 내내 조석으로 큰 대접으로 한잔씩 마시게 했다.

 그때의 쓰디 쓴 약맛이 입안에 남아 감돈다.

 엉겅퀴를 뽑아내어 흙을 털어내니 향긋한 한약냄새가 코끝을 간지럽게 한다.

 엉겅퀴의 가느다란 뿌리사이로 심심찮게 둥글래 뿌리가 섞여 따라 나온다.

반 쯤 찬 비닐포대를 어깨에 들쳐 메고 쉼터로 돌아오니 볼이 발그레한 모습들을 하고 서로의 눈길을 주고받으며 일하는 재미에 푹 빠져있다.

 주변에서 나뭇가지들을 긁어모아 와 모닥불을 피우며 이글대는 불길사이로 막 벗겨낸 은행 알을 구워먹을 여유도 없이 모두들 지루하다는 표정을 애써 꼭꼭 숨기고 있다.

 자랑스럽게 펼쳐 보인 엉겅퀴를 바라보면 모두들 눈이 휘둥글려지고 신기해 들 한다.

 “무엇에 좋은 물건인고?”

 궁금증을 끝없이 풀어내는 이들에게

 “남자들이 제일 좋아하는 것”이라고 하자 주변이 한바탕 웃음바다가 된다.

 물에 깨끗이 씻어 채반에 올려 물기를 제거하는데 스텐냄비에 라면을 가득 끊여 원두막으로 가져 나온다.

 냄비를 가운데 두고 빙 둘러 모여 쭈그리고 앉아 출출해진 배를 채우는 라면 맛이 마음 깊은 곳에 “기가 막힌 맛”으로 각인된다.

 인천을 출발할 때 준비했던 김밥을 곁들여 배를 채우고 하던 일들을 계속한다.

 

 은행겉껍질 탈피작업은 마지막 가마니가 다라이에 담겨 뭉개지기 시작하고 쉼터 안에는 창틀마다 보온비닐을 붙여 창틀로 세어들어 오는 찬 공기의 유입을 차단하는 작업을 끝낸 후 동파방지열선을 화장실과 부엌의 수도배관에 칭칭 감아놓고 콘센트에 플러그 연결만을 기다리고 있다.

 미리 준비해 두었던 3L들이 부동액 2통을 들고 보일러실로 이동하여 방바닥을 순환하고 돌아오는 보일러 배관호수의 연결부위를 해체하고 일정량의 물을 빼낸 후 부동액을 보충하여 순환시켰다. 지난 작년에도 이와 같은 방법으로  산자락 끝에 위치한 쉼터를 한겨울에도 기름 한 방울 소비 않고  잘 지켜냈다.

 쉼터 건물 벽 쪽에 맞닿은 주변공간을 비닐천막(갓빠)를 깔고 바람에 날리지 않게 무거운 돌로 눌러 주어 혹시 습기가 벽 틈으로 스며드는 것을 차단했다.

 월동준비를 끝내고 마당으로 나오니 벌써 은행작업을 마치고 서리태 타작에 열심이다.

 폴폴 나는 먼지 속에서 모두가 자기 일처럼 솔선해서 거든다.

 짜인 각본도 없는데 알아서들 빈틈없이 일을 진행한다.

 마당에 펼쳐져 오전 내내 햇볕을 받았던 검은콩은 살짝만 만져도 꼬투리가 벌어진다.

 마당 한편에 모아 놓고 마당 한가운데로 한 움큼씩 안고 날아와 남정네 두 분이서 작대기로 두들겨 1차적으로 꼬투리에서 콩을 분리해 낸 후 그 옆으로 옮겨주면 옆지기 두 분이선 혹시 덜 털어진 것이 있나 확인하고 다 털어진 콩대만을 모닥불위로 올려놓는다.

 콩대가 잘 마른 탓에 불길이 무섭게 날름거려 모두들 놀라 뒤로 흠칫 물러선다.

 구멍이 큰 체로 큰 티끌을 걸러내고 바람개비를 이용해 작은 티끌을 바람에 날려 보낸 뒤  구멍이 작은 체로 콩에서 흙과 모래를 분리해 낸다.

 어릴 적 고향에서는 태풍의 길목에 위치했기에 바람이 많았었다.

 곡식 타작을 마치면 체로 티끌을 골라낸 후  사방이 툭 터져 바람이 잘 부는 곳으로 옮겨 바람으로 작은 티끌들을 날려 보낸 후 집으로 옮겨와 나무로 제작한 풍구를 이용하여 최종적으로 알곡에 섞인 티끌과 먼지들을 제거했었다.

 쉼터 헛간 한 구석에 방치되어 있던 바람개비는 작년에 이여 올해 콩 수확 때 두 번째로 사용해 보는 도구인데 작년에 헛간에서 이 물건을 발견하고 사용용도를 몰라 어리둥절했다.

 일종의 손으로 돌리는 철로 제작된 수동선풍기라 표현하면 딱 맞겠다.

 바람개비 날개 앞에 다라이를 놓고 한사람이 바람개비 손잡이를 잡고 돌리기 시작하면 또 다른 한사람이 바람개비 옆에 서서  바가지로 선별되지 않은 콩을 퍼 높이 들어 오렸다가 바람개비 날개 앞으로 조금씩 흘려보낸다.

 탁! 탁! 탁! 탁! 바람개비에서 발생한 바람으로 온갖 티끌들은 하늘로 날아오르고 검은콩 알만 다라이에 떨어진다.

 모두들 신기한 듯 바람개비를 돌려 보겠다고 나섰다 오래가지 못하고 포기하고 만다.

 쇠로 만든 앞날개의 무게 때문에 보통 힘이  든 게 아니었다.

 어디서 보고 들었는지 옆지기가 이웃집에서 키를 빌려 왔다.

 돌아가면 너도 나도 키질을 해 보지만 재대로 해낸 사람이 없다.

 알곡을 반쯤 키에 퍼 담고 허리를 구부정하게 하고나서 허리춤높이로 쳐들고 키를 들어 올리면 동시에 앞으로 내 밀었다가 내리면서 댕겼다를 반복적으로 해 보지만 생각대로 잘 움직여 주질 않는다. 

 리듬을 타지 못해 알곡들이 키에서 자꾸 이탈한다.

 키질을 잘 하는 아낙들의 모습에선 키질이 계속되면 계속될수록 알곡은 키의 뒤에 남고 잡티들은 앞쪽으로 밀려나가며 작은 티끌들은 공중으로 날아가고 잡티들은  앞으로 떨어져 내리지만 우리일행에게선 알곡이 앞장서고 티끌이 뒤에 남는 정반대의 현상이 연출된다.

 모두들 원리를 이해 못하고 고개만 갸우뚱거리지만 이내 포기하고 만다.

 하는 수 없이 키에 알곡을 퍼 담아 조끔씩 흘려보내고 바람개비를 교대로 돌려가며 티끌을 제거하는 것으로 일을 마무리 짓는다.

 

 물기가 완전히 제거된 엉겅퀴를 설탕에 버무려 효소를 담그고 수북이 쌓인 은행잎들을  간이 퇴비장에 옮겨 놓았다. 오늘 모두들 애써 수확한 것들을 나눔 한 후 행여 발생할지도 모를 동파사고에 대비하여 쉼터로 이어지는 상수도관의 원수 밸브를 잠근다.

 지금부터 12월, 1월, 2월 3개월은 쉼터를 홀로 남겨 두어야한다.

 해가 뒷동산에 모습을 숨기려 한다.

 꿈결처럼 지나버린 한해,

 일상생활의 복잡한 생각들을 단순하게 정리해 주는 마력을 지닌 이 곳,

 숭고한 자연의 섭리를 일깨워 주었던 다락골,

 좌르르 펼쳐지는 추억속의 사진첩을 순간순간 되돌리며  세월의 자취만 고스란히 남긴 체

막연한 동경과 애틋한 그리움만을 간직하고

 차창 밖으로 멀어져가는 쉼터를 다시 한 번 바라본다.

 안녕! 내 사랑.......이 모습 그대로 새 봄에 다시 만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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