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캐는 게 아니라 그물로 잡아요

서산 간월도에서 보령 천북으로 이어지는 충청권 서해안엔 요즘 뜨거운 국물에 살랑살랑 흔들어 데쳐먹는 새조개가 한창이다. 특히 새조개의 집하장인 홍성 남당항엔 주말이면 겨울 바다의 정취와 새조개의 화려한 맛을 즐기려는 식도락가들이 줄을 잇고 있다.

"귀족 조개인 새조개 맛보고 가세요~. 한번 먹어보면 그 맛 평생 잊지 못할 걸요."

"넉넉하게 드릴 테니 이곳에서 맛보세요. 키조개와 피조개도 덤으로 나갑니다~."

남당항 포구에 들어서자 방파제를 따라 즐비하게 늘어선 "파라솔"(간이 포장집) 종업원들의 외침이 요란하다. 갑자기 눈앞에 짝 벌어진 새조개가 펼쳐진다. "선옥이네 파라솔" 여주인 김창순씨가 빨간 함지박 수족관에서 건진 새조개 한 마리를 까 보인 것.


"이걸 만져 봐요. 탄력이 좋지요? 이 맛에 먹는 거라니까요." 만져보라고 내민 조갯살 모양이 영락없이 새(鳥)의 부리다. 조개가 이동하는 데 사용하는 발인데 새 부리를 닮아서 새조개란 이름이 붙었단다.

"모양도 특이하지만 여느 조개와 달리 쫄깃한 데다 감칠맛이 있어 열이 먹다가 열이 다 죽어도 모를 맛이라니까요." 김씨의 새조개 자랑이 끊이질 않는다.

[사진=뉴시스]
새조개는 언뜻 보기에 피조개로 착각하기 쉽다. 껍데기 표면에 잔털이 나있고 골도 규칙적으로 잡혀 있다. 크기도 피조개처럼 어린아이 주먹만 하다. 하지만 연갈색에 껍데기가 얇고 잘 벌어지는 점은 분명한 차이점이다. 무엇보다도 피조개 안에선 붉은 피(?)가 나오는데 새조개는 바지락처럼 껍데기 속이 말끔하다.

새조개는 바닷물이 빠져 갯벌이 드러났을 때 캐는 조개가 아니다. 남당리 토박이로 겨울철이면 새조개 잡이를 한다는 박창헌씨는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 그물로 바닥을 긁어 잡는다"고 했다. 새조개는 양식도 안 된단다. 그러니 100% 자연산이다. 1년 내내 아무 때나 먹을 수 있는 조개도 아니다. 겨울에만 먹을 수 있는데 초겨울엔 속살이 차지 않아 맛이 떨어지고, 3월로 넘어가면 살이 질겨진다고 한다. 그러니 요즘이 딱 제철인 셈이다.

까다로운 조건 탓에 제철이라도 값은 비쌀 수밖에 없다. 남당항 새조개 가격은 ㎏당 4만원. 파라솔에서 샤브샤브 상차림으로 먹는 값이다. 작은 놈은 20마리 넘게 담기지만 큰 것은 15마리가 채 안 되는 경우도 있다. 그래도 말만 잘하면 새조개보다 훨씬 큰 키조개가 보너스로 나온다. 닮은 꼴 피조개나 가리비조개도 두어개 얹어준다. 요즘은 주꾸미도 많이 잡혀 샤브샤브 냄비에 야채와 함께 몇 마리 넣어주기도 한다. 포장 판매용 새조개는 ㎏당 3만5000원이지만 후덕한 인심까지 담아 샤브샤브용보다 넉넉하게 저울눈금을 쳐준다.

■ 샤브샤브로 먹어야 제격

현지 사람들은 새조개를 날 것으로도 먹고,구워도 먹고, 무쳐도 먹는다는데, 그중 제일 맛있는 건 야채와 함께 뜨거운 물에 살짝 데쳐 먹는 샤브샤브란다. 조개 특유의 비린내가 사라지고 조갯살도 부드럽게 씹히는 맛이 살아난다고 한다.

파라솔에 들어서니 양 볼이 후끈 달아오른다. 차가운 겨울 바닷바람에 얼었던 얼굴이 따뜻한 실내 온기에 풀리고 있는 것. 잠시 뒤 식탁에 샤브샤브 냄비가 오른다. 맑은 물에 바지락이랑 큼지막하게 썬 배추·대파·팽이버섯이 들어 있다. 국물은 그저 맹물이다. 몇 분 지나지 않아 냄비의 물이 끓기 시작한다.

새조개를 손질해온 종업원은 "너무 익히지 말 것"을 주문한다. 집개나 젓가락으로 조갯살을 들어 펄펄 끓는 국물에 넣고는 맘속으로 천천히 "샤~아~브, 샤~아~브" 하며 흔들어 바로 건져 먹어야 제 맛이 난다는 것. 끓는 물에 너무 익히면 육질이 질겨지고 단맛도 사라져 진미를 느낄 수 없단다.

곧바로 종업원이 시키는 대로 "샤~아~브, 샤~아~브" 흔들어 한 입 집어넣었다. 한번에 먹기엔 다소 크지만 일단 풍성하게 씹히는 맛이 반갑다. 어금니에 힘을 주니 새부리 모양의 조갯살이 탁터지는 듯하며 겨울바다의 비릿함이 살갑게 다가온다. 부드러우면서 한편으론 사각사각 씹는 기분이 난다. 게다가 키조개 관자처럼 조갯살의 결이 느껴진다. 특별한 맛은 맛이다.

찍음장은 기본이 초고추장, 재료 본연의 맛을 즐기려면 고추냉이간장에 찍어 먹는다. 접시에 담겨 나온 걸 봤을 땐 두 사람이 다 먹기 버거울 듯했으나 곧 바닥이 드러났다.

새조개가 두어 개쯤 남았을 땐 뒷마무리에 들어가야 한다. 칼국수나 라면 사리를 넣어 먹는 것. 살랑살랑 흔들고 지나갔지만 국물은 감칠맛이 가득하다. 그 새조개의 진국까지 말끔하게 처리하고 나면 두둑한 배를 가누기 어려워 허리가 절로 뒤로 젖혀진다.


<홍성>글·사진=유지상 기자

"새조개 천국" 홍성 남당리 앞바다

■새조개는 일반인에게 익숙하지 않는 조개. 최근 몇 년 사이 알음알음 맛 소문이 났다. "예전에는 잡히는 양도 많지 않았는데 대부분 일본 업자들이 비싼 값에 사갔지요. 새조개가초밥 재료로 쓰이거든요." 남당리 김영달 이장의 설명이다. 그러던 것이 천수만 방조제 공사가 끝난 뒤 남당리 앞바다에서 어획량이 늘기 시작해 이젠 귀족 조개인 새조개를 누구나 먹을 수 있게 됐다.

■서울 등 수도권에서 자동차로 갈 경우 서해안고속도로를 이용한다. 홍성 나들목으로 빠져 나와 좌회전해 29번 국도를 타고 얼마 안 가 40번 국도로 다시 좌회전한다. 곧 나타나는 갈산교차로에서 우회전해 남당리 팻말을 보고 따라가면 홍성나들목이다. 거기서 15~20분이면 남당항에 도착한다. 남당항에서 10여 분 정도 남쪽으로 차를 몰면 석화구이로 유명한 보령의 천북면이 나타난다. 2만5000원짜리 한 바구니면 서너 명이 원 없이 딱딱 소리를 내며 직화로 구운 석화구이를 맛볼 수 있다. 되돌아오는 길엔 서산 간월도에 들러 자연산 굴을 넣어 지은 영양굴밥이나 어리굴젓으로 배를 채우면 완벽한 충청권 서해안 겨울 별미 체험이다.

2007.02.08 14:38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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