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속 15m이상 바람이 불면
항구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작업들이 all-stop된다고 한다.
"강풍주의보"
다리난간에 설치된 바람빠르기를 알려주는 전광판엔 18m라는 숫자가 선명하다.
서해대교를 목전에 두고 길게 늘어선 차량행렬이 거북이 걸음이다.
하늘로 우뚝 솟은 두개의 다리기둥 사이를 지날 무렵엔 심한 흔들림이 느껴진다.
옆지기의 근무가 끝난 오후 3시경에 인천을 출발했으나 평소와 다르게 다락골에
도착하기도 전부터 진이 빠져버린다.
일손을 거들겠다고 따라나선 처재내외를 괜한 고생시키는 것 같아 마음이 편치 않다.
어둠에 잠겨버린 다락골엔  바람을 타고 눈송이마저 춤을 춘다.

 

 

불빛에 반사된 눈송이를 반길 낭만이 없다.
추워질 거란다.
마지막 남은 가을걷이를 끝내야한다는 중압감에 마음만 앞선다.
아직까지 다 하지 못한 가을걷이는 검은콩타작과 은행겉껍질탈피작업이다.
잠시 주변을 살펴볼 여유도 없이 은행겹껍질탈피기를 광에서 꺼내 마당으로 옮겼다.
지난해까지는 겹껍질을 벗겨내는 작업을 수작업으로 진행했으나
올핸 거금을 들여 소형탈피기 한 대를 구입했다.
은행열매를 둘러싸고 있는 껍질과 과육을 따로 모아 발효시켜 다음농사에 친환경자재로
사용할 목적으로 탈피기를 제작하는 여러 회사의 모델 중에서
물의사용을 최대한 줄일 수 있는 제품을 숙고 끝에 마련했다.
매섭게 파고드는 한기를 없애려 모닥불을 지피고
틈틈이 주워 비료포대에 담아 은행나무 밑에 모아 둔 은행열매들을
기계주변으로 들어 날랐다.
은행 독을 유독 심하게 타는 동서는 방안창틀에 보온용 비닐을 붙이는 작업을 맡겨
작업장 출입을 금지시켰다.
기계 스위치를 켜고 포대에 반쯤 채워진 은행들을 기계 안으로 천천히 흘려보낸다.
철재로 제작된 세탁기 통처럼 생긴 원통 안에 모터에서 연결된 하나의 축에 4개의 날개를 달아 그것들을 회전시키면 은행겁껍질이 벗겨져 통 밖으로 밀려나온다.
빠져나온 껍질과 과육은 따로 보관하고 통속에 든 은행만 꺼내 깨끗한 물로 다시 한 번
행군 후 포장위에 곱게 펼쳐 물기를 제거했다.
기계속도에 일을 맞추려드니 껴입은 옷 속이 땀으로 흥건하다.
그새 바람은 많이 자자들고 맑게 겐 하늘에선 별빛이 쏟아진다.
30kg정도 들어있는 포대를 반씩 나누어 작업하니 모든 것이 순조롭다.
과하면 체한다고 했다.
은행 알에 묻어있는 과육을 헹궈내던 옆지기가 성이 차지 않는 모습이다.
애써 반 포대씩 나누어 넣지 말고 한 포대씩 투입하자고 우겨댄다.
마주치는 눈길이 사납다.
은근히 기계의 성능을 검증하고도 싶다.
한 포대를 들쳐 매고 천천히 통속으로 들여보냈다.
조금은 묵직하게 돌아가는 기계 밑엔 시간이 지날수록 벗겨진 껍질들 위로 으깨져버린
은행 알만 수북이 쌓인다.
지켜보던 옆지기는 막걸리를 내어온다 모습을 슬쩍 감춰버리고.......
석쇠위에서 톡톡 튀는 은행 알을 안주삼아 마시는 막걸리 맛이 시원하다.

 

 

 

 

 

 

  

  


기습한파에 조심하라는 예보와 달리 다행히 기온은 많이 내려가지 않았다.
늦잠을 즐기다 호미를 챙겨들었다.
밤새 핀 서리꽃이 만발한 당귀 밭에서 얼지 않게 덮어놓은 은행잎을 걷어내고 당귀들을
수확했다.
지난해 작황에 비해 올해의 작황은 신통치가 않다.
기후변화 때문인지 올해는 2년생 참당귀에서 꽃들이 많이 개화했다.
당귀에 꽃이 피면 뿌리로 갈 영양분이 꽃으로 이동해 뿌리발달이 이뤄지지 않아 수확기의
당귀뿌리는 다 썩어버린다.
꽃 피는 것을 억제시켜야했는데 주말에만 드나드는 한계 때문에 그만 그 시기를 놓쳐버렸다.
뿌리에 달린 흙들을 밭두렁에 팽개쳐 떨어내는데 밭두렁 가엔 철 이른 햇 냉이가
지천에 깔려있다.
어느 것은 그 뿌리가 애기 새끼손가락만큼 굵다.

 

 

 

 

 

햇볕이 쉼터마당 안까지 들어왔다.
간밤에 얼지 않게 은행위에 덮어놓은 포장을 벗겨내 마당 한 복판에 펼쳤다.
밭에서 뽑혀 그 동안 비를 피해 원두막 안에서 건조 중이던 검은콩 단을 풀어 헤쳐
마지막 햇볕을 쪼였다.
너나할 것 없이 기다란 막대를 하나씩 들고 포장한가운데에 쪼그리고 앉아 한줌씩 콩대를
가져다가 힘차게 내리친다.
콩대가 완전히 건조되지 않아  일이 더디게 진행된다.
"철철이 옷도 사주고 여행도 시켜 줄 것이라고…….
그 말에 속아 넘어간 내가 멍청이지!"
"키만 크고 콩은 실하지 않은 것이 꼭 누구와 똑같네!"

구시렁대는 옆지기의 푸념 속에 엉뚱한 콩대들만 심한 매질을 당하고 만다.
넘쳐나면 덜어내고 부족하면 채운다고
능력이 안 되니 몸으로 때울 수밖에 없다.
큰 티끌들을 골라낸 후 체로 쳐 흙을 털어냈다.
오랜 된 바람개비로 작은 티끌들을 날려 보내 보지만 서툰 솜씨 때문에 생각대로
잘 되지 않는다.
일하는 모습을 구경 왔던 이웃할머니가 키를 가져와 일을 도와준 덕에
마무리가 말끔히 정리됐다.
노린재의 집요한 공격을 이겨내고 귀족서리태가 실한 모습으로 주인의 정성에 보답했다.

  

 

 

 

  

 


올 한해의 농사를 마무리했다.
보일러에 부동액을 채우고 창틀마다 보온용 비닐을 오려붙였다.
노출된 수도관엔 동파방지열선으로 칭칭 감아놓고 혹시 발생할지모를 수도관 동파를
가정해 쉼터로 통하는 수도관의 밸브도 잠갔다.
주변 이웃들을 찾아 베풀어준 정에 감사하며 쉼터를 잘 지켜 달라
당부의 말도 빠뜨리지 않았다.
겨울 내내 쉼터를 비워두어야 하기에 몹시 허전하다.
밭두렁 감나무에 까치가 반쯤 먹다 남은 홍시 하나가 허전함을 더한다.
의지할 대상도 없이 앙상한 가지에 홀로 남겨진 홍시처럼 홀로 남겨질 쉼터모습이 애처롭다.
세상이 을씨년스럽다.
사람의 얼굴빛도 그렇고 날씨도 그렇다.
몸은 떠나오는데 마음은 그곳에서 움직일 줄 모른다.
모진삭풍과 세찬 눈보라 속에서도
아무리 힘들고 버겁더라도
참고 버티고 이겨내야 한다.
그래! 꼭 이겨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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