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비가  흩뿌려댄다.
막바지 단풍놀이와 김장김치를 담그러 가는 차량행렬이 서해안고속도로 초입부터
길게 이어졌다.
옆지기 혼자 김장준비로 하루전날 다락골로 들어간 토요일 오후 습관처럼 당진으로
가는 고속도로에 차를 올렸다.
창가로 스치는  플라타너스의 앙상한 모습이 쓸쓸하다.
낙엽은 지고  듬성듬성 벗겨진 껍질모습이 어릴 적 동무 머리에 핀 "버짐"모습과 똑같다.
샛노란 은행잎만 나뒹구는 다락골 쉼터엔 먼저 도착한 형제들이 김장준비에 분주하다.
서로 정해진 세상살이에 내몰려 잠시 멀어져있던 옆지기의 다섯 형제들이 가족과 함께
모처럼 한자리에 모인다.
다락골이 형제들의 거주지에서 거리상 대략 100km, 시간상으로는 한 시간 남짓이면 오갈 수 있는 중간지점에 위치하고 있기에 이곳에 터를 마련한 첫해만 빼고 3년째 처가형제들의
겨울채비를 이곳에서 해오고 있다.
지치고 힘들 때 위로받고 싶고 그리워지는 게 가족이다.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금세 표가 난다.
버스를 이용해 혼자 도착한 대전사는 처형이  흥이 없어 보인다.
일에 지쳐 다음 날 새벽에 오기로 한 큰동서에게 '빨리 오시라' 긴급 호출을 전했다.
누구네 집은 손만 잡고 사는 가족으로…….
누구 네는 뜨거운 밤을 지새우는 연인으로…….
모닥불 주위에 둘러앉아 살아가는 이야기가 가감 없이 전달된다.
재잘대는 소리만큼 발그스레 뺨이 물들어 갔다.
쉽게 대할 수 없는 풍경이기에 그 기쁨과 부러움이 한층 고조된다.

 

 

 

미리 도착한 옆지기가 300여포기에 가까운 배추들을 밭에서 뽑아내 쉼터로 옮기려 파김치가 다 되었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소래포구에서 생새우를 사가지고 합류한  인천처재내외가 옆지기와 힘을 합쳐 배추들을
알맞은 크기로 나누어 3-4시간 천일염에 절이는 과정을 마친 후 깨끗한 물로 행구고 나서
바구니에 차곡차곡 쌓아올려 물기가 빠지기만 기다리고 있다.
가을가뭄이 길어진 탓에 뒷산골짜기에서 흘러나오는 물을 받아 사용하는 상수도의 물 사정이 좋지 않아 앞집지하수를 끌어왔다.
배추는 약과 거름을 거의 사용안하고 키운 탓에 배추통은 그리 크지 않았으나 잎 두께가 가늘고 달고 고소하다고 모두가 좋아한다.
쪽파의 작황이 신통치 못해 이웃집에서 구입해왔다며 쪽파농사하나 재대로 짓지 못한다고 옆지기가 빈정거린다.
소금은 봄, 가을에 정부에서 농가에 지원해주는 천일염을 앞집에서 사정사정해 구입해와 사용했단다.
인공조미료와 감미료는 일체 사용하지 않기로 했다.
마늘은 다락골에서 올봄에 수확한 육족마늘을 생강은 이웃집에서 나눔받은 햇생강을 사용하고 양파만 시장에서 구입했다.
김장철 대목을 맞아 양파 값이 금값이란다.
고춧가루는 다락골에서 여름 내내 수확한 청양고추와 일반고추가 반반씩 섞인 태양초고추가 사용되고 젓갈류는 장모님께서 간재미액젓, 까나리액젓, 새우젓을 준비해 오셨다.
무가 채 썰어지고 쪽파와 대파가 가지런히 추려져 알맞은 크기로 잘라졌다.
양파와 마늘, 생강, 생새우를 분쇄기로 곱게 갈고 찹쌀풀이 걸쭉하게 쒀졌다.

 

 

 

 

 

 


큰동서가 도착한 10시 무렵부터 올해의 김장하기가 시작되었다.
배춧속에 들어갈 양념배합은 경험이 많은 장모님의 주관으로 커다란 함지박에 가득 만들어 졌다.
먼저 고춧가루에 찹쌀 풀, 콩가루, 다진 양념류에 젓갈류를 함께 넣고 잘 버무린 후 무채와 쪽파, 대파가 담긴 통에 한 바가지씩 퍼 넣으며 여러 재료들을 잘 혼합시켜 되다싶을 정도로 배추 속에 넣을 양념이 준비됐다.
쉼터 거실에 자리를 펼치고 그 중앙에 양념통과 함께 절인배추를 수북이 쌓아올린 후 각자 집에서 가져온 용기들을 챙겨들고 딸 5형제와 장모님이 빙 둘러 쪼그리고 앉는다.
어느 집에선 김치냉장고에 든 보관용기에 다 가져왔고 어느 집은 김치를 담을 때 쓰는 비닐봉지만 준비했다.
배추는 넉넉하다.
혹시 양념이 부족하지 않을까?
배추에 양념을 조금씩만 버무려 넣으라는 장모님의 크고 작은 간섭은 끝도 없이 계속된다.
작은 쟁반을 하나씩 앞에 놓고 양념을 퍼와 절어져 숨이 죽은 배춧잎을 일일이 들춰가며 양념들을 새빨갛게 채워 넣는다.
한사람의 뱃속에서 나온 형제들이지만 그 동안 길들여진 습성 때문에 김치 속을 채우는 방법과 속도, 양이 제각각이다.
각자의 손맛을 살려 자기가 버무린 김치를 가져갈 만큼 용기에 채워 가져간다.

 

 

 

 

 

 

 

 

 


은행나무가지에 잎사귀 하나 없이 텅 비었다.
초록세상 속에서 활기가 넘쳐나던 밭뙈기엔 안식의 계절이 찾아왔다.
미쳐 타작을 끝내지 못한 검은콩과 은행열매를 빼고 올해 수확한 것들을 조금씩 나눔했다.
짐칸이 부족해 승용차뒷자리까지 가득 채운 형제들의 흡족한 모습에 흐뭇하다.
어느 땐 지친 마음에 한숨이 저절로 세어 나왔지만
아무도 알아주지 않을 것 같았던 땀과 열정을 함께 나눌 수 있어 좋다.
재미에 취해 흠뻑 취하다보면 건지는 건 분명 있다.
작은 것도 좋다.
먼저 즐겁고 재미있게 일을 만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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