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가을 해질녘
밭두렁을 타고 이어지는 대여섯 그루의 은행나무에서 지는 샛노란 낙엽들이
몽환적인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습니다.
어느 화가의 물감 통엔 노란색 물감만 남아 있나봅니다.
여러 색으로 채색된 그림보다 더 정겹습니다.
토요일 오후 고속도로 길섶까지 내려앉은 색 바랜 나뭇잎들을 즐기며
단풍놀이 가는 행렬사이에 끼여 예정보다 훨씬 늦게 다락골에 도착했습니다.
가을걷이가 끝난 들녘에서 피어오르는 연기가 긴 꼬리를 물고 이어집니다.
지푸라기를 태우는 정겨운 냄새에 홀려 디카의 배만 채우려 허둥대다 순식간에
밀려든 어둠속에 갇혀버렸습니다.
일 못한 아쉬움을 버리고 편한 마음으로 주변을 섬기니 훨씬 여유가 넘칩니다.
치열하게 살아가는 과정을 배제하고 순수한 재미와 열정으로 사색하려드니 모든 것이
아름답게만 보입니다.
야콘의 종근(뇌두)은 겨울철 내내 일정한 수분을 유지하며 얼지 않게 보관하는 것이
관건입니다.
지난 주말에 수확한 야콘종근을 보관하는 방법 때문에 한 주 동안 마음고생을 했었습니다.
지난해에는 야콘종근을 11월경에 인터넷으로 구입하여 신문지로 둘둘 말아 스티로폼
상자에 담고 보온해줄 요량으로 톱밥을 채워 아파트안방화장실에 보관했습니다만 올해는
틈틈이 담아온 효소단지들이 그 자리를 점령해버려 새로운 장소를 찾아 나서야만 합니다.
이른 새벽부터 삽자루를 챙겼습니다.
쉼터 바로 밑 밭뙈기 햇볕이 잘 드는 곳을 골라 구덩이를 파기 시작했습니다.
대충 가로1m 새로2m은 족히 넘어 보입니다.
"이른 새벽부터 무얼하고 있남?"
"야콘종자들을 묻을 땅을 파고 있습니다. 땅에 묻어 보관할까 해서요.
그런데 얼마정도의 깊이로 땅을 파야 될지 잘 모르겠습니다."
"우덜이 무를 밭에 묻을 땐 보통 2자 넘게 땅을 파는 디....
눈이 많이 내려도 땅은 깊게 얼지않으니께 그 정도의 깊이로 파면 될 거구먼.
근디! 이 뿌리는 땅속에 그냥 파 묻혀주면 되는감?"
아침 일찍 야콘종근을 나눔해 달라며 손수레를 끌고 이웃집어르신이 건너오셨습니다.
"젖꼭지처럼 볼록하게 튀어나온 이 부분에서 새로운 싹이 돋아나니 이 부분들이 손상되지
않게 잔뿌리와 썩은 부분들을 제거하고 보관하시면 됩니다."
습득한 관리요령들을 일러드리고 혹시 잘못될 것을 가정하여 솜씨가 야무진 이웃어르신을
믿고 야콘종구를 손수래 가득 실려 보냈습니다.
서리로 잎들이 말라 타들어가는 울금밭에선 옆지기 혼자 울금수확에 열중입니다.
낮으로 잎과 줄기들을 제거하고 난 후 그것들을 퇴비장으로 보듬어서 옮긴 후 멀칭비닐을
벗겨내는 작업으로 이어집니다.
주말에만 올 수 있는 주말농사꾼의 특성상 효율적인 시간 관리는 매우 중요합니다.
해야 될 일들을 모두 마쳐야만 1주일동안 마음고생을 덜 수 있습니다.
고속도로를 달리는 차안에서 머릿속에 그렸던 작업일정들이 예기치 못한 상황변화로
뒤바뀔 때가 많습니다.
어제도 계획에는 밤새 야콘종구 손질을 마치는 것으로 되여 있었습니다만 이웃집에 초청받아 "살아가는 이야기"를 주고받는 재미에 시간을 다 허비해버렸습니다.
흙을 파내다 숨이 차면 야콘종구 쪽으로 자리를 옮겨 종구를 손질하고 숨이 고르면 땅을
파고 이런 과정을 몇 번 걸친 후에야 생각했던 저장고가 완성되었습니다.
쌀 등겨 대신에 나무껍질을 잘게 부순 바크를 땅에 깔고 서로 엉겨 붙지 않게 조금씩 틈새를 벌려주며 차곡차곡 정성스레 채웠습니다.
바크를 그 위에 수북이 올려 틈새를 메우고 흙을 채워 돋아주며 잘 밟아줍니다.
흙을 지면보다 더 높게 퍼 올려 쌓고 털어낸 들깻대를 쌓아올린 후 비닐포장을 펼쳐
바람에 날리지 않게 돌멩이로 사방을 돌아가며 눌러주고 배수로를 확보하는 것으로
야콘종근 보관 작업을 마쳤습니다.
울금수확에 나선 옆지기 모습이 재밌습니다.
비닐을 벗겨낸 두둑에서 호미로 울금을 캐내려 애쓰는 모습은 영 성이 차질 않았지만
함께 이곳까지 따라 나선준 것만으로도 감사한 마음입니다.
먹구름과 숨바꼭질을 하던 태양이 구름 속에 모습을 숨긴 아침나절 새참시간 무렵
자기 앞가림도 힘든 세상에 일을 거들겠다고 인천에서 달려 온 지우내외가 일을 거들고
나서니 막혔던 숨통이 한결 시원합니다.
이름 봄날 종구들을 땅에 묻고 거름한번 농약한번 주지 않은 울금밭엔 생강과 똑같은
모양의 울금들이 주렁주렁 달렸습니다.
따뜻한 남쪽지방에서만 재배되는 줄로만 알았는데 기후변화의 탓인지 다락골에서도
남쪽지방 못지않게 수확이 풍성합니다.
정오를 지날 무렵부터 다락골엔 가을찬비가 흩뿌려댑니다.
조급함에 손놀림이 바빠졌습니다.
등걸에 달린 잔뿌리를 제거하고 줄기를 짧게 잘라 물로 깨끗이 씻어냈습니다.
이것들은 잘게 잘라 설탕과 버무려 발효효소를 담을 것들입니다.
머릿결을 타고 찬비가 흘러내립니다.
바람이 차갑게 와 닿습니다.
가을 탓일까요??
몸과 함께 마음까지 움츠려드는 것은 왜일까요?
두서없이 허둥대기만 했을 뿐 무얼 하나 재대로 이루어 놓은 것이 없습니다.
마음만 앞서 성급하게 결과만 집착하고 있지 않은지?
가을걷이를 마친 텅 빈 밭뙈기처럼 마음 한구석이 허전합니다.
가을걷이가 끝난 밭뙈기에 가을찬비가 내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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