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덮다"라는 말을 달고 삽니다.
여름은 당연히 더워야 과일은 살이 찌고 곡식은 알알이 들어차는데
간사한 인간의 마음은 늦더위로 더 풍성해졌으면 하는 바램보다는 빨리 더위가 수그러졌으면 하는 마음이 앞섭니다.
늦더위 기세가 만만치 않습니다.
찜통에서 꺼낸 것처럼 호박잎은 축 늘어졌고 매미소리는 숨넘어가듯 자지러집니다.

 

 


쉼터 뒤쪽 바위틈에서 샘물처럼 물이 솟구칩니다.
큰 물난리 때나 볼 수 있는 흔한 광경은 아닙니다.
수 일 전 번갯불이 환하게 밝힌 다락골에 밤새 바가지로 물을 퍼붓듯이 장대비가 내렸다합니다.

제충국 등 여린 작물들은 녹아내렸고 토마토 밭은 흉하게 망가졌습니다.
줄기를 걷어낸 밭에는 설익은 토마토가 나뒹굽니다.
처음 시도한 두 줄기 재배는 실패로 끝났습니다.
폼 나게 심어만 놓고 지켜주지 못한 쓸쓸함이 가시질 않습니다.

 


 딸아이가 따라 나섰습니다.
다락골에 터를 잡을 때만해도 늘 따라나서 곤 했었는데 생각이 커버렸는지 요즘은 이런저런 이유들을 들이대며  동행하려들지 않습니다.
웬일인지 순순히 따라 나선 녀석은
"땡볕에 일은 시키지 마라, 자기가 하는 일을 간섭하지마라"마치 웃전처럼 여러 조건을 달았습니다만 꼭 조개구이만큼은 해 주어야한다는 것이

가장 먼저 내세운 조건입니다.
집근처 연안부두에 들려 서너 가지 조개를 구입했습니다.

 

 


해마다 처서 무렵이면 그해 김장김치를 담글 때 쓸 배추모종을 내다심습니다.
생존율을 높이기 위해 아침나절에 하는 모종이식보다는 저녁시간을 이용해 모종을 이식합니다.
뜨거운 햇볕을 피해 해가 뉘엿할 무렵에 시작한 모종이식은 밤늦게까지 이어집니다.
간격을 맞춰 미리 검정비닐로 멀칭해 놓은 두둑에 구멍을 뚫고 연결트레이에서 조심스레 모종을 꺼내 구멍 속에 넣고 물을 흠뻑 뿌려줍니다.
다 차지 못한 백중달빛이 희미하게 비춥니다.
한밤중 외딴 산골에 나타난 도깨비불마냥
딸아이에게 손전등을 비추게 하고 옆지기와 마주보며 두둑 높이와 모종에 달린 흙의 높이를 맞춰 흙을 채워가며 너무 깊게 심어지지 않도록 정성스레 바로 심습니다.
주변에서 일어난 소소한 이야기며, 고 3 아들 녀석의 진로문제 등 그 동안 나누지 못했던 이야기가 물 흐르듯 이어집니다.
배추한포기에 농부의 땀과 희망을 담습니다.
비가 올 때나 물을 줄때 바닥의 흙이 튀어 올라 모종에 붙으면 그곳에서 나쁜 균이 생기고 벌래도 발생할 수 있어 비닐위의 흙도 깨끗이 정리합니다. 

 

 


새벽녘
연무가 살포시 내려앉았습니다.
"아저씨!
고추 많이 익었지요?
빨리 따다 우리 하우스에 널어요.
우리 것은 이틀 전에 따서 아저씨네 것과 같이 말리려고 그늘에 펼쳐 놓았시유!"
고맙다는 말밖에 건넬 수 없었습니다.
따로 건조장이 없어 고추건조는 이웃집하우스를 빌려 사용해오고 있습니다.
말이 빌려 사용하는 것일 뿐
붉은 홍고추를 따다 널어놓고만 가면 일일이 골라가며 이웃집할머니가 말려주셨습니다.
올해는 자기 집 고추밭에 몹쓸 역병이 돌아 수확량이 반토막 났습니다.
그런데도 아무런 내색도 하지 않고 남은 공간들은 우리고추로 채워줍니다.
옆지기는 아침부터 붉은 고추를 많이 수확했다며 신났습니다.

 

 


" 도저히 못 참겠구먼!  먼저 들어가네!"
아침 세참 시간도 되기 전에 이른 새벽부터 밭에 나와 채마밭을 일구던 이웃집아저씨가 하얗게 뜬 얼굴로 허겁지겁 집으로 들어갑니다.
은행나무 그늘에 앉아 땀을 식힙니다.
잎사귀 틈으로 세어 나온 열기를 감내하기 힘듭니다.
이글이글 타는 듯 합니다.
밭두렁에 벌러덩 누워버리고 싶은 충동이 간절합니다만 손길을 필요로 하는 작물들을 때문에 쉽게 호밋자루를 내팽개치질 못합니다.
심어놓은 작물들에 매이다보면
비록 돈벌이는 되지 않는 일이지만 이 일이 즐겁기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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