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검다리 휴일로 이어지는 오월의 첫 주말
여기도 저기도 막히지 않는 길이 없습니다.
사람도 많고 차고 많습니다.
답답하고 지루하지만 다락골 가는 길이 예쁩니다.
가지마다 연두색 잎사귀를 토해내고 있습니다.
마른땅에 물 스미듯
번지는 연두색 신록이 곱습니다.
여러 들꽃들이 어우러져 발길을 가볍게 합니다.
왠지 모를 뭉클함에 가슴이 떨립니다.
얼마나 갑갑했을까?
2주 동안 비닐 속에 갇혀 옴짝달싹 못했던 고구마 순을 비닐 밖으로 꺼냅니다.
고구마 순을 내다 심고 나서 비닐위에 수북이 올려주었던 흙이 지난주에 내린 비로 대부분 씻겨 나갔습니다.
햇볕에 노출된 고구마순은 높아지는 비닐속의 열기를 감당하지 못하고 간간이 녹아내렸습니다.
호박 고구마 순이 훨씬 피해가 심합니다.
속이 탑니다.
차에서 짐을 풀 새도 없이 맨손으로 밭뙈기에 쪼그리고 앉아 비닐을 찢어 고구마순을 꺼내고 흙을 채웁니다.
아프지 않게 잘 보살피겠다고 약속했는데
사상누각이 되진 않을까
씁쓸하고 먹먹합니다.
집체만한 흙덩이를 머리에 이고
까만 땅콩 싹이 틉니다.
날짐승으로부터 새싹을 지키기 위해 은빛 모형 독수리를 다시 내겁니다.
싹을 틔워 이식했던 둥근마 줄기가 오이망을 타고 오릅니다.
놀라운 일은 결코 요란하지 않습니다.
곁으론 별다른 움직임 없이 조용하고 차분했는데 안으로는 쉼 없이 변화하여 새 생명을 태동시켰습니다.
꽃 진 자리에 앙증맞게 애기 매실이 달렸습니다.
농장을 비운 2주 사이에 두릅순과 벙굿잎(엄나무어린잎)은 벌써 쇠 버렸습니다.
이 시기에 잠깐 맛볼 수 있는 참옻순이 절정입니다.
순수한 날것 그대로 씹을수록 고소한 맛이 입안에 남습니다.
초록의 봄나물
그 연하고 달고 쌉싸래한 맛이 입맛을 돋웁니다.
봄의 채취를 마음껏 탐합니다.
"고추모종은 깊게 심으면 좋지 않다."
"심고 나서 뜬물약과 총채벌레약은 반드시 쳐야한다."
"산골에선 진딧물이 더 심하다."
"약해발생을 줄이기 위해서는 밭을 갈 때 미리 뜬물약을 던져라."
"고추농사는 예방위주로 관리해야한다."
"풋고추를 내다팔 요량이라면 순도 99.9% 에틸알코올을 희석시켜 사용하면 풋고추 때깔이 끝내준다."
"세물고추수확이 끝나는 8월 초순에 고추 순을 1/3쯤 쳐내라
그러면 밑에 달린 고추는 빨리 붉어지고 새순이 새로 돋아 순도 부드럽고, 그곳에 꽃을 피워 달린 풋고추도 엄청 부드럽다.
장아찌용 풋고추로 최고다."
아침 새참 무렵에 쉼터 원두막에 다락골에서 내놓고 농사짓는 몇 사람이 모였습니다.
꺾어온 참옻순을 안주삼아 막걸리를 나누며 좀처럼 내보이지 않던 자기만의 농사짓는 법을 하나 둘 들려줍니다.
공감이 가는 내용도 많고 낯설고 생소한 방법도 있습니다.
"지는요! 절대로 남의 말만 옮기지않아유!
지가 서너 번 해보고 나서 이거다 싶으면 그때 가서 알려주는 것이구먼유!"
사실 농사에는 정답이 따로 없습니다.
살아 숨 쉬는 생명체를 다루기 때문에 더 더욱 그런 것 같습니다.
절기상 입하 무렵에 다락골에선 여러 모종들을 내다심습니다.
내남없이 고추모종을 이식합니다.
주말농사를 일구며 태양초고추만을 고집했던 지난과정들이 너무 힘들어 올해 고추농사는 포기했습니다.
다만 찍어먹을 풋고추를 따기 위해 열 그루만 심습니다.
모사리를 줄이기 위해
흙을 살짝 덮어주며 살포시 쓰다듬습니다.
관리하게 편하게 옥수수 모종의 어깨는 두둑과 나란하게 심고 호박모종을 심은 곳엔 비닐로 고깔을 씌워 밤공기의 찬 기운을 차단시킵니다.
"어버이날이네요.
집에 안계시네요.
항상 아프지 마시고......, 건강이 최고에요."
딸아이가 보낸 메시지 구절이 가슴 찡합니다.
"밥 굶지 말고 아프지 마라."
섬기지도 못한 어버이날,
휴대전화기에선 어머님의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집니다.
며칠 전에 다친 허리 병이 도져 일을 방해합니다.
구부리고 일어서는 동작조차 어정쩡합니다.
쉽게 지치고 이 일에 회의마저 듭니다.
땅바닥에 벌러덩 드러누워 처음 시작할 때 했던 약속들을 다시 한 번 되새김질합니다.
자신을 돋보이게 보이려는 욕심을 밀어냅니다.
일부러 피사체를 강조해 사실을 왜곡시키지 않는 순수한 모습들을 찾아 셔터를 누릅니다.
'다락골사랑 > 다락골 사랑' 카테고리의 다른 글
비라도 그만 내렸으면....... (0) | 2011.08.02 |
---|---|
행복한 고민. (0) | 2011.06.08 |
그냥 좋아서 합니다. (0) | 2011.04.18 |
정직하게 땀 흘린 만큼 반응하는 것이 농사입니다. (0) | 2011.04.04 |
봄이 오는 소리가 들립니다. (0) | 2011.03.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