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겹다.
집구석은 온통 곰팡이가 슬고 밭뙈기엔 풀만 가득하다."
"풀 뽑고, 벌레 잡고…….
그걸 즐거움으로 사는 사람이잖아요. 당신은?
자기가 자초한 일이니까,
남까지 끌어들이지 마세요."
산행 도중에 옆지기가 보내온 카톡 메시지 답신은 씁쓸했습니다.
일행에 끼여 가평 연인산으로 산행가자는 옆지기의 권유를 뿌리치고 다락골을 찾았습니다.
늘 그렇지만 제가 다락골을 찾는 이유는
나와 떨어진 또 다른 나를 다락골에 남겨 두었기 때문입니다.
그리웠던 분신들과 재회하는 순간.
기쁨 같기도 하고, 서글픔 같기도 한 감정들이 한꺼번에 밀려듭니다.
환기가 안 돼
쉼터 구석마다 곰팡이가 슬었습니다.
퀴퀴한 냄새, 끈적끈적하고 눅눅한 기운이 숨통을 조입니다.
닦고, 말리고…….
밭뙈기를 들여다 볼 틈도 없이 장마철 비설거지로 비지땀을 쏟았습니다.
지난 가뭄 탓일까요?
대학찰옥수수통이 생각했던 것보다 굵지 않네요.
일 년 중 날씨가 제일 무덥다는 대서절기입니다.
가만히 서 있어도 등줄기를 타고 땀이 흘러내립니다.
김장채소를 심을 터를 준비합니다.
다락골을 찾은 또 하나의 이유입니다.
마늘을 뽑고 잠깐 방심한 사이 바랭이며 쇠비름 등 온갖 잡초들이 들어찼습니다.
농부의 부지런함을 가름하는 기준을 김매기로 삼았던 집안에서 자란 탓에 잡초만보면 손부터 나가는 것이 습성처럼 굳어져있습니다만,
땡볕 아래서 쪼그리고 앉아 김매기는 정말 힘겹습니다.
주말농사 7년,
이력이 붙을수록 일에는소흘해지고 꾀만 늘었습니다.
"김매기 싫은 놈 밭고랑만 센다!"라고
잡초를 뽑아내고, 멀칭해둔 비닐을 걷어낸 후, 석회비료를 뿌리는 것까지
마치는 것으로 계획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일하는 시간보다는 은행나무그늘에 주저앉아 쉬는 시간이 늘어갑니다.
"휴가나 가시지, 이런 땡볕 아래서 고생을 그렇게 사서한데유!"
농담으로 흘린 이웃집할머니의 말 한마디가 귓가를 떠나질 않습니다.
오기로 버텨보지만 끈기는 바닥난 지 오랩니다.
연장을 내동댕이치고 도망가고픈 생각이 간절합니다.
다행스레
2주전에 씨를 뿌렸던 당근이 골고루 싹 텄습니다.
살랑살랑 불어댄 바람과 적당하게 내려준 비 덕분이지요.
변죽만 울리고 흠집 하나 남기지 않은 채 스쳐 지나간 태풍이 고마울 뿐이네요.
농사용 거름은
필요에 따라 그때그때 인근 농자재마트에서 구입해왔습니다.
가끔은 덜 썩은 퇴비에서 발생하는 가스로 인해 피해를 보기도 했고요.
한꺼번에 대량으로 구입해 1-2년을 직접 더 발효시켰다가 사용해봤으면 하는 바램을 늘 가졌었는데 이번에 큰 맘 먹고 일을 냈습니다.
지인의 소개로 닭똥을 발효시킨 퇴비를 구입했습니다.
평택에서 이곳까지 운임 한 푼 안 받고 가져다주시네요.
일복이 터진 하루,
비를 맞아 무개가 상당한 100포대나 되는 거름을 퇴비장으로 옮겨 쌓으니 맥없이 두 다리가 후들댑니다.
예년 같으면 지금쯤
첫물고추 수확이 끝나고 두물고추 수확이 한창이었겠네요.
지난해와는 다르게 고추밭에 탄저병 발생이 줄었지만 다락골은 고추가 붉어지지 않아 야단입니다.
올핸 여름 초입부터 때 이른 무더위가 찾아왔습니다.
그러나 요상할 만큼 밤공기는 선선했습니다.
삼복더위 중에 어젯밤에도 두꺼운 이불을 덮고 잠을 잤습니다.
이런 찬 공기와 작물의 성장과는 상관관계가 존재하겠지요?
김장채소를 파종할 시기가 가까워졌습니다.
파종시기를 고민하는 이웃들이 더러 보이네요.
세상사는 일이 그렇고 그렇다지만 내다볼수록 앞날이 컴컴합니다.
이럴 때일수록 원칙을 지키는 일이 중요하겠지요.
무덥습니다.
입 맛 잃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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