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장마.
달갑지 않는 소식입니다.
가뭄, 폭염, 폭우, 그리고 가을장마.
이변이 일상처럼 되어버린 요즘 날씨입니다.
마치 각본 없는 괴물영화를 보는 것처럼 혼란스럽습니다.
인간이 저지른 악행 때문에 생긴 것이라고 하니 딱히 어디에 하소연을 할 수도 없고…….
두려움을 떠나 무서움으로 다가옵니다. 

 

 

여름은 무더웠습니다.
다 귀찮았습니다.
기력마저 고갈되어 몽롱했습니다.
손가락도 까딱하기조차 싫었습니다.
"쉬는 것도 생산이다."
붙들고 있던 다락골도 살며시 내려놓았습니다.

 


더위를 피해 다락골을 달아난 사이,

밭뙈기는 수년 동안 돌보지 않은 묵정밭처럼 폐허로 변해있었습니다.
사람 키만큼 큰 잡초들이 밭뙈기를 지배합니다.
수확하고 방치해둔 매실나무 밭이 더 심합니다.
새벽부터 근 한나절을  뽑고. 뜯고. 베고.......
잡초들과 질펀하게 한판을 벌리고 나서야 겨우 모양새가 잡힙니다.

 

 

수일 전에 퍼부은 폭우로 다유들깨가 땅바닥에 벌러덩 자빠졌습니다.
빳빳하게 고개만 쳐들고 생체기를 겪는 모습이 안쓰러워 보고 그냥 지나칠 수가 없네요.
줄에 맞춰 군데군데 쇠말뚝을 박고 끈을 엮어 일일이 일으켜 세우니 금세 스스로 몸뚱이를 추스릅니다.
명약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고 갸륵한 손길이 명약입니다.

 

 

 

도둑 못 들어오게 쳐놓은 그물망에 스스로 갇힌 꼴이 되었습니다.
처음 재배하는 키 작은 흰 찰수수 때문에 맘 한구석이 꺼림칙합니다.
껍질이 없어 바로 사용할 수 있고, 키가 작아 쓰러질 염려가 없다는 말에 어렵사리 종자를 구해

밭뙈기 한편에 심어놓은 키 작은 흰 찰수수가 이삭이 여물기에 두주 전에 이삭에 양파망을 씌웠습니다.
밭뙈기가 산자락 끝에 위치한 한적한 터인지라 산비둘기, 까치 등 야생조류에겐 낙원이나 다름없는 곳이지요.
이삭에 양파망을 씌우고 낱알 한 톨도 빼앗기지 않을 거라며 나름 안심했습니다.
여물어가는 이삭을 바라보는 재미도 쏠쏠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내려와 이삭들을 확인해보니 양파망을 씌워둔 이삭마다  낱알에 거무스름하게 곰팡이가 슬어버렸습니다.
계속 내리는 비로 습도가 높아져 탈이 생겼습니다.
허겁지겁 씌운 양파망을 벗겨내고 곰팡이를 털어 내보지만 씁쓸한 기분은 지울 수가 없습니다.

 

 

대추는 풍년입니다. 

 

 


끝물더위로 후텁지근합니다.
그래도 아침저녁으로 제법 서늘하네요.
영영 식지 않을 것 같던 무더위의 기세가 한결 누그려졌습니다.
풍성한 가을을 마중하기위해 땀샘을 비웁니다.

 

 

 

김장할 때 쓸 무씨를 뿌립니다.
다락골에선 처서 절기 무렵에 김장배추모종을 내다심는데 무씨는 그 보다 일주일가량 앞서 파종합니다.
햇볕으로만 키우기 위해 거름도 넣지 않고 밭을 꾸몄습니다.
너무 크지 않고 달지 단 무를 키우는 게 바램입니다.
자색무에 여태껏 잊히지 않은 소싯적 즐겨먹었던 쫀득쫀득한 단무지 식감이 그리워 직접 단무지를 담가볼 요량으로 길쭉하게 생긴 단무지무도 함께 파종합니다.

 

 

끝난 올림픽열기에 열대야까지 겹쳐 잠을 설치는 날이 많았습니다.
지든 이기든 있는 힘껏 최선을 다하는 선수들의 역동적인 모습이 늠름했습니다.
메달을 거머쥐고 환호하는 장면도 멋졌고요.
정한 목표를 이루기 위해 흘렸던 땀방울의 의미가 전해질 때마다 가슴 찡했습니다.
가을이 오네요.
땀방울이 결실을 맺는 가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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