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증 질환에 탁월한 효과를 가진 약초 인동(忍冬)                                    

 

 

인동을 두고 ‘능동부조(凌冬不凋)’라고 했다.
겨울을 깔보아서

추운 융동(隆冬)에도 잎이 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도홍경의 『본초경집주』에 나오는 말인데,
멋진 표현이라는 생각이 든다.
옛사람들이 세한(歲寒) 연후에

소나무와 측백나무 (松柏)가 시들지 않는 것을 안다고 했다.
인동도 그렇다.

 

 

 

 

 

시골에 집을 구하면 반드시 인동(忍冬)을 심겠다.
금은화(金銀花), 인동 꽃의 향기에 반해서다.
필자가 이렇게 인동 꽃에 유난을 떨게 된 것은 수년 전 이름 모를 어느 산 계곡에서부터다.
초여름의 신록이 풋풋하게 우거진 그 산의 계곡 주위가 꿀보다 달콤한 향기로 온통 뒤덮여 있었다.
때죽나무 꽃이나 마삭줄의 꽃향도 아니다.

아카시아 꽃도, 찔레꽃 향도 아니다.
‘무슨 향이길래 도대체 이렇게 감미롭지?? 하며 꿈결에 이끌리듯 향기를 따라간

계곡 건너편은 인동 넝쿨들이 피워낸 꽃들의 일대 화원이었다.
초여름의 시작과 함께 꽃망울들을 터뜨린 흰색과 노란색의 꽃들이

여름 햇살이 무색하도록 환하게 피었다.

어쩌면 첫사랑의 달콤한 가슴앓이가 그 인동 꽃의 향은 아니었을까.
아련한 기억 속의, 단아한 그녀의 지분(脂粉) 냄새 같기도 하다.
벌들이 붕붕거리며 밀원을 채취하느라 여념이 없는, 주변의 대기를 온통 물들인

그 향기의 원천으로부터 나는 한동안 떠나지 못했다.
금은화라는 말 그대로 금색(노란색)과 은색(흰색)으로 핀 인동의 향기에 휩싸였다.
그러나 그 향은 요즘 여자들의 향수처럼 들큰하거나 유혹적이라기보다는 청아하고 순결하다.
얼마나 감미로운지 마치 천국에라도 온 것 같았다.     

 

겨울을 깔보아 잎이 지지 않는 꿋꿋함

 

필자가 반드시 인동을 심겠다 마음먹은 것은, 그러나 그 인동 꽃이 뿜어내는 달콤한 향기 때문만은 아니다.
따지자니 그 이유가 몇 가지 된다.
우선 엄동설한에도 잎이 시들지 않는 꿋꿋함이 사랑스럽다. 인동 덩쿨의 옛 이름이 ‘겨우살이넌출’이다.
겨울을 살아서 넘어가는 넝쿨이라는 말이다.
모진 겨울 추위에도 변함없이 이파리를 달고 견디어내는 인고(忍苦)의 장한 뜻이 담겨 있다고 하겠다.
이 인동을 두고 ‘능동부조(凌冬不凋)’라고 했다. 겨울을 깔보아서 추운 융동(隆冬)에도 잎이 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도홍경의 『본초경집주』에 나오는 말인데, 멋진 표현이라는 생각이 든다.
옛사람들이 세한(歲寒) 연후에 소나무와 측백나무(松柏)가 시들지 않는 것을 안다고 했다.

인동도 그렇다.
인동은 비교적 따뜻한 곳을 좋아하므로 햇빛이 잘 드는 길가나 숲 주변에서 잘 산다.
그러나 어려운 환경에서도 잘 버티는 강인한 식물이어서 풍토와 토질을 가리지 않고

웬만한 곳이면 잘 자란다.
내한성만 강한 게 아니라 가뭄에도 잘 견딘다.
또 넝쿨식물이어서 울타리나 담장 주변에 심기에도 제격이다.
꽃색이 흰 것만 있는 게 아니고 붉은 것(붉은인동)도 있다.
관상용으로도 돋보인다.
송악(松嶽)이나 마삭줄 같은 다른 담장용 식물하고도 잘 어울린다.
인동의 뜻도 마음에 들지만, 사철 푸르고 애써 가꾸지 않아도 잘 자란다는 점도 좋다.
그러나 집 주변에 인동을 심어야 하는 가장 큰 이유는 무엇보다 그 약으로서의 쓰임새 때문이다.
인동은 반드시 갖춰야 할 가정의 상비약이 될 만하다.
이를테면 유행성 감기로 열이 나고 할 때 굳이 약국이나 병원에 가서 해열소염제를 구하는 대신 집에서 쉽게 쓸 수 있는

항바이러스와 해열 효과가 탁월한 약이다.
청열해독(淸熱解毒)하는 효능, 다시 말해 항균, 항바이러스, 항염증 작용이 뛰어나다.
그래서 전통적으로도 시행감모(유행성 감기)와 유아(편도선염)나 후비(각종 인후병), 이하선염, 폐렴, 세균성 이질이나 장염 등을 치료하는

상용약이었다. 입안이 허는 구창이나 종기와 같은 온갖 화농성 피부 질환에도 두루 쓰였다.
이런 질환에는 인동의 꽃을 따다 말린 금은화를 한 번에 40~80g 정도 끓여서 쓴다.
대량으로 써야 청열해독하는 효과가 제대로 난다. 
『동의보감』에는 ‘오한과 신열이 나면서 몸이 붓는 증상과 열독으로 인한 발진과 혈변 등을 치료한다’고 했다.
『본초강목』엔 ‘한열로 몸이 붓는 것을 다스린다. 오래 먹으면 경신장년익수(輕身長年益壽)한다’고 했다. 또 ‘열독으로 혈변(熱毒血痢)을 보거나

설사를 하는 병에 진하게 달여 복용한다.
일체의 풍습성 질환(風濕氣)과 제반 종독(腫毒), 살이 곪고 썩어 들어가는 종기(癰疽), 옴과 버짐 등 피부병(疥癬), 매독(楊梅瘡) 등을 고친다’고 했다.
부청주의 ‘청낭비결’을 보면 말초혈관이 만성적인 염증 상태인 탈저(脫疽) 혹은 맥비(脈?), 요즘 말로는 혈전폐색성 맥관염 같은 질환이 나온다.
역시 금은화를 다량으로 써야 고친다.
이렇게 인동은 사소한 풍열 감기를 비롯해 일체의 종독과 잘 아물지 않는 악창 같은 심한 질환을 잘 치료하는 약이다.
또 조금씩 오래 복용하면 몸을 가볍게 하고 수명을 늘리는 보정강장제이고, 혹은 종독으로 인한 부기를 빼는 이뇨제이기도 하다.
중국과 북한의 최근 임상에선 인동 넝쿨이 바이러스성 간염에도 효과가 있다고 한다.
또 염증의 활성을 강력하게 억제해 류머티스성 관절염, 골관절염, 통풍성 관절염에도 큰 효과를 보였다.
인동은 단순히 소염작용만 하는 것이 아니고 면역기능도 정상화시키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정도면 인동을 집 주변에 심어야 할 이유로는 차고 넘치지 않을까.
가령 세상이 무너져서 현대적인 병·의원을 더는 이용할 수 없게 되어도 집 마당 한켠에 인동 같은 약이 있으면 겁날 일이 없겠다.
청나라 때 의가 장산뢰는 “금은화는 참으로 쓰기 간편하고 또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으니 좋은 약의 조건인 ‘간편천(簡便賤)’ 세 가지를

모두 갖춘 천하의 양약이 아닐 수 없다”고 했다. 
 
'간편천’ 세 가지를 다 갖춘 천하의 양약

 

 

인동은 모든 부위를 약용할 수 있다.
꽃과 잎, 줄기를 다 쓰는데, 약명으로 꽃은 금은화, 잎과 줄기는 인동등(忍冬藤)이다.
꽃은 꽃송이가 피기 직전에 따서 그늘에 말려 쓴다.
잎과 줄기는 넝쿨째 베어내 둥글게 타래로 감아서 햇볕에 말려 쓴다.
인동등은 효능이 금은화와 같으나 항균력은 금은화보다 떨어지고 대신 거풍활락하는 힘이 더 있다.
그래서 풍습으로 인한 비증, 이를테면 류머티스성 관절염 등에 더욱 좋다.
여담인데 흥미로운 얘기 하나. 최근에 이 인동의 꽃, 금은화가 희귀성 난치병의 하나인 크론병(염증성 장질환)에 효과가 큰 것으로 밝혀져 눈길을 끈다.
크론병은 입부터 항문까지 소화관에 만성적으로 염증이 생겨 복통, 설사, 혈변 등을

유발하는 질환이다.
언젠가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한 유명 연예인이 ‘입부터 소화기 끝까지 염증이 생기는

희귀 질환을 앓고 있다’고 투병 사실을 밝혀 관심을 끈 바 있다.

크론병은 원인이 불분명해 치료가 어렵고 만성적으로 지속되며, 방치할 경우 치질의 일종인 치루나 대장암으로까지 발전할 수 있다.
위에서 언급한 『본초강목』의 ‘열독혈리’의 증상을 떠올리게 하는 질환인데, 현대의학적으로 아직까지 뚜렷한 치료약이 없다.
그런데 인동 꽃의 추출물을 크론병 환자에게 투여한 결과 혈변이 줄고 전반적인 건강 상태가 호전되었다고 한다.
이런 크론병을 앓고 있는 환자는 우리나라에도 1만 명 가까이 되는 것으로 알려지는데, 최근 서양식 식단의 증가로 그 수가 크게 늘고 있다고 한다.
뼛속까지 서구화가 되어버린 우리 몸의 현주소가 아닐까 싶다.
인동은 약으로도 긴요하지만 꽃을 말려 차(茶)로도 쓸 수 있고, 꽃이나 전초를 그대로 술을 담가도 좋다.
인동차는 조선 왕실에서도 애용했다.
『조선왕조실록』엔 “정조 10년(1786), 병에 걸린 세자에게 인동차를 올려 피부의 열이 시원하니 식고 반점도 상쾌하게 사라졌다”는 기록이 나온다.
순조 때는 “다리에 부기가 있어 인동차를 드시게 했다”는 기록이 있다.
인동차는 여름철의 청량음료로도 좋고 열성 질환의 예방과 치료에도 효과가 있다.
인동주는 온갖 종기에 효험이 크다.
인동의 잎과 줄기를 생감초와 함께 술에 넣어서 끓인다.
꽃을 소주에 담가 우려낸 금은화주도 갖가지 종기, 부스럼, 각기, 관절염 등에 좋다.
인동 꽃이 피면 여름이 시작된다.
인동 꽃은 흰색으로 피었다가 2~3일 후가 되면 노란색으로 변한다.
이 때문에 갓 피기 시작한 흰 꽃과 져가는 노란 꽃이 섞인 2색 꽃이 된다.
그래서 그 이름이 금은화다.
이명(異名)이 많은데 인동 꽃의 생김새가 목이 긴 학이 나는 듯하다 해서 노사등(鷺?藤)이라 하기도 하고,

 이보화(二寶花), 좌전등(左纏藤)이라고도 한다.

통령초(通靈草)라는 이름도 있다.
전염병을 퍼뜨리는 역신을 다스리는 약이라는 뜻이다.
중국에선 이 인동이 귀신이 덮쳐서 열이 나고 정신이 혼미해 죽게 되는 오시(五尸)라는 병을 다스린다고 믿었고,

일본에서도 역신을 달래는 국가적인 제사인 진화제(鎭花祭)를 지내며 이 인동을 바쳤다.
우리나라 전통 공예품이나 기와에서 흔히 보는 당초문도 인동 문양이 많은데 역시 축귀의 의미를 담고 있다.
필자가 집주변에 인동을 심는 마지막 이유가 되겠다.
출처:산림
글·사진 : 김승호 (광주 자연마을한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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