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힘을 가진 능소화

박병권
두레 생태기행 연구위원, 식물생리학

 

중국 원산의 덩굴성 목본 식물이다. 중국에서도 강소성에서 가장 많이 볼 수 있다고 알려져 있으며, 언제 우리 나라에 도입되었는지는 명확하지 않고 그 형태상의 친숙한 정서가 우리 꽃처럼 느껴지게 한다. 한 줄기 소나기가 지나간 후에 잎과 꽃에 싱그럽게 맺힌 물방울을 보고 있노라면 정말이지 어느새 사진기를 들이대고 싶은 마음이 먼저다. 감상은 그 다음이랄까? 그만큼 능소화는 한여름 게슴츠레 지친 우리들의 눈을 반짝거리게 하는 아름다운 힘을 간직한 꽃의 하나이다. 능소화

   옛날 우리 나라에서는 이 능소화를 양반집 마당에서만 심을 수 있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아마도 생각컨데 중국쪽으로 왕래하던 귀족출신이나 사신들이 우리 나라로 도입하면서, 자기네 정원이나 울타리에 심었을 것이고 이를 몰래 얻어가거나 씨를 주워 심거나 혹은, 요즘 같기야 하겠으랴만, 삽목을 통해 개체를 확보한 상민의 집에서 이 나무가 발견되면 관가로 잡아가 곤장을 때려 다시는 심지 못하게 벌을 내렸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옛날 이야기 이다. 그런 연유로 이 능소화를 양반꽃이라고 했다하니 좀처럼 믿기 어려운 이야기처럼 들린다.

 

 이 능소화의 수려함에 비해 그리 흔히 볼 수 없는 것으로 보면 설득력이 있기도 하다. 그러나, 능소화의 생장 특성으로 보아 이것은 상당히 있음직한 이야기이다. 능소화는 비교적 냉해에 약하고 상처를 견디는 힘이 부족하여 손쉽게 말라 죽는 것을 많이 보아 왔다. 실제로 능소화는 광합성 효율을 최대한 이끌어 낼 수 있는 한 여름에야 꽃을 피울 만큼 그 번식을 위한 에너지가 많이 요구되는 식물의 하나이다. 여름내 만들어지는 잎새들은 그 무성함에 비해 녹색이 진하지 않아 질리지 않고 잎 만들기에 열심이던 능소화가 이제 그만 여름나기에 지칠 즈음 시원스레 꽃차례를 뽑아 낸다. 가지 끝에서 자란 꽃대에 열 송이 안팎의 큼직한 꽃송이가 달리면서 꽃자루는 힘에 겨운 듯 축 늘어진다.

 


   그리고 줄기에 비해 잎이 상당히 많기 때문에 여름철에 잘못 상처를 입으면 위조(말라버림)로 죽기 쉽다. 따라서 사람의 출입이 제한되거나 비교적 보호가 잘되는 양반이나 부잣집 근처에서 아무런 간섭 없이 잘 자랄 수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양반네 집이야 비교적 오랜 시간동안 그 터와 형태를 유지하고 있지만 평민의 경우는 수시로 집을 부수거나 이사를 가는 경우가 왕왕 있기 때문에 그 서식처 관리가 부실할 것은 뻔한 일이다.

 


   능소화는 한자어로 능가할 능, 또는 업신여길 '능(凌)'자이고 소는 하늘 '소( )'자이고 보면 하늘같은 양반을 능가하고 업신여길 것을 염려해서일까, 지역에 따라서는 능소화 대신 금등화라고 부르기도 하였다.
   서양에서는 능소화를 '차이니즈 트럼펫 클리퍼'라고 부르는데 이 꽃을 보고 트럼펫을 떠올리는 것을 보면 동서양을 막론하고 보고 느끼는 것은 같은 모양이다.

 


   덩굴 식물들은 일반적으로 덩굴손을 가지고 다른 물체를 휘감아 오르며 자라는 것이 보통이지만 이 능소화는 몇 갈래의 줄기가 서로 의지하면서 꼬이며 자라 오르다가 줄기의 마디에서 생기는 흡반이라는 뿌리를 주로 다른 나무에, 또는 벽면에 붙여 가며 타고 오른다.
   대부문의 낙엽성 나무는 가을이면 무성한 잎새를 모두 떨구어 초라해 보이게 마련이다. 그러나 능소화는 연한 회갈색 줄기며 세로로 벗겨지는 모양새가 고목처럼 기품 있어 보기에 좋다. 고목 나무에 새순이 돋듯 봄이면 능소화 가지에서 잎이 나기 시작한다. 마주보며 달리는 큰 잎자루 마다에는 다시 손가락 두 마디쯤 되는 작은 잎이 일곱 개 혹은 아홉 개씩 달리는데, 그 가장자리에는 톱니 같은 결각이 나 있고 가장자리에는 이와 함께 보송한 녹색의 털이 만져진다.

 


   꽃은 거꾸로 된 원뿔 모양이다. 이 꽃차례의 작은 꽃자루들은 동서로 남북으로, 다시 동서로 엇갈려 갈라지면서 깔때기 같은 꽃송이를 매단다. 늘어진 자루에 등을 대고 목에 한껏 힘을 주고 부는 나팔처럼 싱싱하게 고개를 쳐들고 능소화가 핀다. 꽃 색은 겉은 연주홍이지만 안을 들여다보면 나팔처럼 벌어진 부분은 진한 주홍빛이고 긴 통으로 이어지면서 다시 연한 주홍색으로 변하는데, 그 가운데 진홍 및 줄무늬가 세로로 보이며 곳곳에 갈색 반점이 있어 전체적으로 아주 인상적인 꽃이다.
   수술 끝에 달리는 꽃가루에는 갈고리 같은 것이 있으므로 눈에 들어가지 않도록 주의하여야 한다. 간혹 능소화의 꿀이 눈에 들어가면 실명한다는 이야기를 하곤 하는데, 능소화는 성분상으로 전혀 독이 없는 식물이고 보면 이는 꿀보다는 꿀에 섞인 꽃가루 때문일 것이다. 이 능소화의 학명이 '캄프시스 그랜디플로라(Campsis grandiflora K. Schum.)'인데 여기서 캄프시스라는 속명은 그리스어로 '굽는다'는 뜻으로 수술의 휘어진 모양을 상징하고 있다.

 


   지금으로부터 약 3000여 년 전에 작품을 모은, 동양 최초의 시집인 <시경(詩經)속에 소아(小雅)>에도 능소화를 그린 시가 있습니다.
   바람이 불고 비라도 몹시 내리면 시계추처럼 흔들리는 이 능소화 꽃송이는 너무도 매력적이어서 언제까지고 바라보게 된다. 그러노라면 마치 꽃받침이 내는 연둣빛 종소리와 꽃송이가 부는 주홍빛 나팔 소리를 함께 들을 수 있을 듯싶다. 이렇게 무더위 속에서 피는 능소화는 오래오래 꽃을 볼 수 있고 지는 모습이 추하지 않아 더욱더 좋다.

 


   10월이 되면 능소화도 결실을 하는데 네모난 열매가 둘로 갈라지면서 여문 씨앗이 드러난다. 이때쯤이면 하나 둘 낙엽이 지고 견디기 어려운 겨울나기 준비를 시작한다.
   능소화를 자주 볼 수 없던 이유 중 하나는 추위를 이기는 힘이 약하기 때문인 것 같다. 서울에서는 장소에 따라 잘 자라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따로 월동 준비를 해주어야 겨울을 무사히 나며 내륙보다는 따뜻한 바닷가에서 잘 자란다. 번식은 삽목이 가장 용이한 편이다. 늦은 봄에 1년 생의 가는 가지를 잘라 모래와 부엽토를 1 : 1로 섞어둔 화분(깊이 20cm 정도)에 20cm 정도로 잘라 꽃아 양지바른 곳에 두면 싹이 터서 잘 자란다. 어느 정도 자라면 이식한다. 물론 종자로도 번식이 되며 많은 개체를 원할 때는 이 방법이 유리하다.

 


   간혹 볼 수 있는 정원수로 미국 능소화가 있는데, 동양의 능소화보다 꽃이 조금 더 작고 색은 지나치게 붉으며 늘어지는 것이 없이 꽃이 한 곳에 모여 달린다.
   능소화 꽃은 점잖고 동양적인 기품이 흐른다 하여 충청도 이남의 사찰에 심은 것이 많다.
   정원수로 쓰는 이외에도 한방에서는 꽃을 약용하며, 꽃이 피는 시기에 따서 말려서 이용하는데 어혈과 혈열로 인한 질병에 효과가 있다고 한다. 줄기에 달리는 잎을 능소경엽, 뿌리를 능소엽이라 하여 쓰기도 한다.

 


   참고로 몇 년전에 초등학교 꼬마 친구들이 이를 소재로 하여 과학 논문을 쓴 경우도 있다 : 능소화 담쟁이 덩굴의 부착근에 대한 탐구 광주송정초등학교 양윤주 김희나.
   당신은 산다는 것의 기쁨을 알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 기쁨을 연인에게 나누어 주십시오라는 꽃말을 가지고 있고, 8월 6일과 12월 13의 탄생화로 여성, 명예를 상징한다.

출처 : 황골농장 이야기
글쓴이 : 주밝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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