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무는 엄격히 말하면 잡곡이 아니다. 약재다. 전통적으로 율무는 약재였다. 농진청에서 발간한 <농업과학기술대전>에도 율무는 특용작물 중 약용작물로 분류돼 있다. 율무가 잡곡으로 받아들여진 것은 극히 최근의 일이다.


요즘에는 농협 매장이나 생협, 또 각종 인터넷 쇼핑몰 잡곡 코너에 가면 어김없이 율무가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이제 율무는 약재가 아니라 잡곡이다. 율무가 잡곡으로 받아들여진 것은 많은 사람들이 애를 먹고 있는 ‘비만’을 해결하는 데 도움을 주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요즘 사람들이 대부분 과체중이거나 비만인 점을 고려하면 율무는 앞으로 더 많은 사람들이 찾게 될 것이어서 전망이 밝은 작물이다. 다만 문제는 가공과 유통이 전혀 체계가 잡혀 있지 않다는 데 있다.


율무를 도정할 수 있는 도정기가 전국에 딱 두 군데 뿐이고 대부분 도매상인들이 대량으로 도정을 하기 때문에 농민들이 직접 도정하려면 눈치 봐가며 사정을 해야 하는 실정이다. 율무 값이 비싼 이유도 여기에 있다.


보통 산지에서 도매상인들이 수집하는 가격은 도정 전 겉율무 한 가마(50kg)에 8만 5천 원 정도라고 한다. 도정하면서 무게가 약 40% 정도 줄어들고 도정한 율무쌀 20%를 도정비로 지불해야 한다고는 해도 생산자가와 소비자가 사이에 값 차이가 너무나 크다. 생산자 입장에서는 어떻게든 소비자와 직접 연결해서 직거래를 하면 수지를 맞출 수 있다. 그래서 율무는 어쩌면 앞으로 도시와 농촌을 잇는 좋은 다리가 될 지도 모른다.


춘천 외곽지역인 지촌리와 신포리 지역 생산자들이 모여 결성한‘춘천 사북 생명농업 생산자모임’이 좋은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이 모임에서는 율무가 주작목 중 하나다. 이곳으로 귀농하신 한주희 목사님이 율무농사를 짓기 시작해서 주변 농가로 퍼뜨리고, 도시에 있는 교회 등을 통해 알음알음으로 생산량 전량을 직거래를 통해 판매하고 있다. 직거래망이 열리면서 몇몇 농가가 유기농으로 전환하면서 생산자모임이 결성된 것이다.


이번 호에는 이 모임에 참여하고 있는 춘천시 사북면 신포리에 사시는 최흥근님을 찾아가 율무농사 짓는 말씀을 들었다.

“율무 농사 지으신 지는 얼마나 됐어요?”
“3년 밖에 안 됐어요. 사실 잘 몰라요.”
“그래도 뭔가 터득하신 비법이 있을 텐데요(웃음).”
“있기는 있지요(웃음). 사람들이 보통 직파를 해요. 땅 갈고 씨를 바로 넣는데, 저도 첫 해에는 그렇게 했어요. 그 때는 제초제를 한 번 썼어요. 그런데 이제 제초제나 화학비료를 전혀 안 하니까 작년에는 풀 때문에 아주 고생했어요. 올 해에도 일주일 동안이나 골에 난 풀 눕히느라고 애 먹었지요.”
“풀을 눕혀요?”
“골에 빽빽하게 풀이 나 있으니까 눕혀서 밟아 주기만 해도 다르거든요. 풀이 나면 수확량에도 차이가 나겠지만 그것보다 더 큰 문제는 태풍이 오거나 바람이 심하게 불면 풀이랑 쓸려서 율무대가 같이 넘어지는 거예요. 그러니까 태풍 오기 전에 풀이라도 눕혀 놓으면 괜찮아요. 안 넘어지니까.”
“율무 농사도 결국 풀 잡는 게 문제네요.”
“예. 제초제 쓰고 요소비료 쓰면 율무처럼 짓기 쉬운 게 없어요. 사람들이 율무는 밭을 골을 내서도 심고 평평한 밭에도 심어요. 아예 밭을 안 갈고 심어도 돼요. 연작 피해도 별로 없고, 가뭄도 안 타고, 마른 땅에도 되고 진 땅에도 되고 다 되거든요. 논에 심어도 돼요. 정말 생명력이 강해서 농사짓기 참 편해요. 거름을 많이 먹으니까 비료 듬뿍 넣어주고. 율무가 딱딱하잖아요. 그러니까 땅에 씨앗 넣고 싹 올라오는 데 일주일에서 열흘 정도 걸려요. 풀은 금방 올라오고 율무는 한 참 있어야 싹이 올라오니까 율무씨 넣어 놓고 제초제 한 번 싹 쳐버리는 거지요. 그리고 율무가 또 빨리 자라니까 율무가 어느 정도 자라면 또 풀 올라오거든요. 그 때 제초제 한 번 더 쳐주면 수확만 하면 돼요. 제초제 쓰고 비료 쓰면 혼자서 몇 만평이라도 지을 수 있어요.”


“근데 왜 그렇게 안 하시고 생고생을 하세요?(웃음)”
“우리는 이제 유기농하기로 했으니까 그런 거 전혀 안 써요.”
“결국, 율무도 김을 제때에 두 번만 매주면 먹을 수 있다는 얘기네요?”
“그렇죠. 근데 김매는 품이 보통 아니잖아요. 일하다 보면 때를 놓치기가 십상이고. 그래서 제가 개발해낸 방법이 있어요. 포트에서 모를 15~20일 정도 키워서 밭에 내면 김을 한 번 안 매도 돼요. 모를 키워서 밭에 내면 김 한 번만 매주면 먹을 수 있다는 얘기지요.”
“그래요? 근데, 포트에 심어서 본밭에 낼려면 직파하고 김 매주는 것보다 오히려 품이 더 많이 들지 않아요?”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직파하는 품이나 모 정식하는 품이나 별반 차이가 없어요. 김 한 번 매는 품이 완전히 절약 되는 거예요. 그리고 직파하면 싹이 올라오는 것도 있고 안 올라오는 것도 있고 해서 들쭉날쭉 하니까 빈 자리 때워줘야 되고 그런데 모를 갖다 심으면 거의 100퍼센트 사니까 훨씬 편해요.”
“그렇군요. 포트는 어떤 거 쓰세요? 한 구멍에 몇 알이나 넣어요?”
“배추 심을 때 쓰는 108공인가? 120 몇 공인가 그거 쓰면 돼요. 버려 놓은 거 주워다가 쓰는 거지요, 뭐. 그거 한 구멍에 두 알씩 넣으면 돼요. 7~10일 있으면 싹이 올라오고 잎이 두세 장 나와서 15센치 정도 자랐을 때 심어요. 심기 직전에 로타리 한 번 쳐주면 되니까 풀 잡기가 수월하지요. 그렇게 해 놓고 15일 ~ 20일 있다가 또 풀 올라오면 김을 매는데, 이렇게 한 번만 매주면 먹는 거예요.”

“언제들 심나요?”
“보통 여기서는 4월 20일부터 심기 시작해서 5월 초까지 심고, 9월 말부터 베기 시작해서 10월 중순까지 베요.”
“심는 간격은요?”
“포기 사이는 30~ 45센치. 골간 간격은 50센치 정도 보시면 돼요. 직파할 때도 마찬가지고요. 옥수수 심듯이 심는데, 한 구멍에 2~3알씩 넣어줘요. 그리고 그냥 나오는 대로 키웁니다. 솎을 필요 없어요.”
“포트에 모 키우실 때, 비가림이라도 해 줘야 되나요?”
“필요 없어요. 그냥 밖에서 키워요. 강하니까.”
“거름은 어느 정도 넣으세요?”
“돈분을 쓰는 데 단보(300평)당 5톤 덤프로 하나는 넣어줘야죠.”
“값이 얼마나 해요?”
“저는 아는 사람이 있어서 그냥 갖다 쓰는데, 돈 주고 살려면 발효 안 시킨 생똥일 경우에 10~12만 원 정도 해요.”

“병은 없습니까?”
“깜부기가 많이 생겨요.”

깜부기. 참 오랫 만에 들어보는 단어다. 어릴 때는 논에 깜부기가 많았다. 침이 뾰족뽀족 올라오고 보리알이 다락다락 촘촘하게 달려있어야 할 보리 이삭이 시커멓게 변해버리는 일종의 병이다. 농사 안 돼서 한숨이 깊어가는 줄도 모르고 깜부기 꺾어다가 코 밑에 수염을 그리기도 하고 서로 얼굴에 칠해대면서 깔깔대고 낄낄대며 들로 산으로 뛰어 놀던 천하태평 어린 시절…

“깜부기는 종자소독만 잘 하면 막을 수 있어요. 별 건 아니고 물 소독 하는 건데 물을 75~80도 정도로 데워서 5분 정도만 담궈 주면 됩니다. 이웃에 율무 짓는 분 밭에 깜부기병이 심하게 왔었는데, 이렇게 물소독해서 심으니까 거의 안 와요. 그리고 또 보면, 생기는 병이 고추 역병 들듯이 줄기며 잎이 완전히 말라 죽어버리는 병이 오는데, 그게 꼭 수확기에 와요. 아직 그게 무슨 병인지 모르겠어요.”

자료를 찾아보니 율무에 오는 병이 깜부기병과 잎마름병으로 정리 돼 있다. 아마 잎마름병일 것이다. 율무농사를 많이 짓는 연천군에서 조사한 결과 종자의 47% 정도가 잎마름병원균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종자소독으로 막을 수 있다고 하는데,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율무 잎마름병균은 파종직후 유묘입고병의 원인이 되고 종자가 주요 감염원으로서 작용한다. 후루디옥소닐 종자처리 액상수화제 2,000배액 처리시 잎마름병 감염종자에서는 97%의 높은 방제가를 보였으며, 깜부기병 감염종자에는 93.4%의 높은 방제가를 나타냈다. (장석원, 율무종자소독 요령, 농진청 농업과학기술대전)

유기농을 하는 데 있어 앞으로 해결해야 할 가장 큰 숙제는 종자소독이다. 친환경적인 방식으로 종자를 소독하는 방법을 연구하고 찾아내는 데 더 많은 노력이 기울여져야 할 것이다.

율무 농사지으면서 생기는 또 다른 문제는 이른바 도복, 쓰러짐이다. 율무는 벼목, 벼과에 속하는 작물이니까 벼랑 비슷하게 자라고 벼와 비슷한 문제가 발생한다. 풀을 못 잡아서 풀과 함께 쓰러져버리기도 하고, 거름이 너무 세게 들어가면 무성하게 자라다가 넘어져버린다. 땅심이 약할 때는 줄기만 무성하고 결실이 안 돼서 전혀 수확을 못 하기도 한다.


또 8월 ~ 9월 결실기에 날짐승 피해가 있다. 수없이 날아와서 실컷 쪼아먹어 버리면 다 지은 농사를 망치고 만다. 날짐승 다음에는 들쥐다. 쥐새끼들도 “좋은 건 알아서” 무지무지하게 까먹는다. 또 수확기를 놓치면 알곡이 땅에 떨어져 버린다.

“수확은 어떻게 하세요?”
“낫 들고 들어가서 알곡 털어 나오는 거지요. 잘 털어져요. 쌓아 놓고 트렉타로도 떨고 트럭으로도 털고, 쉽게 떨어져요.”
“수확량은요?”
“올 해 1200평 심어서 농사 되는 거 보니까 스무 가마(50kg 한 가마)쯤 나오리라 예상했는데 여덟 가마 나왔어요. 새가 다 까먹어서 쭉정이가 많아요. 평균적으로 보면 단보당 2~3가마 나온다고 보면 될 것 같은데, 농사 잘 되면 5가마까지는 나와요. 근데 그건 농사가 아주 잘 됐을 때 얘기고, 작년에는 800평 지었는데 4가마 나왔어요. 그래서 작년 같은 경우에는 율무가 아주 귀했죠. 날씨 때문에 농사가 제대로 안 됐어요.”

수확해서 도정을 하기 위해서는 돌처럼 딱딱하게 되도록 말려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도정하면서 다 깨져버리고 만다. 햇볕으로는 어림도 없고 40도 정도에서 온풍건조를 해야 한다.
날씨, 태풍, 병, 날짐승, 들짐승 피해를 다 피해서 수확한 곡식을 농부한테서 최종적으로 빼앗아 가는 건 결국 사람이다. 제값을 받고 팔 수 있어야 하는데 이게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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