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러 오락에 빠져있는 아들녀석을 꼬득였다.
어제까지 중3기말고사를 치루고 토요일 오후 학교에서 돌아오자마자 교복도 벗지 않은 체 그대도 컴퓨러 게임에 몰두하고 있다.
옆지기가 내일 휴일에 근무해야 한다며 이번주는 건너뛰고 다음주에 가자 만류하며 귀에 들어오지 않은 시시콜콜한 잔소리를 해 댔지만, 길동무 되어달라 아들녀석을 반강제적으로 차에 태우고 당진으로 향하는 서해안고속도로에 올라선다.

고속도로옆엔 노랗색꽃봉우리가 활짝 핀 모감주나무가 계절을 느끼게한다.
장마철인데도 바삐 움직이는 인파행열이다.
사춘기에 접어든 아들녀석은 한 마디 말이 없다.
이런저런 이야기을 걸어봐도 딴전이다. 매사 관심이 없는 듯 하다.
자기팔자 자기가 가지고 태어난다지만 주말농사한답시고 주말엔 딸,아들 두녀석만 달랑 남겨두고 집을 비워야하는 중독된 생활을 자신의 유리한 방향에서 합리화시키려 애써보지만 부모된 입장에 이 두놈의 앞날은 항상 그 불안감을 떨쳐 버린 수 없다.
드문드문 빨간게 익어가는 고추밭엔 이 밭 저 밭에서 농약을 살포하느라 분주하다. 흐르러지게 핀 능소화의 화려한 자태에 환호하며 다락골에 도착하니 옆 집 할아버지가 오래전부터 기다렸다는 듯 건너오신다.
"영수 왔남."
"어!안식구는 안 왔남? 키다리 아들이 대신왔구먼."
"풋고추 따지말어."
"내가 농약 쳤어.일부러 친건 아니고 내것 치다가 약이 남아서 쳤어."
"올해도 고추가 많이 말라 죽어 걱정이야, 그리고 벌래도 많이 먹고.....탄저병 예방약하고 살충제도 같이 쳤어,약 치다 보니 자네것도 한 개가 시들었더구만,내 것은 많이 절단났어,작년같이 심하면 안 되는데, 아직 장마초기인데 걱정이여!."


그 깟 푸성가리 몇개 따 먹겠다고  돈 쳐들이지 말고 .......
옆지기의 푸념석인 하소연을 뒤로 하고 서둘러 이 곳을 찾은 목적도 사실 고추에 약치는 일 때문이였다.
퍼 담아놓은 파일때문에 이론상으론 어느정도 정립되었다 자신하지만 눈 앞에 펼쳐지는 현실은 그러하지 않은게 농사일인것 같다.
지난주 2 그루가 역병징후가 있어 소거하고 토양소독을 실시했던 곳을 살펴보니 다행히 옆으로의 전이는 되지 않은 듯 하다.
새로 발생한 1그루에 대해서 자세히 관찰해 보니 지난주와 같은 병징이 나타난다. 뿌리와 줄기가 접해있는 부분에서 껍질이 부패되어 있고 줄기와 잎은 시들어 간다.
제거하고 목초액으로 토양소독을 실시한다.
곧은터에서 익힌데로 무작정따라하기한 패트병안에는 이름모를 벌래들과 나방들이 죽어있다.더러는 흰색 담배나방도 관찰된다.막걸리와 살충제를 보충해 준다.
얇게 낀 운무로 햇살은 덜 하지만 습한 무더위때문에 오후 5시가 한참 지났는데도 품어나오는 열기로 숨이 막힌다.
밭 한켠 은행나무 밑에 심어놓은 도라지,더덕밭은 잡초들의 세상이다.
망할놈의 개망초며 까마중, 바랭이 쇠비름등 이름도 생소한 온갖 잡풀들로 가득하다.
내땅,니땅 언제까지 땅따먹기를 계속해야 할 지 알 수 없는 반복되는 지루한 작업이지만 수북히 쌓이는 잡초더미에 희열도 느끼며 잠시 여유도 가져본다.
주변이 어둠속에 파 묻힌지도 모르고 산골이 온통 적막감에 사로잡혀 스산한 기운이 엄습해 져 쉼터에 �아드니 아들놈은 곤히 잠들어 있다.

 

무더위를 피해볼 요량으로 새벽 일찍 눈을 떳다.
조류피해로 두번째 파종한 검은콩도 무참히 비들기들의 먹이거리가 됐다.
이식시기를 놓쳐 키만 멀대처럼 웃자란 포트육묘를 옮겨 심고 콩밭 잡초제거를 한다. 북주기도 함께한다.
이웃집어르신이 건너오셔서 아침식사를 같이 나누자 하신다.
아침부터 무슨 실례냐며 마음만 받겠다 정중히 사양한다.
참 정겨우신 분들이시다.
해가 떠오른지 한참이 지났지만 아직도 잠에 빠져있는 아들녀석을 깨워 라면하나로 아침을 대신한다.
옆지기 생각이 간절하다.밭에서 풀을 뽑을 때도, 오이며 상추, 부추를 뜯을때도 ......일에도 능률은 오르지 않고 흥도 나지 않는다.
근무시간에 이 곳 소식이 궁금해서인지, 땡볕에 일은 열심히 하고 있는지 확인하고 싶어서인지, 약이라도 올릴 심사인지 틈틈히 휴대폰은 징징댄다.
아들놈에게 "밥 값하라" 명을 한다.
다락골 뒷뜰 아담한 장독대 옆에는 빨간 보리수열매가 탐스럽게 익어가고 있다.
작년에는 그 것들을 따 술을 담갔지만 올핸 곧은터에서 익힌데로 효소를 담그기로 한다.
스텐레스통 하나를 건내주며 "네가 빨리따면 빨리 집에 가고 그렇지 않으면 천천히 간다"한 마디 던진다.
아들놈은 억지로 끌려가는 망아지인냥 마지못해 따라나서고 나는 주변잡초제거에 몰입한다.규모때문에 예초기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지만 지금처럼 성장이 빠른 풀들을 제거할라치면 편해지려는 본성인지 구입의 유혹에 현혹되기도 한다.
하기 싫다 칭얼대는 아들놈을 달래보고 목소리 높여 윽박지르며 자신의 책무를 강조하지만 도통 집중 못하고 왔다 갔다 한다.
"아드님 당신이 할수 있는 일은 여기서는 그 일 밖에 없지않소."아들과의 지루한 눈치 보기는 계속되고 ......
절기상 소서를 지난 무더위는 기승을 부린다.


건너편 이웃집 할머니가 마늘깨 낸 자리에 한 번 심어보라 대파모를 가져오셨다.안식구가 안 온 줄 몰랐다면 점심이라도 자기네집에서 챙겼었야 했는디 미쳐 못 챙겼다고 대려 미안해 하신다.
손수 대파 심는 요령도 다 가르쳐 주시고 지난주에 수확한 마늘도 손수 엮어 주시며 엮는 요령도 일러 주신다.
너무 고맙고 감사 할 뿐이다.
돌아오는 고속도로에서 나는 허기진 배를 채우느라 복숭아를 먹고 있다.
점심무렵 지쳐 잠깐 쉼터에서 눈을 부쳤는데 그 새 어느분께서 검정비닐 봉지에 집에서 딴 복숭아 몇 개를 담아 살며시 놓고 가셨다.
새벽녘에 일어나 일하는 모습을 보고 잠깐의  휴식도 방해하고 싶지 않아 그냥 돌아 선 세심한 정에 속 덜찬 복숭아지만 지금 이 맛은 참 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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