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이 트기 전인데도 끈적끈적하다.

 바람의 움직임은 없고 하늘은 온통 먹구름 투성이다.

 들짐승들의 지져 기는 울음소리는 꽤 소란스럽다. 냇가에서 스트로폼통에 하나 가득 강모래를 퍼 담아 들고 왔다. 잠깐 인데도 땀이 비 오듯 하다. 개구리지 맹꽁인지 울음소리가 거칠어진다. 쉼터 뒤뜰에 심어져 있는 주목나무에서 올해 자란 새순을 가지런하게 잘랐다. 시기는 놓쳐버렸지만 삽목을 한번 해보고픈 미련 때문이다. 약 15cm길이로 가지런히 잘라 물에 담가 놓고 미처 손보지 못한 밭 주변 잡초제거와 옥수수 수확과 동시에 옥수수 대는 베어낸 자리에 들깨모종을 이식한다.

 스산한 바람이 분다.

 갑자기 공기가 바뀌는 느낌이 든다. 찬 기운이 일순 느껴지는 동시에 갑자기 뇌성을 동반한 소낙비가 세차게 퍼붓는다. 옆 밭에서 참깨 순지르기를 하려 오셨던 어르신부부가 서둘러 퇴장한다. 소낙비와 함께 돌풍이 불고 순식간에 펼쳐지는 광경은 딴 세상에 온 착각이 든다.

 세찬 돌풍에 감나무 가지가 짝 갈라지며 한쪽으로 누워버리고 다른 한 가지도 전봇대에 겨우 의지하며 넘어지는 것을 힘겹게 참아내고 있다. 가지마다 주렁주렁 달려 올 감을 실컷 따먹건 네. 하던 옆지기의 기대가 순식간에 무너져 내리는 순간이다.

 제때에 순지르기를 잘했다고 지나가던 분들이 듣기 좋은 소리를 많이 해주었던 검은콩 밭이 순식간에 커다란 통나무가 굴러간 모양 땅바닥에 납작 엎드려 버리고 수확기에 접어든 검은깨(흑임자)대가 낫모양처럼 ㄱ자로 꺾여 바라보는 사람의 억장이 무너지게 한다.

 망연자실, 속수무책,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소낙비 속에 원두막에 비를 피한 채 지켜보는 이의 마음은 형용할 수없는 슬픔이다.

 하늘이시여! 내가 무슨 잘못을 했기에 눈앞에서 이런 암담한 모습을 보아야만 합니까? 속에서 끓어오르는 분노를 절규해 보고픈 싶은 심정뿐이다. 손도 제대로 쓸 수 없는 초보농사꾼의 처음으로 겪는 자연의 중벌은 견디어 내기가 힘들다.



여름휴가를 얻어 고3 딸아이만 집에 남기고 옆지기와 아들놈은 동행하고 수요일 저녁 늦게 다락골로 건너왔다.

 산자락 아래 맞닿은 쉼터이지만 샌드위치판넬로 지어진 탓에 쉽게 달구어져 미쳐빠져 나가지 못한 열기로 방안은 찜질방이다.

 지난주부터 말썽을 부리던 냉장고를 소형으로 바꾸는 작업이 한밤중인데도 쉬 몸에서 발생하는 땀이 줄지 않는다.

 장마가 지나간 8월초입의 날씨는 무더위의 연속이다. 남쪽에서는 폭염주의보가 계속 발령되고 있다. 휴가 첫날 무더위를 피해볼 요령으로 아직 어둠이 물러가지 않은 농장에서 첫 번째 대학찰옥수수 수확작업을 진행한다.

 전지가위로 옥수수통을 하나씩 자르기에 정신이 팔려있는데 새벽잠이 없어졌다며 이웃집 할아버지가 낮을 들고 일을 거드신다.

 “옥수수작업은 이렇게 하던데, 며칠 전에 TV에서 봤어”, 옥수수통을 낫으로 이렇게 자르고 옥수숫대 밑동을 낫으로 이렇게 자르면 되, 옥수숫대는 저 넘어 소먹이는 사람이 가져가게 그냥 놔두게.” 하시며 연신 즐겁게 일을 도와  주신다.

“어르신 드시고 싶은 만큼 가져가세요.” 한마디 던지자 “예끼, 이 사람아 자네가 비싼 돈 들여 애써지은 농사인데 그렇게 하면 되나.”

“아니에요, 어르신 필요한 만큼 가져가 자식들도 주시고 그렇게 하세요. 우리농사의 스승은 어르신이시잖아요 어르신 필요하시면 마음껏  따 드세요.”

 250그루에서 대략 300개 이상의 옥수수통이 수확된 것 같다. 그 동안 신세진 이웃 분들께 한 바구니씩 나누어 드려도 아직도 200개 이상이 족히 남는다.

 이것들도 인천에 가지고가 주위사람들과 나누어 먹을 것이다.

“자네 그래가지고 뭘 남나, 그렇게 남 퍼주다 보면……”

“아니에요 나 한사람 노력해서 서로 나누어 먹으면 좋잖아요, 요즘 젊은 사람들은 갖다 주어도 그때만 좋아하지 먹지 않고 버릴 때 속도 상하기도 해요, 그래서 올해만큼은 퍼주는 것은 그만하자 했는데 막상 닥치니 또 가가호호 배달해주어야겠네요, 어느 땐 허무감도 들 때도 있어요.”

 “뭐하려 이 짓을 하는지 모르겠어요.” 옆지기가 지나가는 말로 한마디 던진다.


 11시 무렵부터 밖에 서 있어도 숨이 막힐 만큼 더위가 기승을 부린다. 더위를 피해 이웃들이 집안으로 모두 피서를 갔는지 들판은 한가롭다.

 차가 없어 집안에 계시는 어르신 세 분들을 꼬드겨 나름대로의 피서를 떠나기로 한다.

 면천에 들려 시원한 콩국수로 점심을 함께하고 당진군 소재 관광지를 눈요기하기로 한다. 영탑사, 영랑사에 들려 시원한 나무그늘에서 잠시 더위를 피하고 성구미 포구, 왜목마을에서 바닷바람에 생선회 한 접시 즐기고 도비도 관광단지에서 난지도 해수욕장만 바라보고 더위가 한풀 꺾인 5시 무렵에 다락골로 돌아왔다 .계획된 첫 번째 홍고추 수확을 위해서다.“돈 많이 썼지."

미안해하지는 동네어르신들을 따스한 미소로 배웅하고 옆지기와 둘이서 올 첫 홍고추수확 재미에 빠져있다. 줄 줄 흘러내리는 땀으로 온 몸이 질퍽거렸지만 하나하나 선별해 가며 완전히 익은 붉은 고추만을 따내기가 보통 힘들지가 않다.

건고추는 이웃집 두 집에서 서로 말려주시겠다 하시니 그 동안 고추말리기에 대한 걱정은 기우에 지나지 않을 것 같다.조금이라고 푸른 기가 있으면 희나리가 생긴다며 완전히 붉은 것 만져보아 촉감이 부들부들한 것을 수확하라 누누이 이웃어르신이 강조하신 내용이라 정신을 집중하여 딴다하여도 가끔은 푸른 것이 하나 둘씩 발견되곤 한다. 한 리어카 가득 홍고추를 따가지고 이웃집 하우스건조장에 건너갔다. 지푸라기를 푹신푹신하게 깔아 놓고 그 위에 검은 색 차광막을 깔아 놓고 우리를 기다리고 계신다. 고추를 겹쳐지지 않게 차광막위에 펼치고 그 위 로 다시 한 번 검은색 차광막을 한 겹 더 덮어준다. 양 쪽 문을 개방하고 4~5일 건조 시키고 나서 위에 덮은 차광막을 벗겨 내고 사방을 통풍시켜 건조시키면 새빨간 태양초 고추를 얻을 수  있다 한다. 어릴 적 시골에서는 하우스건조장이 없어 아침엔 펼치고 저녁에는 걷어드리고 하는 일을 반복했는데 건조장에서는 그런 수고는 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금요일 하루일은 쪽파 심는 것으로 일을 시작한다.

지난주 혼자서 다락골에 왔을 때 무료한 저녁시간을 보내려 가을 김장때 사용할 쪽파씨앗을 생각 없이 보기 좋게 다듬어 놓았는데 이번에 오니 그 종구에서 푸른 새싹이 한참 발생되고 있다. 쪽파종구는 파종할 때 손질하여 이식을 해야 됨에도 잠깐 깜빡 망각했었나 보다. 마늘 심었던 자리에 토양소독을 하고 완숙퇴비와 복합비료를 시비하고 종구를 심는다. 옆집어르신께서 김장용으로는 시기가 너무 빠르다며 김장용 쪽파씨앗은 자기가 줄 테니 걱정 말고 간격을 좁혀 밀식하여 파종하란다.

 태풍의 간접영향인지 습기가득 머금은 무더위가 강도를 더한다. 종구파종을 함께한 옆지기는 집안으로 도망가고...... 자랄 대로 자라 수확기가 가까워진 참깨 순지르기를 시작한다. 전자가위로 꽃의 끝부분을 절단한다, 이제 열매가 맺기 시작한 마지막부분 씨방에 튼실한 씨앗이 가득 차게 하기 위해 순을 절단해 주었어야 한다 했다. 어느 분을 절단해 주랴. 어느 분은 안 해도 된다. 의견이 분분하지만 곧은터에서 익힌 데로 작업은 진행된다. 참깨는 거름기를 줄여서 재배해야 한다는 것을 미처 깨닫지 못하고 완숙퇴비에 복합비료까지 시비하여 키가 장대처럼 커 다닥다닥 붙여야 된 열매가 듬성듬성 달려 속 빈 강정이다. 깻대속에서 파묻혀 작업하니 그 속에서 발생하는 열기 때문에 몹시 숨이 차다. 시원한 극장생각이 간절해 서둘러 작업을 강행하고 식구들과 함께 당진읍에 있는 극장에 갔다. 대학시절의 시대의 아픔을 함께 나누었던 기억을 더듬으며 슬픔에 잠긴다. “화려한 휴가”제목과는 영 어울리지 않은 시절의 아픔을 전혀 이해하지 못해 어리둥절히는 아들놈을 이해시켜드니 비록 몸은 에어컨 바람에 시원함을 감지하지만 등줄기에선 식은땀이 흥건하다. 잊혀 가던 그 시절의 영웅담을 아들에게 자랑스럽게 떠들어 대며 제법 시원해진 다락골로 돌아와 고추밭과 검은 콩밭에 약제를 살포한다. 주변 고추밭들은 역병에 감염되어 보기 흉한 모습을 더해 가지만 우리 밭만은 그 모습에서 저만치 비켜 있는 것같아 잔잔히 미소가 입가에 감돈다. 고추밭에서는 특별한 병증은 발견되지 않았으나 탄저병예방약을 위주로 약제를 살포한다. 어제 홍고추 수확 후 너무 왕성한 세력을 억누르기 위해 순지르기작업을 실시하였으나 그래도 약재 방제하기는 힘에 부친다. 검은콩 밭은 이름 모를 벌레들이 잎사귀를 갈아 먹은 흔적이 있어 살충제위주로 약재를 방제한다.

 

 불과 30분정도 내린 소낙비로 인해 그 동안의 노력들이 초토화되었다.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기억조차 하기 싫은 처참한 모습들이다. 검은깨들은 깻대의 중간부위가 사정없이 꺾이어 서로 얽혀있고 검은 콩들은 쓰러지고 넘어지고 부러지고 서로 찢어지고,....... 녹두밭은 태풍 맞은 보리밭인양 쫙 누어 버렸다. 빗줄기가 가늘어진 틈을 타서 일으켜 세우고 북돋기하고 이리 살피고 저리 들여다봐도 나오는 건 한숨뿐이다.

“죽어나가는 사람들도 허다 한데........이까짓 돌풍에 넘어졌다고 그리 상심하세요.”

이제야 농부들의 아픈 마음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겠다는 옆지기의 푸념을 양념삼아 쓰러진 콩들을 일으켜 세워주려 힘을 북돋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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