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나기가 유별나다.

 ‘장마철’이란 용어가 사라지고 ‘우기’라는 용어가 사용된다 한다.

장마가 끝났다는 애기가 나오기가 무섭게 그 말을 비웃기라도 하는 듯 하루를 멀다하고 하늘은 처음 져본 물지게 양동이가 넘쳐 흘러 물줄기가  줄줄 세 듯 멈출 줄을 모른다! 수확기에 내리는 강우는 농심을 더욱 지치게 했다. 지난 주말엔 계속되는 비바람에 농장에 대한 궁금증만 더 한 채 집에서 빈둥거렸다. 지지난 주말 소낙비와 함께 갑자기 몰아친 돌풍으로 인해 쓰러지고 찢어지고 뽑히고 꺾이고 하는 참담한 상황 속에서 쓰러진 검은콩 밭만 간신히 일으켜 세우는 시늉만 겨우 하고 더욱 굵어지는 빗줄기속에 힘들어하는 모습을 애써 외면하며 근심, 걱정, 애태움을 마음속에 갈무리하고 그곳을 철수해야 만했다. 먹고 살아가는 생활전선 속에서 간혹 가는 시내 밖 출장길에서 창가밖에 펼쳐 진 타인의 농작물들을 마치 내가 키우고 있는 작물인양 착각 속에  우둑 커니 근심어린 눈빛으로 바라만 보았다. 주말에만 방문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한탄하면서 일주일하고 삼일을 마음고생하다 하루 웬 종일 쏟아지는 비바람 속에서 하늘만 바라보며 하소연만 할 수 없어, 힘겹게 싸워 가고 있는 나의분신들은 성원하고 격려하고픈 바램에 광복절 휴일을 맞아  어둠의 카렌이 짙게 드리워져 적막감에 휩싸인 다락골로 달려왔다. 국지성 호우 영향으로 인천에서 당진으로 오는 서해안 고속도로의 주변날씨가 수시로 바뀌었다. 인천에서 평택까지 억수같이 내리던 비가 서해대교에 올라서니 빗줄기가 가늘어지기 시작하더니 다락골에 들어서니 주춤해 진다. 짐 꾸러미조차 차에 그냥 남긴 체 손전등 하나 급히 챙겨들고 밭 주변을 살펴본다. 화들짝 놀라 숨소리를 죽이는 풀벌레들로 주변이 삽시간에 조용해진다. 호우에 밭둑이 한군데가 무너져 내려있다. 내일의 작업 상황을 점검하고픈 마음에 발길을 깨밭으로 옮기니 몇 걸음 못가 신발이 푹푹 빠져 이동하기가 수월치 않다. 질퍽하게 빠지는 밭가에 서서 하늘을 쳐다본다. 별 하나 보이지 않는다.


 다행히 비는 내리지 않는다. 채 어둠이 아직 물러가지 않은 시각에 작업복을 챙겨 입으니 옆지기가 따라 나선다.작업도구를 챙겨들고 깨밭에 들어선다. 질퍽거리는 흙속에서 물기가 줄줄 흘러내리는 깻대를 하나씩 절단하여 가지런히 정리한다. 지난번 돌풍에 꺾이어버린 것들은 줄기자체가 녹아내려 버렸고 꼬투리하나 성한 게 없다. 어느 것은 꼬투리마다 새싹이 수북이 올라온 것도 있다.주변의 모든 농가들이 모두들 참깨가 참 잘되었다고 칭송했었다.

깨가 너무 좋아서 화를 입었다 했다. 한 번의 돌풍으로 꺾여버린 작물은 하루도 쉬지 않고 내리는 게릴라성 폭우로 인해 영영 소생의 길을 잃어버린 것 같다. 하나하나 정성들여 잎을 다듬고 묶기 좋게 정리하여 양지바른 곳에 펼쳐 말린다. 속 타는 농심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날씨는 변덕을 부려댄다. 사이사이 푸른하늘이 보인다 싶어 기뻐하니 어느 틈엔 검은 먹구름이 몰려와 소낙비로 돌변한다. 옆지기와 힘을 모아 비를 피해 놓으면 언제 그랬냐는 듯 햇살이 다시 돈다. 습기를 더한 무더위 때문에 심신은 지쳐간다. 갈증은 더 해지고 마셔대는 물 때문에 물배만 불러온다. 뱃속이 출렁 댄다 옆지기가 푸념을 늘어놓는다. 머리가 띵하고 얼굴엔 핏기가 없다. 원두막에 누워 버리고 푼 욕망이 자꾸 충동하지만 해야 될 일들이 눈에 보여 잠시도 쉴 여유가 없다.

 두 번째 고추수확이 예정되어 있다. 고추는 2~3번째 수확 할 때가 양도 많고 때깔이 제일 좋다고 한다. 첫 번째는 과육이 두꺼워 색깔이 검게 나온다 한다. 고추건조를 서로들 맡아 주시겠다던 분들이 얼굴조차도 보여주지 않는다. “내 코가 석자”라더니 ,계속되는 강우로 건조장마다 미처 말리지 못한 물고추로 넘쳐난다. 건조장 밖에는 골아 터져 썩어버린 고추들로 보기가 흉하다. 평소 같으면 보통 1주일이면 완전 태양초로 건조가 가능하다 하나 현재 처한 상황은 일조량 부족으로 10일이 지나도 마를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한다. 고유가로 건조기 사용을 생각하지도 않고들 있다.

 속 타는 마음을 진정할 수 없었다.

고추밭은 계속되는 강우로 인해 미처 수확 못한 홍고추들이 과육이 갈라져서(열과 현상) 그 속으로 빗물이 스며들어가 과육이 썩어버려 빨간 껍데기만 남긴 체 보기 싫게 고추 골 주변에 어지럽게 널러져 있다. 대충 보아도 나무 하나당 2-3개 이상씩이다 그래도 우리 것은 나은 것 같다. 이웃 밭은 요소비료를 웃거름 시비하여 상태가 더 안 좋아 보인다. 계속되는 빗속에서 영양분까지 공급되었고 절재하지 못하고 흡수 하다 배가 터진 것 같다. 그 집 밭 고추나무 밑에는 빛바랜 붉은 고추가 수북이 나뒹굴고 있다. 날씨를 예측할 수 없어 하도 안타까운 마음에 빗속에서 고추수확은 강행했다. 하시며 살아생전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 하시며 이웃 어르신께서 혀를 찬다. 하늘은 언제 몰려 왔는지 온통 먹구름이다. 금방이라도 한바탕 쏟아질 것만 같다.

 “결정을 해야만 한다.”

오늘 고추를 따느냐 마느냐. 만약 수확한다면 고추 건조는 어떻게 할 것이냐. 깨밭 정리작업을 임하면서 너무 지쳐 고추수확은 토요일에 하기로 잠정 결정했었다. 그러나 살펴본 고추밭 상황은 너무도 좋지 않았다. 나무마다 가득 들어찬 홍고추가 한두 개는 터져있고 그중에서 몇 개는 속이 썩어 물컹거린다. 홍고추 하나에선 탄저병 이상 징후도 발견된다. 점심을 먹은 둥 마는 둥하고 고추를 따기로 결정했다. 사태의 심각성에 여망이던 태양초 고추 만들기를 포기하고 기계건조방향으로 결정하고 이웃 어른께 알아봐 달라 말씀 드리니 그쪽도 사정이 좋지 않아 토요일이나 건조가 가능하다 하신다. 건조비용은 1근에 1500원이라신다. 옆지기는 수확하여 택배로 처갓집에 보내 처갓집 옥상에서 건조하자 했지만 어차피 한 번은 걸쳐가야 할 상황이라 판단하고 간이건조장을 만들기로 했다. 옆지기에게 고추따는것을 부탁했다.

 정오를 넘어선 날씨는 폭염 그 이상이었다.

 어여삐 여기셔 그랬는지 여우비만 살짝 뿌리고 햇볕이 강하게 내리쬔다.

고추를 심을 때부터 건조문제가 항상 숙제였다. 간이 건조장 건립를 염두에 두고 필요한 자제를 준비 했었다. 하우스용 무적비닐이며 활대며. 파이프 등을 준비했었고 여름휴가를 이용하여 건조하겠다 계획도 세웠었다. 그런데 이웃집에서 서로 말려주겠다. 하기에 슬며시 그 계획을 접은 게 불행하게도 오늘 혹독한 대가를 치루고 있다. 폭염속 땅밑에서 올라오는 열기 속에서 바람도 미동하지 않는 고추나무사이에서 숨소리까지 길게 내쉬며 고추수확하는  옆지기가 애처롭게 느껴진다.  한 번도 만들어보지 않았던 건조장을 만들려니 실수투성이고 엉성하기 짝이 없다.  햇볕이 잘 들고 바람이 잘 통하는 쉼터 뒷마당에 장소를 정하고 땅위에 함석판을 깔고 그 위에 야외용 돗자리를 쫙 깔았다. 그 위에 검은색 차광막을 펼치니 폭 2m에 길이 12m의 건조장 바닥이 완성된다. 함석 한쪽에 드릴로 구멍을 뚫고 반대쪽은 쉼터 벽체와 연결된 나무마루에 구멍을 내서 두 구멍끼리 활대를 연결한다. 그 위에 하우스용 무적비닐을  씌우니 보기에 엉성한 간이 건조장이 만들어 진다. 양쪽에 문틀을 설치하니 이젠 제법 모양이 갖추어 진다. 6시간가량 혼자 고추 따기 하던 옆지기가 짜증을 내기 시작하고 하늘은 온통 먹구름뿐이다. 벌써 주변은 어둠이 몰려온다. 마음은 급해지고 손길은 빨라진다. 서둘러 오전에 베어낸 깻대를 가지런히 정리하여 단으로 묶어 원두막에 피신시킨다. 빗방울이 하나둘씩 떨어지기 시작하고 만들어진 건조장엔 물고추가 하나둘씩 채워졌다.


22시가 넘어선 시간인데도 당진에서 인천으로 오는 서해안 고속도로엔 차들이 가득하다. 간간히 내리는 빗길 속에서 차들이 가다 서다를 반복한다.

옆지기와 둘이서 태어나서 육체적으로 가장 힘든 하루를 보낸 것 같다. 어둠이 채 물러가지 않은 새벽 4시경에 일어나 그 어둠속에 다시 묻혀버린 저녁9시까지 허기를 체우는 시간만 잠시 비우고 커피 한 잔 편히 즐길 여유도 없이 연속된 노동에 빠져 들었다. 한계상황을 극복해 보려했다.

 더우면 덥다. 추우면 춥다했다.

엄살을 피우고 현실을 부정하려 했다.

자신의 편의를 위해 자연을 무시하기로 했다. 얼음이 어는 시기엔 얼음이 얼어야 했고, 햇볕이 강한시기엔 강한 햇볕이 있어야 했다.

오늘 가마솥더위 속에서 내리쬐는 강렬한 태양빛은 나에겐 큰 위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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