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이 열리지 않는 나무
글 / 신현배 (시인, 아동문학가)
“…강화도 전등사에서 3일 기도를 마치면서 부처님께 간절히 빕니다. 은행나무에 은행이 열리지 않게 해주십시오. 백 년이고 천 년이고 앞으로 절대 은행이 열리지 않게 해주십시오….”
축원문을 듣던 사람들은 어안이 벙벙했습니다. 은행이 더 많이 열리도록 기도하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사흘 밤낮 올린 기도는 앞으로 더 이상 은행이 열리지 않게 해달라는 기도였던 것입니다.

햇 볕이 내리쬐는 가을 한낮이었습니다. 강화도 전등사 마당에는 노스님이 은행나무에 기대 앉아 있었습니다.
눈을 지그시 감은 채 나무인 양 꼼짝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전등사 마당에는 은행나무가 두 그루 있었습니다. 수백 년 묵은 아름드리 나무였습니다. 가지가지에 달린 부채 모양의 황금빛 이파리와 은행이 하늘을 덮고 있었습니다.
“스님! 노스님!”
두 볼이 발그레한 동자승 하나가 다급하게 부르며 헐레벌떡 달려왔습니다. 그래도 노스님은 미동도 하지 않고 태연히 앉아 있었습니다.
“노스님! 노스님!”
동자승은 노스님의 팔을 잡아 흔들었습니다. 그제야 노스님은 눈을 떴습니다.
“웬 수선이냐?”
“스님, 관가에서 또 사람이 다녀갔습니다.”
“관가에서 무슨 볼일로 왔다더냐?”
“은행을 바치라고 합니다. 올해는 작년보다 두 배 많은 스무 가마를 내라는 겁니다. 스님, 이게 말이 됩니까? 우리 절의 은행나무는 은행을 겨우 열 가마 따는데…. 정말 너무합니다.”
동자승은 상기된 얼굴로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노스님이 말했습니다.
“스무 가마를 바치라면 스무 가마를 바치고, 쉰 가마를 바치라면 쉰 가마를 바쳐야지. 별수 없지 않느냐?”
당시는 조선시대였습니다. 조정에서는 숭유억불 정책을 쓰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스님들은 마음대로 도성을 드나들 수 없었으며, 성을 쌓는 일에 불려나가야 했습니다. 또한 절의 논과 밭은 지방의 토호들에게 빼앗겼으며, 절에서는 관가에 가마니를 짜서 바치거나 특산물이 있으면 세금으로 바쳐야 했습니다. 나라에서 시키는 일이기 때문에 거부할 수 없었습니다.
동자승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습니다.
“스님, 어떻게 하죠? 열 가마 따는 은행을 스무 가마 따게 할 수는 없잖아요. 차라리 동네방네 다니며 은행을 거두어들여 스무 가마를 채울까요?”
“그건 안 된다. 관가에서는 우리 은행나무 열매가 다른 은행나무 열매보다 좋아서 해마다 바치라는 것 아니냐. 만일 다른 은행나무 열매를 바친다면 관가에서는 좋은 은행은 우리가 다 먹고 좋지 않은 은행을 바친다고 오해할 것이다.”
“그럼 방법이 없잖아요. 스무 가마를 바치지 않으면 경을 칠 텐데.”
동자승이 얼굴을 찡그렸습니다.
노스님은 한동안 생각에 잠겨 염주 알만 굴리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습니다.
“백련사에 좀 다녀오너라. 추송 스님을 만나면 내가 긴히 의논드릴 일이 있다고 말씀드리고 스님을 우리 절로 모셔 오너라.”
“알겠습니다, 스님.”
동자승의 얼굴이 갑자기 밝아졌습니다. 동자승은 백련사를 향해 쏜살같이 달려갔습니다.
‘내가 왜 그 생각을 못했을까? 추송 스님이라면 열 가마 따는 은행을 스무 가마 따게 만드실 수 있을 거야. 추송 스님은 바람을 부르고 비를 내리게 하신다잖아.’
추송 스님은 신통력이 있는 스님으로 알려져 있었습니다. 오래 전에 도통하여 기도 한 번으로 비구름을 움직이게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동자승이 추송 스님을 모셔 왔습니다.
노스님은 자기 방에서 추송 스님과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이윽고 노스님이 동자승을 방으로 불렀습니다.
“너는 절 안에 있는 모든 스님을 은행나무 아래로 모이게 하라. 그리고 별좌 스님(절에서 행사가 있을 때 음식을 차리는 스님)에게는 은행나무 아래에 제단을 차리라 이르고…. 곧 3일 기도를 올릴 것이다.”
“예,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동자승은 신이 났습니다.
‘야, 드디어 은행을 더 열리게 하는 기도가 시작되는구나. 사흘씩이나 기도한다면 은행이 스무 가마가 아니라 쉰 가마쯤은 열리겠지?’
동자승은 절 안을 돌아다니며 소리쳤습니다.
“노스님이 전부 은행나무 아래에 모이시래요. 은행을 더 열리게 하는 기도를 한대요.”
스님들이 은행나무 아래로 꾸역꾸역 몰려들었습니다.
은행나무 아래에는 제단이 마련되었습니다.
추송 스님이 앞자리에 앉았습니다. 모든 스님들은 제단 앞에서 기도를 올리기 시작했습니다.
하루가 지나기도 전에 이 소문은 강화도 전체에 퍼졌습니다.
“추송 스님이 기도로 신통력을 보여 준대.”
“열 가마 열리는 은행을 스무 가마 열리게 한다는 거야.”
“볼 만하겠는데. 그 좋은 구경거리를 놓칠 수 없지.”
강화도 사람들은 전등사로 모여들었습니다. 절 마당은 발 디딜 틈이 없었습니다.
이 소문은 관가에까지 전해졌습니다. 아전 한 사람이 부하 몇 사람을 데리고 절에 나타났습니다.
아전은 노스님을 불러 거만하게 물었습니다.
“지금 무엇 때문에 기도를 하는 거요? 가마니를 짜서 바쳐라, 은행을 바쳐라 하니까, 관가를 저주하는 기도를 하는 것 아니오?”
“당치않은 말씀이십니다. 우리는 관가에 바칠 은행이 더 많이 열리도록 기도하는 중인걸요.”
노스님의 말에 아전은 너털웃음을 터뜨렸습니다.
“하하하, 뭐라고요? 은행이 더 많이 열리게 해달라고 기도한다고요? 이런 정신 나간 사람들 봤나. 기도한다고 이까짓 은행나무에 은행이 더 열릴 것 같아?”
아전은 그렇게 소리치며 은행나무 밑동을 발길로 걷어찼습니다.
그 때였습니다. 아전이 갑자기 비명을 지르며 땅으로 나동그라졌습니다. 아전은 손바닥으로 얼굴을 감싸고 있었습니다.
“아이고, 내 눈…. 오른쪽 눈이 안 보여!”
아전은 심하게 얼굴을 일그러뜨렸습니다. 그의 오른쪽 눈은 퉁퉁 부어 있었습니다.
아전이 노스님을 비웃고 은행나무 밑동을 걷어찼다가 오른쪽 눈이 멀었다는 소문은 온 동네에 퍼졌습니다. 이 소문 때문에 더 많은 사람들이 전등사로 몰려들었습니다.
기도회는 사흘 밤낮 계속되었습니다.
마지막 날 저녁, 추송 스님은 기도회를 마치기에 앞서 축원문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축원문은 부처님에게 자기의 소원이 이루어지게 해주기를 비는 내용의 글이었습니다.
“…강화도 전등사에서 3일 기도를 마치면서 부처님께 간절히 빕니다. 은행나무에 은행이 열리지 않게 해주십시오. 백 년이고 천 년이고 앞으로 절대 은행이 열리지 않게 해주십시오….”
축원문을 듣던 사람들은 어안이 벙벙했습니다. 은행이 더 많이 열리도록 기도하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사흘 밤낮 올린 기도는 앞으로 더 이상 은행이 열리지 않게 해달라는 기도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축원문을 다 읽었을 때였습니다. 갑자기 이상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주위가 칠흑같이 어두워지더니 천둥 번개가 치면서 우박과 비가 쏟아지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은행나무에 달려 있던 은행들이 후드득 떨어졌습니다.
날이 갠 것은 잠시 뒤였습니다. 정신을 차리고 일어선 사람들은 추송 스님과 노스님, 동자승이 사라지고 없다는 것을 알아차렸습니다.
“아니, 그 사이에 어디 갔지?”
아무리 찾아보아도 세 사람은 찾을 수 없었습니다.
이런 일이 있고부터 전등사 은행나무는 은행이 열리지 않게 되었습니다. 은행이 열리지 않으니 은행을 바치라는 관가의 주문도 사라졌습니다.
언제부턴가 사람들은 이 은행나무 두 그루를 ‘노승나무’, ‘동자승나무’라고 부르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전등사 대조루 앞에 잎이 무성한 채 서 있습니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