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장에 삿갓 쓰고 방랑 삼천리/흰 구름 뜬 고개 넘어 가는 객이 누구냐/열두 대문 문간방에 걸식을 하며/술 한 잔에 시 한 수로 떠나가는 김삿갓.’ 흘러간 노래 ‘방랑시인 김삿갓’이다. 조선 후기의 불우한 풍류객 김병연(1807∼1863)은 노래가사처럼 김삿갓이란 별명으로 전국을 방랑한다. 술 한 잔 앞에 놓고 시 한 수로 세상을 풍자하던 그도 가는 세월은 어쩔 수 없었다. 54세 때인 1861년 지금의 전라남도 이서면 동복천 상류에 있는 화순적벽 앞에서 그대로 쓰러져 버린다. 인심 좋은 어느 양반이 구해 주었으나 다시 방랑벽이 도져 3년을 더 돌아다니다가 이곳으로 되돌아와 마지막을 맞는다. 1985년 천하 절경 적벽은 동복호라는 수원지가 완성되면서 대부분 물에 잠겨 버렸으니 김삿갓의 여행길은 다시 찾아갈 수도 없게 되었다. 적벽으로 가는 길목, 오늘날 화순군 이서면 소재지가 있는 야사리에는 거대한 은행나무 한 그루가 구름에 달 가듯이 방랑으로 평생을 보낸 한 시인에의 추억을 되살려 볼 수 있게 한다. 김삿갓이 오가는 길에 방랑생활로 지친 노구를 나무에 기대고 쉰밥 한 덩이라도 얻어먹었을 것이라고 짐작되는 나무다. 이 은행나무는 조선 성종(1469∼1494) 때쯤 마을에 사람이 처음 들어오면서 심은 나무라고 전해지니 지금 나이는 약 500살이다. 그에 걸맞게 높이 27m, 둘레가 자그마치 여섯 아름(9.1m)에 이른다. 김삿갓이 쉬어 갈 당시에도 350년은 되었을 터, 웅장함은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덩치는 이렇게 거대해도 이 나무는 안심천이란 동복호로 흘러드는 개울 가장자리에서 민가 앞마당의 좁디좁은 공간을 겨우 확보하여 힘겹게 살아가고 있다. 종자도 맺어야 하는 암나무여서 여느 나무보다 힘이 배는 더 든다. 그러나 이해관계에 얽힌 사람들은 이런 저런 이유로 땅 양보를 해주지 않아 그녀에게 주어진 공간은 불과 314㎡가 전부다. 가지 뻗음이 동서 24.3m, 남북 27.7m이니 잎과 가지가 차지한 공중 공간이 훨씬 넓다. 대부분의 나뭇가지는 이웃집 담장을 넘어 겨우 버티고 있는 셈이다. 이렇게 고목으로 살아남은 사연도 매우 특별하다. 지금의 줄기는 진짜 줄기가 아니다. 썩어 없어져 버린 원줄기 주위로 돋아난 맹아가 자라 완전히 둘러싸서 줄기처럼 된 것이다. 그래서 여느 나무처럼 표면이 매끄러운 것이 아니라 불규칙한 굵은 주름이 세로로 깊게 패여 있다. 은행나무의 줄기에 흔히 돋아나는 맹아는 고목이 되어도 여전하며, 이렇게 맹아지로 줄기를 둘러싸고 있는 은행나무 고목은 전국 어디에서나 흔히 만날 수 있다. 안이 썩어버렸으니 당연히 비어 있어야 한다. 그래야 도깨비에서 귀신이야기까지 나무전설이 만들어지고 지나온 세월만큼이나 신비로워 보일 터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전국 대부분의 고목과 마찬가지로, 다른 나라에서는 벌써 중단해 버린 외과수술이란 그럴싸한 이름으로 공간을 완전히 틀어막아 버렸다. 도깨비도 귀신도 살림집이 없어졌으니 나무에 얽힌 전설은 대부분 사라져 버렸다. 이 은행나무에는 맹아지가 자라서 둘러싼 특징 이외에 또 다른 특별함, 유주(乳柱)가 달려 있다. 이름대로라면 아이를 여럿 기르고 난 여인의 늘어진 기둥 모양 젖이란 뜻이다. 은행나무에서만 볼 수 있는 현상이고 왜 생기는지 명확한 이유가 알려져 있지 않지만 공기뿌리의 역할을 할 것이라고 짐작한다. 유주는 그대로 있는 것이 아니라 차츰 자라 땅에 닿으면 그곳에서 뿌리가 나오기도 한다. 이 나무의 유주는 아직 짧지만 눈에 띄게 잘 자라고 있으며 작은 방망이 모양에서 남자의 성기를 그대로 닮은 것까지 있다. 오랫동안 당산목으로 마을의 안녕과 풍년을 비는 제사를 올리는 나무였다. 실제로는 바람결이 큰 나무를 지나갈 때 나는 소리겠지만, 나라에 큰 일이 있을 때는 우는 소리를 내어 알렸다고도 한다. 생뚱맞게 최근에 세워진 피뢰침 하나가 그를 지켜주는 진짜 수호천사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