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내려가려고?”

 

 “내려가 봐야지, 배추밭에 웃거름도 주어야하고 쪽파도 심어야하고 내일 비도 많이 내린다는데 고추 말리는 것도 확인해야 되잖아”

 

 “미쳤다. 미쳤어. 애들 보기 미안하지도 않아......

두 집구석 살림하려니 이번엔 이쪽이 엉망이네. 내년엔 그놈의 고추만 심어봐라......”

 

 “고추는 왜.......?

당신은 걱정도 안 돼, 궁금하지도 않아? “

 

”그 놈의 고추 때문에 한주도 빠짐없이 내려가야만 하잖아, 한번 내려 갈 때마다 기름 값에 도로비가 1주일마다 4만원씩 한 달에 길에 까는 돈이 얼마나 되는 줄 알아.

 생각 좀 해, 생각 좀. 내년엔 딸 새끼 대학 간다! 대학 가 ,정신 차려 이 사람아! “


 주말 오후4시 서해안 고속도로는 예상을 크게 빗나가 막힘없이 질주할 수 있었다.

 정모를 마치고 다락골에 들렸던 지난주에는 평소 당진IC에서 인천 집까지 한 시간 남짓이면 주행할 수 있던 길을 벌초를 겸한 성묘인파들로 인해 고속도로가 주차장이 되다시피 하여 6시간을 넘기고서야 당진에서 인천으로 기나긴 여정을 마칠 수 있었다.

 1주일 사이로 접어든 추석명절로 인해 미리 다녀오려는 성묘 길로 고속도로의 극심한 정체를 예상했지만 태풍“나리”의 영향으로 강한바람과 집중호우가 예상된다는 예보 때문에 나들이를 자재한 듯싶다. 비를 머금은 구름이 밀려와 온통 잿빛 하늘로 변해버린 다락골에 들어서니 명절에 차례 상에 올리려는지 동네 이웃집에선 밤 수확에 신이 나있다.

 심심찮게 내려대는 가을비로 과일의 단맛은 덜 했지만 1주일 사이에 배추와 무가 훌쩍 커 있다. 지난주 네 번째 수확한 고추가 일사량 부족으로 위험수위에 처해있다. 그나마 이웃어른들이 볕이 잘 들고 지푸라기가 많이 깔려진 하우스로 옮겨 관리해 주셔서 걱정을 한시름 덜 수 있었다.“고추농사는 1등 했는데 말리는 것은 영 신통치 않다”고 돌보아주신 어르신이 칭찬 아닌 칭찬을 늘어놓으신다. 옆지기와 어르신이 고추살피기에 여념이 없는 사이 살며시 하우스를 빠져나와 배추밭을 들여다보았다.

 배춧잎들이 구멍이 숭숭 뚫어져있고 어느 것은 잎줄기만 앙상했다. 

 자세히 관찰해 보니 검은색 민달팽이들이 배추포기마다 한두 마리씩 진 을치고 어린잎들을  갉아 먹고 있다. 생각할 여유도 없이 차를 집어타고 당진읍 농약 상으로 달려가 내용을 설명했다.

 “올해는 습하고 비가 오는 날이 많아서 달팽이들이 많이 발생한다.” 며 퇴치 약을 건네준다. 밭이 그동안 내린 비로 축축 할 테니 비닐을 작은 조각으로 작게 잘라서 배추포기 옆에 깔고 그 위에 풀 벌래 똥처럼 생긴 약제를 서너 개씩 올려놓으라. 일러준다. 어둠은 밀려들고 금방이라도 비는 퍼 부을 것만 같다. 급해지는 마음을 애써 진정시키며 비닐을 잘게 잘라 배추포기 옆에 반듯하게 깔고 한 포기 한 포기씩 처방해 나간다. 주변이 어둠속에 묻혀 버려 사물이 분간하기도 쉽지 않다.

 “그만하고 내일하셔요.”옆지기의 성화도 당장 애쓴 보람이 물거품만 될 것 같은 조바심에 한 포기 한포기가 소중하고 애처로워 쉽게 일이 손에서 떠나질 않는다.


 금방이라도 내릴 것만 같았던 비는 다음날 아침까지 참아 주었다.

 스산한 새벽 가을바람을 마시며 어제 처방한 배추밭을 살펴보니 포기마다 1-2마리 많은 곳은 다섯 마리까지 방제 약에 유인되어 힘을 못 쓰고 축 늘어져있다. 몇 곳에서는 아직도 잎사귀를 도려내 먹는 놈들도 더러 발견된다.

 비가 언제 시작될지 몰라 서둘러 작업을 강행한다.

 2주전에 정식한 배추에 1차 웃거름을 시비한다. 포기와 포기사이에 구멍을 뚫고 요소비료 한 스푼씩 그 구멍 안으로 투여한다. 앉아서 오리걸음 하려드니 보통 힘든 일이 아니다. 본 잎이 3-4개씩 자라 무밭도 한 구멍에 1-2개씩만 남기고 솎아주고 뿌리에 안 닿게 웃거름을 시비하고 북주기를 해 준다.

 오전 10시가 넘어서려는 시간에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옆지기가 아침 일찍부터 잡초를 제거해 놓은 곳에 ‘고자리 파리’ 방제 약을 뿌리고 골을 만들어 쪽파종구를 파종한다. 유달리 쪽파 데침을 좋아하는 까닭에 눈에 띄는 빈터에는 모조리 쪽파종구를 심는다. 빗줄기는 시간의 흐름에 비례하여 점점 굵어지고 있다. 마을 주변은 미처 끝나지 못한 조상님들 묘의 벌초를 마치기 위해 빗속에서도 예초기 울음소리는 그칠질 않는다. 새싹이 보기 좋게 올라온 알타리무밭과 갓을 심어놓은 밭에도 김매기 겸 솎아주기을 끝내니 시계바늘은 오후 2시를 넘어서고 있다.


 참아주는 김에 하루만 더 참아 주었으면 달팽이를 완전히 박멸할 수 있었을 텐데......

 조금은 아쉽고 긴 여운이 떠나지 않았지만 삶의 근심과 걱정을 떨쳐내고 한 가지 일에 집중할 수 있는 행복을 누렸다. 비가 내려 달팽이로 인한 걱정이 한 가지 더 늘어났지만 1주일 내내  생동하는 모습만을 떠올리며......

 다음 주말이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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