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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월의 문이 열리는 날부터 비가 내린다.

 강하게 내리는 비는 아니지만 추적추적 쉼 없이 계속 내린다. 아스팔트 옆 보도블록 위, 미쳐 못 거두어드린 물고추에도 주룩주룩 비가 내린다. 빗물에 파묻혀 제 빛깔을 잃어버린 고추들을 바라보려니 괜히 기분이 우울해 진다. 사정을 이해하려 들어도 이맛살이 저절로 찌푸려진다. 계속되던 8월의 불볕더위도 처서를 기점으로 기세가 한풀 꺾이고 새벽녘엔 이불이 그리워 무의식적으로 손이 내밀어진다. 

 이틀 전 종묘상에서 배추모종을 구입했다.

 종묘상에서 구입하여 2-3일 동안 노지적응기간을 가져야 좋다기에 주말정식을 위해 준비한 것이다. 작년에는 김장배추를 속노랑 배추만 심었더니 김치가 쉬 물러져 저장성이 떨어진다는 말에 일반 흰 배추와 속노랑 배추를 반반씩 심기로 하고 몇 군데 종묘상을 발품 팔아 뒤져보았지만 인천근처 종묘상서 판매되고 있는 품종은 속노랑 배가 아니면 CR배추였다. 혹시 당진에선 흰 배추를 구입할 수 있을까 하는 기대 속에 105구 1판에 8000원씩 주고 속노랑 배추 3판을 구입했던 것이다.

 


“빗길조심, 감속운행.”

 그칠 줄 모르는 빗줄기 속에서도 서해안고속도로엔 평소와는 다르게 차들이 가득하다. 다가오는 명절을 맞아 조상 묘에 벌초하려가는 후손들의 정성이 이어지는 것 같다.

 당진읍 종묘상을 찾았다.

 혹시 속노랑 배추가 아닌 일반 흰 배추가 있지 않겠나 하는 기대 속에서 몇 곳을 수소문 해 보았지만 가는 곳마다 허탕 질이다. 소비자들이 찾질 않아 육묘업자들이 모를 기르지 않는다는 말에 하는 수없이 속노랑 배추로 한판을 더 구입했다. 같은 품종의 배추가 당진에선 105구 한판에 5000원이라 한다. 한 판에 3000원씩 손해 보았다고 구시렁대는 옆지기의 살림솜씨를 감탄하며 다락골에 들어서니 어느새 어둠이 점령군 되어 밀려들고 있다.

 지난주에 파종했던 무씨의 싹이 움트는 것이 영 신통찮아 보인다. 보통 일주일이면 어느 정도의 모양을 갗추었을만도 한데 듬성듬성 싹이 올라와있다. 약 60%정도밖에 발아가 안 되었다. 국내유수의 종묘회사의 종자를 구입하여 파종하였는데 무엇이 잘못되었을까 하는 의구심에 인사도 드릴 겸 이웃집에 건너가 여쭈어보니 종자가 묵은 것이어서 발아율이 떨어졌다며 자기네 심고 남은 종자를 나누어 주시며 싹이 안 올라온 곳에 다시 파종하라 하신다. 어리벙벙한 가운데 나누어 주신 씨앗을 서둘러 파종하고 갓씨를 파종할 목적으로 미리 일구어 놓았던 곳에 적갓씨를 파종했다. 마저 알티리무도 파종할까 하였으나 일찍 심으면 무에 심이 생긴다고  파종을 다음으로 늦추라고 이웃 어르신이 말씀하셔 거기에 따르기로 한다. 의구심이 들어 지난주에 파종한 종자의 곁 표지를 살펴보니 포장일자:07년6월, 발아율:85%이상이라 선명히 인쇄되어 있다. 종자자체의 하자일까 파종과정에서 발생된 문제일까 생각이 많아진다.

 전에는 들리지 않던 귀뚜라미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비는 밤을 새워 그 다음날까지도 계속 뿌려 댄다.

 빗줄기도 굶어지고 밭 도랑물 흐르는 소리가 점차 세차진다. 밭에 들어가 일을 할 수 있는 여건이 갈수록 악화된다. 구입해 놓은 배추 모종 때문에 조바심을 떨쳐 버릴 순 없지만 마지막 수확한 옥수수로 하모니카 불며 생활의 활력을 북돋는다. 오랜만에 맛보는 생활의 여유로움이다. 비오는 날 툇마루나 원두막에 앉아 아무 생각 없이 우둑 커니 주변 사물을 바라보는 이런 분위기와 정취가 좋다. 모든 잡념을 벗어 던지고 생각 없이 눈동자를 움직인다. 물방울이 내려 앉아 축 늘어진 주인 비운 거미집이 나무사이에 걸려있다.

 툭 툭 툭 툭…….

 떨어지는 처마 끝 낙숫물에 삶의 고뇌와 걱정을 떨쳐내고 마음은 고요의 바다를 항해한다.   녹색이 절정을 이룬 나무 잎사귀들은 이젠 탈색을 준비하고 언제부터 피었는지 뒷동산에는 하야케 핀 참취꽃들로 가득하다. 올해 심은  더덕들에게 달린 둥근 종모양의 꽃에선 “딸랑딸랑” 종소리가 금방이라도 울려 퍼 질것만 같다.

 한참 여물어 가는 은행알 하나가 슬레이트 지붕위로 “탁”떨어지며 일순간 적막감에서 빠져 나온다.옆지기는 직접 따온 들깻잎으로 장아찌를 담근다, 쪽파김치를 담근다, 부추김치를 만든다, 혼자만 바쁘다.

 

 

 

 


 참깨 배어 낸 곳에 비닐 멀칭을 새롭게 다시하고 배추모종을 심기로 했던 계획은 수정이 불가피하다. 주말에 만 올 수 밖에 없는 상황과 계속 내리는 비로 흙이 질퍽거려 도저히 작업을 수행할 상황이 못 된다.무작정 비 그치기를 기다릴 여유도 그리 많이 남아있지 않다. 오전 내내 원두막에 쪼그리고 앉아 분위기에 취해있었다. 인천으로 귀가할 시간은 다가오고 그렇다고 애써 구입해온 배추모종을 내버려 둘 수도 없다. 다행인건 빗줄기가 상당히 가늘어졌다. 시간에 쫓기여 이식 작업을 강행하기로 한다. 옆지기와 비옷으로 갈아입고 작업 상황을 점검한다. 토질이 모래가 많이 섞여있어 질퍽거리는 흙에 발은 빠져들지만 2주전에 미리 채전을 일구어 놓은 탓에 작업하는 데는 그리 큰 어려움이 없어 보인다. 참깨를 재배할 때 사용했던 멀칭비닐을 최대한 이용하기로 하고 이랑을 재정비한다. 봄철 고추모를 이식할 때 사용했던 구멍 내는 기구의 거리간격을 40cm로 고정시키고 앞서 나가며 구멍을 내자 옆지기가 그 구멍 속에 포트에서 모종을 정성껏 꺼내어 하나씩 이식시킨다.

 구멍 내는 기구에 흙이 달라붙어 작업을 방해한다.

 작년 처음 심어 본 배추농사의 기억이 생생이 떠오른다. 작년에는 고추에 역병이 심하게 발생했다. 장마가 끝난 후 역병에 감염되어 볼상 사납게 말라죽은 고추밭이 많았다. 모두들 병든 고추대을 철거하고 그곳에 김장배추들을 심었다. 재작년 기생충 발견으로 인해 중국 수입김치 파동이 일어나면서 배추 값이 폭등했었다. 아마도 그때를 생각하며 배추를 심었으리라...... 역병의 영향으로 수급이 달린 고추 값은 좋았지만 수확철의 배추는 그냥 가져가 먹어만 달라는 농부들의 하소연도 외면하고 밭에서 수확도 못한 체 무지기수가 얼어 썩어 버려 농사짓는 이들의 마음을 멍들게 했다. 작년에는 가을 가뭄도 심했다. 이식한 날부터 계속 물을 뿌려 주어야했다. 매 주말 들릴 때마다 첫 번째 하는 일이 배추밭 물 주기였다. 올해는 비가 내려 그 수고는 덜 성싶다.

 

 

 

 


 김장배추 400여 포기를 심었다.

 일 년에 고작해야 많이 먹으면 30포기 정도 김치를 먹는다. 그 나머지는 믿어주고 성원해 주신 분들께 나눔을 할 것이다.

“내가 직접 키운 것”.“우리가 직접 농사 진 것”이라며 나눔할 때 좋아하고 감사하던 모습을 되새긴다. 농약을 사용 않고 작물을 재배할 수 있는 여건이 지금 처한 현실에선 쉽지가 않다.

  최대한의 농약사용을 자제하고 꼭 필요시엔 정해진 용량을 준수하고 최소한의 화학비료만을 시비하여 내가 거리낌 없이 마음대로 먹을 수 있는 배추를 키워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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