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명한 날이다.

 소망하던 푸르른 날이다. 절기상 백로란다.

 거래처 직원의 예식이 있어 정오 무렵 식장에 들린다. 예정된 일이 있어 마음만 산란하다. 여기저기서 아는 체들을 한다. 머물다 가라 손을 붙잡는다.

 손사래 치며 눈인사만 나눈 체 서둘러 자릴 피한다.

 고속도로마다 차들로 붐빈다. 명절을 맞아 서둘러 벌초와 성묘를 하려는 행렬들로 이어진다.순간순간 짜증이 낫다가 금세 설래이는 마음으로 바뀐다. 인천에서 출발해서 4시간 반 만에 충북 옥천 이원 묘목 센터에 도착하니 저녁6시가 가까운 시간이다.

 이원으로 향하는 여정은 그리 순탄치만은 않았다.

 고3딸아이의 2학기 수시모집이 눈앞에 다가와 있고, 1주일에 주말에만 갈 수 있는 주말농군의 특성상 거두어 드려야 할 고추며 제때 파종해야할 씨앗으로 인해 옆지기의 반대가 심했다. 보고 싶은 얼굴들 때문에 설득한 보람이 있어 옆지기를 동행하고 길을 떠날 수 있었다.

 만남의 시간이 다가올수록 가슴의 두근거림의 강도는 더해졌다.

 벌써 마당에는 먼저 오신 분들의 차들로 꽉 들어차 있었다. 처음 참가하는 정모라 가슴은 두근거리고 어색하고 낯설던 모습은 마당에 들어서기가 무섭게 설렘과 반가움으로 상쇄되어 버리고 만다. 지난 초여름 사산번개모임에서 마음을 나누었던 분들과 조우하고 처음대하는 분들과 만남의 기쁨을 즐긴다. 지난날의 발자취와 앞으로의 나갈 방향등 정해진 프로그램은 자정 즈음에 마무리 된다.차속에 누워 잠시 휴식을 취한다.

 날이 바뀌어 시계바늘이 2시 30분을 가리키고 있다. 옆지기가 당진으로 이동하자 보챈다.   헤어짐의 아쉬움을 뒤로 남기고 시동키를 걸고 오던 길을 따라 유턴한다.

 한 밤중 세시경의 고속도로는 텅 비어 있다.

 낮에 꽉 막히었던 것과 비교하니 너무나 대비된다. 가끔 화물을 운반하는 차들만 스쳐지나간다. 너무 한적해 으스스한 느낌이 휘감아 돈다. 속도계의 눈금이 자꾸 규정 속도를 초과한다. 옆지가는 몹시도 피곤했는지 코까지 드르렁대다. 경부고속도로, 안성-평택 간 고속도로, 서해안 고속도로를 이여 달려 당진 다락골에 도착하니 새벽 4시20분경이다.


 옆지기의 땅이 내려앉을 것 같은  한숨소리에 잠을 깬다.

 몸은 한대 얻어맞는 듯 찌뿌듯하고 눈은 쉽게 떨어지지가 않는다.

 아침부터 무슨 청승맞을 한숨이냐고 화를 내며 주섬주섬 작업복을 챙겨 입고 집밖에 나서니 옆지기가 고추건조장에서 한숨만 푹 푹 쉬고 있다.

 기가 쭉 빠져나가는 느낌이 든다.

 건조장을 살펴보니 고추들이 마치 탄저병에 감염된 고추마냥 모두가 썩어가고 있다.2주전에 수확하여 지난주 방문 때만도 너무 좋게 말라가고 있었는데......

 어이가 없다.

 오늘 잘 마른 건 고추를 비닐봉투에 차곡차곡  챙겨 둘 수 있겠구나 하던 기대는 지난주 계속 뿌려대던 비로 인해 산산이 무너졌다. 지난주 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햇볕한번 들지 않고 줄기차게 비가 내렸다 했다. 부슬부슬 계속 내렸다했다. 이웃들은 썩어가는 것들을 그냥 보고만 있을 수 없어 옆 동네 기계건조장으로 서둘러 옮겼다며 미쳐 우리 네 것은 신경 못써 주셨다 미안해들 한다. 때깔 좋던 3번째 수확한 것들이 손 하나 써 볼 여력도 없이 썩어 버렸다. 하루만 햇볕을 주었으면 아무런 피해가 없었을 텐데......  

 그냥 방치해야만 했던 현실이 너무나 아쉽게 다가왔다.

  4번째 고추따길한다.

 옆지기는 보기도 싫다고 저만치서 딴전을 피운다.

 상한 속내를 애써 감추며 고추 따기에 열중한다. 터져 썩어버린 고추들이 고추 골에 어지럽게 널려있다. 꼭지가 빠져버린 고추들이 볼 상 사납게 느껴진다. 다행한 것은 아직 탄저병 기미가 보이지 않아 조그마한 위안이 된다. 언제 동참했는지 옆지기도 묵묵히 고추를 수확하고 있다. 기계건조장으로 다 가버린 슬픈 사연 때문에 옆집 건조장들은 떵 비어 있다. 오늘도 오전 내내 옆지기와 둘이서 따낸 물고추는 대략 70kg에 육박한다. 이번 건조는 시설이 좋은 이웃집 건조장을 사용하기로 한다. 곱게 펼쳐 널고 그 위에 검정색 차광막으로 빛을 가려 준다.


 지난주에 모종을 구입하여 이식했던  김장배추는 활착이 잘 된 것 같다. 그중 몇 개는 잎사귀를 벌레들이 먹어치워 잎줄기만 앙상하다. 지난번엔 잘 안 올라왔던 무씨 새싹도 보기 좋게 올라와있다. 아마 지난번 발아가 덜 된 이유는 씨앗을 너무 깊게 심었던 게 원인인 것 같다.

  1차로 2-3개만 남기고 솎아내고 북주기를 해 준다.

  미리 일구어 놓았던 곳에 알타리무를 파종하고 영양제에 목초액을 혼용하고 벼룩잎벌레 방제 약을 섞어 배추밭에 살포한다.

  제법 꼬투리가 달리기 시작한 검은콩 밭엔 노린재들이 진을 치고 막 생긴 꼬투리에 주둥이를 쳐 박고 열심히 진액을 뽑아먹고 있다. 서둘러 방제 약을 살포하고 오전 내내 수확한 고추밭에 탄저병예방약을 살포하니 어느새 주변은 어두워지기 시작한다. 깨 털기를 마친 옆지기가 집에 남겨둔 애들 보기 미안하다 그만 철수하자 자꾸 강요한다.

 쪽파씨앗도 심어야 하고 도라지 밭과 더덕 밭은 잡초 가득한데....... 이놈들과의 전쟁은 다음 주로 미루기로 한다.

 아마도 오늘 귀갓길은 무척이나 힘들고 지루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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