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을 만지면 생활이 즐거워져요.”

 


알람시계를 새벽 5시 30분에 맞추어 놓았지만 4시부터 무의식적으로 자주 잠에서 깨진다.

뒤척이며 다시 잠을 청해 보지만 깊은 잠에 빠져들지 않는다.

4시부터 옆지기는 기상하여 챙길게 무엇이 있다고 혼자서 주변을 서성이고 있다.

아직도 깊은 잠에서 헤매는 고3딸아이와 중3아들 녀석을 깨워주고 6시가 조금 못되는 시간에 홀로 아파트를 빠져 나왔다.

차에 몸을 의지하고 집에서 15분 거리인 연안부두 방향으로 차를 몰았다.

하늘은 청명했다.

스산한 가을바람이 간간히 불어오고 찬 기운이 피부에 와 닿는다.

새벽녘에 들린 연안부두 도매시장은 한가했다.

간간히 활어를 운반중인 수조 차만 급히 왔다 갔다 한다.

상점주인도 기억 못하는 단골집에 들려 가리비. 새우,  전어, 꽃게 등의 싱싱한 해산물을 구입한다. 하얀 스치로품 박스에 차곡차곡 채워 넣고 그 위에 얼음을 쏟아 부은 다음 포장을 하고 있을 즈음 주머니 속 휴대전화에서 진동소리가 요란하다.

“이모부! 어디세요?”

6시30분에 함께 출발하기로 한 처제네 집에서 온 전화였다.

“연안부두어시장인데”

“저희는 지금 이모부 댁으로 갈 거예요.”

“그래, 알았다. 빨리 일보고 갈 거니까. 이모한테 전화해서 짐 챙겨들고 아파트 앞으로 나와 있으려 하렴.”


해 돋는 시각, 푸른색 캔버스위에 황금색과 가을 색으로 덧칠되어 그려지고 있는 자연의 변화를 감상하며 서해안 고속도로를 질주한다.

조직의 부름을 받고.......

지난 개천절 아침이었다.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생각 없이 컴퓨터 앞에 앉았다.

카페 문을 열고 들어서니 카페지기님께서 주신 쪽지 하나가 온 신경을 잡아맨다.

“웬 일이실까?”

농사를 지으시는 부모님 밑에서 자랐지만 농사를 지을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팔순의 노모가 아직도 노구를 이끌고 농사를 짓고 있지만 나의 일이 아닐 것이라는 착각 속에서 고향을 등지고 20여년을 살아왔다. 재작년 6월 예기치 못한 옆지기의 돌출행동으로 당진읍 다락골에 조그마한 터를 마련하고도 선뜻 어떻게 할지 몰라 망설였다.

흙에 대한 동경은 늘 가지고 있었지만 현실적으로 농사를 짓는다는 게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었다.

 작년 봄 마련한 그 터에 감자를 심었다.

옛 생각을 더듬고 주변 분들에게 물어보고 해서 나와 옆지기 그리고 처제, 동서 우리 넷은 작은 흥분에 휩싸여 신나게 태어나서 처음으로 감자를 심었다.

그렇게 대략 100여평을 넘게 심었다.

농사는 씨앗만 심어 놓으면 다 되는 줄 알았다.

기다려도 소원해도 새싹은 올라와 주질 않았다.

감자100평 심어 달랑 감자 아홉개........

열무도 심었고 참깨도 심어보았다.

심었던 작물마다 지금도 가슴속 깊은 곳에 갈무리해 둔 소중한 실패를 맛보았다.

노력을 하지 않은 것도 아니었다.

좋다는 비료는 다 사 날랐고 남에게 욕 먹을까봐 밭엔 잡초하나 보이지 않게 열심히 일했다.

작년8월 거듭되는 실패 속에서 우연히 “곧은터 사람들”을 만났다.

“오랜 가뭄에 단비” 이 말이 정말 실감났다.

디카도 하나 장만했다.

작문시간이 제일 싫었던 기억을 지우려 카페에 글도 올렸다.

쪽지를 열었다.

전화통화를 하시고 싶다면 전화번호를 남겨 두셨다.

“무슨 일일까?”

“내가 무슨 실수라도 했나!”

오만 가지 생각이 주변을 휘감았다.

작년 카페 가입 후부터 지금까지 주고받은 쪽지하나 전화한통 없이 올해 초여름 서산모임에서나 옥천정모때도 얼굴만 잠깐 뵙고 대화다운 대화도 한 마디 주고받지 못 했는데.....

“여보세요. 주인님이세요. 저는 다락골 은행나무입니다.”

“안녕하세요. 다락골은행나무님, 비익조입니다.”

그 전날 카페에 올려놓은 글을 보고 쪽지를 주셨다했다.

올 여름 궂은 날씨로 다른 회원님들 주말농장의 채소들이 생육작황이 좋지 않다며 저희 집 채소는 잘 가꾸었다고 칭찬해 주시며 TV출연을 한 번 해보면 어쩠게냐고 물어 오신다.

MBCTV DMB에 ‘동호회2.0’이라는 프로그램이 있는데 여러 인터넷 동호회 중에서 활동이 우수한 카페를 찾아 소개시켜 드리는 프로그램이라 했다.

‘나사모’정모행사모습과 전문적으로 농업에 종사하시는 분 그리고 주말농장을 가꾸시는 분 들 중에서 각각  한사람씩을 촬영대상으로 선정하셨다며 주말농장부분은 우리가 맡아주시면 안되겠냐고 말씀하셨다.

1주일에 잘해야 한번 방문해서 남들이 하는 일 흉내만 내고 오는데 어찌 경험도 없는 우리더러 다른 분을 대신해서 촬영에 임하라니.......

정중히 사양했다.

“아무런 부담 갖지 말고 좋은 추억 만들어 보세요.”

카페지기님 목소리에 힘이 실려 있었다.

TV촬영이 있다고 하니 이번에는 나서기 싫어하는 가족들의 반대가 심했다.

“주먹때기만한 밭뙈기에서 보여 줄게 무엇이 있다고…….촬영은 무슨......”

“아빠, 엄마만 즐겨하는 일인데 왜 우리까지 끌어들이느냐…….”

“논문준비에 회사일로 시간 비우기 어려운데, 자기네 입장은 한번이라도 생각했느냐…….

“내가 즐기는 일이다. 도와 달라.”

촬영시간이 다가올수록 “평소에 하던 대로만 하자” 신경 쓰지 않으려 해도 자꾸 긴장의 도는 높아만 갔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아침 일곱 시에 인천에서 출발하는 과정부터 촬영하기로 했던 계획은 사정으로 변경되고 9시30분 우리가족과 처제네 가족이 농장에 도착하는 것부터 촬영이 시작되었다.

MBCTV에선 담당PD님과 조연출 담당님 그리고 작가선생님이 참석하셨다. 상견례와 동시에

일정은 진행된다.

오늘 예정된 작업은 밭 가장자리에 심어진 들깨수확, 호박고구마 수확 및 그 자리에 쪽파종구파종하기, 김장채소밭관리하기, 더덕씨앗채취하기, 그리고 풋고추를 수확하는 것으로 짜여졌다. 농기구를 사용할 때는 안전사고에 유의하고 긴장할 필요 없이 평소 하던 대로 스스럼없이 행동하라 일러 주었지만 카메라만 들이 대면 긴장들을 한다.

들깨, 고구마 수확은 차질 없이  진행된다. 처음 대하는 일이라 모두들 신기해한다. 주방에서는 바로 뽑아 온 배추로 김치 겉절이를 만들고, 무로 병어조림을 하고 싱싱한 호박잎을 데쳐내고 호박과 쪽파를 이용 나물도 만들고 풋고추도 밭에서 한 접시 가득 따와 점심식사를 준비한다.

원두막 한쪽에서는 불을 지피고 금방 깨온 고구마를 구워 먹는다, 새우를 군다. 조개를 군다. 덩달아 야단법석이다.

마을에 잔치 났다 하시며 이웃 어르신들도 참석해 주셔서 자리를 빛내주신다.

점심식사를 즐기는 가운데서도 촬영은 계속되고 어르신들마다 듣기 좋은 소리만 늘어놓는다. 현지 주민들과의 밀접한 관계가 농장을 일구는 데는 아주 중요한 일인데 많이들 도와주시니 그저 고마울 따름이다. 올 여름 계속된 궂은 날씨 속에서도 우리 집 건고추를 40KG이나 만들어 주신 마음 따스한 분들이다.

잠시도 휴식 없이 촬영은 계속된다.

오후 3시 40분이 지나가는 시간에 참석한 모든 가족이 모여 한바탕 웃음잔치가 펼쳐지는 가운데 인적사항을 확인하고 촬영이 마무리 된다.

“마음 따뜻한 사람들의 모임, 다음카페 ”곧은터 사람들“다락골은행나무입니다. 직업은회사원,  나이는 49세, 성명은 김영수입니다. 감사합니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농장을 다녀온 뒤에는 1주일 내내 나는 작은 몸살을 앓는다.

주초2-3일은 노동으로 인한 피로가 그 원인이고 주말이 가까워지는 2-3일은 변화된 농장의 모습을 상상하며 마음고생을 한다.

비록 이 일로 몸은 고단하고 힘은 들어도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어 행복하다.

여유시간을 어떻게 활용할까 고민하는 모든 분들께 강추하고 싶다.

자연에서 호흡하고 하루하루가 달라지는 생동하는 모습을 느끼며 흙을 만지다보면 에너지는 충전되고 몸과 마음은 맑고 가벼워진다.

 “흙을 만지면 생활이 즐거워져요.”

촬영에 힘써 주신 MBCTV 김지언 PD님과 하루 내내 무거운 카메라를 들쳐 매고 생생한 모습을 담아주신 이성희PD님 그리고 이상미 작가님께 다시 한 번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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