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름진 어부의 손끝서 ‘원조’가 엮인다

 

창포마을에서 손수 과메기를 만들고 있는 강선자(여·65)씨가 잘 말라 기름기가 자르르 흐르는 청어 과메기를 두름에서 빼서 먹기 좋게 손질하고 있다. 청어로 만든 과메기는 꽁치로 만든 것보다 훨씬 더 기름기가 돌아 금세 손이 번들번들해졌다. 과메기에서 나는 기름은 불포화지방산으로 건강에 이롭다.

# 가짜 과메기, 그리고 진짜 과메기

최근 몇년 사이에 꽁치를 날 것 그대로 해풍에 말린 과메기가 겨울철 먹을거리로 각광받고 있다. 미끈한 미역과 기름을 바르지 않은 생김에다 과메기와 쪽파를 얹고 초고추장을 발라서 입안에 넣으면 존득하면서도 독특한 맛이 입에 감돈다. 여기다가 차가운 속을 알싸하게 덥히는 소주 한잔까지 곁들이면 그만이다. 과메기의 집산지는 포항의 구룡포다. 요즘 구룡포를 가면 해안도로를 따라 끝간데 없이 널어놓은 과메기들로 장관을 이룬다.

하지만 엄밀하게 보자면 포항에서 나는 과메기는 모두 ‘가짜’다. 과메기란 것이 본래 청어로 만드는 ‘관목어(貫目魚)’에서 나온 말인데, 한동안 동해안에서 청어떼가 사라지자, 꽁치를 말려서 과메기라고 내놓고 있는 것이다. 과메기가 청어로 만드는 것이었음은 옛 문헌에도 뚜렷하다. 규합총서(閨閤叢書)에도 관목어를 말하면서 ‘비웃(청어)을 들어보아 두 눈이 서로 통하여 말갛게 마주 비치는 것을 말려 쓰는데 그 맛이 기이하다’는 대목이 있다.

1960년대까지만 해도 영덕, 포항 일대의 바다에서 청어가 흔하게 잡혔다. 청어떼가 풍파에 해안까지 밀려와 펄떡거리는 청어를 줍는 일도 흔했다고 전한다. 포항의 구룡포 남쪽에는 구만리 앞 해변을 ‘까꾸리께’라고 부르는데, 바닷바람과 파도에 떠밀려 온 청어를 ‘갈쿠리(갈퀴)’로 주워담았다고 해서 이런 이름이 붙었다고 했다. 동해바다에 얼마나 청어가 많았으면 갈퀴로 담아냈을까.

그 많던 청어들은 다 어디로 가버린 것일까. 1960대말 이후 동해안 일대에서 청어가 사라져버리고, 그나마 간간히 잡히는 것들도 모두 일본으로 수출되면서 청어로 만든 과메기는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청어가 사라지자 업자들은 대체품으로 꽁치를 택했고, 근자에는 꽁치가 아예 과메기의 자리를 차지해버렸다. 그렇게 청어 과메기는 자취도 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마치 오래된 전설처럼….

# 다시 돌아온 청어,

그리고 진짜 과메기

사라졌던 청어 과메기가 다시 돌아왔다. 영덕의 자그마한 어촌인 창포마을. 그곳에서 청어 과메기가 다시 만들어지고 있다. 지금은 자취도 없지만, 창포마을은 발동선이 나오기 전까지만 해도 청어잡이로 흥청거렸던 어항이었다. 돛단배를 타고 나가면 한 그물 가득 청어를 싣고 돌아왔다. 일제시대 무렵에는 청어에서 기름을 짜내는 공장까지 마을에 들어서 있었다. 청어에서 짜낸 기름으로 등잔을 밝혔고, 기름을 굳히면 고무처럼 단단해지는 성질을 이용해 신발밑창과 자전거타이어까지 만들었다고 했다.

창포마을에서 ‘풍차횟집’을 운영하는 유외종(67)씨가 7년여 전부터 청어 과메기를 만들어왔다. 7년여 전부터 청어가 간혹 보이기 시작해 청어 과메기를 만들어놓고는 알음알음 아는 사람들과 나눠먹었다. 그러던 것이 올해 청어잡이가 대풍을 이루면서 이웃 주민들까지 5가구가 인근의 구계항에서 청어를 사다가 말려 과메기를 만들고 있다.

창포마을에서 만드는 과메기는 대량생산 체제의 포항 과메기와는 만드는 법부터 다르다. 포항 쪽의 꽁치 과메기는 원양에서 잡은 냉동꽁치를 가져다가 냉장고를 이용해 대량생산하고 있지만, 창포마을에서는 영덕 앞바다에서 잡은 청어를 옛방식 그대로 두름에 꿰어 바닷가 쪽에 널어놓는다. 살집이 얇은 꽁치는 짧게는 3∼4일, 길어봤자 1주일 정도만 말리면 과메기가 되지만, 살이 도톰한 청어는 보름 이상을 말려야 한다.

창포마을이 예로부터 과메기로 유명했던 것은 ‘바람’때문이다. 바닷가 마을의 바람은 어느 곳이나 매섭지만, 작은 곶처럼 바다를 향해 돌출돼 있는 창포마을의 겨울 해풍은 일대에서도 유명하다. 영덕의 풍력발전기가 창포마을 뒷산쪽에 세워진 것도 이런 연유 때문이다.

# 이른 새벽의 고단한 청어잡이 풍경

새벽 5시쯤 영덕 구계항에서 박성종(70)씨가 앞바다에서 건져온 그물에 달린 청어를 따내고 있다.


청어잡이 배는 이른 새벽 영덕의 강구항 남쪽 구계항에서 출항한다. 새벽 2~3시쯤 연안에서 18㎞쯤 떨어진 바다로 나가 전날 쳐둔 청어자망을 걷어올린 뒤, 구계항에서 그물에 걸린 청어를 내린다. 오전 5시. 사위는 아직 어둠으로 가득한데, 환하게 백열등을 켜놓고 어민들과 인근 아낙들이 청어를 그물에서 떼내느라 여념이 없다. 몇몇은 타닥거리며 장작이 타오르는 드럼통 곁에서 시린 손을 쬐고 있다. 이렇듯 청어잡이는 새벽 잠과 바꾸는 고단한 작업이다.

올해는 유례없는 청어 풍년이다. 지난 2002년에 영덕에서 위판된 청어는 86t에 불과했지만, 올해는 11월말까지 벌써 2173t이나 잡혔고, 연말까지 어획량을 합친다면 모두 3000t에 육박할 것으로 보인다. 구계항에서 청어잡이를 나서는 배는 모두 10척. 이중 7척이 이날 조업에 나섰다.

“‘청어바리(청어잡이)’가 별 재미가 없어요. 올해 청어가 많이 난다지만, 기름 값은 오르는데 고기 값이 안좋아서….”

그물을 훑으며 싱싱한 청어를 떼내던 용근호 선장 박성종(70)씨는 일손을 잠시 멈추고 ‘그물이 찢어질 듯 올라오던 옛 청어조업 시절’을 설명하다가 “그 때가 참 좋았다”고 말을 맺었다. 구계항에서 잡힌 청어는 일부가 창포마을로 가서 해풍에 마른 과메기가 되고, 나머지는 포항으로 가서 구이나 조림용으로 팔려나간다.

# ‘대게’를 빼고, 꼽아본 영덕의 먹을거리

영덕의 먹을거리를 꼽자면 단연 ‘대게’가 맨 앞줄에 서지 싶다. 하지만 대게는 이웃 울진에서도 나고, 최근에는 꼭 산지를 찾지 않아도 손쉽게 맛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창포의 청어 과메기와 함께 ‘꺼끌가자미(돌가자미)’는 영덕이 아니고서는 좀처럼 맛볼 수 없다. 등판이 꺼끌꺼끌해서 이런 이름이 붙었다는데, 뼈가 부드러운데다 회맛이 고소하고 또 달다고 했다. 외지 사람들이 대게를 대접받는 것을 가장 흡족해 한다면, 영덕 사람들끼리는 꺼끌가자미 맛을 보여주는 것을 최상의 대접으로 친다. 웬만한 대형 횟집에서도 꺼끌가자미를 찾아보기 어렵고, 있다해도 귀할 때는 kg당 20만원을 훌쩍 넘는다니 제주에서 난다는 최고급 횟감인 다금바리에 비견할 만하다.

대부리 어촌계장 김영오(65)씨는 “꺼끌가자미는 이쪽 사람들도 맘 편히 먹어보지 못했을 정도로 귀한 고기”라며 “뼈가 부드럽고, 회맛이 고소하면서도 달착지근한 것이 기가막히다”고 했다. 꺼끌가자미의 제철은 12월 중순 무렵. 그러나 워낙 귀하게 잡히는 탓에 미리 수소문을 하고 찾아가야 헛걸음을 면할 수 있다. 올해는 또 동해안에 쥐치가 풍년이다. 27년만의 대풍이라는데 어부들도 혀를 내두를 정도로 엄청나게 잡혀 올라오고 있다. 양식이 불가능한 쥐치는 모두 자연산. 올 겨울이 쫄깃한 자연산 쥐치회를 값싸게 맛볼 수 있는 흔치않은 기회인 셈이다.

# 먹을거리보다 더 좋은 영덕의 볼거리들

동해바다를 드라이브하는 최고의 길로 7번 국도를 꼽지만, 국도 대부분이 고속도로를 방불케할 정도로 직선화되면서 바다 쪽과 멀어져, 이 길을 달리는 정취가 예전만 영 못하다. 그러나 한편으로 다행스러운 것이 국도가 바닷가 마을을 둘러서 돌아가는 바람에 오히려 해안도로 쪽 도로들은 한적해졌다는 점이다.

강구항에서 축산항을 넘어 영해까지 달리는 도로는 겨울바다 정취를 만끽할 수 있는 최고의 드라이브 코스로 꼽힌다. 대게의 집게발을 형상화한 등대가 서있는 해맞이 공원에서 광활한 겨울바다를 바라보면 가슴이 탁트인다. 축산항부터 영해까지는 가드레일 대신 줄줄이 널어놓은 오징어들이 독특한 전경을 만들어낸다. 사실 축산 인근의 바다에서는 오징어가 많이 나질 않는다. 그러나 오징어는 어디서 잡았는지 보다는 어디서 말렸는지가 품질을 좌우하는 법. 축산에서 영해까지 이어지는 해안마을은 서쪽을 산이 가로막고 있어 오후 3시쯤이면 벌써 해가 들지 않는다. 그늘에서 찬 바람을 맞으며 꾸득꾸득 말라가는 오징어의 맛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영해까지 가 닿았다면 광활한 영해들을 끼고 있는 괴시리 전통마을을 빼놓지 말아야 한다. 태백산맥 동쪽에 이처럼 큰 규모의 와가(瓦家)촌이 남아있다는 사실이 놀랍다. 괴시리란 마을 이름은 고려말 목은 이색이 이쪽 마을의 모습이 중국의 괴시(槐市)와 흡사하다고 해서 붙인 것으로 전해온다. 한옥들은 대개 1800년대 후반부터 1900년대 초반에 지은 것들인데, 이 마을로 시집온 여자들의 지명을 따서 ‘주곡댁’이니‘대남댁’이니 ‘구계댁’같은 이름이 붙어있다. 기와가 얹힌 흙담벽을 따라 골목을 천천히 걸으면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100년 전쯤으로 돌아간 듯한 느낌이다.

괴시리에서 종2품 벼슬을 지낸 고조부의 직함을 딴 ‘영감댁’이란 이름의 한옥을 지키고 있는 남두섭(70)씨는 이것저것 오래전의 기억을 풀어놓다가, 겨울 한 철 부엌 처마아래 굴뚝 옆에 매달아 놓고 얼리고 녹이길 반복해서 만든 청어 과메기의 맛을 빼놓지 않았다. 이래저래 영덕에서는 청어 과메기 맛을 건너 뛸 수 없는 노릇인 모양이다.

영덕 가는 길, 묵을 곳, 맛볼 것…

 

영덕 가는 길 = 수도권에서 가자면 영동고속도로를 타고 원주에서 중앙고속도로로 갈아 타고 서안동 나들목에서 내려서 안동을 지나 34번 국도를 타고 가면 영덕에 가 닿는다. 이쪽 길을 택하면 4시간 안팎이면 영덕에 도착한다. 시간이 좀 더 걸리더라도 겨울바다를 보려면 영동고속도로로 강릉까지 가서 동해고속도로를 타고가다 울진을 지나 계속 내려가면 영덕에 닿는다. 이쪽 길을 따르면 1시간쯤 더 소요된다.

어디서 묵고 무엇을 맛볼까 = 영덕 일대에는 관광객들을 위한 모텔급 숙소들이 많다. 워낙 알려진 관광지라 모텔이나 여관도 분위기가 밝은 편이다. 영덕읍내보다 삼사해상공원 쪽에 규모있는 모텔들이 몰려있다.

영덕에서도 청어 과메기는 식당에서 맛볼 수 없다. 창포마을의 풍차회집에서 청어 과메기를 상에 내기도 했지만, 안주인이 몸이 아파 이즈음에는 제대로 장사를 못하고 있다. 대신 창포마을에서 청어 과메기를 사갈 수는 있다. 전화로 주문해서 택배로 받는 것도 가능하다. 올해 청어가 풍작이라 가격도 꽁치로 만든 과메기와 별반 차이가 없다. 20마리 한 두름에 1만원. 창포마을의 한록술씨(054-732-8798)나 유외종씨(054-732-8539), 하인동씨(054-732-8527)에게 연락하면 구입할 수 있다.

‘꺼끌가자미(돌가자미)’는 워낙 드물게 잡혀 미리 연락을 하고 찾아가야 맛볼 수 있다. 횟집들은 각 어촌계와 연결돼 그날 그날 잡은 것들을 가져다가 팔고 있다. 영덕읍 노물리의 해동횟집(054-732-7329)이나 축산면 축산리의 울릉도회집(054-732-4321) 병곡면 백석리의 왕돌초자연산회집(054-734-1434) 등이 꺼끌가자미를 확보하고 있을 확률이 높은 집이다.

 

영덕 = 글·사진 박경일기자 parking@ munhwa.com
문화일보 2007-12-12 15:00

 

 

출처 : 조명래
글쓴이 : 야생초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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