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도대교의 여명

 

금골산 오층석탑

 

금갑해변 갯벌체험장

 

남도석성과 쌍홍교

 

 

벽파진 이충무공 전적비

 

진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상여행렬. 진도의 소리를 들어 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첨찰산 쌍계사 단풍

 

쌍계사 대웅전 앞에는 국화전시회가 한창이다.

 

운림산방

 

 

여귀산 탑마을

 

 

 

 

 

모세의 기적, 회동 뽕할머니상

 

원형의 섬, 진도

해남 화원반도를 지나 진도 땅에 들어서기 위해서는 반드시 진도대교를 건너야 한다. 진도대교는 1984년 길이 484미터의 사장교로 육지인 해남과 연결되면서 섬으로서의 고립을 벗어나게 됐다. 대교가 개통 된 지 20년 후, 2005년 국내에서는 최초로 쌍둥이 사장교가 개통되었다. 진도대교 아래는 세계 해전사에서 빛나는 이충무공의 명량대첩의 전적지. 해남 땅에는 명량대첩을 기념하기 위한 전시관이 세워져 있다. 울돌목이라 일컫는 이 해협의 폭은 채 300여 미터, 목청 좋은 사람이 소리치면 건너편에서 들릴 만큼의 가까운 거리이다.


조수간만의 차이로 물의 방향은 하루에 두 차례 바뀐다.  좁은 해협을 지나는 바닷물은 그 거친 숨결을 뱉어낸다. 육지의 강에서는 들어 볼 수 없는 거대한 숨소리이다. 그 숨결을 가까이에서 들어 보기 위해서는 녹진 휴게소에서 내려 진도대교 교각 아래로 내려서면 들을 수 있다. 시기를 잘 맞춰 가면 교각 아래 거센 조수를 헤치다 물가로 밀려난 숭어 떼를 그물로 건져오는 진풍경을 만나기도 한다.

 

울돌목의 거친 숨소리를 들으며 건너편의 해남 땅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섬에 들어 와 있음을 실감하게 된다. 그렇다, 연육교로 이어져 있지만 진도는 엄연히 섬이다. 섬이라는 지정학적인 고립감이 옛 선조들의 생활양식, 소리, 신명, 흥이 원형으로 고스라니 남아 현재까지 전해지고 있는 것이다. 진도 여행길에 상여행렬을 만나는 행운(?)은 어렵지 않은 일, 잠시 가던 길을 멈추고 행렬을 뒤 따르면 진도의 소리를 들어 볼 수 있다. 진도는 제주도와 거제도에 이어 한반도에서 세 번째로 큰 섬이다. 경작지가 드넓어 해산물 보다는 농산물이 넘쳐나 오히려 육지에 내갈 만큼 진도는 풍요로운 땅. 그에 따라 들려 볼 곳도, 머물고 싶은 곳도 많은 고장이다. 사면이 바다로 둘러 쌓여있어도 농경생활이 주였던 토착민들의 삶은 한반도의 때 묻지 않은 정서가 곳곳에 배어 있는 곳이다. 바다에 둘려 쌓여 있지만 다도해의 특성상 바다만이 보이는 것이 아니고, 넓은 들판에는 나지막한 산 능선이 마을과 마을을 에워싸고 있는 푸른 들녘에서는 남도의 소리가 들려오는 듯하다.

 

18번 국도를 타고 진도 읍을 향하다 군내면 금골주유소를 지나 우측으로 금성초등학교 진입로를 따르면 금골산 입구의 주차장을 만나게 된다. 진도대교에서 읍내를 향하다가 자칫 놓치기 쉬운 풍경이지만, 진도 관광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는 반드시 금골산의 기세에 눈길이 한참이나 머무는 곳이다. 산 초입에는 금골사라는 자그마한 사찰이 자리 잡고 있다. 사찰의 자그마한 뜨락에서 내려 다 보는 진도의 들녘은 드넓기 그지없다.  이곳에서 금골산 정상까지는 약 40분, 경사가 가파르고 암벽 사이로 길이 나 있어 반드시 운동화나 등산화를 신어야 한다. 안전철책을 따라 발길을 옮기다 보면 십여 미터에 이르는 석굴 암벽에 새겨진 거대한 마애여래상을 보게 된다. 해발 198미터의 나지막한 높이이지만, 금골산 정상에 이르면 시계는 거칠 것이 없다. 하산 뒤에는 금성초등학교 교정에 세워진 보물 제 529호인 오층석탑이 한가로운 시골 교정을 조용하게 지키고 있다. 조성 시기는 백제 말기에서 고구려 초기로 추정되는 단아한 외형의 석탑이다.

 

들녘을 지나던 국도가 언덕을 만나 기어변속을 해야 할 때 쯤 좌측으로 용장산성과 벽파진 가는 이정표가 나타난다.  시야에 들어오는 편안한 풍경과는 달리 진도는 예로부터 국난의 역사마다 외침이 한 번도 비켜가지 않은 곳이다. 진도 읍내를 향하다 세동 삼거리에서 좌회전하면 용장산성과 벽파진을 들려 볼 수 있다. 용장산성은 고려시대 몽골에 항쟁했던 삼별초가 제주도로 본거지를 옮기기 전 고려궁을 지었던 곳이다. 당시의 건물을 찾아 볼 수 없지만, 산성의 규모와 석축을 쌓아 만든 궁터에서 그 규모를 미루어 짐작 할 수 있게 해준다. 해안 쪽으로 난 도로의 끝은 벽파진. 이충무공이 명량대첩을 치르기 전 아군의 함선이 정박하며 작전을 도모했던 곳으로 이충무공전첩비가 세워져 있다. 현재는 제주도와 목포를 오가는 페리호가 들리는 선착장 역할을 하고 있다. 1950년대 중반 조성 된 것으로 비에는 노산 이은상의 시가 새겨져 있다. 전첩비에서 내려 다 보이는 바다와 해남 일대의 조망이 장쾌하다.

 

진도는 해마다 세계의 이목 한 번씩은 집중 되는 곳이다. 1970년대 초 프랑스 대사가 진도를 우연히 찾았다. 조수 간만의 차이로 섬과 섬을 이어주는 육계도를 발견하고 이것을 본국에 알리면서 ‘모세의 기적’ 으로 정평이 나있는 곳이다. 한해 가장 크게 바닷길이 열리는 때를 맞춰 영등제를 하는데, 이때 국내는 물론 세계 각국에서 이 현상을 취재하기 위해 인산인해를 이룬다.

 

해마다 열리는 영등제에는 뽕할머니의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1,480년경 손동지라는 사람이 제주도로 유배도중 풍랑으로 표류하여 지금의 회동 마을에 살게 되었는데 그 당시에는 호랑이의 침해가 심하여 마을을 호동이라 불렀다.  그 후에 호랑이의 침해가 날로 심해져서 살기가 어렵게 되자 마을 사람들이 뗏목을 타고 의신면 '모도'라는 섬마을로 피하면서 황망 중에 뽕할머니 한분을 호동마을에 남기고 말았다. 뽕할머니는 헤어진 가족을 만나고 싶어서 매일 용왕님께 기원하였는데 어느 날 꿈속에 용왕님이 나타나 "내일 무지개를 내릴 터이니 바다를 건너가라"고 일러주었다. 모도에서 가까운 바닷가에 나가 기도하고 있던 중 갑자기 호동의 뿔치와 모도 뿔치 사이에 치등이 나타났다. 그 길로 마을 사람들이 뽕할머니를 찾기 위해 징과 꽹과리를 치면서 호동에 도착하니 할머니는 "나의 기도로 바닷길이 열려 너희들을 만났으니 이젠 죽어도 한이 없다"는 유언을 남긴 채  숨을 거두고 말았다. 이를 본 주민들은 뽕할머니의 소망이 치등으로 변하였고 영이 등천하였다하여 영등살이라 칭하고, 이곳에서 매년 제사를 지내게 되었으며, 그 후 자식이 없는 사람, 사랑을 이루지 못한 사람이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다는 전설이 전해오고 있다.

 

바닷길이 열리지 않아도 이곳은 진도 여행에서 빼놓지 않고 들려 봐야 할 곳. 모세의 기적이라는 신비의 바닷길이 열리는 고군면의 가계해수욕장은 진도에서도 대표적인 해수욕장으로 편의시설이 가장 잘되어 있는 곳이며, 바닷가 민박집이 잘 발달되어 있어 진도읍에 숙소를 정하지 않았다면 이곳에 숙박을 정하는 것이 적당하다. 해수욕과 함께 진도 해양생태관에는 국내는 물론 세계의 희귀 해양생물들을 관찰 해 볼 수 있는 체험장이 되어주고 있다. 해수욕장 뒤편에 마련된 전망대에 오르면 가계해수욕장의 드넓은 해변과 항공모함처럼 떠 있는 모도와 금호도의 전경이 펼쳐진다.

 

쌍계사와 운림산방
어느 지도책에나 진도의 명승지로 표기되어 있는 운림산방은  첨찰산 남방향 기슭에 자리 잡고 있다. 19세기 초 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한국화 그 중에서도 남종화의 대가 소치 허련 선생이 말년에 기거했던 화실이다. 소치는 어려서부터 그림재주가 있어  두륜산방의 초의대사 밑에서 공재  윤두서의 화첩을 보면서 그림을 익히기 시작하여 초의선사의 소개로 추사 김정희 밑에서 본격적인 서화 수업을 하게 되었다. 소치는 이곳 운림산방에서 미산을 낳았고, 미산이 그림을 그렸으며 의제는 미산에게서 처음으로 그림을 익힌 곳이기도 하다. 이와 같이 유서 깊은 운림산방은 소치-미산-남농-임전 등이 4대에 걸쳐 정통남화를 이어준 한국남화의 본거지이기도 하다.

 

해발 485m의 첨찰산 봉을 병풍처럼 두르고 있는 운림산방은 의신면 사천리 64번지일대 2000여평에 자리잡고 있다. 70년경에 개축한 19평의 목조 초가로 된 안채가 있고 그 앞으로 동편을 향하여 14평의 초가 3간 사랑채가 있는데 이 사랑채는 소치가 당시 기거하던 곳이다.  옛 운림각터에 24평의 화실을 79년 남농이 재건하였다. 480평의 연못에는 연못 가운데 직경 6m 크기의 원형으로 형성된 섬이 있고, 섬 중앙에  소치가 심었다는 배롱나무가 있다. 수림은 팽나무, 검팽나무, 생달, 동백, 후박나무 등으로 구성되어 운림산방의 자연미를 더해주고 있다. 화실과 연못의 주변은 잔디와 나무를 심어 정돈하고 비와 탑을 세우는 등 조경을 하였다. 소치의 손자인 남농이 퇴락되어가는 유적을 5년간이나 손질하고 다듬어 81년 10월 20일 도지정문화재로 지정받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운림산방 전시관에는 소치 허련 일가의 시, 서화 작품과 개인 소장품인 수석과 자기 등이 전시되어있다.

 

운림산방 뒤쪽 편에 자리 잡은 쌍계사는 진도에서 가장 오래된 사찰로 대웅전(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121호)은 신라시대에 도선국사에 의해 세워진 것으로 전해오고 있다. 주변이 상록수림으로 둘러싸여 있어 아늑하면서도 고풍스로운 분위기가 묻어난다. 마당에 흐드러진 동백꽃과 댓잎을 흔드는 바람소리, 목탁소리, 새소리가 운치를 더 한다. 매년 11월이면 국화전시회를 볼 수 있어, 곱게 물든 단풍과 함께 단아한 사찰의 전경을 화려하게 꾸며준다.

진도를 둘러싸고 있는 해안선이 복잡하여 섬 내에는 이렇다하게 해안일주도로가 정비되어 있지는 않다. 그 중 금갑해수욕장은 여름철이 아니어도 갯벌체험을 해 볼 수 있는 해변.   진도에는 해안을 끼고 도는 일주도로가 있지는 않지만 급갑리애서 죽림리를 거쳐 남도석성에 이르는 길은 높은 산록도로에서 멀리 남해의 드넓은 바다를 조망해 볼 수 있게 해준다. 여귀산 들머리인 탑립마을에는 돌을 쌓아 만든 낯선 탑들이 길가에 세워져 있다. 이쯤되면 탑에 대한 설화도 전해 질 터. 돌탑 공원에는 이곳의 설화를 다음과 같이 전한다.

 

‘ 여귀산을 중심으로 죽림 쪽에는 남신이, 탑립 쪽에는 여신이 사이좋게 살고 있었다. 지배하기를 즐기는 남신이 여신을 지배하고자 일 년에 한 차례씩 힘과 지혜를 겨루어 지는 신은 이긴 신의 뜰에 따르기로 했다. 하지만 남신의 뜻과는 달리 해마다 여신이 이기자 약이 오른 남신은 여신의 탑을 파괴하였다. 그 이후로 여신이 힘과 지혜를 쓰지 못해 남신의 지혜를 받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이에 마을 주민들은 돌탑을 세워주고 남신과 여신이 화해해 마을의 안녕을 기원한다는 것이다.’

진도여행에서 소리를 빼면 진도의 반을 보지 못한 것이라 할 만큼 진도에서 소리는 중요한 몫을 차지하고 있다. 진도 읍에 자리 잡은 향토문화회관 대공연장에서는 강강술래, 남도들노래, 진도 씻김굿, 다시래기, 진도북춤, 진도만가, 진도아리랑, 사물놀이, 남도민요 등의 내용으로 매년 4월부터 11월까지 매주 토요일 오후 2시에 공연을 갖는다. 공연문의061)540-3543

 

군내면 백조 도래지로 알려진 곳은 시기를 잘못 알고 가면 기대에 못 미치는 철새도래지. 백조라고 알려진  고니는 진도군 군내면 해안 일대와 다도해 해안에서 12월과 2월 사이에 월동한다. 고니가 날아드는 곳은 진도읍 수유리 해안일대와 군내 간척지 담수로, 둔전저수지이다. 이곳은 한국 남해안 지역에서 월동하는 고니류 집단의 일부에 불과하나 한국의 서남부에 위치한 유일한 월동 둥지이며 또한 한반도 서남부 해안을 거쳐 이동하는 고니 집단의 평화로운 휴식처로 알려져 있다. 고니는 길조로 알려져 있어 많이 날아오는 해에는 풍년이 든다고 하며, 진도군 군내면 수유리와 덕병리 앞 해안에 수백마리의 고니가 밀려와 겨울을 지낸다.

 

18번 국도의 끝에는 근래에 들어 대단위 항만시설이 들어선 서망 항이다. 이곳에서 지방도로를 타고 10여분 달리면 자그마한 마을을 만나게 되는데 이곳이 남도석성. 용장산성과 함께 고려 말 삼별초가 몽고에 항쟁하던 근거지로 삼았다고 하며 성의 성립연대는 삼국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니 유서 깊은 석성이다. 석성의 길이는 610미터. 높이는 4~5미터 정도 된다. 마을 안에는 지금도 주민이 살고 있으며, 최근에 지어진 관아건물이 건물에 비해 과장된 기와지붕을 얹고 세워져 있다. 석성 앞에는 바다로 흘러가는 자그마한 내가 흐르는데 그 위에 세워진 두 개의 홍교가 눈길을 끈다. 두 곳 다 이지역에서 나는 편마암을 아치형으로 부쳐 세운 홍교로 단홍교와 쌍홍교로 내를 건너는 역할을 해내고 있으나, 현재에는 보호차원에서 출입을 금지하고 있다.

 

진도 여행에 절정이 있다면 단연 세방낙조를 꼽을 수 있다. 이 해안도로는 다도해의 아름다운 섬들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우리나라 최고의 다도해 드라이브 코스다. 진도의 해안도로는 해변을 따라 나 있는 경우보다 해안가 절벽 위에 나 있는 경우가 많다. 그 길을 따라 펼쳐지는 다도해의 풍경은 일일이 담아 놓을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답기 그지없다. 그중에서도 해지는 저녁 노을이 아름다운 곳은 지산면 세방리의 해안도로이다. 높은 곳에서 내려 다 보는 다도해 일대 떠 있는 섬의 모습은 그 어느 곳의 섬들과 다른 모습이다. 어떤 섬은 인위적으로 조형물을 만들어 세운 듯 울뚝 솟아 있기도 하고, 어느 섬의 모습은 조형가가 보기 좋게 다듬어 놓은 듯하다. 그러한 섬들의 모습이 바다로 지는 노을의 모습을 더욱 장쾌하게 꾸며준다. 해가 수평선 뒤로 숨어도, 하늘의 빛은 시시때때로 변화하며 바다색과 그 색을 맞출 때 까지 화려한 색채의 향연을 빚어낸다. 섬의 모습이 뭉퉁 그려질 때 까지 발길을 잡아 놓는 매력이 바로 이곳이다


*여행메모(지역번호 061)
수도권에서 진도는 육로를 이용해 갈수 있기는 하나 멀고도 먼 섬이다. 섬을 관통하는 18번 국도를 기점으로 방사선으로 나 있는 군도와 지방도인 803번과 801번을 따라 동선을 미리 계획해 보는 것도 중요하다. 지도를 참조 미리 계획을 세워 보는 것은 여행을 알차게 보내는 큰 즐거움이다.

 

숙박 : 진도읍 내 태평모텔(542-7000), 프린스모텔(542-2251), 영진장(543-5166). 고니도래지 가는 길의 통나무집 펜숀 진도스케치(542-2114), 자운토방(544-4555). 가계해수욕장과 금갑해수욕장 주변에 민박집이 밀집해 있다.

 

맛집 : 진도대교를 들어서는 순간 도로 좌, 우측으로 관광객이 주고객인 음식점이 즐비하다. 진도 읍내에서는 시장골목에 자리 잡은 식당 사랑방(544-4117)에서 진도 특산물인 간재미회를 맛 볼 수 있다.  진도가 섬이라고 어패류 음식만 잘하는 것은 아니다. 읍내 자리 잡은 제주촌갈비(544-4919)는 이곳 주민들이 즐겨 찾는 갈비전문점. 한우 육회와 소갈비, 돼지갈비의 맛이 일품이다. 그 외 지역으로는 가계해수욕장 인근에 해수욕객을 상대로 하는 음식점과 서망 항 일대가 새로이 관광위락시설로 개발되면서 음식점이 발달되어 있다. 그밖에 운림산방 근처에 별장식당의 쑥국백반(543-7749)과 푸른동산식당의 토종닭( 542-1255), 의신면의 제일음식점 곰탕(543-4107) 등이 있다.

출처 : 봐라, 달이 뒤를 쫓는다.
글쓴이 : 海霧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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