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꽃 지는 초여름입니다.
새벽같이 일어나
감나무 밑에 떨어진 싱싱한 감꽃을 바느질실에 꾀어
목걸이를 만들었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씨 뿌리기 좋다’는 절기 망종이 막 지난
현충일이 낀 연휴 첫날 아침 다락골에선 샛노랗게 핀 천년초꽃이 시선을 이끕니다.

 

 

마른하늘에 날벼락
며칠 전 불어 닥친 돌풍에 허리가 부러진 고추나무 때문에
가슴이 뜨끔합니다.
고추나무 다섯 그루가 주인을 잘못 만난 탓에 허리가 절단 났습니다.
키가 조금 덜 자란 것 같아
지난주 방문 때 망설이다 그만 미룬 것이 화를 자초했습니다.
많은 여한만 남습니다.

 

 

 


두 번째 줄만 띄워놓았더라도
막을 수 있었던 일이였기에 마음이 부서지듯 아픕니다.
유인 줄을 설치하려
연장들을 챙기는 마음이 영 개운치가 않습니다.
분하고 억울한 마음에 내놓고 변명이라도 하고 하고 싶습니다만
기다리는 비 소식은 없고 초여름 햇살은 따갑기만 합니다.

 

 

 

 


"아저씨! 우리 집 매실나무가지 좀 질러주면 안되남요?"


저녁나절
새참생각에 막걸리 한 사발을 들이키며
마음의 안정을 되찾아 가는데 동네 할머니 한분이 건너오셨습니다.
지난해 농사일이 힘에 부쳐
매실나무를 50그루를 심었는데 그동안 관리하는 요령을 잘 몰라 내버려뒀다며
손봐주기를 청합니다.
태양이 힘을 잃어 잡초 뽑기에는 좋은 시간인데
청을 물릴 수 없어 전지가위를 챙겨들었습니다.
몸이 무겁다며 그 동안 일은 돕지 않고 딴전만 피우던 옆지기도 따라나섭니다.
소를 키우는 외양간 주변으로 심어진 나무는 쇠똥거름을 많이 먹고 자라서인지
세력이 엄청 좋아보입니다.
집주인 할아버지가 기다리고 계십니다.

 

"어르신! 혹시 나무를 관리하실 때 정해놓은 원칙을 가지고 관리하시나요?
괜히 제가 만져 마음에 안 들면 어떻죠?"

 

"아니유! 그런 것 없시유!
와 주신 것만으로도 너무 고맙고 감사해유!
농사짓기 힘들어 매실나무를 심었는디…….
뽑아 없애야 될 성 싶구먼유!"

 

"아니 왜요? 나무가 엄청 실하게 잘 컸는데.......
무슨 이유라도 있으세요?"

 

"저번에 요 아랫마을 사람이 지나가다 그러는디유
이 매실나무는 가지만 뻗치는 숫 매실나무라 매실이 달리지 않는다고 당장 뽑아 없애라고 하더구먼유.
은행나무처럼 숫매실나무는 열매가 달리지 않는다 하던구먼유."

 

" 아니에요. 어르신 그건 아마 그분이 잘못알고 하시는 말씀 같아요.
매실나무는 숫 나무가 따로 없답니다.
매실나무는 올해자란 가지에서 꽃눈이 맺혀 다음해에 매실이 달립니다.
어르신이 너무 부지런히 밭에 퇴비를 많이 넣어 나무가 잘 컸을 뿐이에요."

 

안도하는 얼굴빛으로 바뀐 어른께
자를 가지와 남길 가지를 선정하는 요령과
가지 치는 시기, 가지를 잘라낼 위치 등을 상세히 설명하고
혼자서 직접해보길 권했습니다만
순박한 미소만 지으실 뿐 선뜻 가위질을 하려들지 않습니다.
혹시 잘못해서 흠이라도 생길까 조심하는 모습입니다.

 

"할아버지! 한번 해보세요.
제가 해봐도 쉬운대요."
 
곁눈질로 익힌 솜씨로 일을 거들던 옆지기가
가위를 들려주며 거들고 나섭니다.
어차피 주인이 직접 관리해야 될 나무이기에
요령을 터득시키려 반복해서 이야기를 주고받았습니다.
한참을 망설이던 주인어른이 용기를 냅니다.
시원스럽게 잘려나간 나무들을 보며 싫지 않은 표정입니다.

 

 

 

 

바람난 까치들의 지저귐이 새벽부터 시끄럽습니다.
빈틈없이 심어진 작물들이 차츰 자리를 잡아가는 모습입니다.
밭고랑에 깔아 놓은 부직포 덕을 톡톡히 봅니다.
밭고랑을 가득 매웠을 잡초들의 모습을 찾을 수가 없습니다.
씨를 뿌려 어린 싹이 돋아난 도라지 밭과 수리취(떡취)밭엔
잡초들이 들어차기 시작했습니다.
벌써 풀밭인지 도라지밭인지 분간이 안됩니다.
세력이 확장하려는 잡초들의 생명력이 두려움 자체입니다.
그렇다고 그냥 내버려둘 수도 없는 일입니다.
풀밭에 쪼그리고 앉았습니다.
어린새싹사이로 자리 잡은 잡초들만 골라 뽑는 일은
조금만 방심해도 어린새싹까지 함께 뽑혀 나옵니다.
안쓰러운 마음에 신경이 곤두섭니다.
집중하다보니 눈알이 튀어나올 것만 같습니다.
더디고 지루한 싸움입니다.

 

 

감자 두둑이 갈라졌습니다.
알이 들어찼나 봅니다.
바람에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없듯
자기 혼자의 힘으로 열매를 맺는 곡식은 없습니다.
바람이 불며 바람이 불까 걱정
비가 오지 않으면 비가 오지 않아서 걱정
꽃을 보는 기쁨보다 그 기쁨을 보기위해
고되고 긴 인내가 필요한 일이 농사인 것 같습니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