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봄은 유독 비가 많았던 해로 기억될 것입니다.
다락골에 터를 잡고
농사를 일군 후 올해처럼 비가 많았던 해는 없었습니다.
밭뙈기 아래로 펼쳐진 다랭이논에는 고인 물로 논두렁까지 찰랑거립니다.
봄 가뭄 때문에 해마다 먼 방죽에서 양수기로 물을 끌어오던 수고를 던 이웃들의 표정에 한결 여유로움이 넘칩니다.
초록도 한결 생기가 넘칩니다.

 


찔레꽃이 소담하게 핀 다락골엔
여름의 전령사 뻐꾸기 울음소기가 청아하게 울려 퍼집니다.
5월의 마지막 꽃 잔치를 만끽할 여유도 잠시
봄이 가기 전에 내다심을 모종들 손질로 자기도 모르게 마음이 바빠집니다.

 

 

하나의 줄기를 두개로 만들기 위해
모종을 키우는 과정에서 줄기 끝 생장점을 제거하여 두 가지로 받아 키우려고 방울토마토의 모종이식이 꽤나 늦어졌습니다.

 


날짐승이 약탈해 간 빈자리에 옮겨심기위해 키운 검은 땅콩 모종은  농장의 파수꾼 은빛독수리가 빈틈없이 지켜낸 덕에
이웃집에 나눔해 드릴 수 있는 여유가 생겼습니다.
유해한 해충을 몰아내는데 사용할 제충국모종도 넉넉하게 준비했습니다.

 


가끔은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일이 발생해 사람을 즐겁게 합니다.
믿기 어려울 정도로
누군가의 손에 대학찰옥수수 곁순들이 모조리 제거되었습니다.
주말에만 올 수 밖에 없는 사정을 알아채고 먼저 보듬어주고 더듬어 주셨습니다.
마음까지 울컥합니다.

 

 

 

고추밭엔 고춧대가 두 갈래로 나눠는 방아다리가 생겨났고 곁순들도 무성합니다.
불필요한 영양분의 낭비를 줄이기 위해 방아다리 밑 곁순들은 말끔히 정리합니다.

 

 

이웃집 삼밭은 싱그러움 모습들로 절정을 이룹니다.
풋풋한 모습이 눈부시게 아름답습니다.

 

 


대추나무가지마다 굵은 새순이 쑤~욱 돋아났습니다.
나무 끝에 돋아난 새순만 남기고 가지 사이사이에 돋아난 새순(도장지)들은 잘라주어야 양분이 잔가지로 이동해 꽃도 빨리 피고

꽃가루받이도 잘 이뤄집니다.

 


묘목은 옮겨 심은 지 4년차인 매실나무들은
지난해까지 나무의 세력을 키우는데 주력한 결과 나무가 아주 실하게 잘 자랐습니다.
많이 달리지는 않았지만 매실도 토실토실 여물고 있습니다.
올해부터는 본격적으로 열매를 맺히게  열매가 달리는 단과지 발생을 촉진시키고 웃자란 가지는 비틀어 꽃눈이 많이 생겨나게 유도하고 있습니다.

 

 

둥근마의 새싹은 간간히 얼굴을 내밀었지만
같은 시기에 심었던 울금은 죽었는지 살았는지 기척을 느낄 수 없습니다.
밭두렁을 따라 모종을 이식했던 넝쿨콩의 줄기가 타고 오르게
오이그물을 설치하는데 식물원에 구경 온 것 같다며 이웃집할머니가 피식 웃고 지나갑니다.

 


현실의 무게에 짓눌릴 때마다
이 일을 통해 잠시 벗어날 수 있었고 자신을 들여다볼 수 있었습니다.
이 일이 아니었으면 내가 누군지 돌아볼 기회조차 얻을 수 없었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주말농사가 또 다른 일상이 되어버렸습니다.
지친 세상살이에서 일탈을 꿈꾸며 시작했던 일이였는데 또 다른 일상 속에 갇혀 버린 느낌입니다.
보이는 것도 보이지 않는 것도 결국 생각의 차이인 것 같습니다.
일상에서 애써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치지 않고 주어진 일상의 틀 속에서 매순간 색다른 멋을 찾아보고 싶습니다.
오늘은 오늘의 해가 졌고
내일은 내일의 해가 뜰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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