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그락 사그락!
벼이삭들이 서로 비벼대며 나는 음률이 멋진 하모니를 이룹니다.
나락들이 고개를 숙이며
황금물결을 일으키는 풍경은 한 폭의 멋진 그림입니다.
영영 오지 않을 것만 같았던 가을이 살갗 속까지 파고들었습니다.

 

 

혼자 하는 일은
실컷 일을 할 수 있고, 맘대로 쉴 수 있어 그런 대로 할 만합니다.
하지만 먹고 자는 일만큼은 영 어색합니다.
끼니를 차려놓고 우둑 커니 밥상 앞에 앉아 있다 보면
이게 무슨 궁상인가 싶어 밥 굶기는 예사이고 커피 한 잔 막걸리 한 사발에 끼니를 때우는 경우도 허다합니다.
점심도 거른 채
무밭에서 여린 모종을 솎아내고 호미로 흙을 북북 긁어 올립니다.

 

 

한랭사를 씌워만든 터널 속으로 배추들이 꽉 들어찼습니다.
습해 때문인지 뿌리와 줄기가 물러져 썩는 배추들이 서너 포기 발생했습니다.
거듭된 큰비로 땅이 축축해져 양분의  이동이 재대로 안 돼 생긴 장해 같습니다.
계란껍질에서 추출해낸 칼슘을 물에 희석시켜 잎과 줄기에 흠뻑 뿌려주고 한랭사를 벗겨줍니다.

 


보호막을 걷어내니 한결 생생합니다.
배추 품을 벌려 햇볕이 골고루 스미게 합니다.
자연이 이만큼 키워주었으니 이제부터 지키는 일은 사람의 몫입니다.

 


기나긴 가을장마
제때 손을 쓰지 못해 잡초와 농작물이 뒤엉켜 누가 밭뙈기의 주인인지 분간이 쉽지 않습니다.
늦더위의 기세처럼 꺾이지 않을 것 같던 잡초들의 몸짓불리지가  주춤합니다.
몸짓을 불리기보다는 씨앗을 맺어 종족번식에 열을 올리고 있습니다.
씨앗이 땅에 떨어지지 않게 조심스레 낮으로 잘라내 한 곳에 쌓아올립니다.
만약 씨앗이 땅에 떨어진다면......?
가을볕에 잘 말렸다가 태워없애 잡초로 인해 겪어던 심한 고초에서 조금이나마 벗어나고 싶습니다.

 


까치가 울면 기쁜 일이 생길 거라고,
그런 환상 속에 빠져 살았습니다.
까치는 해로운 벌레만 잡아먹고 사는 유익한 새로만 알았습니다.
그러나 농사를 일구면서부터 벌레보다는 애써 키운 작물에만 관심이 많은 못된 새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작은 그물망으로 땅콩 밭을 빙 둘러 들쥐들의 약탈에서 벗어났다고 은근히 들떠 있었는데 이번엔 까치들이  가만히 내버려두질 않습니다.

 


엎드렸던  들깨가 꽃을 피었습니다.
태풍으로 찢겨진 생채기가 아물고 거뜬하게 일어섰습니다.
메마르고 거칠어진 심신을 추스릅니다.
생각하고 마음속에 담아두었던 것을 다시 꺼냅니다.
마음의 밭을 갈고 희망을 일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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