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락골에도 가을이 살포시 내려앉았습니다.
노랗게 물든 둥근마 잎이 가을의 운치를 더해줍니다.
어디론가 떠나 가을을 즐기고픈 행락객들 속에 갇혀 어둠이 짙게 깔린 뒤에야 다락골에 당도했습니다.

 

 

제법 날씨가 쌀쌀해 옷가지를 챙겨 입었습니다.

찬이슬이 많이 내렸습니다.
기온이 서늘해진 틈을 타고 여름 내내 비실비실 풀이 죽었던 야콘이 기운을 차렸습니다.
하찮은 미물일지라도 자신의 삶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니 절로 고개가 끄덕여집니다.

 

 

 

눈꺼풀을 들어 올리자마자 서로 약속이나 한 듯 옆지기와 둘이서 내달리듯 배추밭으로 발걸음을 옮깁니다.
"우와! 벌써 배추가 속이 많이 찼네요!
11월 두 번째 주말에 김장해도 충분하겠네요!"
불암3호 속노랑배추들이 속이 차기 시작했습니다.
잘 썩은 유기질비료만 듬뿍 넣고 여태껏 웃거름도 한번 주지 못한 주인을 비웃기로도 하듯 재법 옹골차게 자랐습니다.
한랭사를 벗겨낼 때만해도 무방비상태로 내모는 것만 같아 걱정을 많이 했었는데 아직까진 우려한 정도는 아닙니다.
잎사귀에 구멍이 숭숭 뚫린 포기들을 골라 속살을 샅샅이 뒤져 서너 마리의 배추벌레를 잡아 없애는데 그쳤습니다.
그새
옆지기는 무밭에서  어린 무를 한 아름 솎아냅니다.
처음 심은 자색무의 자색 빛이 곱습니다.

 

 


골곡과 부침이 심했던 고추밭을 정리했습니다.
배짱인지, 오기인지
농약한번 치지 않고 근근이 버텨오다 막판엔 손쓸 사이도 없이 탄저병이 번져 풋고추 하나 성한 것 없이 망가졌습니다.
"이 잘란 고추 몇 근이나 먹겠다고......."
기껏해야 일 년에 고추 열 근도 못 먹는데
종자 값하고, 오고가다 길에 뿌린 기름 값이며 고추 수십 근은 사먹고도 남겠네요!
이젠 어지간히 경험도 쌓았으니 이다음부터 고추는 사먹고 맙시다!
내년부터 고추만 심어봐라, 내가 다시는 따라나서나......."

고추 순을 훑던 옆지기는 풋고추 하나 남아 있는 것이 없다며  일찍 감치 방 안으로 들어가 기척이 없습니다.
고춧대를 뽑아내고 병들어 떨어진 고추들을 주워 담아 밭뙈기와 멀리 떨어진 곳에 내다버립니다.
 

 

 


변화를 두려워하기보다는 익숙함이 주는 편안함에 빠져 살았습니다.
물 빠짐이 좋은 모래가 섞은 땅이어서 토질에 구애받지 않고 이것저것 농사를 지어왔습니다.
그런데 유독 마늘농사만큼은 재대로 지어보질 못했습니다.
터를 마련한 후 처음 두해동안 자투리땅을 이용해 마늘을 심었습니다만 말라죽어 결과가 좋지 못했습니다.
다락골에 터를 잡은 지도 5년이 더 지났습니다.
그동안 화학비료와 약제사용을 자재하며 땅심을 키우는데 주력했습니다.
해마다 석회비료를 시용한 결과 강한 산성이던 토질이 중성에 가깝게 개선되었습니다.
내일은 알 수 없어 두려움도 있지만 꿈을 꿀 수 있게 해줍니다.
화학비료와 토양살충제는 일절 사용하지 않고 유기질비료와 붕사, 석회비료에 유황을 첨가해 새롭게 밭을 꾸밉니다.
마늘은 잘 되는 땅이 따로 있다는데…….
작은 불안감은 쉽게 가지질 않습니다.

 


몸을 움직여 땀을 흘리는 것이 머리 쓰는 일보다 훨씬 적성에 맞는 것 같습니다.
일손을 덜어보겠다고 지난해봄에 구입했던 중고관리기를 꺼냈습니다.
구입만 해 놓고 기계 다루는 일엔 소질이 없어 헛간에 내버리다시피 방치해왔습니다.
그러나 정해진 시간 안에 일을 매듭짓기 위해서는 이제라도 기계의 힘을 빌려야만 될 것 같습니다.
세워둔 기계 앞에만 서면 "쓸데없는 데에 돈을 쳐들었다"고 입버릇처럼 내뱉는 옆지기의 빈정거림도 은근히 부담으로 남았습니다.
헛간에서 기계를 꺼내며 슬며시 옆지기의 표정부터 살핍니다.
연료콕크를 열고 시동줄을 힘차게 잡아당기자 경쾌하게 기계가 돌아갑니다.
그동안 주변사람들로부터 귀동냥한 것들을 밑천삼아 새로 꾸밀 마늘밭에 로터리를 칩니다.
앞으로 나갔다, 뒤로 물러섰다.
밭고랑에 쳐 박힌 기계를 다시 일으켜 세우려고 진땀깨나 흘립니다.
모든 것이 서툴고 낯설어 우격다짐으로 밀어붙이다보니 힘은 힘대로 들었습니다만
기계의 쓰임새를 하나하나 익히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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