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소망과 설렘을 가득 싣고 다락골에 왔습니다.
지난겨울은 유난히 춥고 혹독했습니다.
그 쓸쓸했던 시간만큼이나 이제 막 사방을 감싸는  기운이 훈훈합니다.
지루했던 시간은 가고
봄 마중 가는 들뜬 마음이 발걸음을 가볍게 합니다.

 

 

"어머! 인천아자씨 오시네유!
이제부터 부지런하게 준비해서 봄 것들 지대로 부쳐먹어봐야지유!"

객지에서 돌아온 식구마냥 만나는 이웃들이 살갑습니다.
겨우내 잠가두었던 쉼터로 통하는 상수도 밸브를 열고 쉼터 안으로 들어서니
혹한으로 수도꼭지가  얼어 터져  부엌방은 물로 흥건하고 화장실 양변기 물통도 금가 물이 줄줄 세어 나옵니다.
나름대로  정성을 다해 겨울채비를 해두었는데 작은 실수 하나가 화를 키웠습니다.
집안으로 통하는 수도관 밸브를 잠근 후 집안으로 연결된 수도관의 물을 완전히 제거하지 않고 방치했던 것이 원인이 되었습니다.
허겁지겁 당진읍으로 내달려 필요한 자재들을 구입해와 서투른 솜씨로 뜯고 붙이고 한참동안 씨름했습니다.
소스라치게 고요한 시골마을엔 개구리소리만 요란하고 해가 떨어지기 무섭게 오싹할 만큼 찬 냉기가 몰려듭니다.

 

 

한날한시에 씨앗을 뿌렸던 마늘밭에는 고만고만한 어린 싹이 움텄습니다.
혹한 속에서도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을 지켜낸 생명들과 수인사를 나누며 얼마나 예쁘고 소중한지 한동안 마음을 빼앗겼습니다.
지난해 가을 씨만 심어놓고
춥다고 방구석에 웅크리고 앉아 코빼기도 보이질 않고 행여 엄동설한에 얼어 죽지는 않았을까 오만가지 생각만 했습니다.
비닐 한 장을 이불삼아  자신을 지켜낸 어린생명이 어찌 그리 대견한지 콧등이 싸하게 내려않습니다.

 


혹한과 싸운 양파모습은 실오라기처럼 앙상한 줄기만 남았습니다.
서릿발의 기세에 들려 푸른 잎사귀는 바싹 마르고 겨우 숨통만 붙잡고 있습니다.
얼마나 힘에 겨웠을까?
치열한 삶의 방식이 그대로 묻어납니다.
심어만 놓고 그냥 지나쳐버렸던 시간의 더께만큼이나 낯이 간지럽고 염치가 없습니다.
기운 차리게 영양분을 보충해주며 희망의 밧줄을 놓지 않았습니다.
꼼수가 통하지 않는 것이 농사 같습니다.

 

 

계획했던 일중에는
과수나무에 황소독을 하는 일도 포함되었습니다.
새순이 움트기 이전에 월동한 해충들을 방제하고 과수나무의 힘을 북돋우기 위해서입니다.
아침나절 내내 하늘에 비구름이 끼여 약제 살포는 약해발생의 우려 때문에 포기까지 생각했었는데 점심 무렵부터 날씨가 화창합니다.
보온을 위해 나무주변에 깔아놓았던 볏짚들을 걷어내고 석회유황합제를 흠뻑 뿌려줍니다.
매화꽃봉우리가 제법  부풀었습니다.

 

 


벼르고 벌렸습니다.
두둑을 덮고 있던 비닐을 벗겨내 차곡차곡 포대에 담아 마을 폐비닐집하장에 들어 날립니다.
밭고랑에 쌓인 낙엽들을 긁어모아 태우고
작은 돌부리 하나라도 더 주워 모읍니다.

 


봄입니다.
새롭게 시작하는 봄입니다.
밭뙈기가 술렁이고 꿈틀댑니다.
씨를 뿌리며 기대와 설렘이 용솟음치는 계절입니다.
자연 앞에선 하잘것없는 인간입니다.
자연을 거스르지 않고 교감하며 정성을 다해 키우겠습니다.
이쁜 것도 못난 것도 모두 땅이 내는 것입니다.
풍성한 열매가 열리며 하늘에게 감사하고 작고 못난 열매가 달리면 자신이 정성부족을 탓하겠습니다.
품만 들고 삯도 건지기 힘든 수고로운 일이지만 욕심과 집착에서 벗어나 여유로운 미소만큼은 잃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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