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선들의 약초 하수오(何首烏)  

 

명나라 때 중국의 의가인 이시진은 『본초강목』에서
‘50년 된 하수오 뿌리는 주먹 크기만 한데 이름을 산로(山老)라고 한다.
1년쯤 먹으면 수염과 머리칼이 청흑색(靑黑色)이 된다.
150년 된 것은 크기가 물 긷는 항아리만 한데 산가(山哥)라 한다.
1년쯤 먹으면 안색이 붉고 부드러워져 젊은이처럼 된다.
200년 된 것은 고리짝만큼 큰데 산옹(山翁)이라 부른다.
먹으면 안색이 어린애와 같고 걸음걸이가 달리는 말과 같아진다.
300년 된 것은 크기가 서 말들이 고리짝만 하다.
이름을 산정(山精)이라 하는데 순수한 양기(純陽) 자체여서 구복하면 지선(地仙)이 된다’고 적고 있다.


서 말들이 고리짝이면 얼마나 클까.
1말이면 쌀이 8㎏쯤 되니까 힘없는 사람은 들어 올리기 어렵다.
이걸 먹으면 지상의 선계에 살면서 불로장생하는 신선인 지선이 된다.
이럴 수만 있다면 우리나라 사람들 중 천금을 아끼지 않을 이들이 적지 않을 것 같다.
여담이지만 국내 아마추어 약초꾼들도 고리짝만 한 하수오를 캐는 일이 종종 있다.
하지만 이시진이 말하는 명산심곡에서 난 하수오는 아니다.
얘기를 들어보면 시골의 밭두렁이나 농가 돌담벽 주변, 또는 촌락과 인접한 산기슭 등지에서 많이 캔다.
아무래도 1960, `1970년경 촌부들이 농가소득 증대 차원에서
수익약재로 밭이나 공터에 심었다가 내버려둔 것들이 아닌가 싶다.
뒤에 자세히 이야기하겠지만,
이 하수오는 뿌리가 고구마처럼 생기고 색깔이 붉은 적(赤)하수오이며 우리나라 자생종이 아니다.
민가 부근의 것은 대부분 중국 수입종일 공산이 크다.
이것 말고 백(白)하수오가 또 있는데 뿌리 생김새가 길쭉하니 다르고 색깔도 흰색이다.
백수하오는 자생종이어서 우리나라 산야 전역에서 자란다.
그래서 약초꾼들이 산에서 캐는 것은 대개 백하수오다.  

 

적하수오는 수컷, 백하수오는 암컷

 

하수오가 어떤 약초인지 알기 위해서라도

먼저 영화 한 편을 소개해야겠다.
프랑스에 거주하는 중국인 영화감독 다이 시지에의

<식물학자의 딸(Les Filles Du Botaniste)>이란 영화다.
밍과 안이라는 두 여인의 동성애를 그린 퀴어 영화인데,
시지에 감독은 섬 하나를 통째로 약초원으로 꾸며서

갖가지 기화요초를 보여주며
다채로운 중국 약초의 세계로 관객의 시선을 끌어들인다.
이 영화에 식물학자인 안의 아버지가 약초에 관해 이야기를 하는

대목이 있는데, 하수오에 대한 이야기도 있다.


그 부분을 옮겨본다.
“하수오의 학명은 폴리고눔 몰티플로룸(Polygonum mul-tiflorum)이다.
한의학에서는 신장과 간의 질병을 치료하며 옛 의서에서는 이 약물을 처방하여 남자의 성 기능 장애를 치료했다.”
여기서 폴리고눔 몰티플로룸은 하수오의 학명이긴 한데 적하수오의 학명이다.
중국에서는 하수오 하면 대개 적하수오를 가리킨다.
또 적하수오의 원산지가 중국이기도 하다.
요새는 플르롭테루스 물티플로루스(Pleuropterus multiflorus)로 학명이 바뀌었다.
한편, 백수오의 학명은 시난춤 일포디(Cynanchum wil-fordii)로 다르다.
둘 다 하수오로 불리지만 과(科)가 전혀 다른, 서로 무관한 식물이다.
분류학상 적하수오는 마디풀(여뀌)과에 속하고 백수오는 박주가리과에 속한다.
백수오는 우리나라 전역에서 자라며 지역에 따라 은조롱, 큰조롱, 새박덩굴 등으로 불린다.
이 둘은 약으로 쓰이는 뿌리의 생김새도 확연히 다르고 뿌리 색깔도 다르다.
이 둘의 기미(氣味)도 아주 다르다.
맛을 보면 적하수오는 쓰고 떫고 자극적이어서 날로는 먹을 수가 없다.
그래서 쥐눈이콩 등을 넣고 시루에 쪄서 수취해 쓴다.
반면에 백수오는 전분이 많고 맛이 고구마나 배추 뿌리와 비슷해 그냥 날것으로 먹을 수 있다.
독이 없어서 구황기에 식량 대용으로 쓰이기도 한다.
이렇게 서로 너무 다른데도 희한하게 잎 모양새는 무척 닮았다.
잎만 보면 얼핏 잘 구분이 안 된다.
둘 다 덩굴식물이라는 것도 닮았다.
동명이물인 이 둘의 관계가 이 때문에 좀 복잡해진다.
하나는 암컷, 하나는 수컷이라는 것이다.
17세기 초 중국 명나라 때 왕기가 편찬한 박물도감 『삼재도회(三才圖會)』는
하수오라는 항목 안에 적하수오는 수컷(雄), 백하수오는 암컷(雌)으로 분류하고 있다.
대부분의 중국 본초서가 그런 식인데
우리나라 『동의보감』도 ‘붉은 것은 수컷, 흰 것은 암컷이다.
일명 교등(交藤), 야합(夜合), 구진등(九眞藤)이라고 한다’고 쓰고 있다.
사랑하는 이들처럼 얽히므로 교등, 밤에 은밀히 교합한다고 해서 야합이라는 것이다.
이런 내용이 와전되서
우리나라 약초꾼들도 하수오가 암수 다른 식물로 서로 떨어져 있다가 밤이 되면 서로 엉켜 안고 지낸다거나,
하수오 한 뿌리를 발견하면 반드시 그 주위에 한 뿌리가 더 있으며,
밤중에 교합하여 음기를 얻은 것이 약효가 더 있다는 등의 얘길 하기도 한다.
이런 이야기들이 근거가 없다고는 할 수 없겠으나
두 종의 하수오를 분류하기 위해 쓴 과거의 용어를 이해하지 못하고 약초꾼들이 너무 신비화시킨 감도 없지 않다.
영화 이야기로 돌아가면,
<식물학자의 딸>의 두 여자는 아름다운 약초원의 풍광 속에서 서로 이해하고 마침내 사랑하는 사이가 되고 만다.
마치 자웅 한 쌍의 하수오가 서로에게 얽히듯 말이다.
하수오는 이 영화에서 그렇게 두 여인의 운명적인 사랑을 암시하는 절묘한 상징체계로 작동한다.
 

반로환소하는 신통한 약효

하수오는 그 이름부터가 노화를 막고 젊음을 되돌리는 ‘반로환소(反老還少)’의 신통한 약효와 관련이 있다.
옛날 중국에 하공(何公)이라는 노인이 있었다.
그가 야생의 약초 뿌리를 캐 먹었는데 백발이 검어지며 젊음을 되찾았다. 그로부터 하공의 하(何), 머리를 뜻하는 수(首), 까마귀처럼 머리칼이

검어져 오(烏)를 써서 약초의 이름이 하수오가 됐다고 한다.
당나라 때의 유학자 이고의 「하수오전」은 한 가계의 이야기를 담고

있어 재미있다.
중국의 순주 남하현에 하수오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하수오의 할아버지 이름은 능사(能嗣)고 아버지 이름은 연수(延秀)다.


원래 능사는 사람 구실을 못할 정도로 몸이 약해 58년 동안 노총각으로 살았다.
그러다 도사를 만나 도를 닦았는데 어느 날 산중에서 술에 취하여 누워 있다가 멀찍이 떨어져 있는
두 덩굴이 서로 껴안듯 엉키는 것을 보았다.
한참 후에 떨어지더니 또다시 껴안는 것이 사랑하는 젊은 남녀가 포옹하는 것과 흡사했다.
능사가 기이하게 여겨 덩굴의 뿌리를 캐어 집으로 가지고 내려왔다.
그러나 아무도 이 덩굴에 대해 아는 바가 없었는데, 도사에게 물으니 신선지약(神仙之藥)이라고 했다.
능사는 이 뿌리를 1년여 복용하고는 온갖 지병이 없어지고 흰 머리가 검어지고 기력이 젊은 사람처럼 되었다.
장가도 들어 연수를 비롯한 자식을 여럿 얻었다.
아들 연수도 이를 먹고 수명이 160세에 이르렀다.
그의 아들 수오 역시 나이가 130세가 되었어도 머리칼이 젊은이처럼 검었다.
수오의 동네 친구가 몰래 훔쳐 먹고 수명이 늘어났는데 이로 인해 하수오라는 약초가 항간에 알려지게 됐다.
하수오의 효능을 좀 더 살펴보자.
청대의 『본초비요(本草備要)』에 적힌 효능은 다음과 같다.
“간과 신을 보하고 피를 맑게 한다.
정력을 세게 하고 아이를 낳게 한다. 온갖 풍을 없애고 근골을 튼튼히 하며 머리카락을 검게 한다.”
『본초강목(本草綱目)』엔 “혈기를 돋우어 수염과 머리칼을 검게 하고 안색을 부드럽게 한다.
오래 복용하면 근골이 튼튼해지고 정수가 늘어 나이를 먹어도 늙지 않는다.
나력(만성림프선염)을 치료하고 종기를 가라앉힌다.
머리의 풍창(피부병)을 낫게 하며 다섯 가지 치질을 고친다.
가슴의 통증을 그치게 한다.
부인의 산후병과 대하 등을 고친다.
뱃속과 장부의 일체 고질과 찬 기운에 의해 생긴 장풍(만성설사)을 치료한다”고 했다.
하수오의 반로환소하는 효능은 현대의학적으로도 상당 부분 검증되고 있다.
약리학적으로 보면 적하수오는 레시틴, 안트라퀴논 유도체, 녹말 등이 함유되어 있다.
레시틴은 항노화, 항산화 물질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인체의 신경조직을 구성하는 성분으로 특히 뇌척수의 중요 성분 중 하나다.
두뇌의 소모가 극심한 현대인에게 꼭 필요하다.
레시틴은 혈구와 세포막을 구성하는 중요 성분이기도 해 혈구의 신생과 발육을 촉진한다.
또 콜레스테롤이 간에 쌓이는 것을 저지하고 혈중 콜레스테롤 농도를 떨어뜨려 동맥경화를 막는다.
안트라퀴논 유도체도 중추신경을 흥분시키는 효과가 있다.
장의 연동운동을 강화시키기도 한다.
적하수오를 복용 후 배변이 개선되는 것은 이 성분 때문이다.
완만하게 설사를 시키므로 사하제로 이용되기도 한다.
임상실험으로도 적하수오는 골수 조혈세포와 적혈구의 수를 증가시키는
조혈작용과 함께 면역능력을 증강시키는 것으로 밝혀졌다.
또 지방간과 바이러스 간염, 그 밖의 간 기능의 장애에 억제작용이 있어서 간 기능을 보호하는 약리적 효과도 인정된다.
적하수오에 비해 성분이 자세히 밝혀져 있지 않지만,
백수오 역시 뿌리에 레시틴이 있고 강심작용을 하는 성분이 있다.
동물실험에서는 혈당을 떨어뜨리는 작용이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술에 담그거나 환으로 만들어 복용해도 좋아
여러해살이 덩굴풀인 하수오는 늦은 가을이나 이른 봄에 말라죽은 줄기를 보고 캔다.
백하수오는 비탈진 풀숲이나 산비탈의 바위틈, 관목숲에서 잘 자란다.
바닷가가 가까운 산의 비탈진 곳이나 섬지역에 많다.
주의사항 하나.
10여 년 전부터 백하수오와 뿌리가 비슷하게 생긴 이엽우피소라는 중국산 식물이 농가에 재배되면서
그동안 백하수오로 유통됐는데, 가끔 산에서도 이를 캐는 경우가 있다.
약재로도 위품 논란이 있으므로 구별을 필요로 한다.
백하수오는 산지에 따라 약효가 조금씩 차이가 나는데,
한국토종약초연구소 소장 최진규 씨는 경기도 감악산 일대와 경북 소백산 부근에서 난 것이 약효가 가장 높다고 한다.
복용법은 술에 그냥 담가 먹기도 하는데 35°쯤 되는 담금주에 넣고 2∼3개월 동안 밀봉해 두면 된다.
더 효과를 보려면 『동의보감』의 신선고본주(神仙固本酒)도 좋다.
우선 백수오 240g, 우슬 300g, 구기자 160g, 천문동, 맥문동, 생지황, 숙지황, 당귀, 인삼 각각 80g, 육계 40g을 준비해 가루로 내고, 찹쌀 2말과 흰누룩 2되를 쪄서 위의 약가루와 함께 넣고 버무려 술을 빚는다.
이 술을 매일 반주 삼아 한 잔씩 마시면 살결이 고와지고 오래지 않아 흰 머리칼이 변해 까맣게 자라나온다.
환으로 만들어 매일 복용해도 좋다.
제법은 백수오 600g과 우슬 300g을 섞어서 쥐눈이콩(검정콩) 3되를 삶은 물에 버무려
3번 찐 다음 잘 찍어서 이것을 볕에 말려 가루로 낸다.
대추살(棗肉)에 반죽하여 벽오동씨만 하게 알약을 만들어 한 번에 30∼50알씩 먹는다.
근골이 약하여 허리와 다리가 힘이 없고 쑤시거나 정력이 약한 데 좋다.
전통적인 처방으로는 소옹절의 칠보미염단(七寶美髥丹)이 있는데
적·백하수오를 각각 한 근씩 흑두와 섞어 아홉 번 찌고 말린 뒤
복령, 우슬, 당귀, 구기자, 토사자, 보골지 각각 반 근을 섞어 환으로 만들어 복용하면
백발을 막고 탈모를 감소시킨다고 한다.
또 여조(呂祖)가 신선 공부를 할 때에 만들어 복용했다는 연년익수불로단(延年益壽不老丹) 등이 유명한데
적하수오, 백수오, 지골피, 복령, 생건지황, 숙지황, 천문동, 맥문동, 인삼 등을 가루 내어 졸인 꿀(煉蜜)로
반죽한 다음 벽오동씨 만하게 알약을 만들어 한 번에 30∼50알씩 술과 함께 먹는다.
[출처:산림,글 김승호(광주 자연마을한의원 원장)] 

출처 : 다락골사랑
글쓴이 : 누촌애(김영수)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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