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팝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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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서 보면 새하얀 구름 덩어리가 초록 풀밭 위 여기 저기에 내린 듯하고, 좀 가까이 다가가면 고목이 흰 쌀가루를 뒤집어 쓴 듯하다. 때아닌 싸락눈을 보는 듯하기도 하다. 꽃이 덜 핀, 잘 생긴 이팝나무는 연두색 나뭇잎과 꽃봉오리들이 어우러져 커다란 불두화(佛頭花) 한 송이처럼 보인다.

지난 8일 대구 달성군 옥포면 교항리의 이팝나무 군락지를 찾았다. 대구시내에서 화원으로 가는 국도를 타고 달리다 화원읍사무소와 옥포면사무소를 지나서 교항리, 신당리 등 표지가 있는 팻말 지점에서 우회전해 이팝나무 길을 따라 1㎞ 정도 가면 나온다.

3천여평 군락…황홀경에 빠지다

옥포 이팝나무 군락지는 교항리 주변 들판 한 가운데 있는 3천여평의 나지막한 구릉지로, 크고 작은 이팝나무가 전체를 덮고 있다. 팽나무, 참나무 등이 일부 자라고 있지만 이팝나무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만개한 시점은 아니지만, 큰 이팝나무는 대부분 꽃을 활짝 피우고 있었다. 흰 꽃무리가 5~10m가 넘는 커다란 나무 전체를 덮고 있는 모습은 탄성이 나올 정도로 환상적이었다. 순백의 꽃이 초록의 잎과 어울려 청순하면서도 황홀한 아름다움을 선사하고 있었다. 이런 저런 연상을 떠올리며 군락지를 돌아보니 초록색과 흰색이 수놓은 별천지를 노니는 기분이었다. 하늘에서 바라보면 들판 위에 떠있는 흰 섬으로 보일 것 같았다.

1991년 7월 천연보호림으로 지정된 이 군락지는 수령 200~250년 된 이팝나무 40여그루가 군데군데 자리잡고있고, 그 사이에는 최근에 심은 작은 이팝나무 수백 그루가 자라고 있다. 고목들을 정확히 언제 심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오래 전부터 마을 수호림으로 여기면서 교항리 마을 주민들이 관리해오고 있다. 매년 정월 대보름과 칠월칠석 때 마을 주민이 모여 당산제를 지내기도 하고, 경로잔치 장소로도 활용돼 왔다.

이팝나무사랑회가 없었다면…

마을 소유로 돼 있는 이 숲은 한때 개발바람 속에 위기를 맞기도 했다. 몇 년 전 이팝나무숲이 개발에 걸림돌이 되고 주변 토지의 가치를 떨어뜨린다며 나무를 베어버리자는 이야기가 나왔다. 당시 이팝나무사랑회 초대 회장을 맡고 있던 한임개 옥포 부면장을 비롯해 이팝나무사랑회 회원들이 나서 "세계적 이팝나무 군락지를 자랑스럽게 생각해야 하고, 오히려 장래에는 마을에 더 큰 이익을 줄 것"이라며 주민을 설득, 그 이야기를 잠재울 수 있었다.

6년 전에 결성된 이팝나무사랑회는 매년 한 차례 이상 복토가 필요한 곳에는 복토를 해주고 가지치기와 잡목제거, 청소 등 대대적인 정화활동을 벌여오고 있다. 지난 9일에도 마을주민, 면사무소 직원 등과 함께 잡초·잡목 베기와 청소를 실시했다.

한 부면장은 "종전에는 더 많은 고목이 있었는데 가치를 잘 몰라 마을 사람들에 의해 한 두 나무씩 베어지기도 하고 함부로 소를 매 죽은 고목도 적지 않다"며 "지금부터라도 고목은 물론 새로 심은 이팝나무를 잘 관리해 모두가 부러워하는 세계 최고의 이팝나무 숲으로 가꾸어 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밥에 고깃국!' 먹고 살기 힘든 시절, 고깃국과 함께 하얀 쌀밥을 먹는 것이 최고의 바람이던 때를 지금도 생생하게 떠올릴 수 있는 어른들이 많다. 북한에서는 요즘도 쌀밥을 '이밥'이라 한다. 흰꽃으로 덮인 이팝나무는 쌀밥을 연상시키므로 '쌀밥나무'를 뜻하는 '이팝나무'로 부르게 됐다고 한다. '이밥'이 '이팝'으로 변음되어 '이팝나무'가 된 것이다. '이밥'은 '이(李)씨 밥'으로, 조선왕조 시대 벼슬을 해야 이씨인 임금이 내리는 흰쌀밥을 먹을 수 있다하여 쌀밥을 '이밥'이라 했다 한다.

이팝나무가 쌀밥과 인연을 맺게 된 데는 어느 며느리의 한(恨) 서린 죽음의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옛날 경상도 땅에 18세에 시집을 온 착한 며느리가 시어머니의 온갖 구박을 받으며 살고 있었다. 한 번은 큰 제사가 있어 제사에 쓸 쌀밥을 짓게 되었다. 평소 잡곡밥만 짓던 며느리는 처음 쌀밥을 지으면서 혹시 잘못 돼 꾸중듣게 될까 걱정이 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뜸이잘 들었는지 알아보려고 밥알 몇개를 떠 먹어 보았다.

그것을 보게 된 시어머니는 제사에 쓸 밥을 며느리가 먼저 먹었다며 갖은 학대를 일삼았다. 억울함을 견디지 못한 며느리는 어느날 뒷산으로 올라가 목을 매 죽었다. 그 이듬해에 며느리가 묻힌 무덤가에 나무가 자라더니 흰 꽃을 가득 피워냈다. 쌀밥에 한이 맺힌 며느리가 죽어 나무가 되었다며 동네사람들은 그 나무를 이팝나무라 불렀다.

이팝나무 꽃이 특히 풍성하게 잘 피면 그 해 벼농사에 풍년이 드는 조짐으로 알았고, 그로써 이밥을 먹게 된다 하여 이팝나무라 불렸다는 설과 하얀 꽃이 나무를 덮고 있는 모습이 밥 주발 위로 봉긋이 올라온 쌀밥 모양이어서 이팝나무라 부르게 되었다고도 한다.

명칭에 대한 또 다른 이야기는 꽃 피는 시기가 입하(入夏) 무렵이어서 '입하나무'라 부르다가 이팝나무로 변했다는 것이다. 전북 일부 지방에서는 지금도 '입하목'으로 부르고 있다고 한다.

이팝나무는 키가 20~30m나 되고 굵기도 몇 아름이나 될 정도로 자라는 큰 나무로, 5월 초순에 파란 잎이 잘 보이지 않을 정도로 새하얀 꽃이 가지마다 소복소복 피어난다. 꽃잎은 가느다랗게 넷으로 갈라지는 모양이고, 꽃이 피면 보름 정도 은은한 향기를 내뿜는다. 활짝 피었다가 마치 눈이 내리듯 우수수 떨어지는 낙화 순간도 장관이다. 꽃이 지고 나면 타원형의 자주색 열매가 맺힌다.

우리나라에서는 주로 경북 남부에서 전북 중간쯤을 잇는 선의 남쪽에 자라고,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수령 300~500년의 이팝나무만도 8곳 10여그루나 된다. 이 중 경남 양산시 상북면 신전리, 경남 김해시 한림면 신천리, 김해시주촌면 천곡리 등의 이팝나무가 크고 아름다운 나무로 유명하다. 이팝나무는 농민들이 오랫동안 풍년을 점치는 나무로 삼았기에 보호가 잘 돼 노거수가 많은 편이다.

이팝나무는 우리나라와 함께 일본과 중국의 일부에서 자라고 있는 세계적 희귀목으로 알려져 있다. 이 나무를 처음 본 서양인들은 눈이 내린 나무처럼 보여 '눈꽃(Snow flower)나무'라 불렀다. 한자이름으로는 중국이나 일본에서 사람이 죽어 저승의 6도(극락, 사람, 지옥, 아귀 등)로 갈 때 뇌물로 관 속에 넣어주는 쌀(육도미)과 관련해 붙여졌다는 '육도목(六道木)', 잎을 차 대용으로 쓴다고 해서 붙여진 '차엽수(茶葉樹)' 등으로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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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eongnam (외 2 개)
출처 : 분통이
글쓴이 : 최문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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