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기흑염소의 울음소리에 잠을 깻다.
밤새 삼킨 여러가지 술들로 머리는 혼미하고, 쓰린 속이 해우소를 제촉한다.
역시 산골에서 들이키는 새벽공기는 상쾌하다.
팔봉산의 기를 받아 기운을 북돋우고 주변경치에 취해 탄성을 애써 참고 있을 즈음 어느구들에서 잠을 청했는지 저 만치서 옆지기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미리 약속이나 한 것처럼 의기투합한다.
"떠나자."
같이 모인 공동체 생활에서 이탈해야한다는 서글픔이 중압감으로 다가 왔지만 서로를 신뢰하고 의지하기에 모두들 잠에 취해있는 고요한 목장,행여깰까 미안한 마음,곤히 잠들어 있는 분들을 뒤로하고 길가의 요리집에서 해장국 한 그릇에 쓰린 속을 다스리며 길 찾아 다락골로 들어선다.


1주일사이 농장은 참 변화무쌍이다.
주일전에 직파한 검은콩은 여기 저기서 대지를 박차고 기지개를 펴고 있고 그 중에는 벌써 까치들의 성찬에 희생되어 나둥그렇지는 것도 몇개 보인다.
기피제를 처방하고 반짝이 줄로 겁도 주는 흉내를 냈지만 머리 좋은 까치녀석들이 역시나 그냥 지나가 주지 않는다.참깨밭 헛골에는 쇠비름들의 천국이다.
이 놈들의 성장세는 실로 눈부시다. 주일전 애기모종에 가까워 제거를 소홀했는대 아! 글쎄  어떤녀석의 줄기는 애기 새끼손가락만큼이나 하다.
아직 덜 깬 술기운에 두다리는 휘청거리고 목은 마르고 혀는 타 들어 가 이런저런 핑계로 쉼터에서 한 숨 자려 했는데 일 시켜 먹으려 작정이나 했는지 하늘도 더위를 잠시 멈추고 시원한 바람을 선사한다."이 무슨 충성이라고 내동이 치면 그만이고, 잡초천국이면 어떠리,그 깟 열매 벌래들이 먹으면 또 얼마나 먹겠어, 욕심 그만 부리고 마음 한 번  접고 살자".
이런저런 망상이 지친몸과 합세하여 충동질함에 오늘일은 그만 접을까 생각이 복잡하지만 이 무더운 쬐악볕아래서 오늘도 80세 노모는 풀을 뽑고 있겠지 생각함에 못난 가슴 여민다.
'그래 어차피 내가 해야 할 일 피하지 말자.눈에 밟혀 1주일내내 마음 고생 할 바에는 이 놈들과 맞짱한 번 뛰고 가자,멋진 선배들과의 석별의 정도 나누지 못하고 미련 곰탱이처럼 이곳까지 비싼기름 태워가며 달려 왔는데 그냥 갈 순 없잖은가."
초록은 동색이라던가.옆지기도 지친 모습은 역역하다.좋은 분들과 대화하고픈 욕심에 잠도 설쳤다 한다.
일주일새 꽉 차버린 고추밭의 2차 곁순 제거작업을 옆지기에게 맡기고 나는 참깨밭이며 더덕밭, 도라지밭, 콩밭의 잡초들과 지루하고 반복되는 싸움을 시작한다.
호미만 들고 덤벼들면 백전백승이지만 이 싸움은 지루한 시간과의 전쟁속에서 자기감정과의 대립이다.너죽어야 나 산다는 반복되는 작업속에서 패배자의 모습으로 쓸쓸히 퇴장하는 녀석들에게서 연민의 정이라도 찾아볼까 하다가도  승리자의 여유로움에 애써 흥을 내며 작업에 열중한다.
작업전의 모습과 작업후의 모습을 비교하며 희열을 느끼는 사이 옆지기도 얼굴이 시커멓게 탓다 씩씩거리면서도 자기에게 할당된 작업량 달성에 무진 애쓰는 모습이다.

 

1차 파종한 대학찰옥수수가 내 키 이상으로 커 버렸다.
더러 몇 그루에선 숫꽃이 얼굴을 보여준 것도 있고 또 소담한 열매도 군데군데 달려있다.
지난주까지만해도 작황이 좋아보였던 오이밭이 노균병에 걸려 보기 흉하다.
고추밭에서도 담배나방이 몇 마리 관찰된다.
곧은터에서 배운 발효효소를 이용한 담배나방퇴치법은 팻트병에 담아 놓은 내용물들이 지속된 무더위로 말라버려 제 기능을 발휘 못하고 있다.
충분히 효소와 막걸리를 보충한다.
고추에는 칼슘제를 곁드려 탄저병 예방약제,담배나방, 총체벌레방제약을 혼용하여 충분히 살포하고 오이에는 노균병 방제약을 살포한다.
하루하루가 다르게 변해가는 은행나무 그늘 아래서 땀을 식히며 순간에 집착하지않고 내일을 예지한 스스로에 만족하며 인천으로의 유턴을 준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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